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etch2020. 2. 12. 14:22

https://news.joins.com/article/23700273

 

‘윤봉길 의사 장손녀’ 윤주경 전 독립기념관장, 한국당 간다

4·15 총선 인재로 영입됐다.

news.joins.com

 

이 사람이 개인 자격으로 어떤 정당을 선택하건, 그건 그의 자유이다.  그렇지만 그가 '윤봉길 의사 손녀딸'이라는 이름으로 박정희-박근혜-로 이어진 당에 입당했다는 사실은 통탄 할 만한 일이다. 박근혜씨는 그 아버지 박정희씨의 정신이라도 계승하지 않았던가? (그의 효심은 개인 차원에서 인간적으로 가상한 면이 있다.)   당신은 도대체 뭐냐? 당신 할아버지가 왜인에게 물통 폭탄을 날리며 항거할 때, 그 손녀 딸이 장차 박정희 계보를 이어받은 정당에 낯짝을 디밀거라 상상이나 했을까? 

 

당신 할아버지는 왜가 쏜 총알을 이마에 맞고 쓰러져 처형의 순간에까지도 이마에 '일장기'를 그리는 수치를 겪어야 했는데, 당신은 그 친일 후예들과 한가족?  

 

 

 

 

Posted by Lee Eunmee
Sketch2020. 2. 12. 10:22

https://americanart.tistory.com/370

 

19세기 풍속화가 George Caleb Bingham 의 노스탈지아

Mississippi Boatman 1850, oil on canvas George Caleb Bingham (조지 케일럽 빙엄) 1811-1879 조지 케일럽 빙엄(1811-1879)는 버지니아주의 부농 집안에서 태어나지만 아버지의 투자 실패로 삶의 근거지를 중서..

americanart.tistory.com

 

Genre Painting 이라는 회화의 작은 분야가 있다. 우리말로 옮기면 '풍속화'이다.  서민들의 일상적인 삶을 화폭에 옮긴 것이다. 이 '풍속화'가 의미있는 이유는 서양에서 회화를 비롯한 예술은 '가진자'들의 잔치였던 역사가 오랫동안 지배해 왔는데, (성당의 그림들, 왕족이나 귀족들의 초상화) 누군가가 돈내고 초상화를 부탁할 여유가 없는 '무지렁이' 가난뱅이 시민들의 '보잘것 없고 하품나는' 일상을 그림으로 남기기 시작한 것이다.   한마디로 '돈 있는 자들의 그림' 세계에 '돈 없는 자들'이 소재로 등장한 것이 '풍속화'의 의미라고 할 만하다. 

 

지난 2월 9일, 모처럼 온 나라 사람들이 서로 환호하며 기뻐할 수 있었다. 봉준호 감독의 역작 '기생충'이 오스카상을 네개나 거머쥐면서 우리 가슴을 뜨겁게 해 주었다. 책상에 앉아서 이 뉴스를 검색하던 나도 가슴이 뜨거워졌다. 그냥 기쁘고 좋았다.  (사람은 왜 자기하고 아무 상관없는 일에 기쁠까? 나는 골똘히 그 문제를 생각했다.  봉준호가 나하고 아무 상관 없는데 나는 왜 그가 자랑스럽고 기쁘고, 그의 수상 장면을 보고 또 보고 할까? 아무튼 축하 드린다.)

 

 

https://news.joins.com/article/23702229

 

'기생충' 조력자 이미경 "난 봉준호 모든 것 좋다, 특히..."

최우수 작품상 수상 무대에 올라 봉준호 감독과 기쁨을 함께 했다.

news.joins.com

 

 

그런데, 시상식장에 등장한 이분이 봉감독 영화의 후원자라는 것에도 나는 수긍했다. 그렇군, 그런 조력자들이 포진해 있었군. 백억이라는 돈이 프로모션에 사용되었군.  아..하...저런 물밑 작업도 이 영광의 밑밥으로 작용한거구나. 그러면 저 사람들이 프로모션에 백억을 안 썼다면, 그래도 기생충이 사관왕에 올랐을까?  이 대목에서 내 고개가 슬슬 오른쪽 왼쪽으로 꼬이기 시작했다. 

 

 

한국 현대사를 살아오면서 나는 귀동냥으로 알고 있다. 한국이 아시안 게임이나 올림픽을 한국에 유치하기 위하여, 피파 월드컵을 유치하기 위하여 얼마나 물 밑 경쟁을 했는지. 그 쾌거 뒤에는 늘 '숨은 조력자' 혹은 '공개된 조력자' 재벌 총수들의 얼굴들이 등장했다. 그 미담을 이용해 국회의원이 된 자도 있었다. 아무튼 대박 소식 뒤에는 한국의 존경받아 마땅한 재벌들께서 돌보고 계셨다.  '기생충'에도 기생충같이 살아가는 나는 알지 못하는 그들의 은혜의 손길이 있었던 모양이다.  좋아 다 좋아. 맘대로 해도 되는데. 늘 자본주의 세상에서는 가진자들이 착하고 선하고 그런거니까.

 

그런데, 

그런데,

 

 

이 기생충이라는 영화가 자본주의 사회의 음지와 양지를 그대로 드러내고, 못 가진자들이 기생충처럼 꿈틀대며 희망도 없이 비굴하고 치사하게 살아가는 속내를  여실없이 보여준것인데, 이 영화가 세계적인 상을 받는 이면에는 여전히 재벌들의 고급취미가 작용하고 있었다는 것이지. 재벌들은....기생충같은 서민을 팔아서 돈을 만드는 기술을 가지셨다. 기생충은 영원히 기생충인데, 머리좋고 착한 재벌들은 기생충을 팔아 돈과 명예를 잡는다. 그게 이 경사스런 사건의 이면 같은거다. 달의 어둡고 추운 이면같은. 

 

 

쟝르화의 소재는 '가난뱅이 서민들의 비루하고 하품나는 일상' 같은거다. 그럼 그걸 돈주고 주문한 사람은 누구냐하면, 돈 많은 사람들이다.  마리 앙뚜와네트가 호화스러운 궁전에서의 삶이 싫증나면 시골의 자그마한 궁전에 가서 즐긴것처럼,  황금에 질린 부자들이 소박한 서민들이 소재가 된 그림을 비싼 돈 주고 사가지고 거실을 장식하고 그랬다.  장르화의 비극은 그 소재가 되었던 사람들은 그 그림을 볼 기회도 없었다는 것이다. (플란다스의 개에 나오는 네로는 루벤스의 그림을 간절히 간절히 보고 싶어했는데, 돈이 없어서 볼수 없었다는 것 아닌가...)

 

우리는 돈 내고 영화표 사가지고 극장에 가서 '기생충' 영화를 통해서 쟝르화 속의 주인공, 기생충인 자신을 관람하고, 재벌은 돈을 백억씩 써서 영화를 홍보하며 파티를 벌인다.  21세기 기생충 사회. 만세이. 

 

 

 

 

 

 

Posted by Lee Eunmee
Sketch2020. 2. 10. 11:30

진중권 "조국, 사회주의 모독" 울컥…"정치, 좀비·깡패 만들어"(종합)

 

https://www.yna.co.kr/view/AKR20200209037551001?input=1195m

 

진중권 "조국, 사회주의 모독" 울컥…"정치, 좀비·깡패 만들어"(종합) | 연합뉴스

진중권 "조국, 사회주의 모독" 울컥…"정치, 좀비·깡패 만들어"(종합), 조민정기자, 정치뉴스 (송고시간 2020-02-09 18:42)

www.yna.co.kr

 

취미 생활을 잘 하다 보면 그것이 생업이 되고 그로인해 '전문가' 반열에 오를 수도 있다. 

 

아무개씨는 조국씨및 그 부인, 아들, 딸 까대기를 취미생활처럼 하시더니, 이제 본격적으로 그를 팔아 먹기 시작한 것 같다.  나 조국 싫다. 아무개씨 만큼이나 조국씨나 그 일가족에 대해서 강한 거부감을 느끼고 있다.  조국을 지키겠다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다른 취미 생활을 찾아 보시라'는 생각을 조금 하다 말았다. 각자 취미 생활은 존중해야 하니까. 태극기는 태극기대로 조국부대는 조국부대대로 각자 취미생활로 보는 편이다.  나의 취미 생활은 그냥 잡다하다. 

 

 

그런데, 이분 요즘 아주 '조국' 팔아먹기로 그의 몸값을 올리고 있다.  조국을 그토록 싫어하기도 힘들것 같은데, 또 그만큼 단물을 빠는 사람도 드물어 보인다.  이거, 삶의 아이러니 같은거다. 그가 그토록 혐오하는 조국 가족을 팔아서, 그 구더기 들끓는 이름을 팔아 그가 그 구더기 피를 빨아먹고 사는것 처럼 보인다. 

 

 

조국에서 벗어나 보시면 어떨까? 자기의 아젠다를 가지고 살아보면 어떨까?   뭐, 그것도 그가 사는 방법이므로 내가 뭐랄건 아니지만, 어쩐지 똘똘한 사람이 자기 자신을 이상하게 소비하고 있다는 묘한 느낌이 들어서 한마디.  

Posted by Lee Eunmee
Sketch2020. 2. 8. 16:21

Food is all I am asking. Bus Pass - Just want to feel better and get back to camp

위 사진속의  패널은 피닉스 삼총사들의 숙소 (버스정거장) 근처에 그들이 놓아둔 것이다.  '음식을 부탁드립니다. 버스표도 있으면 주세요. 버스를 타고 기분전환을 하고 캠프로 돌아가고 싶을 뿐입니다.'  음식이나 버스표를 부탁하는 내용이다. 

 

 

 

아리조나 피닉스 (Phoenix)에서 얼마동안 지냈다. 버지니아가 한국의 '부산' 쯤 되는 겨울 날씨라면, 같은 시기의 아리조나 피닉스는 한국의 8월 말 혹은 9월 초순 정도 되는 덥거나 따뜻한 날씨이다.  긴팔 옷을 입거나 반팔 옷을 입은 사람들이 뒤섞여 살고 있다. 나를 마중 나온 친구도 반바지에 슬리퍼 (쓰레빠) 차림이었다. 한 겨울에, 피닉스에서.  (그가 슬리퍼 신은 꼴을 보고 나는 안도 했다. 전갈을 염려하지 않아도 되는군, 샌들 차림인 것을 보면. 

 

 

아리조나 피닉스는 사실 플로리다의 마이애미 일대 만큼이나 '노인'들이 퇴직후에 살고 싶어하는 곳이다. 사철 따뜻하고 습기도 많지 않으므로 (여름에 뜨거운거야 에어컨으로 해결 보면 되니까 겨울에 따뜻한 것이 중요하다).  노인들의 천국은 --- 집없는 사람들에게도 천국임을 의미한다.  버지니아에서도 이따금 교차로에서 구걸을 하는 사람들을 만났지만, 피닉스에서는 이런 분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내가 아침마다 산책을 나가던 구역에도 세명의 홈리스가 있었다. 남자 두명, 여자 한명. 그들은 버스 정거장 (한국처럼 삼면이 막혀있고 벤치가 있어서 노숙하기에 용이하다)에서 잠을 잤다. 벤치 아래에 봉지 봉지 그들의 세간 살이를 채워 넣고, 벤치를 침대처럼 활용했다.  한명이 벤치에서 자면 두명은 벤치 아래에서 잤다.  나는 이들이 각자 혼자 따로따로 자는것보다 그렇게 셋이 모여서 자는 것이 안전하다는 생각을 했다.  날씨가 쌀쌀한 아침에는 길 건너 햇볕이 따뜻한 버스 정거장으로 이동해서 셋이 모여 두런두런 이야기 꽃을 피우는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어느날은 길 건너편 버스 정거장 벤치 가운데 여자가 고개를 한 쪽으로 살짝 기울이며 앉아있고, 양 옆의 바닥에 남자들이 앉은채로 그녀를 쳐다 보며 이야기를 하는 광경이 보였는데, 뭐랄까, 그 여성은 성모마리아, 관음보살, 혹은 여신처럼 보였고, 남자들은 신의 메신저처럼 보였다.  신비한 장면이었다.   이른 산책을 나가면 그들의 취침 시간이었고, 산책을 마치고 돌아올 즈음 그중 한  두명이 어디론가 자리를 비운 것이 보이기도 했다. 

 

 

터줏대감 같은 삼총사 외에도 운전하여 나가면 교차로 근처 이쪽 저쪽에 이분들이 서 있었다.  그들을 발견 할 때마다 1달러라도 주고 싶었지만 번번이 수중에 현금이 없었다. 우리들은 이제 지갑에 현금을 갖고 다니지 않는다.  카드가 있을 뿐이다. (미국에서는) 애플페이가 있을 뿐이다.  근처에 쇼핑하러 나가면서 현금을 챙길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번번이 그들을 그냥 통과 해야만 했다. 

 

 

하루는 산책 나가는 길에 역시나 버스정류장에서 자고 있는 삼총사를 지나치며 생각했다. '저기 있는 그로서리 (일반 상점)까지 걸어가야지. 거기 가서 뭔가 먹을 것을 사야지. 저들에게 아침을 대접 해야지.'  누군가에게 아침을 대접한다는 생각만으로 갑자기 나는 기분이 좋아졌고, 발걸음은 가벼워졌다. 상점에 갔을 때 뭘 사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샌드위치는 냉장고에 있어서 너무 차가워보였다. 뭐든 냉장고에 준비된 음식은 차가웠다. 적절치 않았다. 상점을 몇바퀴 돌면서 고민고민 하다가 결국 방금 구운 머핀 여섯개 들이 한 상자, 그리고 그린티 음료수 여섯병들이 한 팩을 샀다.  따뜻한 머핀과 그린티를 먹으면 --나쁘지는 않을거야...

 

 

음료수가 조금 무거웠다. 그것들을 비닐봉지에 들고 돌아와보니 삼총사중에 둘은 아직도 숙면 중이시고, 한 사람이 인기척에 깨어나 쳐다본다. "Hey, I am Eunmee.  Here's your breakfast."  누워 있던 그는 몸을 일으켜 내가 내미는 비닐봉지들을 받았다. "Thank you. God bless you."  "Thank you. God bless you, too!"  우리들은 눈을 마주치며 웃어보였고 나는 자리를 떠났다.  다음에는 집에서 나갈 때 현금을 갖고 나가서 줘야지 하고 생각했지만 나는 그를 다시 볼 수 없었다. 갑자기 한국으로 와야했다. 부랴부랴 비행기표를 바꾸고 피닉스를 떠나야 했다.  그를 다시 볼 수 없는 것이 너무 아쉬워, 현금을 챙겨 놓았다가 교차로에서 신호 대기 하는 중에, 길가에 서있던 사람에게 현금을 건냈다.  "Thank you. God bless you!" 그가 말했다. "God bless you!" 나도 말했다.  (나는 단지 내가 1달러를 내밀었을 뿐인데 God bless you! 라는 축복의 말씀을 그에게서 들을 때, 그와 나 사이에 천사가 잠시 다녀간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1달러로 천사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얻다니!) 

 

 

 

피닉스를 떠나며 나는 생각했다. 앞으로 현금을 갖고 다니는 사람의 숫자는 현저히 줄어 들을 것이다. 그러면 길에서 현금을 구걸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건가? 나는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현금을 소지하지 않기 때문에, 길에서 구걸을 하는 사람에게 현금을 내 줄 수가 없다.  일달러, 혹은 이달러, 준다고 내게 축이나는 것도 아니니 자주 줄 수도 있지만, 현금을 소지 하지 않기 때문에 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현금 대신 전자 상거래를 하거나 다른 시스템이 현금을 대체하면서 이러한 새로운 시스템의 그늘에서 시스템을 따라잡기가 힘든 노인들이나 교육을 받지 못한 분들이 불이익을 당하게 되는데, 길에서 구걸을 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 문제에 빠지게 된다. 현금이 사라지고 있다. 그들에게 주어지는 한푼 두푼의 현금도 사라질 것이다.  그러면 이들은 어떤 식으로 구걸을 하려나?

 

 

Posted by Lee Eunmee
Sketch2020. 2. 8. 16:10

35일간 미국에서 지내면서 나는 유배지의 삶 같은 생활을 한 듯 하다. 거기 있을 때는 몰랐는데 귀국하여 돌아보니 그 생활은 내가 선택한 유배지의 삶이었다. 

 

 

식료품 몇가지를 사기 위해 쇼핑몰에 들렀다. 지하 식품매장으로 가기 위해 1층 통로를 통과하면서 내 눈은 황홀했을 것이다. 새봄을 알리는 듯한 화사한 색상의 예쁜 옷들이 여기저기서 내게 손짓을 하고, 소리질러 나를 부르는 것 같았다.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모자며 마스크에 발목까지 오는 긴 패딩 오버로 온몸을 중무장하고 나갔던  전쟁 같은 살벌한 외출이었건만, 매장에 걸린 예쁜 색상의 옷들은 무서운 코로나조차 잊게 하는 환각성을 품고 있었다.  물론 내 발길은 멈추지 않고 휘리릭 매장들을 지나쳐 지하 식품매장으로 향하는 에스컬레이터에 올랐는데, 느리게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에서 나는 문득 내 가슴에 찌르르 통증이 옴을 느꼈다.  찌르르...미세한 전류에 놀란 듯한 아주 여린 고통이었다.  그순간 미국집 내 창 밖으로 온종일 내다 보이던 목장과 순한 눈빛의 소들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35일간, 나는 주로 창가에 붙어 살았다.  아침이면 일어나 한시간 기도를 드리고 (기도가 지겨우면 찬송가를 부르고, 찬송가가 지겨우면 성경을 읽으며 아무튼 한시간 기도 시간을 채웠다),  그리고 창가에서 글을 쓰거나, 글을 쓰기 위한 연구를 했다. 그것이 내 일상이었다. 

 

 

그 작은 마을은 워싱턴 덜레스 공항에서 차로 다섯시간을 꼬박 달려야 하는 버지니아 남단 구릉지에 있었다. 주변은 온통 목장이었다. 마을 한가운데로 기차길이 있어 화물열차가 하루에 두 세차례 통과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 마을에서는 사람들이 눈만 마주치면 웃으며 말을 걸어온다. 처음 보는 사람이라도 평생 한 마을에서 함께 살아온 사람처럼 말을 건다.  아이들도 어른들도 마찬가지이다.  "Where are you from?" 같은 상투적인 질문은 하지도 않는다.  그냥 그들은 얼마든지 어떠한 화제로도 내게 말을 걸을 수 있었다.  두세살짜리 꼬마 아이도 방긋방긋 웃으며 "하이! 하이!" 외쳤는데, 그냥 사람이 반갑다는 뜻이었다.  사람이어서 그것이 좋아서 인사를 보내는 사람들. 그 마을은 그랬다. 그 마을에서 걸어서 갈수 있는 가게는 아무것도 없다.  물론 차로 10분 내에 타운 중심에 갈 수 있고, 그곳에 가면 월마트며 미국 중소도시에 가면 있을법한 상점들이 모여 있긴 했다.  하지만 여건상 걸어서 갈 수는 없었다. 미국에는 차도만 있으며 사람이 걸어다닐 인도가 없는 곳이 아주 많다. 걸어서 한시간 거리라 해도 맘놓고 걸을수는 없는 것이다. 시골이라 해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차가 없는 한 나는 집에서 공부하거나 글을 쓰거나, 요리를 하거나, 조그마한 마을을 한바퀴 도는 산책을 하거나, 고양이와 노는 것 외에 별로 할 것이 없었다.  나는 12월 말에서 1월 한달 내내 그렇게 살았다.  

 

 

물론 이따금 생필품이나 식료품을 사러 차를 운전하여 월마트에 갔다.  워싱턴에 살때는 거들떠도 안보던 월마트를 이 시골마을에서 나는 '놀이공원'처럼 다녔다.  그곳에서 요긴한 식료품을 사고, 방한 목적의 두툼한 겹바지도 하나 사서  내내 그것만 입었다. 그랬다. 그것이 내 유일한 외부 엔터테인먼트였다.  아-무-것-도 내 눈길을 끌만한 것은 없었다. 그냥 월마트에 전시된 생필품들을 보는 것이 오락이었을 뿐이다. 그리고 거기서 나는 '자족'을 발견했다.  생존하기 위해서 필요한 식료품을 장만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쇼핑이었고, 그 외에는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내 통장에 돈이 쌓여 있어서 어떤 명품도 척척 살만 한 수준이라 해도 그 시골마을에서는 그 따위 것들이 아무 소용도 없는 것들이었다. 그냥 채소와 이런 저런 것들을 사다가 요리를 해 먹으면 그것으로 족한 하루하루였다. 

 

산책을 하며 나는 종종 생각했다. '여기 참 좋아. 잡다한 것들이 다 사라지고 오직 내가 해야 할 일에 집중하게 돼.  예쁜 것을 찾으러 쇼핑몰에 가지 않아도 돼. 왜냐하면 쇼핑몰이 없으니까.  목장과, 하늘의 해와 달 별, 그리고 개울, 개울에 물을 먹으러 오는 소들과, 두마리 집 고양이들. 그것들로 이미 충만해. '

 

 

 

그렇게 산사의 스님처럼 살다가 -- 챨리의 초콜렛 팩토리 같은 마법의 성으로 돌아왔다. 한국의 내가 살고 있는 곳은 마법의 성이다. 아웃렛이 있고, 공원식 쇼핑몰이 있고, 뭐든 근사한 것들이 눈앞에 펼쳐져있다. 눈이 닿는 곳 어디서나 예쁜 색상의 물건들이 나를 부른다. 나는 헉헉 숨이 막히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하고, 때로는 가슴이 전기 오른듯 쓰르르 울리며 미세한 통증을 느낀다.  그리고 깨닫는다, 이렇게 물건으로 둘러싸인 이곳이 '참 아름다운 지옥' 같아.  '참 아름다운 감옥' 같아.  나는 예쁜 것들을 탐하며 동시에 그것들의 무용함을 안다. 그래서 가슴이 찌르르 아프다. 

 

 

창밖으로 소들이 순한 눈으로 풀을 뜯으러 올 때, 그리고 그 곁으로 검정 고양이 한마리가 느릿느릿 지날때, 그 검정고양이가 우리집 아기 고양이와 흡사하게 생겨서 -- 아하! 저 놈이 이 (어느날 갑자기 나타난) 아기고양이의 어미구나! 깨달을 때 내 심장에서는 여리고 고운 클래식 기타 소리가 났었다.  그것으로 충만한 시간 그리고 공간.  하느님께서는 장차 나를 어디에 살게 하시려는지 그분께 묻고 싶어진다. 하느님, 저의 다음 행로는 어디인지요?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