Sketch2020. 2. 7. 21:15

숙명여대 성전환 합격자, 논란 끝에 "입학 포기"

여성으로 성전환 수술을 하고 올해 대학 입시에서 숙명여자대학교에 합격한 A씨가 입학을 포기하기로 했습니다. A씨는 JTBC와의 취재에서 "합격 소식이 알려진 이후로 자신의 입학을 반대하는 움직임에 무서운 느낌이 들었다"면서 "숙대 입학을 포기하는 대신 여대를 제외한 대학에 입학할 준비를 하겠다는 입장을 전했습니다. 앞서 숙명여대는 지난해 8월 태국에서 성전환 수술을 받은 A씨를 최종 합격시켰고 이후로 학교 안팎에서는 찬반 논란이 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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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환하여 '여성'임을 법적으로 인정 받은 여성이 합법적으로 여자대학교에 입학 신청을 하여, 그 대학으로부터 적법하게 입학 허가를 받은 상황에서 '반대'의사를 표시하는 학생들 때문에 입학을 포기하였다고 하니 마음이 아프다. 내가 이런 말 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나 역시 '여자대학'을 졸업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 숙대생이라면 나는 그 사람 편에 설 것이다. 

 

 

관련 기사의 숙대생 대화방 내용도 조금 훑었는데, '여성의 파이를 왜 그런 사람이 나눠 먹는가'하는 불만을 표시한 숙대생도 있었다. 한숨이 나왔다. 음...뭐 파이좀 나눠 먹으면 안될까? 

 

 

음, 공포심을 느끼고 입학을 포기한 그분께 말씀 드리고 싶다.  여대 가지 마시라. 남자 여자가 섞여서 사는 세상에 뭐가 답답해서 대학 공부를 여대에서 하려 하는가? 남자 여자 섞여서 동등하게 서로 협력하고 나누는 문화에서 공부하는 것이 여자들만 우글거리는 곳에서 '파이'를 남에게 빼앗길까봐 전전긍긍하는 문화를 흡수하는 것 보다 훨씬 낫다. 

 

 

내 비록 내가 다닌 여자 대학에서 귀한 교육을 받았고, 귀한 친구들을 만났으며, 귀한 교수님 슬하에서 많이 크고 많이 도움받고 성장하였으나, 내가 다시 선택할 수만 있다면 나는 절대 자발적으로 여자대학에 입학하지는 않을 것이다. 옛날엔 왜 여자대학 들어갔나구? 아, 학비 대주는 아버지가 내 의사와 상관없이 여대로 입학원서를 들이 밀어서 -- 아버지 학비에 기대어 사는 내 신세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그냥 울면서 여대에 갔을 뿐이다. 

 

트랜스젠더의 여대 입학은 찬반 논란이 일었다. 숙명·덕성·동덕·서울·성신·이화여대 등 서울 지역 6개 여대의 23개 여성단체는 ‘여성의 권리를 위협하는 성별 변경에 반대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해 A씨의 입학을 반대했다. 숙명여대 일부 동문은 A씨의 입학에 찬성하며 ‘성전환자로 숙명여대 최종 합격한 학생을 동문의 이름으로 환대한다’는 제목의 연서명을 온라인에 올려 해당 학생에게 응원을 보내줄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출처: 중앙일보] 박한희 변호사, ‘숙대 포기’ 트랜스젠더 위로 “함께 살아가자”

 

내가 졸업한 학교도 이따위 기사에 이름을 올린 것을 보고서 나는 정말 인생 최초로 내가 '여대 출신'이라는 것이 아주 챙피스러워졌다.  그전에는 그냥 아버지의 선택으로 여대 간것이 불만이었는데, 지금은 쪽팔린다 내가 저런 학교 출신이란 것이. 아...망했다... 트렌스젠더 여성이 여대에 들어오는 것이 '여성의 권리'를 위협한다고?  여성의 권리가 뭔데? 여성에게 권리란게 있었어?  나는 솔직히 남자로 태어나서 하필 여자로 바꾸는 사람이 이해가 안된다 왜냐하면 이따위 남근중심 사회에서 나도 가능하면 남자가 되고 싶은 판이었으니까. 근데 뭐가 답답해서 여자가 되냐구...그게 여성의 권리 침해가 돼? 응? 

 

그럼, 내가 여성의 진짜 권리가 뭔가 말해주겠다. 다른 누구도 침해 할 수 없는 여성의 권리는 -- 약자를 보듬어 주고, 슬픈자의 어깨를 감싸주고 그러는거다. 그게 우리가 가진 천부 권리이다. 사랑의 권리, 그것이 여성이 가진 최고의 권리이다.  그것은 남이 빼앗지 못한다. 좀 정신들 차리셔 여성 동지들. 우리가 가진 진짜 힘은 힘없이 쫒겨나가는 사람의 편에 서 줘야 하는거라구. 페미니즘은 늘 소수자와 연대해 왔다구, 그게 페미니즘의 근간이라구... 아이구. 

 

그러니까 그 분, 여대에서 공포심 느끼고 입학 포기한 그 여학생 -- 지금은 비극이지만 장차는 잘 된 일이다. 그냥 남녀공학 가서 뒤섞여서 사는 방법을 익히시는 것이 훨씬 좋다. 크게 보면 득이지 손해가 아니다. 

 

 

추신: 파이 부스러기조차 남들과 전혀 나눌 생각이 없는 숙명여자대학교 학생들 (그 중에서 트렌스 젠더 학생을 겁주어 쫒아낸 그 학생들) -- 그대들 앞의 그 대단한 파이나 꼭꼭 씹어 먹기 바란다. 배탈나지 않게 꼼꼼하게 씹어먹고 잘 살아내시길. 남의 고통따위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여성 지도자의 요람이시어.  (니네들 말야, 딱 거지가 다른 거지한테 거지 발싸개 쪼가리 빼앗길까봐 집단 린치 하는것으로 밖에 안보여. 그 잘난 거지같은 학교 나와서 대체 뭐 할건데?) 

 

 

Posted by Lee Eunmee
Books2019. 12. 24. 09:59

 

12월 19일이 내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 날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히 이 날은 무언가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무얼까? 누굴까?  누군가의 생일이거나... 하지만 기억나지 않는다.

 

2019년 12월 19일은 어쨌거나 내 기억에 새로 각인된 의미있는 날이 될 것이다.  종강을 했고, 기말 성적처리를 모두 마쳤고, 학교에 제출해야 하는 보고서도 모두 제출했고, 수퍼바이저 학장님과  한학기를 마무리하는 회의도 즐겁게 마무리 지었고, 모든 일을 18일까지 마무리 지었다. 19일에는 모처럼 서울에 나갈 패였다.  나는 이제 '섬마을 여선생'처럼 촌사람이 되어 서울에 가봐야 동서남북도 분간이 안된다.  뉴욕이나 워싱턴보다 서울이 내게 더 낯설다.  나를 맨해턴에 떨어뜨려놓아보라. 나는 천지사방 이리저리 신나게 돌아다니며 길잡이를 할 것이다. 워싱턴 디씨에 내리면 나는 하루종일 관광안내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서울은 낯설다. 서울에서 성장하고 청춘을 보낸 나는 그 서울만큼 낯설것이다. 

 

버스가 언제 올지 예측 불가능하니 전철을 타라고 남편이 일러주었다. 전철을 한번만 갈아타면 홍대앞까지 편히 간다고. 그 다음에 합정역으로 가는 버스를 타거나 그냥 한번 더 전철을 타거나 자신없으면 택시를 타라고 했다.  나의 선택은, 홍대앞에서 내려서 합정역까지 걷는것이었다. 1킬로미터만 걸으면 합정역이니까. 서울이 낯설지만 내게 익숙하거나 친근한 장소에서는 곧바로 옛기억이 되살아나니까. 

 

추운 날씨. 따뜻한 햇살. 경쾌한 걷기. 모든 것은 아주 좋아보였다. 한걸음 한걸음 걸을때마다 나의 20대가 되살아나는 듯 했다. 

 

출판사에서 내게 연락을 취한분은 여자분이었다.  얼핏 남자 이름이라고 생각했는데 여자분이 맞아주었다. 좋은 징조이다. (나는 사실 낯을 가린다.  활달하게 남녀노소 누구와도 대화를 잘 하지만, 사실은 남자들을 경계하는 편이고 여자들과 놀 때 즐겁게 잘 논다. 여자들과 일도 더 잘한다. 남자는 좀 성가시고 답답하다는 느낌이다.)  남자분도 함께 회의실에 들어오셨다.  그분이 출판사 대표였다.  우리들은 서로 수인사를 하고 웃고, 그리고 다른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고, 나는 대표께서 가져온 계약서에 싸인을 했다.  계약금은 곧바로 입금되었다고 내 핸드폰이 알려주었다. 

 

출판계약을 했다.  전에 첫 책 출간을 할때 고생했던 기억이 있어서, 출판계약을 했다고해서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될거라는 지나친 기대는 하지 않는다. 고생을 좀 하겠지, 그리고 책이 나오겠지. 나 역시 초고를 보냈을 뿐이니까, 마무리 작업이 쉽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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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가 내 맥북이 너무 오래되었다고 미국 집에서  제 친구 제론과 함께 내게 맥북프로를 새로 사 준것은 2018년 8월이었다. 작년 여름 휴가때였구나.  그 전까지 나는 2012년에 샀던 맥북을 쓰고 있었는데, 그것은 멀쩡했다.  그냥 단지 찰리는 내게 새로운 기기를 사주고 싶어했을 뿐이다. 제론과 찰리는 컴퓨터 고수들 답게 내 맥북을 내가 가장 사용하기 쉽게 세팅을 완료해주었다. 그날 나는 컴퓨터긱들에게 기념사를 한마디 날렸다, "고맙구나, 이 것으로 내가 좋은 책을 많이 써내마." 

 

고민을 좀 하다가, 8월에 귀국을 한 이후부터 한가지 주제의 글을 쓰기 시작했다. 가을 연휴기간에도 나는 여행대신에 연구실에서 글을 썼다. 겨울이 오고 주변에서 예기치 않은 사건들이 발생하고, 나는 그 문제들을 들여다보느라 글을 쓸 여력이 없었다.  봄학기에는 예정에 없던 과목 하나를 갑자기 더 맡게 되어서 시난고난했다.  일을 하거나 아프거나 둘중에 한가지였다. 여름에 원고를 쓰려고 했으나 시난고난했다. 여름방학에는 산책만 하면서 보냈다. 

 

가을학기가 시작되었을때, 영문과교수가 제안을 했다. 교수들끼리 모여서 글쓰기 작업을 하자고 했다. 수업이 없는 매주 금요일 오전 세시간동안 강의실 하나에 모여서 각자 글쓰기를 하기로 했다.  마침 금요일에는 수업이 많지 않으므로 전망좋고 한적한 강의실이 우리차지가 되었다.  각자 강의실에서 가장 맘에 드는 코너 한군데를 정해놓고 세상에 오직 나 혼자 있는듯이 앉아서 각자 글을 썼다. 나는 통유리 밖으로 시내가 내다보이는 창가 자리에 긴 강의책상 두개를 붙여놓고 책이며 이미 완성된 챕터별 원고지를 줄지어 놓고 작업을 했다.  우리들은 정해진 시간에 모이되 각자 철저히 혼자 시간을 보냈다. 여럿이 각자 따로, 그러나 함께.  

 

내가 시내를 조망하는 통유리창을 대면하고 앉아있을때, 어떤이는 구석 벽을 향했다 (자기는 창밖이 내다보이면 산만해진다는 것이다). 어떤이는 벽쪽에 등이 닿게 앉아 있기도 하고, 어떤이는 강의실 책상의 위치 그대로 칠판쪽을 보면서 글을 썼다.  가을학기 내내 매주 금요일 그 시간을 지킨이는 제안했던 영문과 교수와 나, 이렇게 둘 이었다. 다른 교수들은 사정상 늦거나 빠지거나, 중간에 나가거나, 자유로운 분위기였다. 

 

제안자 영문과 교수는 '제안자'라는 책임감때문에 그 자리를 묵묵히 지켰을것이고, 나는 책임자는 아니었지만, 나 스스로 '책임의식' 때문에 그 자리를 지켰을것이다.  열감기 때문에 고통을 겪을때에도 일찌감치 가서 글을 쓰다가 병원이 열리는 시간에 맞춰 진료를 받고 다시 돌아와 마무리를 하기도 했다. 나는 늘 그 자리를 지키는 사람이고 싶었을것이다. 

 

가을학기가 마무리되어가고, 금요 글쓰기 캠프도 마무리가 되어갈 무렵, 나의 초고 쓰기도 마무리를 향해갔다. 어느날 글쓰기 시간이 끝나고, 내 연구실로 돌아온 나는 글의 목차를 다시 정비하고, 출판제안서를 적어보았다. 어디론가 출판사에 보내야 책이 나올것 아닌가? 책 제목도 근사한 것으로 뽑아보고. 잡다하고 아무것도 아닌 일을 한것 같은데 저녁이 되었다.  그날 피곤하고 시장하여 학교앞 상가에서 저녁을 먹고 역시 학교앞 교보문고에 들러서 내가 쓴 원고와 동일한 주제의 신간이 쌓여있는 매대를 기웃거렸다. '어떤 출판사들이 매대에 책을 깔아 놓는가?' 나는 아이폰 메모장에 신간을 깔아놓은 출판사들의 이름을 적었다.  그리고 12월 첫 주, 수업을 마치고 시간이 날때마다 내가 이름을 적어온 출판사 홈페이지를 뒤져보고 그들의 이메일이나 혹은 원고제출칸에 내 초고와 출판제안서를 보냈다. 딱 열군데 잘나가는 출판사에 제안서를 보내보자.  [운좋은 출판사가 내 원고를 취할것이다. 그들은 대박이 날 것이다]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 내 원고를 못 알아보는 출판사는 책을 모르는거나. 나를 놓치다니. 출판사 빌딩을 새로 지어줄 저자를 놓치다니 ]  

 

내 이메일 기록을 보면, 내가 원고를 보낸지 일주일만에 출판사에서 만나자고 연락이 왔고, 연락받은지 일주일만에 만나서 출판계약을 했다.  오래걸리지 않았다.  [인물을 이렇게 빨리 눈치채고 알아보다니!] 

 

내 책을 편집하게될 편집자 선생은 마침  이런 책을 기획하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런 생각을 한지 일주일만에 내 원고가 날아와서  놀랐다고 했다.  음...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우연히 '하늘의 성근 망' 어딘가에서 조우하게 된 모양이었다. 아마도 그래서 출판사에서 고민을 많이 하지 않고 곧바로 계약을 진행하게  되었으리라. 나 역시 '고민'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감이 통한다 싶으면 손을 잡는 편이다. 그렇다고 '허겁지겁'도 아니다.  나는 정공법을 택했다.  책방 매대에 신간을 깔아 놓을 마케팅 실력과 현실적 감각을 가진 출판사를 택한 것이니까. 늘 '정공법'이 최선이다. 

 

출판사 대표께서, 내게 '이러저러한 책을 써보시라'며 가제로 책 타이틀까지 줬다. 나는 그 책 타이틀이 맘에 들어서 메모를 해 놓았다. 내가 썼던 초고의 일부와 연관책 타이틀인데 재미있는 주제로 보인다. 집에서 검색을 좀 해보니 비슷한 타이틀의 비슷한 책이 이미 존재한다.외국서적 번역서이다.  그래서 그 타이틀은 포기해야 할 것 같고, 하지만 우리가 논의했던 토픽으로 글을 엮어 볼 생각이다. 그것이 겨울동안 눈을 기다리며 내가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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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나들이가 뭐라고, 열이 나고 온몸이 아파서 내과에 갔더니 코에 긴 빨대같이 생긴것을 넣어 '검사'를 하더니 '독감'이란다. 5일간 격리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타미플루'를 복용하며 집 밖에 나가지 말고 꼼짝 말고 있으라고. (남한테 전염시키지 말라는거다).  타미플루는 부작용이 없는지 걱정이 되어 검색을 해보니, 뭐 환각제같은 효과가 있을수도 있다고. 고층에서 뛰어내린다거나 뭐 그럴수도 있다고.  (어딘가 긴장되고, 내 생애 처음으로 환각 효과를 느껴보게되는걸까 상상도 했지만, 속이 울렁거리고 그냥 기운이 없을 뿐. 어딘가 환각제효과 따위는 없는것 같다. 아니면 내 체질이 환각이 잘되는 체질이 아닌지도 모른다. 낭패다. 음 난 수술을 위해서 전신마취를 했을때도 중간에 깨어서 아주 난처했던 적이 있었다 하하하. 난 그냥 '깨어있는자'로 태어난것이 아닐까? ㅋㅋㅋ 난 기도할때도 방언 이런것도 모르고, 뭐 기도하다가 쓰러진다거나 그런 체험도 없다.  난 그냥 늘 깨어있다. 잠자는 시간 빼고.) 

 

음. 이 독감이 나아야 비행기를 타고 집으로 가지. 집에 가야한다. 고양이들이 기다리는 버지니아 집으로. 

 

2019년 12월 19일은 내게 좋은 소식이 있던 날이었다고 기억하게 될 것이다.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19. 11. 22. 13:07

 

 

도무지 이 분 들은 제 손으로 무엇 하나 제대로 하는게 없는 듯. 

우비도 '무수리'가 씌워드려야 하고,

잠바 쪼가리도 노인 둘이 모시고 입혀드려야 하고.

손이 아주 많이 가는 분들.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19. 11. 19. 19:04

자왈 ~

三人行 必有我師焉

 

 

이런 말씀이 있다. 셋이 함께 가다보면 그 중에 내 스승 될 만한 사람이 있다는 말씀이다. 중학교 한문 시간에 배웠다. 

 

 

학기 중에 서너명씩 팀을 이루어 연구 과제를 해 내야 하는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팀을 짤때, 가능하면 대충 봐서 똘똘한 학생들을 한 팀당 한명씩 넣으려고 노력한다. 그들이 팀의 다른 학생들을 잘 이끌어서 팀 프로젝트를 성공시키기를 바래서이다.  물론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팀을 짜는데, 내가 개입할 틈을 보일때 슬그머니 그런 학생들을 '포석'을 하는 것이다.  학생들이 스스로 팀을 짜 내면, 내가 나서서 개입을 하지는 않는다.  자연스러운 것이 교육에도 좋으니까.  이렇게 최대한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하여 내가 적극 개입하지 않고 팀을 짜다보면 똘똘한 학생들 여럿이 한팀에 들어가는가 하면, 정말 '걱정스러운' 학생들이 한팀에 모이기도 한다. 

 

 

이번학기에 정말 내가 한숨이 나오도록 걱정스러운 팀이 하나 있었다.  이 팀은 지난학기에 내 수업을 들었던 학생들인데, 모두 점수가 신통치 않았다.  한팀에 적어도 (말하자면) A 성적을 받을만한 학생 한명이 들어가 줘야 어느 정도 수준이 유지가 될 터인데 문제의 이 팀은 조직원 모두가 약체였던 것이다.  뭐 착하고, 소심하고, 별로 소리를 안 내고, 그냥 존재감이 잘 드러나지 않는 '안보이는' 학생들이 한 팀이 된 것이다.  그 중에는 지각 결석이 잦은 학생도 있고, 이래저래 약체인데...

 

 

그런데, 참 사람의 조직은 신기하다.  이 약체가 약체이긴 하다.  날고 기는 학생들이 모인 집단에서 만들어내는 작품과 이 '약체팀'의 작품이 약간 차이가 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그런데, 또 신기하게도 내가 염려했던 것 만큼 큰 차이는 나지 않더라는 것이지. 

 

 

이 약체팀에는 숨은 '돌쇠'가 한명 있다.  굉장히 성실한 학생인데 그의 성실성에 그의 성적이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열심히는 하지만 뭐 숙제나 시험이나, 프로젝트나 좋은 점수를 받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지각 결석 하는 법 없이 꾀부리지 않고 성실하다. 그 '돌쇠'는 사교성도 별로 없어서 늘 혼자 다니고, 늘 혼자 숙제하고, 늘 성실하고, 말이 없고, 그의 이름을 부르면 마지못해 빙긋 웃고 마는 성격인데...  그 '돌쇠'씨가 어쩌다 그 팀의 '리더'가 된 듯 하다. 그가 왜 리더가 되었는가 하면, 적어도 그는 지각, 결석 안하고, 주어지는 숙제는 무조건 다 하고, 그러다 보니까 팀 프로젝트도 팀원들이 하건 말건, 협조가 되건 말건 혼자서라도 그냥 꾸준히 해 내는 것이다.  그는 누가 했네 안했네 따지는 법도 없고, 내게 와서 불평을 하는 법도 없고, 그냥 꾸준히 내 연구실을 들락거리며 모르는 것을 묻고, 뭘 더하면 좋은지 묻고, 내 조언을 듣고, 그리고 말없이 나가서 꾸역꾸역 일을 한다.  그래서 '날고 기는 애들이 모인' 다른 팀만큼 월등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평년작은 무난히 해 내더라는 것이다. 

 

 

또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했는데, 약체팀에서도 '리더'가 수면위로 올라오듯이, 반대로 '날고기는 애들 모인 집단'에서도 리더는 '하나'더라. 리더가 될만한 애들이 여럿이 모였을때, 그 중 하나가 리더 역할을 하고 나머지는 게으름을 핀달까? Social Loafing 이라는 사회학 용어가 있기는 한데, 리더들이 모이면 모두 리더가 되는게 아니라 하나만 리더가 되고 나머지는 그냥 '덩어리' 노릇을 하는 것이다.  아 이것은 무슨 아이러니인가.  

 

 

그래서 인생 별거 없다. 길고 짧은 것은 대 봐야 알고, 상황에 따라서 바보도 천재가 될 수 있고, 천재도 바보로 전락할 수 있다는 말이지. 내가 최근에 발견한 현상은 대충 이러한 것이다. 천재도 바보가 되고, 바보도 천재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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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고 캠퍼스의 낙엽이 바스락바스락 부스러지는 소리가 재미있어서 낙엽 밟는 소리를 즐기며 산책하고 있는데 이메일이 날아왔다.  위의 팀 학생들이 연구보고서 초안에 대한 내 피드백을 받고 싶어서 연구실에 왔는데 안계시다고 언제 볼 수 있냐고.  그래서 바로 답을 했다. 지금 볼 수 있어. 1분안에 갈 수 있어.  밥 먹고 오는 길이지. 너희들 밥 먹었니?  나를 만나 보고 점심을 먹기로 했다고 한다.  그래서 애들 밥 사주고 피드백을 줬다.  참 보기 좋아서.  공부를 열심히 하는 모습은 참 보기가 좋다. 그것이 내 자식이건 내 학생이건 똑같다.  주어진 과제를 열심히 하는 학생을 보면, 무조건 다 해주고 싶어지는 것이다. 옛날에 나를 가르치시던 은사님들도 그러셨겠구나. 이제야 그분들이 왜 나를 예뻐했는지 알것도 같다.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19. 11. 19. 17:37

내가 가끔 이리저리 채널 돌리다가 보게 된 '유재석'씨 나오는 연예 프로그램이 있다.  그 과정이 눈길을 끌어서, 우연히 그 사람이 나오면 보고, 보고, 보고, 그래서 대충 몇 회를 보게 되었다.

 

 

대충 줄거리는 유재석씨에게 유명한 트로트 음악계의 대가들 (작사가, 작곡가, 편곡자, 연주자, 코러스 전문)이 대거 모여들어서 '유재석'이라는 트로트 가수 하나를 탄생시키는 프로젝트이다.  거기에 정말 그야말로 '기라성'같은 트로트계의 숨은 고수들이 모두 출연한게 아닌가 싶다. 사실 그런 숨은 고수들을 보는 재미가 있어서 내가 그걸 보게 된 것 같다.

 

 

그래서, 얼마전에 보니까 곡 녹음까지 근사하게 완성을 시켰을거다.  완성 된것같다. 유재석씨가 노래 녹음 할 때 보니까, 어떤 반음의 차이를 몰라서 작곡자의 속을 썩이다가, 도저히 유재석씨가 음의 차이를 이해를 못하니까, 그냥 원곡자가 음을 유재석에 맞춰서 바꿔버리는 식으로 결론을 내더라.  그 장면을 보면서 -' 아 저사람 저 음의 차이도 모르는 음치이구나...' 했다.  그런데 그 사람에 맞춰서 음을 바꿔버려주는 걸 보니, 그제서야 내가 정신이 퍼뜩 나더라.  

 

 

 

세상에서 다시 모으기 어려운 전문가들을 다 모으면, '저런 음치도' 음반을 내고 가수 데뷔를 할 수 있다. 우리는 그 현장을 똑똑히 목도했다.  이런 생각이 들자 문득 화가 치밀었다.

 

 

 

저게 올 가을 온 나라를 들었다 놨다하고 사람들을 둘로 갈라 놓았던, 고위층 자녀 대학 입학 스펙 만들기 사건과 다른게 뭐지?

 

 

대충 음 분간도 못하는 평범한 음치 유재석이 자신의 '유명세'를 이용하여, 대가들의 도움으로 음반을 내고 가수데뷔하는 것하고 에미 애비 잘 만난 부유층, 고위층 애들이 에미 애비 '빽' 이용해서 보통 사람들은 꿈도 못꾸는 스펙을 만들거나 위조하여 이름난 대학에 들어가는것하고 무슨 차이가 있지? (내 눈에는 그냥 똑같아 보였다.)

 

 

유재석은 음치인데도 대가들 도움 받아서 화려하게 가수 데뷔해도 되고,  아무개는 평범하지만 부모 도움 받아서 화려하게 대학 입학 하면 안되는건가? 왜 한쪽은 되는데 다른 한쪽은 안되나?  유재석이 누리는 것이 공정한 경쟁과 공정한 과정인가?  내 눈에는 공정치 않아 보였다는 것이지.  대학 입학이 아니니까 괜챦다는 건가?  혹은 입사시험이 아니니까 괜챦다는건가?  대학입학이나 회사 취업은 공정해야 하고, 유재석이 가수가 되는 것은 공정성하고 상관 없는건가?  학교나 회사가 아니니까 상관 없다는건가?  난 내가 가끔 미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이런 생각을 하는 나 자신에 대해서 스스로 '나 지금 제정신인건가?' 이런 의구심이 들기 때문이다.  나는 소크라테스에게 물어보고 싶어진다.  아무개 자식이 부모들의 역량을 총동원해서 만든 스펙으로 대학들어가면 반칙이고, 유재석이 유명세 이용하여 유재석의 유명세 덕을 보려는 사람들 총 동원해서 만든 스펙으로 가수 데뷔하는건 '노-반칙'인건가?  소크라테스 할아버지는 내게 뭐라고 답을 해 주실까?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