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eums2016. 8. 27. 01:55

Written on Jan. 10, 2010 (updated on August 25, 2016)


공식 홈페이지: http://www.delart.org/

델라웨어주의 주도(행정 수도)인 윌밍턴 (Wilmington)에 있는 델라웨어 미술관

 

 

 

우리집에서 120마일 거리의, 델라웨어주의 주도 (행정수도) 윌밍턴 시에 있는 델라웨어 미술관. 이곳은

 * 미국 식민지시절 그리고 19세기 미술작품

 * 미국 20세기 사실주의

 * 미국 20세기 사실주의 이후의 현대미술에 이르기까지 작품들

 * 영국의 프리 라파엘라이트 작품들

 * 일러스트레이터 Pyle 의 작품들

을  소장하고 영구전시하고 있다. 물론 특별전시도 진행되고 있다.

 

그러니까. 이 미술관에서 세계 여러나라의 역사적인 명품들을 기대한다면 실망할 것이다. 피카소도, 마티스도 없으며 이집트 유물도 없다. 위에 명시된 작품들이 소장되어 있을 뿐이다.  그러나 나와같이 '미국미술'을 집중적으로 관찰하거나 감상하는 사람이라면, 이곳에서 상상치도 못했던 역사적인 작품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윌밍턴 시 변두리 주택가 안쪽에 위치한 델라웨어 미술관 앞모습.  1층 2층에 전시관및 카페, 뮤지엄 샵등을 갖추었고, 지하층은 교육실과 행정실로 사용된다. 겉보기에 나지막하고 작아보이지만, 측면과 후면쪽이 깊고 넓게 설계되어 있어 겉보기보다 전시장이 크고 알차다.

 

 

 

가장 나를 사로잡은 것은 2층 John Sloan과 The Eight 의 작품들을 전시해 놓은 곳.  이 전시장에 들어선 순간 심장 박동이 갑자기 증가하여 심호흡을 해야 했다.  (기대도 못하고 갔었는데... 이게 웬 날벼락인가!)

 

 

 

아아아, 마침내 존 슬로언의 초상화 앞에 서다!  (전생의 애인을 다시 만난듯 반가웠다... 내 원 참...)

 

 

 

 

이건 또 뭐냐. 내가 간밤까지 고민을 하던 레지날드 마시 오빠가 아닌가.  마시 오빠가 여기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니!  이쯤 되면 오늘을 그냥 내 생일로 지정을 해도 좋을것 같다...

 

 

 

 

 

그뿐인가! 현대미술 전시장에서 나를 반기던 저 문간의 색동 무늬.  저 색동무늬는 워싱턴 디씨 태생의 Gene Davis 가 아닌가!   데이비스님은 어떻게 내가 여기 오는걸 아시고 먼저 와서 나를 기다리시는고?   게다가, 저기 저 벽뒤에 빨간 말대가리! 저 말대가리는 Deborah Butterfield 의 말이 아닌가!

 

 

오오 나의 말대가리야 오랫만이다! 잘 있었니?

 

 

 

 

오오, 인간말대가리! 너도 잘 지냈니?  요즘도 네 어머니는 너를 '말대가리'라고 부르시니?

       응, 우리엄마는 내가 고집세고 질기다고 말대가리라고 부르시지.

 

 

 

말대가리!  말대가리! 정말 반가워!

            나도 반가워 인간말대가리야! 네 머리는 여전히 말총머리구나 인간말대가리!

 

 

 

 

그런데 인간 말대가리야, 네 머리에 난 뿔은 뭐냐?

 

    그건 내가 좋아하는 프랭크 스텔라의 입체 추상화 작품인것이지.. 

 

 

 

 

오오 나의 말대가리!  안녕 말대가리! 안녕...

 

 

 

카페의 음료와 음식은 양심적으로 착하고 (가격이 저렴하고 깔끔하고)

 

 

인형을 좋아하는 돌쇠같은 작은 놈, 가방에 매달라고 도깨비 인형을 기념품샵에서 사고

 

 

 

해파리가 꿈꾸듯 날아다니는 2층 창가

 

 

 

그 창가에서 내려다보이는 야외 카페와 조각공원

 

 

 

동자승같은 꼬마가 하나 서있는데, 그 뒤에 온갖 악당들을 짊어지고 구부리고 있는 사람. 제목은 Protecting Future.  어린아이를 위하여 온갖 번뇌와 시름을 모두 짊어지고 있는 어른. 아아 이것이 부모가, 기성세대가 자식을 위해 후세를 위해 취해야 할 태도인것인가. 인디언 미술을 재현한 것이라 한다.

 

 

 

그러니깐... 내가, 지켜줄테니까, 두려움 없이, 용맹정진하길.. 내가 지켜줄테니까.  너는 햇살을 향해 웃으면서 나아가길.

 

세노야 세노야, 기쁜 일이면 님에게 주고

슬픈 일이면, 슬픈 일이면, 님에게 주면 안되네...

슬픈 일은 내가 다 막아줄게

세노야 세노야...

그러니까 어디서든 언제든 행복하게 잘 살아라

건강하게...

 

 

 

 

프리 라파엘라이트 미술 전시관에서는, 수첩에  기념 스탬프도 찍어보고.  옆의 나뭇잎사귀같은 문양은 프리라파엘라이트 미술의 상징적인 버들잎 문양.

 

 

 

스탬프를 찍은 손바닥만한 수첩의 표지는 이러하고... (꽃과 요정들이 매우 촌스럽게 그려진 매우 촌스러운 수첩)

 

 

 

자질구레한 것들을 담아 가지고 다니기 위해 기념품샵에서 산 헝겊 가방.  제법 커서 내 핸드백과 책과, 뭐 소소한것들이 한꺼번에 다 해결된다.

 

 

 

 

대규모 국립 미술관에 비하면 작은 규모이지만, 기대이상으로 알찬 소장품들을 가지고 있는, 보석같은 미술관이다.

 

 

미술관 도슨트 (docent)의 안내도 받아서  재미있는 새로운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미술 책에 씌어있지 않는,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이야기들.  앞으로 이 미술관에서 보고 배운 미국 미술에 대한 이야기 보따리를 슬슬 풀어보겠다. (아, 아, 아, 기대하셔도 좋다...)

 

 

2010년 1월 9일 (토) 맑음. redfox

 

p.s.

 

위의 Deborah Butterfield 의 말대가리 녀석과 나는 인연이 깊다.

 

이놈은 워싱턴 스미소니안 미국미술관의 링컨 갤러리에 있는 말. 겉보기에는 폐목으로 만든것 같은데 재료가 Bronze (청동)이라고 해서 내가 갈때마다 들여다본다. 정말 브론즈야? 고목나무 조각 아니야?  (2008년 5월 사진)

 

 

 

이놈은, 매사추세츠주 보스톤 인근에 세일럼 (Salem)이라는 '마녀사냥'으로 유명한 항구 도시, 이곳에 Peabody Essex Museum 이 있는데, 그곳 1층에 서있던 말이다.  이 말은 주위에 사람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울타리를 쳐놔서 나를 서운하게 만들었다.  링컨 갤러리의 말에는 울타리 안쳐놨지만 아무도 건드리는 사람이 없다.  그런데 이 말에는 왜 울타리를 쳐놓는가?  (2009년 8월 사진)

 

 

 

해파리가 그리웠지.  바다나 수족관에 가야 해파리를 볼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오늘 유리로 만든 해파리들을 봤지.  해파리라면, 한국마켓 식품부에 '해파리 냉채'용 해파리도 있었던 것이지. 해파리... 하지만 나의 해파리는 푸른 바다를  이리저리 떠돌아.  상념처럼. 기억처럼.  오래전에 지워진 기억처럼. 아주 오래되어 너덜너덜해진 기억처럼.  지워진 꿈처럼. 해파리처럼.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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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lism2009. 12. 29. 11:12

아이오와에서 나고 자란 화가 Grant Wood (1891-1942)는 앞서 이야기 한 바와 같이 토마스 벤튼, 존 커리와 더불어 지역주의의 중심적인 인물로 알려졌습니다. 그는 22세부터 25세까지 (1913-1916) 일리노이주의 시카고 미술 학교 (Art Institute of Chicago)에서 야간 미술 수업을 받았는데, 그 이전까지는 목각, 금속, 보석 공예등 각종 공예시술을 연마하였습니다.  미술 수업을 마친후 1920년대에 그는 파리, 이탈리아, 독일등 유럽을 네차례 여행하였습니다. 그는 특히나 뮌헨에서 당시 유행하던 신 사실주의적 경향의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또한 고대 신화나 성경의 이야기들을 당대의 세팅으로 재 해석하는 풍속화에도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리하여 그의 터전인 아이오와로 돌아온 후에 그는 그의 그림속에 이를 펼치게 됩니다. 여기서 특기할 만한 것으로는, 당시에 미국의 주류 화가들이 뉴욕에 모여들어 활동을 하거나 혹은 유럽으로 미술 수업을 하러 떠났다가 유럽에 정착을 하거나, 혹은 유럽에서 돌아와 뉴욕으로 활동지를 옮겼던데 비해서, 그랜트 우드는 그의 터전을 떠나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또한 유럽에서 서서히 활발해져가던 추상미술 사조를 거부하고 사실주의적 기법을 고집했다는 것입니다.

 

 

 

 

 

The Midnight Ride of Paul Revere (폴 레버의 한밤의 질주) 1931

76.2 x 101.6 cm

Oil on Masonite

2008년 7월, 뉴욕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에서 촬영 (똑딱이 시절의 사진 -.-)

 

 

 

 

우드가 미술가로서 처음으로 대중들의 시선을 끌었던 계기가 된 것은 1930년에 그의 American Gothic 이 시카고 미술학교 주최 경쟁에서 메달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 그림은 시카고 미술학교의 소장품으로 팔려가는 영예까지 누리게 됩니다. 그리고 1931년에 "The Ride of Paul Revere (폴 레버의 한밤의 질주)"를 완성시킵니다.  폴 레버는 미국 독립사에 이름을 남긴 영웅인데요, 1775년 영국군이 공격 할 것이라는 소식을 전달하기 위해 밤새 말을 달렸다고 합니다.

 

 

둥글게 휘어지고 달빛이 비치는듯 (비현실적으로) 환한 길위를, 교회 앞을, 말을 탄 사람이 가고 있지요. 말을 탄 사람의 자세를 보면 그는 오른쪽에서 달려와 왼쪽을 향해 가고 있는듯 합니다. 화면에는 그가 여태까지 달려왔던 그 먼길이 구불구불 보이지요.  그리고 화면 왼쪽으로도 역시 구불구불한, 그가 가야할 먼길이 이어져 있습니다.  역시나 (앞서의 페이지에서 풍경화를 이야기 할때 언급했던대로) 언덕이나 나무는 둥글둥글하고, 사람이 지은 예배당이나 집들은 각이 지고 딱딱해 보입니다.  우리는 마치 레고로 마을 하나를 만들어서 바닥에 놓고 위에서 그것을 내려다보는 듯한 기분으로 이 풍경화를 보게 됩니다. 역시나 우리는 마치 전능한 관찰자처럼 공중 어딘가에서 이 풍경을 보는 입장이 되지요.

 

그런데요, 여태까지 온 길과, 앞으로 가야할 길을 이렇게 내려다보고 있자니, 그랜트 우드가 즐겨 그렸던 들판 풍경과 패턴이 일치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랜트 우드의 들판을 보면 아주 작게 보이는 사람이 끝도 안보이는 평원을 느릿느릿 갈아엎는 장면이나 이와 유사한 장면이 종종 등장 합니다.  여태까지 살아온 시간과, 그리고 앞으로 살아나가야 하는 시간. 여태까지 흘린 땀과, 앞으로 흘려야 할 땀.  "저걸 언제나 다 매나?" 이런 한숨이 나올법도 한데, 그랜트 우드의 그림에서는 이런 '한숨'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 그림에서도, 우리는 말을 타고 달리는 사나이의 얼굴도 분간할수 없지만, 그러나 우리는 그가 밤새 잘 달려낼것이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걸 어떻게 아느냐구요? 그의 앞에 펼쳐져있는 저 구불구불한 길을 보십시오. 저 둥글게 이어지는 길을 보면서 우리가 어떻게 '위험'이나 '죽음'따위를 근심할수 있겠습니까.  심지어 그의 앞에 '죽음'이 기다린다 하여도 기수는 태평하게, 나직하게, 느릿느릿 노래를 부르며 그 죽음을 맞이 할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무엇에서 그런 느낌을 받나요?  구불구불한 저 길에서요. 구불구불 흐르는 개울과 구불구불한 저 언덕이 그런 노래를 불러주는 것 같습니다.

 

그의 길을 환하게 비쳐주는 것은 하늘의 달일지도 모르고요, 혹은 그의 안녕을 바라는, 그를 응원하는 우리들의 시선일지도 모르고요, 그랜트 우드 자신이 그의 영웅 폴 레버에게 보내는 빛이었는지도 모르지요. 이 그림은 사실주의적이면서도 꽤나 몽환적이죠.  사실주의와 '신화적 신비'가 만나면 이런 그림이 탄생하겠지요.

 

 

 

아래 작품은 그랜트 우드가 작업한 Sinclair Lewis 의 Main Street 라는 작품의 일러스트레이션 입니다.  마을 공동 우물인 펌프가 화면의 중심을 차지하고, 그 펌프로 물을 뜨러 오간 사람들의 발자욱이 만든 길이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가만보면 눈위에 난 발자국도 있는데요. 어린아이의 발자욱일까요 아니면 강아지의 발자욱일까요? 이 장면을 보면 옛날에 제가 처음 서울에 올라왔을때,  네가구가 살던 무허가 판잣집의 가장 작은 방에서 우리집 여섯식구가 살았는데, 저녁이 되면 그 집에 살던 네가구의 주부들이 그 손바닥만한 마당의 가운데에 있던 수돗가에 나와서 서로 코를 맞대고 쌀을 씻고, 채소를 씻고 그랬어요. 겨울에는 그 수돗가가 수챗물로 꽝꽝 얼었는데, 그 꽝꽝언 얼음판 위를 지나 '변소'에 가야 했지요. 어린 마음에 변소도 무섭고, 변소에 가는 길도 무섭고, 변소에서 나와서 미끄러 떨어질까봐 그것도 무서웠고, 여러모로 심난했었지요. 이 그림을 보고 있자니 하필 그 시절이 떠오르고 마는군요.

 

 

 

Village Slums 1937

Charcoal, Pencil and Chalk on Paperboard (종이판에 목탄, 연필, 분필)

2009년9월 스미소니안 미국미술관에서 촬영

 

 

설에 의하면 그랜트 우드는 이 매이슨 교회에 다녔다고도 하고, 동성애자였다고 소개하는 미술사책도 있군요. 이 메이슨은 미국에서는 꽤나 애국적인 단체로 알려져 있지요. 벤자민 프랭클린도 소속했었다는 이야기도 있고, 뭐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이 이 조직과 관계가 있다는 '설'도 돌고 그러지요. 저는 이 메이슨 단체의 정체성을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전에 살던 곳 가까이에도 온통 하얗게 칠해진 메이슨 단체 건물이 있었는데, 도무지 뭘 하는지 모르겠더라구요.  그래서인지 메이슨 관련, 소설같은 황당한 이야기들도 돌아다니곤 하지요. (프리메이슨은, 제가 전에도 자료를 찾아보곤 했는데, 도대체 정체를 잘 모르겠어요. 제가 좀더 공부를 해서 내용을 보충하기로 하지요. 누가 잘 아시면 가르쳐주세요. ^^). 아래의 그림은 그 메이슨 교회에 모여서 사중창을 부르는 남자들 이군요.

 

 

Shrine Quartet 1939

Lithograph

2009년 9월 필라델피아 미술관에서 촬영

 

 

아, 그랜트 우드가 왜  농부나 들판을 그릴때, 조망하는 듯한, 내려다보는 듯한,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듯한 그림을 그렸을까...지금 생각해보니, 농업에 대한 그의 경험이 '피상적'이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그랜트 우드는 분명 농부의 아들로 농가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나이 열살에 농부였던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어머니와 형제들이 아이오와의 Cedar Rapids 라는 곳으로 이주를 하는데 그때부터 그랜트 우드는 농업하고는 동떨어진 삶을 살았대요.  그러니까 어린시절 열살까지 시골에서 성장한 것이 전부이고, 그가 실제로 농사를 지은 적은 없다는 것입니다.

 

제가, 대학 졸업할때까지 밭에서 일하고,뭐 허드레 농사일을 해봐서 아는데요.  정말 농사일을 한 사람이 농사장면을 그릴때는 그것이 꽤 현실적이지요. (아, 우리 엄마의 그림을 사진으로 찍어서 올려보고 싶군요.) 정말 농사를 생활화한 사람이 농사 그림을 그릴때는 주변 환경을 훨씬 구체적으로 그립니다. 풀잎, 흙, 풍경. 호미들고 김을 매다 올려다보는 하늘, 마을. 이런 시각으로 화면이 채워지지요.  그런데, 농사를 직접 짓지 않고, 남이 농사짓는것을 '구경'만 하는 사람은 그렇게 '구경꾼'의 입장에서 농사 풍경을 그리게 되는 것이지요.

 

그랜트 우드의 풍경은 그래서 대개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듯한 각도가 나오는 것 같습니다. 꼭 그렇다는 것은 아니고 농사를 짓지 않는 그의 입장이 어느정도 영향을 끼쳤을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미술 비평에서 이런 논의까지는 아직 안 나왔겠죠? 제가 짧게라도 써서 발표를 해야 하는게 아닐까요?  헤헤헤.)

 

 

평생 그의 미술 활동의 본거지인 아이오와를 지켰던 그랜트 우드는 그의 집에서 간암으로 51세의 젊은 나이에 이승을 떠납니다. 영원속으로 간 것이지요.  그리고 그의 '우화'와도 같은 '신화'와도 같은 그림들이 우리곁에 남아있습니다.

 

이상으로 미국의 지역주의의 대표라 할만한 그랜트 우드 페이지를 마치겠습니다.

 

redfox 2009 년 12월 28일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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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는 그림을 보고 있자니 뭔가에 홀린 듯한 기분이 듭니다.
    멍~

    2009.12.29 15:03 [ ADDR : EDIT/ DEL : REPLY ]
    • 예, 좀, 사람을 혼미하게 하는 구석이 있지요. :)

      2009.12.30 07:35 [ ADDR : EDIT/ DEL ]
  2. 그랜드 우드의 그림과 소개 잘 봤습니다. 구도가 참 좋네요. 표현하고자 하는 이야기도 명쾌하구요.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바라보는 시각(eye level)으로 표현되는 이야기임에도 현실적인 느낌과 비현실적인 느낌이 공존한다는 게 참 재밌습니다.

    아마도 eye level임에도 실제 피사체와 화가와의 거리는 훨씬 뒤에 있거나 앞에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거리를 느낄 수 없게 하는 구도때문에 그렇지 않나 싶기도 하네요.

    Red Fox님 어머님의 그림이 보고 싶어지네요. ^^

    2009.12.29 15:37 [ ADDR : EDIT/ DEL : REPLY ]
    • 극사실주의적인 묘사를 통해 신화적 신비감을 표현하는 것이 그랜트 우드가 추구한 표현법입니다. 두가지가 상충하는 개념인데, 그의 그림에서는 잘 어우러져 보이지요.

      2009.12.30 07:36 [ ADDR : EDIT/ DEL ]

Realism2009. 12. 29. 08:18

July Fifteenth 1938

Lithograph

2009년 9월 필라델피아 미술관에서 촬영

 

아이오와의 화가 그랜트 우드

 

 

제가 미국 워싱턴과 뉴욕을 위시한 동부의 큼직한 미술관에서 발견한 그랜트 우드의 풍경화는 필라델피아 미술관에서  간신히 찾아낸 아래의 리토그라피 작품이 전부 입니다.  검색을 해보면 워싱턴의 국립미술관 (National Gallery of Art)이 아름다운 우드의 풍경화를 다수 소장하고 있는데, 일반 관객에 공개 된 것은 한점도 없습니다.

 

(참고로, 미술관 자료를 검색해보면 Currently on View,  Currently Not on View 이렇게 표시가 나옵니다.  현재 볼수 있다 없다 알려주는 것이지요. 자료화가 잘 된 곳은 이런 표시가 나오고, 자료화가 안 된 곳에서는 무슨 작품이 소장되어 있는지도 불분명 합니다. 심지어 자료화가 잘 된 곳으로 정평이 난 스미소니안 미술관에서도, 제가 가서 보고 찍어온 작품이 소장품 명단에 실려 있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너무나 아쉬운 마음에, 웹에서 그랜트 우드의 풍경화 자료 몇점을 빌려 왔습니다.  그랜트 우드의 풍경화가 어떤 것인지 꼭, 꼭, 보여드리고 싶거든요. (넌 미술관에서도 못봤다면서 그걸 어떻게 알지? 묻고 싶으시죠...  제가 심심풀이로 하는 짓이 책방에서 비싼 화집 들여다보는 일이거든요.  화집에서 발견한 명품을 보러 미술관으로 가기도 하고, 미술관에서 찾아 볼 수 없는 그림들을 화집에서 찾아보고 설명을 읽기도 하고요.)

 

 

그랜트 우드는 미국 중서부의 아이오와주에서 태어나 성장하고 활동하다가 거기서 죽은 '진정한' 아이오와의 화가 입니다.  미국지도에서 아이오와를 찾아보면,  미국 가장 중심부에 네브라스카가 있고요, 그 동쪽에, 네브라스카와 일리노이 사이에 아이오와가 있습니다.

 

 

꿈의 구장

 

 

'아이오와' 하면 생각나는 것은?  만약에 미국인들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면, 대개 '옥수수밭!'이라고 대꾸 할 겁니다. 중부 평야지대인 이곳은 그야말로 '가도 가도 가도 가도' 옥수수밭이 펼쳐져 있습니다. (너 그걸 어떻게 알어? 가봤어?  묻고 싶으시죠... ) 제가 아이오와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알게 된 것은 옛날에, 옛날에, 제가 미국땅을 밟아보기도 전에 한국에서 봤던 영화를 통해서였습니다.  당시 한창 미남 배우 명단을 진두지휘하던 케빈 코스트너가 주연했던 Field of Dreams (한국 제목, 꿈의 구장, 1989). 그 영화의 배경이 아이오와 평원이었습니다.  한 남자가 (케빈 코스트너) 그의 옥수수밭에서 바람소리같은 어떤 음성을 듣습니다.  그리고는... 그 남자는 별로 경영실적도 없어 망해가는 옥수수밭을 파헤치고, 그곳에 '야구장'을 만듭니다.  야구장이 생기자, 옥수수밭에서 야구선수들이 나와요. 왕년의 유명했던, 그러나 지금은 죽었거나 혹은 업종변경하고, 꿈을 포기한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 야구장에 모여듭니다.  아, 꿈의구장 영화가 나온것이 벌써 20년이 지나는 것이군요.  그러면, 내가 그 영화를 본지도 20년 가까이 되었다는 뜻이군요.  아아...

 

 

 

꿈의 구장 영화 덕분에, 저에게는 아이오와의 끝없이 펼쳐진 옥수수밭과 그 하늘과, 바람소리가 아주 생생하게 각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 옥수수밭에 찾아가면 내 잃어버린 꿈도 되찾을수 있을까?  이런 상상까지 하고야 마는 것이지요. (영화 아직 안보셨다면, 지금 보셔도 여전히  감동이 유효할것입니다. 시대를 초월하는 고전이 될 만하죠.)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 사랑과 이별, 그리고 쓸쓸함에 대하여

 

그리고나서, 또다시 아이오와를 만난것은, Bridges of Madison County (1995) 에서였습니다. 사실 원작 소설의 사상 초유의 히트를 쳤죠.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라는 제목으로 한국에도 번역 소개가 되고, 난리가 아니었습니다.  지금도 기억나는데, 라디오 에프앰 틀어놓고 음악듣다보면, 연극인이면서 라디오 방송 진행도 했던 '손숙'씨가 그 차분하고 이지적인 목소리로 촉촉하게 깔면서,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 읽어보셨나요?..." 뭐 이런 광고도 해대고 그랬습니다. 남자친구가 여자친구에게, 남편이 아내에게, 뭐 아무튼 연인들이 사랑의 선물로 주는 아이템중의 하나였다니까요.  심지어는 매우 완고하고 구식이며 남성중심주의적인 부산 사나이 우리 형부도 이 책을 우리 언니에게 선물 할 정도였으니까요. 부부가 이걸 같이 읽고 울고 짜고 장난이 아니었댑니다. 하하하.

 

저는요, 그제나 지금이나, 잘난척하는 경향이 심해서, 남들이 다 근사하다고 그러면 괜히 아니꼬와서 쳐다보지도 않았지요. (헤헤헤). 쳇, 대중문화라니...하면서 속으로 빈정거리고 있었겠지요.  그러다 어느날 누군가가 이 잘난척하는 저를 위해 글쎄 교보문고에서 '수입원서'를 사다 준 겁니다. 참.. 내... 그래가지고, 매우 잘난척을 하면서 그 얇다란 영문소설책을 읽고야 만것이지요. 꼬부랑 글씨로 읽자하니 골치가 아파서 뭐 크게 감동을 받은것 같지도 않아요.  1995년에 클린트 이스트우드님이 직접 메가폰을 잡으시고 주연까지 도맡으셨는데, 저는 그로부터 한 5년쯤 후에 비디오로 이 영화를 본것 같아요.  (소설에 별 감흥이 없었으므로 영화도 찾아다니며 볼 열정이 없었지요.)

 

 

 

 

제가 이 소설을, 혹은 영화를 인상깊게 봤던 아니건 간에, 그때의 이미지는 남아 있어요. 어떤 이미지냐하면, 이탈리아계 이민자 여성 프란체스카가 미국의 중부, 온종일 걸어가도 끝도 보이지 않는 막막한 평원지대의 농가의 아낙네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답답하고, 막막할까.  온가족이 모두 사랑해주지만, 행복한 아내이며 엄마이지만, 이 여자의 일상은 얼마나 지루하고 그리고....쓸쓸하고...그럴까...  프란체스카의 그 막막한 고립감에 공감을 했던 것이지요.  어쩌다 삶이 주는 축복 혹은 기회처럼 불꽃같은 정열을 불태우고 난후, 불꽃놀이가 끝난 밤하늘을 바라보듯 남겨진 그여자의 여생은 또 얼마나 쓸쓸했을까 뭐 그런 생각을 골똘히 하고 그랬죠.  그 메디슨 카운티는, 그리고 그 다리들은 아이오와에 실재로 존재하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아직 미국땅도 밟아본 적이 없던 제게 아이오와는 이렇게 영화와 소설속의 '끝없는 초록 평야' 그리고'막막함'으로 다가왔던 것이지요. 그리하여, 어느날 화집을 통해 아이오와 출신의, 평생 아이오와에서 살다 죽었다는 그랜트 우드를 발견했을때, 머릿속에 갖고 있던 이미지들과 그랜트 우드가 전해주는 이미지들을 뒤섞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그랜트 우드는 제 곁에 다가왔습니다.

 

 

 

 

추억, 잊혀진 평원의 나라

 

 

 

제가 The Life and Times of the Thunderbolt Kid (http://americanart.textcube.com/166 ) 책을 읽은 것도, 빌 브라이슨이 워낙에 재미있는 글쟁이이기도 하지만, 아이오와주 태생이었던 그가 회상하는 아이오와의 삶이 어땠는지 궁금하기도 했어요. 빌 브라이슨은 현재 아이오와의 주도인 드 모인 태생이고, 드 모인과 그 변두리의 삶을 그려나갔지만, 그가 전하는 중서부 사람들의 정서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지요.

 

미국에서 사는 사람들 사이에 이런 농담이 있어요. "중서부에는 뉴스가 없다. 그러므로 중서부는 존재하지 않는다."  무슨 말씀인가하면 미국의 역사를 봐도 그렇고 뉴스의 발원지가 되는 곳은 극히 한정적입니다. 미국의 동부 몇개 지역, 그리고 서부 캘리포니아 대도시.  그 외에 미국의 중부에 대해서 얼만큼 아시나요? 사실 우리가 상상하거나 인지하는 '미국'은 뉴욕, 워싱턴, 텍사스 목장,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 뭐 그런 곳입니다. 미국 역사의 현장은 대개 동부에 몰려있고, 명문 대학들도 동부에 몰려있고... 그에 비해 미드웨스트는 그저 '옥수수밭'이나 '콩밭'으로 기억되는 그런 곳이지요.  (여담이지만, 제가 2년여전에 플로리다에서 공부를 마치고 버지니아로 왔을때, 버지니아의 학교에 전학한 저희 아이들이 학교에서 들은 농담: "플로리다에도 학교가 있어?" 헤헤헤 워싱턴이나 버지니아의 아이들에게 플로리다는 디즈니랜드의 나라, 돌고래의 나라, 사철 비치에서 놀수 있는 휴양지였던 것입니다. 거기에 학교가 있고 학생이 있다는 상상이 안된다는거죠.)

 

 

 

 

The Life and Times of the Thunderbolt Kid: A Memoir

 

그렇게 잊혀진 평원의 나라.  가도가도 옥수수밭 뿐인 나라. 그런나라에서 우리의 그랜트 우드는 태어나고 자라고, 활동하가다가 그곳에 뼈를 묻었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미술가들은 모두 유럽 유학을 거쳐 뉴욕으로 몰려들던 시기에 미드웨스트에 짱박혀서 옹고집으로 미드웨스트의 풍경을 그린 화가 그랜트는 확실히 좀 독보적인 존재라 할 만합니다. 그래서 미국의 지역주의를 논할때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자주, 가장 주목해서 그랜트 우드를 이야기 하게 되는 것입니다.

 

 

시간과 우주가 평원에서 만나다 Star Trek 2009

 

 

지난 봄에 Star Trek 2009년판이 극장에서 개봉했지요. 보셨나요? (재밌는데...)

 

그 영화 볼때요, 자세히 보시면, 아버지 없이 성장한 소년이 자전거를 타고 뭐 활개치고 돌아다니면서 우울감을 달래는데요, 그때, 이정표에 IOWA 라고 나옵니다.  그리고 소년은 막막한 IOWA 평원에서 '우주 기지'를 발견해요.  실제로 아이오와에서 찍었는지는 알수 없지만, 영화에 IOWA 라는 찌그러진 이정표가 보이지요.

 

왜 하필 아이오와?  저야 모르죠. 스타트렉의 광팬이 아니라서요. 원작 소설이나 극에도 그런 설정이 있었는지 알수 없지요.  하지만, 아이오와가 뭐 꼭 동떨어어진 설정은 아니지요.  미국에서 UFO 봤다는 사람들 있고, UFO를 불러내겠다는 사람들 모임도 있고 그렇쟎아요.  그리고, 끝없는 초원에 이상한 무늬 만들고 그러는 사람들 있쟎아요. 아이오와가 평야지대이고 목초나 옥수수, 콩 이런거 한없이 펼쳐진 곳이라서 이 평원에 커다란 고무래 같은것을 끌고 돌아다니며 기하학적인 무늬를 만든다음에, 외계인이 만들고 갔다고 뻥(?)치고 그러는 사람들도 있지요.  :)  아이오와는 '우주기지'로서 아주 적당한 지역이지요.

 

그런데요, 우주가 별건가요...우리도 '우주인' 이쟎아요. 지구도 우주의 일부고, 우리도 우주의 일부이고. 우리는 영원속에 존재하는거죠.

 

 

 

그랜트 우드의 풍경속에는 '영원한 시간'이 존재한다...

 

 

아래의 이미지들은   제가 웹에서 빌려온 작품들 인데요.  이 글의 머리에 제가 사진 찍어온 작품과 아래의 풍경화들을 보시면서 이들에게 공히 보이는 어떤 특징들을 찾아 볼까요?  작품들을 찬찬히 보시지요.

 

 

 

 

Stone City 1930 (스톤 시)

 

 

Sprign Turning 1936 (봄이 오네)

 

 

Fall Plowing (가을의 쟁기질)

 

위의 풍경화들에게서 공히 보이는 요소들은

 

 1. 둥근, 곡선의 언던과 평야가 끝없이 겹쳐져 있어, 이런 평야가 끝없이 이어질 것만 같죠.

 

 2. 시선은 어떤가요?  작가가 땅에 발을 붙이고 있는것 같은가요?  작가는 이 풍경을 아주 높은 산위나 고층건물 위에서 혹은 비행기를 타고 하늘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것 같아요. 그것이 가능했을까요? 그러니까 이 구도는 현실적인 구도는 아니죠.  환상의 구도이지요.  (이를 영어로는 bird eye view 라고 합니다.)

 

 3. 나무들도 대개 둥글둥글 하고요 길도 곡선으로 흐르고 개울도 곡선으로 흘러요

 

 4. 그러면 곡선이 아니고 직선이거나 예각인것은? 그것은 인간이 만들어낸 구도입니다. 건물, 다리,  인간이 밭을 갈아놓는 형태 이러한 '인위적'인 것들은 직선이거나 예각이지요.

 

 5. 마찬가지로 '자연'과 '사람이 품을 들여서 일군' 농장이 공존합니다.

 

 6. 풍경속에 있는 사람은 굉장히, 굉장히 작아요.  온통 초록색인 Spring Turning 이라는 작품을 보셔요. 거기 보면 희게 보이는 것이 사람이 가축을 몰아 밭을 가는 모습인데요, 그 사람과 그 사람이 갈아야하는 밭의 크기를 비교해보셔요.  "저 밭을 언제 다 갈아, 엉엉엉" 한숨이 나오죠. 울음을 터뜨려도 이해해요. :)  하지만,  이 풍경화속에 슬픔이나 고통은 보이지 않습니다. 세상은 태평하게 펼쳐져있고, 깨알같이 작은 인간은 그 태평한 땅을 영원히 영원히 갈아엎고 농사를 짓는 것이지요.  세상은 넓고 시간은 느리게 느리게 흘러가지만, 사람 역시 서두르지 않고 영원속을 묵묵히 걸어갑니다. 가다보면 밭은 갈리고, 씨앗은 뿌려지고, 옥수수는 익을것이며, 콩은 깍지를 터뜨리며 깔깔댈것입니다.

 

아 저는 사실, 그랜트 우드의 풍경화를 화집에서 들여다볼때면 네덜란드의 풍속화가로 알려진 브르겔 (브르헬)의 아키로스의 추락 같은 그림이 떠오릅니다.

 

 

 

그림의 주제나 시사하는 바는 다르지만, 묵묵히 고개를 숙이고 밭을 가는 브르겔 그림속의 농부와 그 구불구불한 밭의 모양이 그랜트 우드의 풍경과 많이 닮았거든요.  조망하는 듯한 작가의 시각도 똑같지요.

 

스타인벡이 분노의 포도 (Grapes of Wrath)를 통해 묘사한 당대의 농부들의 현실은 비참한 수준이었는데요, 그랜트 우드는 이러한 시대적인 풍경과는 동떨어진채 위에 보이는 영원히 지속될것 같은 '낙원'의 풍경을 중서부의 풍경이라고 그려냈습니다.  사람들이 그의 그림을 사랑하는 이유는 아마도,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류의 향수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영원히 돌아갈수 없는 낙원, 영원히 돌아갈수 없는 고향.  그것에 대한 그리움으로 그랜트 우드의 '우화'와도 같은 풍경화를 바라보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랜트 우드의 풍경화를 좋아하는 저 역시...

 

그리움때문에... 지금은 근사한 서울 근교 아파트 촌으로 변해버려 그 흔적조차 찾을수 없는 제 고향집과 우리 할아버지가 평생 갈고 씨를 뿌린 우리집 논, 밭, 과수원이, 우리집 앞 개울이, 그 고향마을이 어른이 된 후에 보면 작고 보잘것 없었지만, 어린 시절, 몸도 작고, 세상도 모르던 어린 시절에 그 고향마을은 끝도 보이지 않는 평원이었으며, 온종일 걸어도 그 끝에 닿을 수 없는 왕국이었지요.  제 추억속에도 그랜트 우드의 풍경화가  존재하는 것이지요.

 

바로 이런 그리움이, 인종과 언어와 사회적 배경을 초월하여 어떤 그림에 함께 다가가게 만들지요. 그렇게 우드의 풍경화 속의 시간은 영원에 맞닿아 있는 것이지요.

 

 

내 카메라에 담아온 그랜트 우드의 우주

 

 

 

 

 

2009년 12월 28일 redfox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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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lism2009. 12. 29. 01:10

우스개이지만,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집은 뭘까요?  워싱턴 디씨의 '백악관 White House'이겠지요.

그러면 미국에서 두번째로 유명한 집은 어디에 있는 무슨 집일까요?

 

 

American Gothic (1930)

Grant Wood

74.3 x 62.4 cm.

Oil on Beaverboard

어느해 팔월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뮤지엄에서 촬영

위의 사진 상태가 하도 딱해서, 그냥 웹에서 다른 이미지를 얻어왔습니다. 자세히 보실수 있을겁니다.

 

 

 

(정답) 미국에서 두번째로 유명한 집은, 아이오와 (Iowa)주에 있는 이 집이라고 합니다.

 

File:2007-06-04-Gothic House.jpg

http://en.wikipedia.org/wiki/American_Gothic_House

 

 

아이오와 주의 어느 시골 마을에 있는 집인데요.  이 집이 1930년 Grant Wood가 발표한 American Gothic 의 실제 배경이 되어 주었던 집입니다. 창문모양하며, 일치하죠?  이 그림으로 그랜트 우드는 1930년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에서 주최한 미술대회에서 대상을 받고, 그리고 그의 그림역시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에 팔려서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미술관에 가시면 이 그림을 보실수 있습니다.

 

여자 모델은 Nan 이라는 이름의 그랜트 우드의 동생이었고, 남자 모델은 동네 치과의사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랜트가 훗날 간암으로 사망했을때 그의 전 재산이 이 여자분 Nan 에게 넘겨졌고, 그후에 그의 작품들이 모두 아이오와의 한 미술관에 기증되고 맙니다.  이 남자와 여자의 관계에 대해서도 설이 분분합니다.  아버지와 노처녀 딸일것이라는 설도 있고, 노총각 노처녀로 늙어가는 오누이로 보인다는 설도 있고.  여성은 좀 뚱해보이고, 남성은 메마르고 고집스러워 보이지요.

 

 

이 '어메리칸 고딕'은 미국인들이 알고 있는 세계 3대 걸작중의 하나라고 합니다. 나머지 둘은?  모나리자의 미소, 그리고 휘슬러의 엄마 라는 작품인데요. :) 휘슬러의 엄마라는 작품은 영화 Bean (1997)의 소재가 되기도 했지요. 아직 안보셨으면 한 번 보셔도... 아무튼, 그정도로 이 아메리칸 고딕 이라는 작품이 유명합니다.  미국인의 상징이 되어 버린 것이지요.

 

이 그림은 날카로움과 부드러움이 공존합니다. 교회의 첨탑을 연상시키는 수직의 뾰족한 지붕과 창문 모양, 남자가 들고 있는 날카로운 삼지창, 금테안경을 낀 장년의 성마른듯한 표정의 사나이. 남자가 입고 있는 검은 웃저고리와 그 안에 받쳐입은 흰 셔츠는 고집센, 성직자 같은 이미지를 줍니다. 그가 입고 있는 낡고 주름진 바지와 그의 오른손에 들려있는 삼지창이 그를 중부의 농부라는 것을 일깨워주지요.

 

남자 옆에 딸인지 누이동생인지 혹은 아내인지 알수 없는채로 서있는 여자의 눈빛이나 굳게 닫은 입매가 무뚝뚝하고 꾸밈없으며, 도통 사교성이라고는 없어 보입니다. 역시 입고 있는 검정 드레스나, 흰 옷깃, 그리고 단정하게 매달고 있는 브로치는 이 여인에게 빈틈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그가 입고 있는 느슨한 앞치마가 우리의 숨통을 틔워주며, 그녀의 황금빛 동그란 머리통의 윤곽이  그 뒤의 고딕식 지붕의 예리함을 누그러뜨려 줍니다. 역시나 여자의 머리통과 비슷하게 동글동글한 배경 숲이 예각의 지붕과 퉁명스러운 사람들의 표정과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혹자는 이 그림에 나오는 인물들의 표정이나 고딕양식을 연상시키는 건물을 통해 그랜트우드가 전하고 싶었던 것은 미국 중서부 평원지대에서 정직하고 경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경건한 삶이라고 풀이하기도 합니다. 성자와 같이 경건하게 흙을 파고 경작하며 살아가는 미국 농민의 삶. 이것이야 말로 미국인이라는 것이지요.  하지만 또다른 편에서는 그랜트 우드가 정말로 의도했던 것은 이런 삶에 대한 냉소적 풍자였다고도 합니다.  경건한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미국인들의 도덕적 우월감 따위를 신랄하게 비꼬는 그림이라는 것이지요.  어느쪽 해석이 좀더 설득력이 있어 보이시나요?

 

이 아메리칸 고딕은 미국의 정치인들이 선거전에서 이미지를 빌려다 쓰기도 했고, 유명한 텔레비전 드라마의 타이틀로도 사용되었으며, 유명 애니메이션에 출연하기도 합니다. 구글에서 American Gothic 이미지를 찾아보시면 다양한 변형들이 '무수하게' 나와줍니다. 작품의 예술성을 떠나서 이 작품은 '제목'과 '분위기'와 어느정도의 '행운'이 겹쳐서 미국의 '아이콘'이 되었다고 할 만합니다.

 

 

2009년 12월 28일 redfox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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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lism2009. 12. 29. 00:00

 

 

미국 사실주의 속의 지역주의

 

http://americanart.textcube.com/118 이전 페이지에서 미국미술사에 나타나는 '사실주의' 흐름을 제가 대충 정리한 바 있습니다. (공부를 해 가면서 내용을 조금씩 손을 보게 되는군요. 잘 못 알고 있던 것은 바로잡고... 첨가도 하고..)

 

그 표를 다시 갖다 놓고 살펴보겠습니다. 아래 표가 제가 대충 잡은 윤곽인데요. http://americanart.textcube.com/search/?search=ashcan  Ashcan 에 속했던 화가들을 소개한 적이 있쟎아요. 이분들이 미국 사실주의의 원조들이었다 할 만 합니다. 이들중에 Social Realist 로 분류가 될만한 화가도 있고, 아닌경우도 있고.  가령 Sloan 은 사회주의적 잡지 편집에도 관계했지만, 스스로는 사회주의와 거리를 두기도 했지요.  본격적인 사회 사실주의 화가로는 벤 샨 같은 작가들이 있지요. (벤샨은, 제가 꽤 흥미를 가진 화가 이기 때문에 오히려 페이지 정리하기가 어렵게 느껴집니다....)

 

이번에는 지역주의 (Regionalism) 작가군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삼총사'와 같은 작가들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1930년대에 탄생하는 '지역주의 (Regionalism)'의 주요 작가는 다음과 같습니다.

 

 * Grant Wood (1892-1942)

 * Thomas Hart Benton (1889-1975)

 * John Steuart Curry (1897-1946)

 

그러니까...가령...아주 유치한 미술 문제를 낸다고 가정해봅니다.

 

다음 화가들중에서 미국의 지역주의 화가가 아닌 사람은?

(1) 그랜드 우드 (2) 토마스 벤튼 (3) 조지아 오키프  (4) 존 커리

 

이런 문제가 나오면 답은 (3)번을 찍으셔야 한다는 것이지요 :)

 

 

지역주의의 탄생과 허상

 

 

 

그러면, 이 regionalism 이라고 명명된 지역주의는 어떤 배경에서 탄생 한 것일까요? 미술비평책마다 대동소이하거나 백과사전식의 설명을 하고 있는데요, 대략 '교과서'처럼 알려진 것은 이런 내용입니다. 우선 지역주의가 1930년대에 탄생하는데, 대공황과 맞물려 있지요.  그래서 미국인의 애국심을 고취 시키고자 하는 미술 운동이 일어났고, 유럽 일변도의 미술판에 저항하여 소외되어 있었던 미국의 중서부 지역에서, 신토불이의 미술이 탄생한거다 이런 내용이죠.  아 저역시 최근까지 이런 식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근래에 지역주의의 탄생에 대한 또다른 설명을 접할수 있었습니다.  지금부터 그 내용을 조금 정리하겠습니다.  American Visions: The Epic History of Art in America by Robert Hughes 책 내용을 대충 요약해서 옮기겠습니다.

 

 

1933년에, 캔자스 출신으로 뉴욕에서 미술거래상으로 활동하던 Maynard Walker 라는 사람이 캔자스 시티에서 35점의 그림을 걸어놓고 "American Painting Since Whistler 휘슬러이래의 미국 회화" 라는 제목의 전시회를 엽니다.  전시회에 참가했던 화가들 중에 Thomas Hart Benton, John Steuart Curry, Grant Wood 가 있었던 것이지요. 당시 벤턴은 뉴욕에서 활동중이었고,  우드역시 이미 American Gothic 이라는 불후의 명작(?)으로 큰 상을 거머쥔 후였고, 커리역시 '휘트니 미술관'이 이미 그의 작품을 여러점 사들인 후였습니다.  나름대로 이미 미술계에서 어느정도 알려진 인물들이었지요.  그런데 이 세사람은 피차 서로 본적도 없고, 서로 잘 알지도 못하는 사이였습니다.  그리고 뭐 Regionalism 같은 것도 생각도 못해냈겠지요.

 

그런데 전시회를 기획했던 Walker 가 Art Digest 라는 잡지에 이 전시소식을 전하면서 "real American art...which really springs from American soil and seeks to interpret American life (진정한 미국 미술...미국의 토양에서 태어나서 미국의 삶을 해석하려고 노력하는...)" 이런 선전을 했다고 합니다.  뭐 사실 당시 비평가들이나 콜렉터들은 이 전시회에 별 관심이 없었다는데, 워커가 제작한 카타로그가 Time 지의 중서부 담당자의 눈에 띄어서, 그것이 뉴욕의 본사로 보내집니다. 뉴욕 본사를 지키고 있던 타임지의 설립자 Henry Luce 는 미술 애호가였는데 이 별것도 아닌 소식을 흥미롭게 보았습니다.  그리고는...난리가 난거죠...  이제 진정한 미국의 세기 (The American Century) 가 돌아왔다는 식으로 해석을 한거죠.

 

그리하여 1934년 12월 24일판 타임지의 커버를 벤턴의 초상화가 장식하고, 커리, 우드, 그리고 Charles Burchfield, Reginald Marsh 등의 그림이 소개가 됩니다. 흙냄새 물씬 풍기는 중서부 출신의 작가들이 불러일으킨,  진정한 미국화의 탄생! 지역주의가 이런식으로 탄생을 한거죠.

 

헌데 Robert Hughes 의 설명으로는 이런식의 미국의 Regionalism 은 사실과는 상관없는 '허구'라는 것이지요.  가령 벤튼, 커리, 우드가 지역주의 운동의 선구자로 널리 선전이 되었지만, 벤튼과 우드는 피차 서로 일면식도 없었고, 지역주의 화가로 알려진 화가들중에 정말 '중서부'에 뿌리를 내리고 활동한 화가는 그랜트 우드 뿐이라는 것이지요.  커리는 커넥티컷에서 활동했고, 벤튼의 스튜디오는 뉴욕에 있었다고 합니다.  사실이 어쨌거나, 중요한 것은 이 '지역주의'라는 어떤 판타지가 미국의 대중들에게 비현실적인 향수와 꿈을 주었다는 것이지요. 경제 대공황으로 도시와 농촌등 전 지역이 고통을 겪고 있을때, 그랜트 우드가 보여준 풍경화는 '잃어버린 낙원'이었지요.  존 스타인벡이 분노의 포도(Grapes of Wrath)를 1939년에 발표하면서, 몰락한 미국 농민들의 참상을 여실히 서술한 바 있는데, 이에 비해서 그랜트 우드의 풍경화는 '몽환적'이기 까지 합니다.

 

후에 벤튼은 이 허구성이 강한 지역주의 운동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평을 합니다. " 이미 각본은 씌어졌고, 우리를 위한 무대장치는 만들어졌다. 그랜트 우드는 전형적인 아이오와 소읍 사람이 되었고, 존 커리는 전형적인 캔자스의 농부가 되었으며, 그리고 나는 중서부 (미조리조)의 촌뜨기가 되었다. 우리는 우리 역할을 받아들였다."

 

예. 미국의 지역주의 운동이 대충 이러한 얼개로 탄생하였고, 미국미술사에서 나름 자리매김을 하고 있습니다. 지역주의 삼인방에 대한 소개는 Wood, Benton, Curry 순으로 페이지를 열어나가겠습니다.

 

2009년 12월 28일 redfox.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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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lism/Ashcan School2009. 12. 8. 01:15

 

William Glackens (1870-1938) 는 The Eight 의 멤버인 John French Sloan 과 고등학교 동창이고, 펜실베니아 미술학교에서도 함께 미술을 공부했으며, 슬로언의 소개로 로버트 헨라이와 만나게 되어 절친한 관계를 유지하게 됩니다. 글랙슨 역시 슬로언과 마찬가지로 여러가지 매체에 '삽화'를 그리는 것으로 생계를 해결했습니다.  아무래도 대중적인 신문이나 잡지에 필요한 삽화를 그리는 작업이 이들을 사실주의적 화법으로, 대중의 삶에 다가가게 하는 요소가 되었을 것입니다.  

 

 

 

La Villette  (c. 1895)

2009년 11월 7일 카네기 미술관에서 촬영

 

 

 

1895년에는 헨라이, 슬로언을 위시한 미술가들과 함께 유럽 여행을 하기도 했고요, 헨라이와 함께 파리에서 일년간 머무르며 파리의 예술을 익히기도 합니다.  시골에서 서울로 유학을 가듯, 당시 미국의 미술가들은 파리나 다른 유럽의 도시로 미술을 공부하러 가는 것이 대세였습니다.  글랙슨 역시 헨라이의 영향으로 일상의 대중의 모습을 그려나가기도 했고 2008년 The Eight 전시회에 참가하기도 했지만, 그는 헨라이의 영향권 아래에 오래 머무르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르누아르와 같은 프랑스 인상파 화가의 화풍을 추구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La Villette 는 프랑스 파리의 풍경입니다. 강변에 사람들이 있고, 높은 구름다리도 보입니다. 1895년, 프랑스 파리에 처음 간 25세 청년의 작품입니다.  도시인의 풍경을 관찰자의 입장에서 그리고 있지요.

 

 

 

Boys Sliding (미끄럼 타는 소년들) c. 1900

Oil on Canvas

2010년 1월 9일 델라웨어 미술관에서 촬영

 

색조는 대체적으로 '어두운' 편인데요, 이게 뭘까? 궁금해서 들여다보면 아슴프레한 가운데, 언덕에서 미끄럼을 타는 아이들과, 언덕 아래에서 줄넘기를 하고 노는 소녀들이 보입니다.  언덕위에서 신사 혼자서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군요.  같은 시기에 그려진 저 위의 풍경화와 분위기가 비슷하지요?

 

 

 

 

1904년 결혼한 글랙슨스는 파리로 신혼여행을 갔고, 그 이후로도 프랑스와 유럽의 도시들을 자주 드나들었는데, 파리의 룩상브르그 정원을 그림에 담았습니다.  프랑스의 중상류층 사람들이 한가롭게 공원에서 시간을 보내는 장면입니다.

 

Luxembourg Garden (1906)

2009년 10월 3일 코코란 미술관에서 촬영

 

 

Beach Umbrellas at Blue Point (1915)

2009년 10월 3일 스미소니언 렌윅 갤러리 (미국 공예 박물관)에서 촬영

 

 

 

 

 

Bath Houses, (욕실들), c. 1915

Oil on Canvas

2010년 1월 9일 델라웨어 미술관에서 촬영

 

 

저 위의 스미소니언 소장 작품과 이 'Bath Houses'그림의 '장소'나 색감이 비슷하죠. 제작 시기도 비슷하고요. 극히 개인적인 소견입니다만, 위의 바닷가풍경은  함께 활동했던 프랜더개스트의 그림을 연상시키고,  이 욕실들 그림은 타히티 여인들을 즐겨 그렸던,  폴 고갱의 아름다운 색감을 연상시킵니다.

 

 

 

 

 

그의 1927년작 Promenade (산책)는 얼핏 루누아르의 화사함을 연상시키지요?

 

 

 

The Promenade (1927)

Oil on Canvas

2009년 10월 30일 디트로이트 미술관에서 촬영

 

 

글랙슨스는 The Eight 전시회의 회원이었고, 애시캔 그룹으로 활동을 하기도 했으며 평생 이들과 교분을 유지하였지만, The Eight 전시회 이후 헨라이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루누아르 풍에 가까운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해 나갔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제가 전시장에서 눈으로 직접 봤던 그의 작품들은 '미국화'같지가 않아 보였고, 얼핏 보기에 '유럽 인상파 화가 그림같다'는 느낌을 줍니다.  어찌보면 '이도 저도 아닌' 작품들 같기도 한데요.  그래서 미술사적으로 크게 주목받지는 못하지요.  화가의 '정체성'이 그래서 중요하지요. 미국인은 미국적인 그림을 그릴때 정체성이 뚜렷하고, 한국인은 한국적인 무엇을 다룰때 정통적으로 보이지요.

 

며칠전에 아들놈이 학교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했습니다.  각자 주제를 선택하여 전문가적으로 발표를 해야 하는 프로젝트였는데, 처음에 아들놈이 담당교수한테 '럭비'에 대해서 발표를 하겠다고 했답니다. 럭비선수를 한적이 있거든요.  담당교수가 '뜨아'한 표정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들놈이 마음을 바꿔서, 태권도에 대한 발표를 하겠다고 했습니다. (태권도장에서 태권도 지도를 하는 유단자거든요). 그러자 담당교수가 '그것을 발표하라'고 흔쾌히 대꾸를 했다고 합니다.  아들놈에게는 '럭비'나 '태권도'나 모두 자신이 잘 설명할수 있는 분야였는데  교수가 볼때,  명백하게 '코리안'인 학생이 '럭비'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 보다는 '태권도'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이 훨씬 '전문가'처럼 보였을 것이지요.  아들녀석은 태권도복까지 갖춰 입고 프레젠테이션을 했고, 좋은 점수를 받았다고 합니다.

 

교수를 '인종주의자'라고 탓 할 생각은 없습니다. 가령 '일본인'이 유도복을 입고 설명을 하면 어쩐지 그 사람이 유도의 전문가처럼 보이겠지만,  아프리칸이 유도복을 입고 설명하면 어쩐지...아닐것 같다는 느낌이 들테니까요.  그냥 '눈으로 보기에' 얼핏 그런 인상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고정관념이라던가 '스테레오 타이핑' '인종주의'라고 비난만 할수는 없지요.

 

사람이 갖고 있는 인지구조는 본인 스스로도 통제가 잘 안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사람들은 대개 이런 설명 불가능한 요소들의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미국인 글랙슨스가 아무리 근사한 그림을 그려도, 그것이 어쩐지 이도 저도 아닌, 유럽화가의 작품같은 애매한 분위기를 갖기 때문에, 저와 같은 '미국화란 무엇인가' 들여다보는 이방인의 눈에는 그저 애매할 뿐이지요.  음...저의 글도 참 애매해지고 있군요...

 

 

2009년 12월 7일 redfox

 

 

 

The Purple Dress (보라색 드레스) 1908-10

Oil on Canvas

2009년 12월 29일 스미소니안 미국 미술관에서 촬영

 

 

스미소니안 미국미술관에서 글랙슨스의 보라색 드레스 그림을 발견했을때, 얼핏, '저 그림 내가 어디서 봤는데...' 이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림 파일들을 뒤져봤지요.  그리고, 제 느낌에 매우 유사해 보이는 그림을 발견했습니다.  저한테만 이런 느낌이 들지도 모르지만요.

 

Pierre Bonnard (1867년생-1947년 사망).

Misia on a Divan  ca. 1907-1914

 

 

William Glackens 는 1870년생 (1938사망).  Pierre Bonnard 는 1867 년 출생 (1947년 사망.) 두 화가 모두 비슷한 시기에 태어나 비슷한 시기를 살던 사람들이지요. 보나르는 프랑스 태생이고, 글랙슨스는 미국 태생이지만, 두 사람 모두 파리에서 미술작업을 하면서 조우했습니다.  글랙슨스의 자료를 보면, 그가 프랑스에서 인상파 화가들 나비파 화가들의 영향을 받았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나비파화가로 우리에게 친숙한 사람들이 뷔야르와 보나르 이지요.  이 두 사람은 미국의 큼직한 미술관에 가보면 늘 함께 붙어다닙니다. 보나르 그림 곁에 뷔야르 그림이 있습니다.  늘 함께 있습니다. 마치 오스트리아의 화가 클림트와 에곤 쉴레 두 사람의 그림이 짝짝꿍이 되어 붙어 다니는 것처럼. (클림트와 에곤 쉴레 역시 서로 불가분의 관계이지요. 클림트가 에곤 쉴레의 후견인, 스승이 되어주긴 했으나 이들의 관계가 일방적이었다고 보기는 힘듭니다.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았지요... 유럽 미술은 이쯤에서 ....) Nabis 는 '예언자'라는 뜻의 히브리 말이라고 합니다. 신비하고 독특한 붓의 터치와 색감을 유지 했는데요.  글랙슨스 역시 이들의 작품 세계를 인지하고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보입니다.  두 작품의 제작 연대도 거의 일치하지요.

 

뭐 두 여자 주인공들의 표정보다는, 그림 전체에 흐르는 붓의 터치와 전체적인 색감이 제게 매력적으로 보입니다.

 

 

 

(제가 보나르의 '광팬'쯤 되는데... 제가 보나르를 좋아한다는 것을 ...우리 식구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특히 제 남편은, '하고 많은 화가중에 왜 하필 그런 그림이 좋은가' 의아해 하지요. 제 남편은 보나르의 그림이 정신병적이라고 싫대요. 내 눈엔 이쁘고 아름답고 신비로운데...  보나르가 좀 정신병적인 면이 있지요. 정신병자같은 여자를 수십년간 지성껏 돌보며 외톨이처럼 살다 간 화가거든요.  보나르의 그림에는 목욕하는 여자가 등장하고, 욕조 주변의 여자의 풍경이 다수인데 그 여자는 평생 욕조에서 살다 갔대요. 무슨 질환 때문에 그랬다는데, 보나르는 그 여자를 평생 돌봤고요.  저는 클림트의 그림을 보면 -- 차멀미같은 멀미를 느낍니다.  느끼해서 빙빙 도는것 같아요.  현기증이 날정도로 아름다우면서도 느끼하죠. 제가 클림트의 그림을 보면서 기분나빠하듯, 제 남편은 보나르의 그림이 기분 나쁜가봅니다.  아... 사람이 다 제각각이고, 각자 자기상처를 핥고 사는 짐승이라,  뭐 그렇다는거죠.)

 

 

화면 오른쪽에서 두번째 그림. 그것이 보라색드레스 그림입니다. (2009년 12월 29일 스미소니안 미국미술관 2층에서 촬영). 오른쪽의 발레 그림은 Everett Shinn,  왼쪽 풍경화는 Robert Henri, 왼쪽 설경 그림은 Rockwell Kent, 그 곁에 잘 안보이는 그림은 George Luks. 모두 미국 사실주의 화가들입니다.

 

 

글랙슨즈 그림을 연대순으로 정리했는데요, 위에서부터 차례차례 내려오다 보면, 그의 그림이 초기에는 어두컴컴하다가 점차 밝고 화사해져 간 것으로 보입니다.  저는, 밝은 색감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어두운건...싫더라구요.  (나의 어둠만으로도 나는 지쳐있으므로...어둠에서 밝음을 지향하는거죠, 하하, 옛날에 우리나라 정보기관의 슬로건 아니었나요? 우덜은 어두운곳에서 밝음을 지향한다라던가 뭐라던가...저는 정보기관은 무조건 무서워요. 무서워요. 무서워요.~~ )

 

 

 

 

2010년 1월 4일 내용 보충 redfox.

2010년 1월 18일 내용 보충 redfox.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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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제가 왜 RedFox님의 글에 관심이 있었는지 몰랐습니다.

    그런데, 지금 문득 보니... 알겠어요.
    전 그림이 그리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어린 시절이 꿈 중 하나였던것 같은데...

    그래서 인지... 제 딸아이 둘은 그림을 좋아하나 봅니다.

    이젠 그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을 제가 할 수 있도록 만들어줘야 하는데... 세상의 굴레 속에서 헤어나오질 못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암튼... 그림은 참 좋은 것 같습니다. 생각을 풍성하게 하기 때문이 아닌지...

    좋은 주말 되시길... (_ _)

    2009.12.12 21:45 [ ADDR : EDIT/ DEL : REPLY ]
    • 저도 '화가'가 되는것이 어릴적에 품었던 여러가지 소망중에 한가지였지만, 지금은 제가 화가가 못된것에 대하여 아무런 아쉬움도 없습니다. 그려봤는데, 뭐 내길이 아닌것 같았고요. 엄니가 아마추어로 열심히 그리시는데, 엄니 하시는것 보니까, 역시 난 아닌것 같아요.

      하지만, 여전히 뭔가 '그리기 장난'은 즐기는 편인데요. 간단한 만화같은 장난들. 그런데 이런 취미역시 우리 삶을 풍성하게 해주지요. 일을 할때, 이런 끄적대는 취미가 역시 도움이 되고요. 프레젠테이션을 한다거나 기획서를 작성할때도 '시각적'으로 효과적인 것에 대해서 고민을 하는 편이고요. 역시 '시각효과'가 있는 뭔가를 잘 만들어내는 편이고요.

      그러므로, 꼭 미술가가 되지 않는다해도, 우리들이 갖고 있는 미술취미는 삶의 다른 양식으로 표출되므로 역시 즐거운 일이지요. 그래서 저는 제 두눈이 건강한것을 참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세상을 두눈으로 볼수 있다는것 참 기쁜 일이거든요.

      그별님은 좋은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나눠주기도 하시쟎아요~ =)

      2009.12.14 08:55 [ ADDR : EDIT/ DEL ]
    • 비밀댓글입니다

      2009.12.14 23:15 [ ADDR : EDIT/ DEL ]
  2. 내용 보충했습니다. (그림 두장 추가)

    2010.01.05 07:08 [ ADDR : EDIT/ DEL : REPLY ]
  3. 내용 보충했습니다, 그림 두장 추가

    2010.01.19 00:19 [ ADDR : EDIT/ DEL : REPLY ]

Realism/Ashcan School2009. 12. 7. 23:22

소년가장 슬로언

 

John French Sloan (1871-1951)은 펜실베니아 태생의 미국 사실주의 화가로 Henri 를 중심으로 모인 Ashcan (애시캔) 그룹과 The Eight (8인회)의 멤버로 활동하였습니다.  존 슬로언은 필라델피아에서 성장하였는데 그의 고등학교 동창중에 후에 The Eight 의 멤버가 되는 William Glackens를 만나게 됩니다.

 

1888년 그가 16세 되던해에 아버지가 정신질환으로 쓰러지면서 슬로언이 집안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소년가장이 되고 맙니다. 그는 책방에서 일하면서 틈틈이 책을 읽고 화집을 들여다보며 혼자 그림을 그리던중 정식으로 야간 미술 과정에 입문하게 되고 후에는 펜실베니아 미술학교에 진학하게 됩니다. 여기서 그는 Thomas Pollock Anschutz 의 지도를 받게되며 고등학교 동창이었던 Willaim Glackens 를 다시 만나게 되지요.

 

1892년 Robert Henri 를 만나게 되는데 이때부터 이들의 연대가 시작됩니다. 슬로언는 The Philadelphia Press 의 미술부에서 삽화가로 일을 하며 미술 작업을 계속해 나갑니다.

 

슬로언의 아내

 

슬로언은 아내와의 관계도 '소설'적인데,  그의 아내 Anna Maria 를 술집에서 만나서 사랑에 빠져 1901년에 결혼하게 됩니다.  안나 마리아는 백화점 점원으로 일했지만 매춘 경력이 있으며 음주벽이 있고, 아마도 이러한 전력을 거친 여성들이 보일법한 히스테리컬한 우울증도 보였던 것 같습니다. 슬로언의 아내에 사랑은 지극정성이었고 한 의사의 제안으로 1906년부터 1913년까지 매일 매일 자기가 얼마나 아내를 사랑하는지 일기를 쓰게 됩니다.  (이런 남자 또 한명 있죠, 삐에르 보나르... 삐에르 보나르는 수십년간 목욕탕에서만 지내는 특수한 병을 가진 여인을 돌보며 한세상을 보냈지요. 삐에르 보나르의 그림에 빈번하게 등장하는 목욕하는 여자, 삐에르의 평생의 연인.)  그의 부인은 1943년에 죽고, 슬로언은 이듬해에 새장가를 갔으며 슬로언 자신은 1951년에 운명합니다.

 

슬로언의 사회주의 운동

 

 

1912년 그는 사회주의 성향이 강한 잡지 The Masses 에 미술 편집인으로 참가하며 다른 사회주의 사상이 강한 매체인 Call, Coming Nation 지를 위해서도 삽화를 그려줍니다.  특히나 그가 그린 1914년 6월호 The Masses  표지화가 지금도 자주 인용되거나 소개되곤 하는데요. (http://americanart.textcube.com/133  페이지에 Ludlow 학살사건의 이야기가 잠깐 소개된바 있습니다.)  그가 사회주의 사상에 심취했고 민중의 생존권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긴 했지만, 예술가로서 슬로언은 '선전 (propaganda)'의 '도구'로 미술 작업을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사회정의를 위해 노력하는 것에는 긍정하면서도 예술이 '극단적인 정치선전의 도구'로 전락하는 것은 원치 않았다고 할만하지요.  그러면, 우리는 '예술만을 위한 예술'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반문할수 있을텐데...제가 추측하기에, 슬로언은 아마도 그 주위의 '사회주의자'들의 어떤 행동들에 거부감을 가졌을법 합니다.  그 '어떤 사회주의자들'이 요구하는 '선전물'을 만들기 싫었겠지요.  그가 꿈꿨던 사회주의와 그가 속한 사회주의자의 무리들의 행동 양식이 일치하지 않았을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그들과 거리를 두고 싶었을겁니다.  

 

서민속에 서있던 남자

 

존 프렌치 슬로언의 작품세계는 크게

 

(1) 뉴욕의 풍경

(2) 대중의 삶의 풍경

(3) 잡지,책의 삽화가로서 작업한 세밀한 판화 작품들

 

으로 정리 될수 있습니다. 일단 그가 삽화가로 일했으므로 대중 생활 관련 묘사 작품들이 많은데, 이런 성향은 이미 십대에서부터 생계형 청년 가장으로 세상에 나아갔던 그의 삶의 이력을 통해서도 충분히 짐작이 갑니다. 그가 즐겨그린 도시 주변의 사람들의 모습, 가령 도심의 창가에서 빨래를 너는 여인이나, 건물 청소를 하는 아주머니들, 술집 풍경 역시 그의 삶과 밀착된 풍경이었을 겁니다.  특히나 20세기초의 뉴욕의 전철과 천철 주변 풍경은 그의 '전매특허'와 같은 주제라 할 수 있지요. 조지 벨로우즈 페이지에서 (http://americanart.textcube.com/198)  권투선수 그림을 즐겨그린 미국 화가가 누군가? 이런 퀴즈가 나오면 자동으로 '조지 벨로우즈'를 외치면 된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지요. 마찬가지로, 미술관에서 '뉴욕 고가 기차' 풍경화가 멀리서 보일경우,  당신이 애인과 함께 미술관 구경중이라면 "저기 저 뉴욕 풍경속에 고가 기차 그림이 있는 저 그림 말야...저거 아마 존 슬로언이라는 화가의 그림일거야..." 하고 '아는체'를 해도 크게 실례가 안 될 것입니다.

 

 

 

뉴욕 고가 기차 (Elevated Train: EL)

 

The City from Greenwich Village (1922)

그리니치 빌리지에서 바라본 뉴욕
oil on canvas
overall: 66 x 85.7 cm (26 x 33 3/4 in.)

National Gallery of Art 에서 2009년 9월 촬영

이 그림은 비가 그친 겨울 저녁, 맨하탄 남단에서 바라본 맨하탄의 거리 풍경입니다. 고가기찻길 위로 기차가 불을 밝히고 지나가고 비에젖은 도로에 자동차의 불빛이 반사됩니다. 비가 갠것을 눈치채는 이유는 하늘이 부염하게 밝아 있다는 것이지요. 도시는 촉촉히 비에 젖어 있고 골목의 불빛은, 그것이 골목이라서 더욱 밝아 보입니다. 건물 옥상의 물탱크도 보이고, 다리미의 모서리같이 각진 고층 건물이 오른쪽에 보이는데, 건물에서는 불빛들이 새어나옵니다. 일층의 모든 창문은 손님들을 기다리는듯 환하게 불이 켜져있습니다.  옹기종기 걸어가는 행인도 몇명 보이지요. 그림의 전체적인 윤곽은 우리가 마치 몇층 건물에서 창밖을 내다보는 듯 합니다. 액자를 창틀이라고 생각하면, 우리는 창밖을 지긋이 내려다보는 기분이 듭니다.

 

 

다음 그림은 워싱턴 필립스 콜렉션이 소장하는 Six O'clock, Winter (1912) 라는 또다른 고가 기차 (EL) 풍경입니다. (제가 갖고 있는 사진 파일이 상태가 안좋아서 웹에서 얻어왔습니다.)   그런데, 이 그림속의 여섯시의 풍경은 오전일까요 오후 일까요? (제가 볼때는 오후 여섯이인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 단서는 나중에 말씀드리기로 하고요...  )  이 작품이 1912년작이고, '그리니치 빌지지에서 바라본 뉴욕'이 1922년 작품이므로, 두 그림 사이에는 10년의 세월이 존재합니다.  그런데 두 그림을 함께 놓고 보면, 1912년 작품은 고가기차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시선이고, 1922년 작품은 위에서 내려다보는 각도이지요.

 

 

 

 

http://www.phillipscollection.org/research/american_art/learning/sloan-learning.htm

 

 

 

무료 커피

 

The Coffee Line (1905)

무료 커피를 받기 위해 줄서있는 사람들

2009년 11월 7일 피츠버그 카네기 미술관에서

 

 

 

 

뉴욕에서 무료 커피를 받기 위해 긴 행렬을 이룬 실업자들을 발견한 슬로언이 그려낸 겨울 저녁의 풍경입니다. 길에는 눈이 쌓여 있지요. 슬로언은 멀찌감치 떨어져서 이 어둡고 긴 행렬을 묘사 했습니다.  아마도 이러한 빈곤의 문제가 그를 사회주의 사상으로, The Masses 로 이끌었을 것입니다.

 

비가 들이치는 페리선

 

Wake of the Ferry, No. 1 (1907)

페리선의 물길

2009년 10월30일 디트로이트 미술관에서 촬영

 

 

 

지금도 뉴저지에서 맨하탄으로 출근하는 사람들중에 배(Water Taxi)로 강을 건너는 직장인들이 있습니다. 100여년전 뉴욕과 뉴저지를 왕래하는 페리선을  그린것은 당시로서는 '엉뚱한' 시선이었을겁니다.  비가 들이키고 물결이 거칠게 일고, 전체적으로 '내가 그 페리선을 탄듯' 심란한 기분이 드는 그림입니다.  오른쪽 구석에 서있는 여인도 그래서 심상치 않아 보이는데요.

 

이 그림은 그림의 심상치 않은 분위기 만큼이나 심상치 않은 운명을 타고 났습니다. 슬로언은 1904년에 뉴욕으로 활동지를 옮겼는데, 그의 알콜중독자 부인은 이후로도 걸핏하면 필라델피아의 집으로 가버리곤 했던 모양입니다. 그의 아내가 필라델피아로 가기위해 이 페리호를 종종 이용했지요. 결국 이 그림속의 여인은 슬로언의 알콜중독자 아내의 뒷모습이었던 것인데요.  1907년에 슬로언이 그의 작업실에서 The Eight 전시회를 준비하기 위해 모임을 갖고 있었을때 부인이 들이닥쳤다고 합니다.  (남자 작업장에 여자가 허락도 안받고 나타난거죠, 아마 그렇겠죠.) 술도 몇잔 마셨겠다, 화딱지가 난 슬로언이 그 자리에서 의자를 집어던져가지고 이 그림이 상처를 입었다고 합니다. 그래가지고,  나중에 이 그림을 또다시 그리게 되는데 그 (2)번 그림은 필립스 콜렉션에 소장되어 있고, 이 (1)번 그림은 슬로언이 (2)번 그림 그린후에 손을 봐서 오늘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Beal 2002).  아무래도 이런 뒷 이야기를 듣다보면, 이 페리선의 풍경이 슬로언과 그의 아내의 풍경이었다 싶기도 하지요.

 

 

 

 

 

 

이상에서 보신바와 같이 대도시의 뒷골목의 삶의 풍경, 이런 풍경은 Henri 가 주도했던 Ashcan 일당들의 주요 소재라 할 수 있습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시각에서 '이런 그림이 뭐가 대단한가?' 의구심이 들 수도 있을것입니다.  그런데 이 그림이 그려진 1922년 미국 화단의 상황속에서 이 그림의 의미를 생각해보면 우리의 생각은 달라질수도 있습니다.

 

미국의 미술의 역사는 유럽에 비해서 '일천'할수밖에 없지요. 제가 에드워드 힉스나 조쥬아 존슨과 같은 초기의 '포크 아트' 작가들에 대하여 애정을 갖고 소개를 한 이유가 있는데요, 미국은 초기에 유럽 강대국들의 '식민지'였고 유럽 문화권의 식민지이기도 했습니다. 미국 자생의 문화가 없었다고 봐야지요 (아메리카 인디언 문화를 제외하면).  그래서...Henri 를 위시한 '사실주의' 화가들의 탄생 이전의 미국 회화사는 '유럽 베끼기'의 연장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장차는 미국의 인상주의나 그 이전의 풍광, 초상와 위주의 미술과 미술가들을 차례로 소개하겠지만, 제가 왜 이들부터 시작을 안하고 풍속화가 잠깐 건드리다가 '사실주의'로 점프를 해버렸는가하면, 미국의 사실주의 화가들 이전의 작가들에게서 제가 별 매력을 못 느끼기 때문입니다. 뭐 대략 사이비 유럽미술 냄새가 고약하게 난다는 느낌이 드니까요. 제가 감지하기에 미국의 사실주의 화파들부터, 미국의 미술은 자신의 정체성을 슬슬 세워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들에서부터 미국의 풍경이, 미국의 서민이 화면의 중심에 슬슬 등장을 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슬로언의 전철 그림과 도심 그림이 매력적으로 비쳐지는 것이지요. (이것은 미국인이 아닌, 아시아 출신의 어느 외국인이 이방인의 시각으로 미국 미술을 보는 관점이긴 합니다.)

 

 

 

Yeats at Petitpas'

 

이 그림은 뉴욕 웨스트 사이드의 어느 하숙집에서 열린 파티 장면입니다.  Petitpas 는 프랑스 출신의 두 자매가 경영한 하숙집 이었습니다. 

 

이곳에 영국의 철학자이며 예술가였던 John Butler Yeats (존 버틀러 예이츠 1839-1922)가 머물렀는데, 그는 영문학도들에게 (그리고 교양 차원에서 영시를 읽은 사람들에게)  친근한 시인 William Butler Yeats(1865-1939) 의 아버지입니다.  존 버틀러 예이츠는 69세 되던 해에 뉴욕으로 이주하여 '애시캔' 화가들과 친교를 맺었고, 결국 뉴욕에서 사망하여 뉴욕에 뼈를 묻었지요. 그러고보면, 그의 아들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는 '유럽'문화를 이상화 했는데, 아버지인 자신은 말년에 문화 불모지와 같은 뉴욕에 와서 세월을 보내다가 갔군요.

 

흰 턱수염의 노인이 존 버틀러 예이츠이고, 오른쪽 끝에 보이는 검은머리 남자가 존 슬로언이군요. 음식을 들고 서있는 이는 하숙집 주인이고요, 그이의 왼쪽에 모자를 쓴 여인이 슬로언의 부인이라고 합니다. 존 버틀러 예이츠가 이 하숙집에 머무는 동안 이곳은 당시 미술, 문학을 사랑하는 젊은이들이 즐겨 모이는 장소로 유명했다고 합니다.

 

Yeats at Petitpas' (1910)

Oil on Canvas

워싱턴 Corcoran 미술관에서 2009년 10월 3일 촬영

 

 

 

해부학교실

 

존 슬로언은 펜실베니아 미술학교에서 Anschutz 선생의 지도를 받았는데, 다음 작품은 해부학 강의를 하는 안슈츠 선생을 에칭 판화로 묘사한 작품으로 보입니다.

 

 

 

 

 

Anshutz on Anatomy (1912)

해부학 교실의 안슈츠 선생

Etching

필라델피아 미술관에서 2009년 9월 19일 촬영

 

 

 

 

제 사진 상태가 좋지 못해서, 웹에서 좀더 선명한 이미지를 빌려 왔습니다.  강단아래에 안슈츠 선생이 서서 강의를 하고 있고,  강단위에 인간 골격이 서있고, 그 옆에 성기만 가린 남자 누드 모델이 서있습니다. 그리고  학생들이 둘러 앉거나 서서 해부학 강의를 듣고 있는데요. 학생들중에 여학생도 보입니다.  아마도 여학생들이 없었다면 남자 누드 모델이 성기를 가리지 않아도 되었을 것입니다. 1900년대 초반에 미국 미술 학교에서는 남녀학생이 함께 작업하는 곳에서는 누드 모델이 성기를 드러내면 안되었다고 하지요.

 

 

슬로언에 관심이 많아 자료를 많이 보긴 했는데, 막상 제가 가진 작품 사진 파일이 미미하여 그의 미술 세계를 구체적으로 생생하게 소개할수 없어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저는 화집이 아닌 '내 눈'으로 본 것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하기로 작정을 했거든요.  나중에라도 슬로언 작품들이 보이면 보이는대로 잘 갈무리하여 좀더 그에대한 이야기를 이어나가고 싶습니다. 화집에서 본, 제가 좋아하는 그의 작품들로는 그의 '빨래'관련 그림들인데요. 슬로언이 도심에서 빨래를 널거나, 걷거나 하는 여인들을 모티브로 그린 그림이 많이 있습니다. 참 아름답지요. 그래서 '빨래' 주제의 페이지를 하나 만들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는데요, 이것 역시 훗날로 미루기로 하겠습니다.

 

 

 

참고문헌:

 1. http://www.nga.gov/fcgi-bin/tinfo_f?object=52079

 2. Sherry Babbit (2008). Philadelphia Museum of Art: Handbook of the Collections. Philadelphia, PA.

 3. Graham W. J. Beal (2002) American Beauty: Paintings from the Detroit Institute of Arts 1770-1920. Scala Publishers Ltd. London, UK.

 

 

 

 

2009년 12월 6일 red fox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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