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s2018. 9. 10. 09:13

유발 하라리의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더 나은 오늘은 어떻게 가능한가 (원제 21 Lessons for the 21st Century)'


북한의 9/9절이라던 날, 하늘이 기가 막히게 아름다웠던 날, 아침 1부 예배를 마치고 모세의 기적을 품고 있는 섬으로 가서 온종일 30년 후의 미래를 위해서 오늘 무엇을 해야 할지 책을 보며 생각을 좀 해 봤다.   


딱히 이 책을 온종일 읽겠다고 섬에 간 것은 아니었는데, 아침에 썰물 시간이라  멀리 펼쳐진 개펄위를 맨발로 징검징검 끝없이 걷다가 텐트로 돌아오는 길에, 그만 어이없게도, 굴밭을 지날때도 다치지 않고 (굴의 군락지를 맨발로 걷는 일은 바다에서 평생 살아오신 분들도 하지 못하게 말리는 일이다. 잘 못 밟는 순간 피가 철철 흐른다.  물론 피를 철철 흘려본적도 있었지...) 영리하게 걸어 나왔는데, 텐트에 거의 다 와서 모래사장의 조개 껍데기에 발을 베었다.  이런 것을 보면 '위험'은 '방심'에 있는 것이 분명하다. 칼같은 굴밭도 칼 끝 위를 걷듯 걸으면 가볍게 통과가 되는데, 모래사장의 조개껍질에 발을 다치다니.  방심 -- 그것은 마음의 흐트러짐이다.  내 마음이 왜 흐트러져 있었던 걸까?


그래서, 발을 다쳤기 때문에, 지혈을 하고, 얌전히 온종일 텐트에서 썰물이 밀물로 바뀌고, 바다가 쏴아 쏴아 소리를 내며 차오르는 한 나절, 그리고 해가 기울때까지 책이나 봤다.  21세기에 대한 '점쟁이'의 예언서인가 싶어서 봤는데, 특별할 것은 없었고, 그냥 요즘 많이 나오는 회의론적인, 뭐 대체로 지식인들이 떠들어대는 내용들이었다. 그러니까, 그런것, 내가 수업중에 학생들에게 자주 지적하는 것 -- 인터넷에 떠도는 오리무중, 신원불명의 잡지식들은 말 할 나위도 없고, 검증 받은 교재, 논문 조차도 절대적으로 신뢰하지 말라. 이 세상에 절대적으로 신뢰할 만한 지식은 아무것도 없고, 절대적으로 믿을만한 사람도 아무도 없다. 선생님은 나보다 몇 해 먼저 태어난 사람일 뿐, 그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지 말고, 스스로 찾아내라. 교수인 나를 전적으로 믿지 말라. 나 자신 하루에 수십번씩 넘어지고, 잘못된 생각에 빠지며, 실언을 밥먹듯 하고, 착각도 많이 한다. 의문이 생기면 질문하고, 의심이 가면 일단 자신의 감각을 믿으라. 기대하지 말고 너 스스로 성장하라, 뭐 이런 류의 얘기를 온갖 지식을 동원해서 할 뿐이다. 



  page 393

  4C

    1. critical thinking
    2. communication
    3. collaboration
    4. creativity


그래도 내 생업과 관련된 '교육'의 문제라던가, 몇가지 참고하고 현실에서 적용할만한 제언도 있어서, 책이 책값을 한다고 말할수 있겠다. 한 이틀 정도 시간내서 읽었을때 책 값이나, 시간이 아깝지 않은 정도의 책이다. 수년간 책 꽂이에 꽂아둘 정도의 책은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 


재미있는 현상 한가지는, 책의 말미에 자신이 '위빠사나' 수행을 해서, 대체로 인생의 갈증을 해소하고 뭐 덕분에 책도 여러권 낼 수 있었다는 '신앙고백' 내지는 '간증' 을 부연했는데, 명상수행의 가치를 내가 모르는 것도 아니고, 내가 새벽기도를 하러 다니는 것도 맥락으로 보면 '절대자'의 존재를 믿고 안믿고의 문제 외에는 형식적으로 크게 차이가 나지도 않는 것이라 그의 수행에 일견 수긍을 하면서도 속으로 픽 웃었다.


대체로, 서양의 '먹물 (지식인)'들이 서양의 사고의 틀 (예컨대, 기독교적 세계관이나 문화)에 신물이 났을때  동쪽의 철학 (불교)에서 답을 찾고 '해탈'이라도 한 양 과장되게 소개하고, 동양의 '먹물'들은 반대로, 동양적 색즉시공에 넌더리가 날 때, 서양적 사고의 틀에서 구원을 찾는 양상이다.  유발 하라리의 경우, 유태인으로 태어난 그의 한계 상황 (유태인들은 그들이 유태인들의 전통 종교를 따르건 벗어나건 그들이 유태인이라는 사실에 어떤 갑갑증을 느끼는 것 같다, 특히 유태인 지식인들은 상충하는 가치체계 속에서 절망하는 것 같기도 한데, 문제는 평생 거기서 못 벗어난다는 거다)에 대한 탈피책으로, 종교성 자체에 대해서 극렬하게 저항하다가 명상수행으로 안착한 케이스로 보인다. 실컷 '과학적 사고'의 가치와 '검증'하고 '회의'할것 등 '사실'과 '증거'에 기반한 사고를 하라고 게거품을 물고 주문을 외다가 명상수행에서 구원을 얻었다는 대목에서 대체로 독자들이 '뭐냐 이거?' 하겠지만, 원래 그것이 인간이다.  인간이 신이 아니기때문에, 그가 그렇다고 떠들면 그것또한 수긍해주면 그만이다. 



이 책은 21가지 제언이므로 처음부터 읽지 않아도 되며, 챕터별로 관심있는 주제부터 슬슬 선별하여 읽어나가도 된다. 그런 면에서 보면 화장실에 놓아두고 심심할때 한챕터씩 읽어도 되겠다. 그렇다고 아주 가벼운 책은 아니다. 대학교 1학년이라면 진지하게 들여다 봐야 할 책인데, 내가 나이 50이 넘다보니 이런 종류의 책을 많이 봐와서 내게 조금 쉽게 읽힌다고 할 수도 있겠다. 



발을 다쳤으니 바닷물에 들어가지는 못하고, 해질녘에 파도에 들어가고 싶어 '난동'을 부리는 사람. (아래)

어찌보면,  물위를 걷는자를 발견한 '막무가내' '베드로 성자가 '아이고 사부님, 나도 같이 가셈!' 외치고 물위로 달려가는 자세로구나.  내 언젠가 저 물위를 걸으리라. 


잔잔한 파도가 일렁이는 서해바다, 그 바다 발치에 누워 파도 소리와 갈매기 울음소리를 들으며, 이마를 스치는 바닷바람을 맞으며, 모래위에 누워서, 태양이 보내는 자연 광선 속에서 대지와 내가 한 몸이 되어 책을 읽는 기분은, '천국이 이랬으면 좋겠다, 세상에 이보다 더 즐거운 휴식이 또 있을까. 바닷물위에 누워 흔들리는 것 과 같구나.  조금 있으면 예수님 손을 잡고 저 물위를 걸을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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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