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p Art2011. 10. 24. 06:32

Cakes (1963) oil on canvas
Wayne Thibaud (1920- presently working)
사진. National Gallery of Art 동관 1층 2010년 1월 16일 이은미 촬영



집으로 날아온 Smithsonian Magazine 2011년 2월 호에 Wayne Thibaud 특집 기사가 실렸다.
http://www.smithsonianmag.com/arts-culture/Wayne-Thiebaud-is-Not-a-Pop-Artist.html
기사를 재미있게 읽고, 내가 갖고 있는 사진파일을 뒤져서 들여다본다.


Wayne Thiebaud (1920 - )   --'웨인 티보' 라고 발음한다-- 는 현재 91세의 현역 화가이다. 2차 대전후의 미국의 현대 미술을 주도했던, 앤디 워홀, 프란츠 클라인, 윌렌 드 쿠닝, 리히텐 스타인등 굵직 굵직한 인물들이 그와 동시대에 활동했다.  오늘에서야 그의 이름 Thibaud 를 '티보'라고 읽을수 있게 되었다.  내가 이 사람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하고 지나쳤던 이유는 아마도 그의 이름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잘 몰라서였을것이다.  정확한 발음을 모를경우 기억하기가 힘들다. (이제는 아마 잊지 않을것도 같다.)

미국의 현대 회화를 지나치다보면 '반드시' 큼직하게 그려진 파이 그림을 만나게 된다. 동글동글한 파이가 모여있거나, 하나가 있거나, 아이스크림을 아주 크게 그려놓거나, 캔디볼이 있거나 이런 그림들이 보인다. 큼직한 미술관에서 이런 그림을 한점 봤다면 '웨인 티보'라고 아는척을 해도 크게 벗어나지는 않을것이다.

이 다양한, 그러나 반복적인 케익 그림은 앤디 워홀의 '갭벨 수프 깡통' 그림을 연상시키는 구석이 있다. '상품'을 그림에 담아 놓은 스타일이 비슷해서일 것이다. 산업사회에서 대중적인 상품들이 가지는 '미적 가치'를 워홀만큼 신나게 대변한 이가 또 있을까. 티보의 케익 그림 역시 이런 스타일을 연상시킨다.  그래서 나는 일단 티보의 케이크 그림을 '팝 아트'에 끼워 넣기로 한다. 

그러나, 티보를 팝 아티스트라고 규정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가 팝 아트만 한 사람이 아니므로, 그가 팝아트적 작품들로 유명해졌고, 널리 알려진 것은 사실이나, 아직도 진행중인 그의 예술세계는 팝아트를 넘어서 다채로운 시도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스미소니안 기사에서는 (혹은 wayne thiebaud paintings 이미지 검색을 해보면) 그의 매우 매력적인 풍경화들이 소개가 된다. 캘리포니아에서 활동하던 Richard Diebenkorn (1992-1993)의 풍경화 기법의 영향을 받았다고도 하는 티보의 풍경화는 간략하면서도 세밀하고 깊다.

스미소니안 기사를 읽어보면, 티보는 '만화가,' '광고미술가' 등의 이력을 거쳐 뒤늦게 본격 회화의 길에 입문하였다. 그의 이력을 보면 그는 나이 서른이 넘어서 미술 학사와 석사를 받았다. 그 자신, 헐리우드에서 광고나 영화 광고 쪽에서 활동하면서 돈을 많이 버는 일에 열중했다고 한다. 앤디 워홀 역시 상업 미술 분야에서 독보적으로 성장을 했다. 아무래도, 동부에서 앤디 워홀이 상업미술로 돈방석에 오르고 있을 즈음, 서부에서 웨인 티보가 비슷한 이력을 쌓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결국 그는 만화, 광고 일러스트레이션, 광고제작등의 이력을 거쳐 자신만의 회화 세계를 열어내기 시작한다. 그런데 그의 그림의 소재들이 가게 진열대의 달콤한 케익, 사탕 항아리, 아이스크림, 오락기등인 것을 보면 광고쟁이로서의 그의 전력이 여전히 그의 회화의 밑거름이 되고 있지 않은가. 광고쟁이가 아니고서야 어떻게 이런 '제품'들을 회화로 구현해 낼 생각을 했을까 말이다.

티보의 그림들을 들여다보면서, 그의 그림 소재가 된 것들의 일관성을 들여다보면서 나는 생각해본다. ...음...문방구에 가서 문방구에 쌓인 것들을 사진기에 담아서 연작으로 그려보면 어떨까. 문방구 풍경, 문방구 안의 아이들, 문방구 앞의 전자 오락기 앞에 앉아서 노는 아이들, 그 앞에 쌓인 장난감 뽑기 껍데기, 그 알록달록한 껍데기 뭐 그런것만 시리즈로. 

티보는 UC Davis 에서 교수 생활을 하다가 70에 은퇴를 했는데, 그 후에도 지금까지 명예교수로 미술 특강을 하는데 여전히 학생들이 몰려 온다고 한다. 나이 90에 현역을 달리는 화가. 참 복받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나를 사로잡은 그림은 아래의 풍경화. 제목 Brown River, 2002. 그림이 빛에 반사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내 책상 밑으로 들어가 사진을 찍었는데도 아래 부분이 반사가 되었다. 이것은 말하자면 '지도'와 같다. 헬리콥터나 비행기를 타고 공중에서 내려다보는 장면 같은 풍경.  그런데 그림을 들여다보면 그림자의 방향이 일관성이 없고, 그리고 색상이 참 다채롭고 깊다.  그림자의 방향이 왜 일관성이 없을까?  예컨대 왼쪽 상단 구석의 푸른 나무 그림자를 보면 태양이 그 뒷쪽에서 비치는 것 같은데, 강 오늘쪽 굽이진 강둑의 나무 그림자는 오른쪽 위에서 태양이 빛나는 것 처럼 보인다.  어린 아이라 하더라도 빛과 그림자의 이치만 안다면 금세 알아차릴 이런 방향의 불일치를 화가가 몰랐을까?  알았다고 봐야한다. 그러면 그는 왜 이런 장난을 했을까? 이 자도안에 모든 '시간성'을 다 집어 넣고 싶었던걸까? 

 

이렇게 아름다운 '지도' 그림을 보면, 나는 가슴이 쿵쿵 뛴다. 이유는 알 수 없다.  아, 얼마나 매혹적인가.






아래의 그림은 Man in Tree (나무의 남자).  티보가 1978년부터 그리기 시작하여 아직도 작업을 하고 있는 작품이라고 한다. 30년이 넘게 그의 품에서 색을 입어가고 있는 작품이다.  그래서인지 채색이 꽤나 깊다.  그래서인지 화면에서 보석같은 색감이 불빛처럼 흘러나오는 것 같기도 하다.




아 찾았다!

http://americanart.si.edu/images/2004/2004.30.4_1b.jpg
티보의 풍경화가 어딘가 눈에 익어서 뒤져보니, 내가 그의 풍경화를 본 적이 있었다.  어디에 있는지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스미소니안 미국 미술관, 1층.  에드워드 호퍼와 조지아 오키프 그림이 있는 전시장 왼쪽에 이 커다란 풍경화가 걸려있다. 나는 이 그림 앞에서 한참을 이유도 모른채 서성이곤 했었다.  이 '지도'같은 그림 앞에서면, 뭔가 그리워진다. 자동차를 몰고 이 풍경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지는 것이다. 


(위) 2011년 1월 25일 작성


(아래) 2011년 2월 12일 (토) 방문,  작성 (사진 촬영: 박찬홍)
본 페이지 맨 위에 소개된 작품. National Gallery of Art 1층에 전시된 작품. (카메라가 바뀌어서 색감도 조금 차이가 난다). 대략 사람과 비교하여 이정도 규모의 작품.




같은날, 스미소니안 미국 미술관에 전시된 작품. 이작품을 보려면 에드워트 호퍼의 Cape Code Morning 이 전시된 뒷편으로 가면 된다.

위의 이미지를 보면 강물이 연분홍처럼 보이는데, 전시장에가서 원화를 보니 내 카메라에 담긴 이미지가 좀더 원화의 색감에 가까웠다. 강물이 노리끼리한 분홍빛에 가까웠다 (얼핏 노란 탁류를 연상시키는 색감이었다).







(아래) 2011년 10월에 이 전시장에 방문 했을때, 위의 LeVee Farms 가 걸려 있던 자리에 새로운 작품이 전시되고 있었다.  언제나처럼, '티보를 보러 가볼까...'하고 갔는데 새로운 작품이 걸려 있어서 예기치 않았던 선물을 받은듯 그렇게 반갑고 기뻤다.
이러한 풍경화는 동시대에 같은 지역에서 활동을 한 리차드 디벤콘 (Richard Diebenkon http://americanart.tistory.com/1400  )의 풍경화와 많이 닮아있다.  그래서 두사람의 풍경화를 비교해서 보는 일도 재미있다.






(아래) 2011년 4월 12일, 대학원생들과 함께  스미소니안 미국 미술관에 필드트립을 갔던 날, 3층 링컨 갤러리에서 찍은 사진.  이 작품의 제작 년대가 1962년으로 표시 되어 있다. 미국에 앤디 워홀을 위시한 팝아트 운동이 불길처럼 퍼져갈때의 팝아트 작품으로 분류 될 만하다.  팝 아트 페이지에서 간단하게 적은 바 있듯이, 이미 공장에서 대량 생산되어 나온 대상을 들여다보고 그것을 그냥 열심히 그렸다. 앤디 와홀은 스프 깡통이나 포장 상자를 그대로 베끼듯이 그려 댔고, 웨인 티보는 알록달록한 컵케이크들을 그려댔고. 그 와중에 이런 잭폿 기계도 그렸을 것이다.

2011년 4월 12일 스미소니안 미국 미술관 링컨 갤러리.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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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케이크 그림의 연상작용일까요?.. 풍경화를 보고 있어도 여전히 케이크 장식같은 이느낌은..

    2011.02.14 11:1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제가 이 작가에 대해서 알지 못할때, 제 시선을 끌었던 것은 케이크 그림보다는 그의 풍경화였지요. 지금도 저는 그가 그린 '빵떡'보다는 그의 풍경화를 좋아해요.

      그런데 사과씨님 말씀처럼, 이제는 그의 빵떡에서 그의 풍경화를 찾아내게 되지요. 사과씨님이 그의 풍경화에서 빵떡을 찾아내는 것과 마찬가지로. :-)

      누군가를 알아가면서, 그와 관련된 것들을 연결시키면서 그 사람에 대해서 더 많이 알아가게 되는 과정. 그런 과정이 ...사는 재미 같아요. 우리가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게 되면 많은 것들이 의미있게 다가오고 서로 연결되는데. 딱히 연애를 하지 않는대도, 낯선것을 만나서 알아가게 되는 과정 자체는 '연애' 하고 비슷하지요. 그래서 많은 시인들이 '사는것이 연애가 아니더냐' 하고 노래를 했겠지요.

      2011.02.17 01:15 신고 [ ADDR : EDIT/ DEL ]


Swing, 1969, Acrylic and aluminium on canvas

Photo by Lee, Eunmee, 3rd Floor, Smithsonian American Art Museum, January 14, 2011


스미소니안 아메리칸 아트 뮤지엄 (스미소니안 미국 미술관) 3층에 걸려있는 쌤 길리엄의 '그네 (Swing, 1969). 스미소니언 미국 미술관은 여러점의 길리엄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지만, 전시되고 있는 것은 이 작품 하나, 그리고 Luce Foundation Center (그림창고같은 전시장) 구석에 평면적인 액자 작품이 하나 걸려있다.

Corcoran 미술관에서도 그러하고, 요즘 진행되는 필립스 콜렉션의 전시회에서도 그렇고, 미술관들은 길리엄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커튼 널어놓은 것 같은 작품 한점과 이런 작품들의 평면 모습을 보여주는 액자 작품을 형제처럼 걸어놓는 편이다.  그리고 그 외의 평면적인 다른 작품들은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 분위기 이다.  그는 60년대외 70년대에 이렇게 '걸어 놓는 캔바스' 작업에 열중하고, 그 이후에는 꼴라쥬를 위시한 다양한 작업을 했는데, 미술관에서는 그의 '널어 놓는 설치 미술' 쪽에 애정을 보내고 있는듯 하다. 왜냐하면, 아무래도 이 '널어 놓는 캔바스'가 그의 독특하고, 새시대를 여는 발상이었고, 나머지는 남들도 다 하는 것들이니까 그럴 것이다.

아래는 스미소니안 미국 미술관의 쌤길리엄의 작품이 전시된 전시실 풍경이다.

사실 이 사진을 찍었던 날은, 나의 관심이 백남준의 작품에 집중되어 있었다. 백남준 보러 갔다가, 간김에 또 한바퀴 둘러보던 식이었다. (그래서 결국 온종일 발품을 팔고 돌아다니는 것이다.)  왼쪽 구석에 쌤길리엄의 '그네'가 매달려 있다. 전시실 중앙에 백남준의 'Zen' 이라는 텔레비전 작품이 있다. 나는 처음에 이 백남준씨 작품을 보고 지나치면서, "테레비가 고장이 났나?" 뭐 이러고 말았었다.  그런데 바로 이 '한줄 그은듯한 선' 그것이 백남준씨가 의도한 'zen'이었다.
창문이 있고, 하얀 석고상같은 여자가 창밖을 내다보는 작품이 Georg Segal의 조각 작품이고, 오른편에 Rauchenberg 의 콜라쥬 작품이 두점 보인다.






 




3층 전시실 복도. 내가 사진을 찍는 위치가 백남준의 Megatron/Matrix 전시실 입구 쯤이 될 것이다. 내가 서 있는 왼편 전시장에 백남준의 방이 있다.  그리고, 오른쪽으로는 20세기 비디오아트 기획전이 진행중이다. (현재에도 진행중).  쌤길리엄 작품 외에 전시장 전체를 담아보는 이유는, 이것이 그가 속한 미술의 어떤 시대이고, 그리고 그가 미국 현대미술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가늠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예술가들의 일생을 단 몇줄로 요약해보면, 대개는 그의 '대표작'이 한두가지 들어가게 되는데, 그 대표작이 그의 '마지막' 작품은 아니라는 것이지. 삶의 어떤 시간속에 그 어떤 순간이 존재하고, 사람들은 그것만을 기억할 뿐이지.  그 이전도, 그 이후도 잊혀지고 말아.  쌤 길리엄은 현재 노인이지만 젊은이 못지 않게 왕성하게 자기 세계를 구축해 나가고 있다고 할수 있지.  그런데, 아직 그의 삶이 끝나지도 않은 상태이지만, 획기적인 어떤 변화가 없는한, 결국 그는 벽에 걸어놓은 커튼같은 캔바스작품, 그리고 바람에 펄럭이는 깃발같은 설치미술작품 이 두가지로 기억되고 말것이지.

우리가 어떤 사람의 삶을 기억할때는, 그의 '종말'이 아니라, 그가 가장 빛나던 순간을 기억해주는 것이 좋을것 같다.  이래죽으나 저래 죽으나 죽어 시체되고 벌레들의 먹이가 되는 것은 마찬가지라고 해도,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한 사람의 인생의 가장 빛나던 장면 그런 것들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예술가를 기억할때는 그의 마스터피스를 기억해주니까.

종말이 아닌, 삶의 장면들에 포커스를 맞춰보면, 삶은 다른 각도에서 무척 신기로와 보일것이다. The best is yet to come. 내 인생에 최상은 아직 도래하지 않았다. 이런 백치같은 optimism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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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Lee, Eunmee, National Gallery of Art, September 5, 2010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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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미국미술: 토마스 콜 과 허드슨강 미술가들

 

http://americanart.textcube.com/263  이전 페이지에서 토마스 콜의 '인생' 시리즈를 살펴 봤습니다.

 

 

19세기 미국 미술가인 Thomas Cole (1801-1848. 토마스 콜)은 미국의 풍경화가로 널리 알려져있으며, 그의 이름 옆에 반드시 따라다니는 수식어가 허드슨강 미술가들 (Hudson River School)이라는 것입니다.  본래 영국에서 태어난 그는 1918년에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합니다. 오하이오에 정착했던 그는 후에 펜실베니아 미술 학교를 거쳐서 1825년에는 뉴욕으로 진입하게 됩니다.  당시에 미국의 지식인들이나 꿈을 가진 화가들이 거쳤던 노선이기도 하지요. 펜실베니아를 거쳐 뉴욕으로 가는 노선.

 

당시 뉴욕주의 허드슨 밸리 (Hudson Valley)라는 지역이 빼어난 자연경관으로 이름이 있었고 그래서 토마스 콜을 위시한 '미술학도'들이 이곳에서 풍경화를 그리거나 익혔습니다.  미국 건국 초기의 미술이라야 '초상화' 아니면 '풍경화'였다고 할만하지요.  후에 그는 이탈리아에 가서 풍경화를 그리기도 했는데, 허드슨 밸리의 Catskill 에서 결혼하여 죽을때까지 그곳에서 작업을 합니다.  그리고 토마스 콜을 위시하여 허드슨강 기슭에서 풍경화 작업을 하거나, 토마스 콜의 영향을 받은 일군의 미국 풍경화가들을 일컬어 허드슨강 미술가들 (Hudson River School)이라 칭하게 됩니다.

 

허드슨강 미술가들은, 대개 서정적이고 목가적인 미국의 풍경들을 그렸고 (말하자면 진경산수라고 할만하죠),  때로는 이상화된 풍경들도 그렸습니다. 이 허드슨 미술가들에 의해 '거대한 미국의 풍경'들이 유럽사회에 알려지게 되기도 했고요.

 

허드슨강 미술가들중에 널리 알려진, 제가 장차 페이지를 열어 소개를 하고자 하는 화가들은

 1. Albert Bierstadt (알버트 비어슈타트) : http://americanart.textcube.com/361

 2. Frederic Edwin Church (프레데릭 에드윈 처치) http://americanart.textcube.com/363

 3. Thomas Moran (토마스 모란) http://americanart.textcube.com/364

등인데요.

 

이 주요 화가들의 그림을 감상하면서 장차 허드슨강 미술가들 특징을 좀더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토마스 콜의 풍경화, 그 속에 담긴 우화들

 

 

토마스 콜은 풍경화 작가로 알려져 있지만, 그는 풍경화속에 성서적 우화들을 담기를 즐겼던 것으로 보입니다. 다음 작품의 제목은 The Subsiding of the Waters of the Deluge 인데요.  '노아의 홍수 뒤에 차분해진 물결'로 해석이 됩니다.  Deluge 는 홍수, 범람을 의미하는 어휘인데, 성서에서 the Deluge 라고 하면 노아의 홍수를 가리킵니다.  "After me, the deluge!"  나 이후에 홍수가 오건 말건 상관없다는 뜻이지요. 나 살아생전에만 무사하면 된다 이거죠. 좀 무책임한 발상이죠. (내가 알게 뭐람).

 

그림의 제목만 보면 토마스 콜은 성서에 담긴 노아의 홍수, 그 이후의 평화를 그린것으로 풀이됩니다만, 또다른 해석도 가능해집니다. 미술관의 그림 안내지에 담긴 내용을 옮기자면, 토마스 콜은 이 그림을 통해 신생국가 미국을 찬양했다는 것이지요. (어쩌면 이민자였던 토마스 콜 자신의 삶의 관점을 보여준것은 아니었을까요?)

 

노아의 홍수가 뜻하는 것은 묵은것의 청산, 죄악과 오류의 청산. 그리고 새로운 시작이지요. 신생국 아메리카가 유럽의 영향권에서 독립을 하는것 역시 새로운 시작일수 있고, 유럽에서 이민 온 토마스 콜에게도 미국에서의 삶은 새로운 시작일수 있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이 깊고 어두운 동굴을 통과하여 저 멀리 노오랗게 햇살이 비치는 평화의 바다로, 신세계로 나아간다는 뜻이겠지요.

 

그런데 제가 사진 사이즈를 줄여놔서 잘 안보이시겠지만, (사진 두번 클릭하시면 커집니다), 사진 하단의 중앙의 바위 옆에 보시면 희끄무레한 조그만 것이 보이실겁니다. 해골바가지 입니다.  해골바가지.  이 해골바가지는 왜 그려넣은 것일까요?

 

 

노아의 홍수 이후, 새로운 에덴을 향하여

The Subsiding of the Waters of the Deluge 1829

Oil on Canvas

2009년 12월 19일 워싱턴 스미소니안 미국미술관에서 촬영

 

 

서양 그림을 감상하실때, 서양 그림에 '해골바가지'가 자주 등장한다는 것을 감지하신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나라를 막론하고 유럽 화가들은 '해골'을 그려넣기를 즐겼습니다. 이를 Memento Mori (메멘토 모리: 우리가 모두 죽어야 할 생명들이라는 것을 기억함) 이라는 용어로 정리를 하기도 합니다. Memento (Remember, 기억하라), Mori (mortal, 죽어야 한다는 것을).  아리따운 여인이 한손을 해골에 얹고 있는 그림은 어떤 식의 해석이 가능할까요?  인간은 유한하고, 처녀의 아름다움도 유한하다는 메시지이지요.  책상위에 모래시계와 해골이 그려져 있는 그림이 있다면,  메시지는 더욱 분명해지지요. 시간은 흘러가고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우리는 죽을거라는 사실을 기억하라는 것이지요.

 

그러면, 이 그림에 담긴 해골은 어떤 상징을 담고 있을까요?  우리 모두 죽을거다?  뭐 그보다는.... 어떤 것의 종말을 상징할수도 있지요.  구시대는 끝났다. 이 해골을 넘어서서 저 평화로운 신천지로 나아간다는 뜻일수 있지요. 신세계 미국은 New Eden 새로운 에덴동산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토마스 콜에게.

 

2003년 겨울에 (아 벌써 아주 오래전의 일이구나, 어제 같은데...) 뉴올리안즈에 간적이 있습니다. 태풍 카트리나가 강타하기 전, 옛모습을 그대로 간직하던 곳이었지요. 뉴올리언즈 시가지에 타로 점쟁이 할머니가 앉아있길래, 난생처음으로 길거리에서 타로점을 쳐봤습니다.  아, 제 일기에 그당시 사진이 있어서 올려봅니다. 그때 제가 고른 패중에 '해골'이 그려진 패가 있었거든요. 크리스마스 휴가로 간 여행이라 '신년운세'를 본것인데, 뭐 해골 패가 나왔던겁니다.  그런데 점쟁이 할머니가 제 패를 들여다보더니 설명을 해주더라구요. 이것은 '죽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죽음'은 새로운 탄생을 의미하기도 한다.  넌 새해에 큰 행운을 맞이할것인데, 그것을 얻기 위해 고통이나 노력이 필요하다. 잘 해내길 바란다. (히히, 점쟁이가 아닌 나 라도 그런 설명은 하겠다) 아 뭐 점쾌가 하도 안좋아서 나를 위로하려고 이러시나 했지요.

 

 

 

2003년 12월 뉴올리언즈의 타로 점쟁이 할머니와 나.

 

그런데, 그 이듬해에 저로서는 인생의 큰 전환점이 왔지요. 아주 힘든 시험도 쳤고, 새로운 관문으로 들어섰지요.  죽음은 곧 탄생이다. 새로운 탄생이다.  점쟁이 할머니의 아름다운 설명이 고마웠죠. 결국 인생 이리저리 해석하기 나름인데...

 

아, 예, 그래서 토마스 콜의 그림에 담긴 저 해골은, 죽음, 그러나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는 것이지요. 구시대, 구습의 죽음, 신생국가의 새로운 에덴동산을 희구하는.

 

 

 

아래의 두편의 그림들은 십자가의 순례라는 타이틀의, 기독교 우화 연작의 일부로 보입니다. 그가 1848년에 사망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고, 이 작품들이 1847년 1848년에 그려진 것이고보면 이것들이 토마스 콜의 최후의 작품들이었던것 같은데요. 그 자신이 생의 마지막에 다다랗다고 느꼈던 것일까요? 

 

시작은 끝과 통하고, 끝은 새로운 시작과 닿아있고...

 

한해를 시작하는 요즈음, 묵은것들을 털어 내시고, 또 새로운 종말을 향해 여행을 떠나야할 때이지요.  올해의 끝에 무엇이 있을지 알수 없으나, 길을 떠나보는거죠.

 

 

 

The Pilgrim of the Cross at the End of His Journey

십자가의 순례, 그 여행의 끝 (십자가와 세상이라는 연작 시리즈를 위한 준비화)

(Study for the series; The Cross and the World) 1846-1848 Oil on Canvas

2009년 12월 19일 워싱턴 스미소니안 미국미술관에서 촬영

 

 

 

The Pilgrim of the Cross at the End of His Journey (about 1847)

십자가의 순례,그 여행의 끝.

Oil on Canvas

2009년 12월 19일 워싱턴 스미소니안 미국미술관에서 촬영

 

 

그리고 올해의 마지막날,  아름다운 한 해였노라...라고 술회 할수 있기를.

 

2010년 1월 3일 redfox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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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lism/Ashcan School2009. 12. 12. 02:12

프랜더개스트의 얼굴없는 미녀들

 

 

 

Maurice Prendergast (모리스 프렌더개스트, 1859-1924)는 캐나다에서 출생하여 미국에서 성장한 화가입니다. 사실주의 화가 그룹이었던 The Eight (팔인회)의 멤버로 함께 전시회를 가진적도 있긴 하지만,  모리스 프렌더개스트가 남긴 그림들은  '8인회'를 표상하는 '도시' '서민의 삶'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에게는 이미 독특한 자기만의 세계가 있었던 것이겠지요.

 

가족이민으로 세살때 보스톤에 온 프렌더개스트는 8학년 (중학교)을 마치고 14세의 나이에 '상회'에 취직을 하여 살아가면서 혼자서 그림을 그립니다.  전문적인 미술 교육을 받은 것이 아니라 혼자서 눈앞에 보이는 풍경들을 그리는 정도였겠지요. 20대때는 동생 Charles 와 함께 가축용 배에 몸을 싣고 유럽으로  가서 유럽 여행을 하기도 합니다.  유럽구경을 하고 돌아온 프렌더개스트는 그제서야 '미술공부'를 제대로 해보고싶다는 열정에 사로잡히게 되는데, 결국 '액자' 사업을 하게 된 동생의 후원으로 나이 30에 파리에 입성하게 됩니다. (고호에게 그의 아우 테오가 있었던 프렌더개스트에게는 아우 찰스가 있었다고 할 만 하지요) 그는 파리의 미술학교에서 수학하게 되는데, 학교에서는 '석고상'이나 '대리석상'과 같은것을 그려보라는 지시를 했지만, 그는 밖으로 나가 살아움직이는 사람들을 스케치하는 일에 몰두 했다고 합니다.

 

 

제가 미술관을 돌며 수집한 그의 작품들은 모두 '유채화'인데요, 그는 초기에 수채화를 주로 그렸고, 후기에 유채화로 선회했다고 합니다.  제가 본 작품들은, 다 똑같아 보일정도로 테크닉이 유사한데,  화집이나 언라인 자료를 찾아보면 점이나 짧은 선을 이용한 화법의 작품들이 많이 보입니다. (이렇게 경쾌할수가!)

 

카네기 미술관에 걸려있는 커다란 '소풍 (Picnic)'이란 작품은 얼핏 보기에는 수채화처럼 보입니다.  저는 사실 이작품을 '수채화'로 알고 보고 지나쳤었는데,  글을 쓰기 위해 자세히 들여다보니 유채화라고 나오는군요. Oil on Unsized Canvas 라는 설명문이 있길래, 이것은 무엇인가? 자료를 찾아 봤지요. 

 

우리가 남대문 미술상에 가면 다양한 사이즈의 나무틀에 짜여진 캔버스를 살수가 있고, 혹은 아예 두루마리 캔바스를 통째로 살수도 있는데요. 대부분 이렇게 판매되는 캔버스는 젯소 가공이 된 상태라고 합니다. 헝겊을 그림 그리기에 적합하게 가공을 했다는 뜻이지요.  그런데 Unsized Canvas 란 말하자면 이런 밑가공을 하지 않은 상태를 말합니다.  그러면, 아무래도 캔바스에 표면처리가 되지 않았으므로 페인트가 스며들면서 색다른 효과가 나올수 있겠지요.  그래서 이 유화가 얼핏 보기에 '수채화'같은 느낌이 들었던것 같습니다.

 

 

 

카네기 미술관 전시실 풍경

2009년 11월 촬영

 

 

Picnic (c.1914-1915)

소풍

Oil on Unsized Canvas

가공처리 되지 않은 캔바스에 유화

196x271cm

2009년 11월 카네기 미술관에서 촬영

 

 

 

 

 

 

Women at Seashore (1915)

Oil on Panel

43x81cm

2009년 11월 카네기 미술관에서 촬영

 

 

 

 

 

 

위의 피크닉이나 Women at Seashore 모두 비슷한 시기에 그려진 것인데요. 풍경이나 등장인물들의 분위기가 유사합니다. 

 

 

 

 

 

Salem Cove (1916)

Oil on Canvas

2009년 12월 13일 National Gallery of Art 에서 촬영

 

 

 

 

 

워싱턴 디씨의 국립 미술관 (National Gallery of Art)에 걸려있는 프렌더개스트의 작품입니다.  한 소년이 아빠와 함께 손을 잡고 미국 사실주의 화가들의 작품 구경을 하면서 슬슬 지나가다가  이 그림 앞에 서더니 아빠에게 뭐라고 종알종알 이야기를 합니다.  어린이의 눈길을 잡아끄는 그림이었던것 같습니다.  아이들의 사랑을 받는 그림.  그래서 저도 그림 앞에서 기념사진 한장 찍어봤습니다. 저도 이런 그림 한장 갖고 싶어요.

 

 

 

 

 

Landscape with Figures (1921)

여러가지 모양이 있는 풍경

Oil on Canvas

2009년 10월 3일 워싱턴 코코란 미술관에서 촬영

 

 

 

 

 

 

 

 

Landscape with Figures (1918-1923)

여러가지 모양이 있는 풍경

Oil on Canvas

2009년 10월30일 디트로이트 미술관에서 촬영

 

 

제가 가지고 있는 몇장 안되는 그림들을  제작 연도 순서대로 배열을 했는데요, 시간이 갈수록 그의 붓 터치가 세밀하고 조밀해지지요?  아무래도 수채화에서 유화로 넘어가면서, 그 이후로 그의 붓 터치가 깊이를 얻어간것도 같고요.  그럼에도, 그의 그림들에 등장하는 풍경이나 사람들이 마치 '동일한 그림'의 반복처럼 느껴질 정도로 유사해 보입니다.

 

이들 그림에 나타난 몇가지 공통적인 현상을 나열해볼까요?

 1. 가장 확연히 드러나는 것으로, 인물들의 얼굴에 이목구비가 생략되었습니다.

 2. 사람이나 나무나, 풍경 전체가 율동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정지된 풍경이 아니라 살아숨쉬는 여인의 가슴처럼 굴곡과 움직임이 있지요

 3.  드레스를 차려입고 소풍을 즐기는 남녀들이 나옵니다. (후기에는 동물들도 포함됩니다).

 4. 보시다시피, 모두 야외의 풍경이지요.

 

프렌더개스트의 전기 자료를 찾아보면, 프랜더개스트가 이탈리아 화풍의 영향을 입었다던가,  혹은 후기 인상파  점묘파 화가 쉬러(Seurat)의 영향을 받았다던가, 혹은 세잔느에 견주어지기도 하거니와, 나비파 보나르, 뷔야르의 영향도 제기가 되기도 합니다.  어찌보면 당시의 유럽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거나 혹은 널리 알려진 화가들의 작품이, 혹은 그들과의 교류가  프렌더개스트의 예술세계에 직간접으로 영향을 끼쳤을것은 자연스런 현상일수 있습니다.   그런데, 프랜더개스트는 단지 이쯤에서 주저않은 화가는 아닌듯 합니다.  그는 '자기 그림'을 만들어 낸 것으로 보입니다.  무슨 말씀인가하면,  누구의 어떤 화풍의 영향을 받았건 안받았건,  프랜더개스트는 이런 모든 '영향'을 초월하여 '이것은 프랜더개스트다'라고 할만한 화풍을 스스로 만들어 냈다고 하는 것이지요.

 

 

모리스 프랜더개스트는 1859년에 태어나 1924년에 사망했으므로 만 64년을 지구상에 머물렀다 할 수 있는데, 그는 평생 독신이었다고 합니다. 성격이 수줍고 조용하여 사교적이지도 않았고요. 본격적인 미술 수업을 나이 서른에 받기 시작한 이래로 죽을때까지 그림만 그렸으니 30여년간 미술가로 살다 간 셈인데, 그는 평생 '그림 생각'만 했다고도 알려져 있습니다. 액자를 만들어 파는 일을 했던 그의 동생 찰스가 평생 그의 후원자가 되어주었지요.  결혼도 안하고, 사교적이지도 않고, 그림만 즐겨 그린 이 조용한 사람은 어쩌면 평생 '관찰자'로 살아간것일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에게 다가가지 않는 그의 성격은, 늘,  사람들을 어떤 풍경속의 일부로 파악을 했을것도 같고요.  그런 그에게 사람들의 이목구비, 사람들의 표정, 그런것들은 큰 의미가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그에게 '사람들'은 '풍경'으로 머물렀을겁니다.  그러니 그의 풍경화의 제목마저 Landscape with Figures (모양으로 이루어진 풍경화)라는 식으로 붙여졌겠지요.

 

미술평론가들은 이러한 그의 그림을 '사실주의'가 아닌 '추상적' 화법의 도입이라고 정리를 하기도 하는데요, 어쩌면 세잔느가 그러했듯 구체적인 관찰과 묘사, 혹은 인상(impression)을 넘어선 해체와 추상의 장으로 진입을 의미하는지도 모르겠지만,  제가 보기엔 그냥 그의 삶이 그러하였던 것 같기도 하다는 것이지요. 다른 별에서 온 생명체가 멀찌감치서 풍경을 관찰하듯, 풍경속의 인물들도 풍경의 일부로 피상적으로 관찰을 했겠지요.

 

모리스 프랜더개스트는 1914년에 뉴욕으로 활동지를 정하고  The Eight 의 멤버였던 윌리엄 글랙슨즈의 윗층 (50 South Washington Square, New York)으로 이사를 합니다.  서로 이웃사촌으로 지냈다는 얘기지요. 

 

제 소견으로는 The Eight 의 멤버였던 William Glackens 는 '르누아르의 아류'에서 끝난 화가로 보이고, Maurice Prendergast는 유럽화풍도 공부했고, 유럽화풍의 영향권안에 있었지만, '프랜더개스트'만의 독특한 세계를 완성하고 떠난 화가로 보입니다.  그의 그림을 보면, 딱, 답이 나오쟎아요, 아! 프랜더개스트! 

 

 

 

2009년 12월 11일 redfox

 

 

후기: 모리스 프렌더개스트는, 사실, 저에게는 '듣보잡'과에 속하는 그림들이었음을 고백합니다. 제가 무지한 관계로 미술관에서 그의 그림을 발견했을때, 그냥 별 감흥없이 쓱쓱 지나쳤다는 것이지요. 미술관 이곳저곳에서 그의 그림을 보면서도, 프랜더개스트를 기억하기보다는 '저 그림 어디서 봤더라? 전에도 비슷한 것을 본적이 있는데...' 이정도로 생각하고 그냥 지나치는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The Eight 을 정리하느라 제가 갖고 있는 그림자료들을 정리하다보니, 어라? 이 사람  내가 제법 여기저기서 눈도장 찍은 사람이네!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어 그런데 그림 모아놓고 보니 매력있네!   뭔가 개성이 보이네!  이렇게 되더라구요.  그러니까,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고,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더욱 매력이 느껴지더란 것이지요.  (모르고 죽었으면 억울할뻔 했네~ )

 

누군가를 새로 알아간다는 것은 참 흥미진진한 일입니다. 그것이 꼭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라해도... 아니 어쩌면 그 대상이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라서,  무엇을/누군가를 새로 알아가는 작업이 안전하고도 유쾌한 작업이 될지도 모릅니다.  산사람은, 알게되면 정들고, 혹은 싫증나고, 그러면 괴롭죠.  그냥 어떤 대상은 알면 알수록 유쾌해지지요. 싫증나면 떠나면 되고. 상처가 안남죠.   프랜더개스트도 혹시 그랬던걸까?  그는 상처받지 않기 위해 관조자, 관찰자로만 머물렀던걸까?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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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자료 업데이트 되었습니다. =)

    2009.12.14 09:20 [ ADDR : EDIT/ DEL : REPLY ]

Realism/Ashcan School2009. 12. 7. 23:22

소년가장 슬로언

 

John French Sloan (1871-1951)은 펜실베니아 태생의 미국 사실주의 화가로 Henri 를 중심으로 모인 Ashcan (애시캔) 그룹과 The Eight (8인회)의 멤버로 활동하였습니다.  존 슬로언은 필라델피아에서 성장하였는데 그의 고등학교 동창중에 후에 The Eight 의 멤버가 되는 William Glackens를 만나게 됩니다.

 

1888년 그가 16세 되던해에 아버지가 정신질환으로 쓰러지면서 슬로언이 집안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소년가장이 되고 맙니다. 그는 책방에서 일하면서 틈틈이 책을 읽고 화집을 들여다보며 혼자 그림을 그리던중 정식으로 야간 미술 과정에 입문하게 되고 후에는 펜실베니아 미술학교에 진학하게 됩니다. 여기서 그는 Thomas Pollock Anschutz 의 지도를 받게되며 고등학교 동창이었던 Willaim Glackens 를 다시 만나게 되지요.

 

1892년 Robert Henri 를 만나게 되는데 이때부터 이들의 연대가 시작됩니다. 슬로언는 The Philadelphia Press 의 미술부에서 삽화가로 일을 하며 미술 작업을 계속해 나갑니다.

 

슬로언의 아내

 

슬로언은 아내와의 관계도 '소설'적인데,  그의 아내 Anna Maria 를 술집에서 만나서 사랑에 빠져 1901년에 결혼하게 됩니다.  안나 마리아는 백화점 점원으로 일했지만 매춘 경력이 있으며 음주벽이 있고, 아마도 이러한 전력을 거친 여성들이 보일법한 히스테리컬한 우울증도 보였던 것 같습니다. 슬로언의 아내에 사랑은 지극정성이었고 한 의사의 제안으로 1906년부터 1913년까지 매일 매일 자기가 얼마나 아내를 사랑하는지 일기를 쓰게 됩니다.  (이런 남자 또 한명 있죠, 삐에르 보나르... 삐에르 보나르는 수십년간 목욕탕에서만 지내는 특수한 병을 가진 여인을 돌보며 한세상을 보냈지요. 삐에르 보나르의 그림에 빈번하게 등장하는 목욕하는 여자, 삐에르의 평생의 연인.)  그의 부인은 1943년에 죽고, 슬로언은 이듬해에 새장가를 갔으며 슬로언 자신은 1951년에 운명합니다.

 

슬로언의 사회주의 운동

 

 

1912년 그는 사회주의 성향이 강한 잡지 The Masses 에 미술 편집인으로 참가하며 다른 사회주의 사상이 강한 매체인 Call, Coming Nation 지를 위해서도 삽화를 그려줍니다.  특히나 그가 그린 1914년 6월호 The Masses  표지화가 지금도 자주 인용되거나 소개되곤 하는데요. (http://americanart.textcube.com/133  페이지에 Ludlow 학살사건의 이야기가 잠깐 소개된바 있습니다.)  그가 사회주의 사상에 심취했고 민중의 생존권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긴 했지만, 예술가로서 슬로언은 '선전 (propaganda)'의 '도구'로 미술 작업을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사회정의를 위해 노력하는 것에는 긍정하면서도 예술이 '극단적인 정치선전의 도구'로 전락하는 것은 원치 않았다고 할만하지요.  그러면, 우리는 '예술만을 위한 예술'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반문할수 있을텐데...제가 추측하기에, 슬로언은 아마도 그 주위의 '사회주의자'들의 어떤 행동들에 거부감을 가졌을법 합니다.  그 '어떤 사회주의자들'이 요구하는 '선전물'을 만들기 싫었겠지요.  그가 꿈꿨던 사회주의와 그가 속한 사회주의자의 무리들의 행동 양식이 일치하지 않았을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그들과 거리를 두고 싶었을겁니다.  

 

서민속에 서있던 남자

 

존 프렌치 슬로언의 작품세계는 크게

 

(1) 뉴욕의 풍경

(2) 대중의 삶의 풍경

(3) 잡지,책의 삽화가로서 작업한 세밀한 판화 작품들

 

으로 정리 될수 있습니다. 일단 그가 삽화가로 일했으므로 대중 생활 관련 묘사 작품들이 많은데, 이런 성향은 이미 십대에서부터 생계형 청년 가장으로 세상에 나아갔던 그의 삶의 이력을 통해서도 충분히 짐작이 갑니다. 그가 즐겨그린 도시 주변의 사람들의 모습, 가령 도심의 창가에서 빨래를 너는 여인이나, 건물 청소를 하는 아주머니들, 술집 풍경 역시 그의 삶과 밀착된 풍경이었을 겁니다.  특히나 20세기초의 뉴욕의 전철과 천철 주변 풍경은 그의 '전매특허'와 같은 주제라 할 수 있지요. 조지 벨로우즈 페이지에서 (http://americanart.textcube.com/198)  권투선수 그림을 즐겨그린 미국 화가가 누군가? 이런 퀴즈가 나오면 자동으로 '조지 벨로우즈'를 외치면 된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지요. 마찬가지로, 미술관에서 '뉴욕 고가 기차' 풍경화가 멀리서 보일경우,  당신이 애인과 함께 미술관 구경중이라면 "저기 저 뉴욕 풍경속에 고가 기차 그림이 있는 저 그림 말야...저거 아마 존 슬로언이라는 화가의 그림일거야..." 하고 '아는체'를 해도 크게 실례가 안 될 것입니다.

 

 

 

뉴욕 고가 기차 (Elevated Train: EL)

 

The City from Greenwich Village (1922)

그리니치 빌리지에서 바라본 뉴욕
oil on canvas
overall: 66 x 85.7 cm (26 x 33 3/4 in.)

National Gallery of Art 에서 2009년 9월 촬영

이 그림은 비가 그친 겨울 저녁, 맨하탄 남단에서 바라본 맨하탄의 거리 풍경입니다. 고가기찻길 위로 기차가 불을 밝히고 지나가고 비에젖은 도로에 자동차의 불빛이 반사됩니다. 비가 갠것을 눈치채는 이유는 하늘이 부염하게 밝아 있다는 것이지요. 도시는 촉촉히 비에 젖어 있고 골목의 불빛은, 그것이 골목이라서 더욱 밝아 보입니다. 건물 옥상의 물탱크도 보이고, 다리미의 모서리같이 각진 고층 건물이 오른쪽에 보이는데, 건물에서는 불빛들이 새어나옵니다. 일층의 모든 창문은 손님들을 기다리는듯 환하게 불이 켜져있습니다.  옹기종기 걸어가는 행인도 몇명 보이지요. 그림의 전체적인 윤곽은 우리가 마치 몇층 건물에서 창밖을 내다보는 듯 합니다. 액자를 창틀이라고 생각하면, 우리는 창밖을 지긋이 내려다보는 기분이 듭니다.

 

 

다음 그림은 워싱턴 필립스 콜렉션이 소장하는 Six O'clock, Winter (1912) 라는 또다른 고가 기차 (EL) 풍경입니다. (제가 갖고 있는 사진 파일이 상태가 안좋아서 웹에서 얻어왔습니다.)   그런데, 이 그림속의 여섯시의 풍경은 오전일까요 오후 일까요? (제가 볼때는 오후 여섯이인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 단서는 나중에 말씀드리기로 하고요...  )  이 작품이 1912년작이고, '그리니치 빌지지에서 바라본 뉴욕'이 1922년 작품이므로, 두 그림 사이에는 10년의 세월이 존재합니다.  그런데 두 그림을 함께 놓고 보면, 1912년 작품은 고가기차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시선이고, 1922년 작품은 위에서 내려다보는 각도이지요.

 

 

 

 

http://www.phillipscollection.org/research/american_art/learning/sloan-learning.htm

 

 

 

무료 커피

 

The Coffee Line (1905)

무료 커피를 받기 위해 줄서있는 사람들

2009년 11월 7일 피츠버그 카네기 미술관에서

 

 

 

 

뉴욕에서 무료 커피를 받기 위해 긴 행렬을 이룬 실업자들을 발견한 슬로언이 그려낸 겨울 저녁의 풍경입니다. 길에는 눈이 쌓여 있지요. 슬로언은 멀찌감치 떨어져서 이 어둡고 긴 행렬을 묘사 했습니다.  아마도 이러한 빈곤의 문제가 그를 사회주의 사상으로, The Masses 로 이끌었을 것입니다.

 

비가 들이치는 페리선

 

Wake of the Ferry, No. 1 (1907)

페리선의 물길

2009년 10월30일 디트로이트 미술관에서 촬영

 

 

 

지금도 뉴저지에서 맨하탄으로 출근하는 사람들중에 배(Water Taxi)로 강을 건너는 직장인들이 있습니다. 100여년전 뉴욕과 뉴저지를 왕래하는 페리선을  그린것은 당시로서는 '엉뚱한' 시선이었을겁니다.  비가 들이키고 물결이 거칠게 일고, 전체적으로 '내가 그 페리선을 탄듯' 심란한 기분이 드는 그림입니다.  오른쪽 구석에 서있는 여인도 그래서 심상치 않아 보이는데요.

 

이 그림은 그림의 심상치 않은 분위기 만큼이나 심상치 않은 운명을 타고 났습니다. 슬로언은 1904년에 뉴욕으로 활동지를 옮겼는데, 그의 알콜중독자 부인은 이후로도 걸핏하면 필라델피아의 집으로 가버리곤 했던 모양입니다. 그의 아내가 필라델피아로 가기위해 이 페리호를 종종 이용했지요. 결국 이 그림속의 여인은 슬로언의 알콜중독자 아내의 뒷모습이었던 것인데요.  1907년에 슬로언이 그의 작업실에서 The Eight 전시회를 준비하기 위해 모임을 갖고 있었을때 부인이 들이닥쳤다고 합니다.  (남자 작업장에 여자가 허락도 안받고 나타난거죠, 아마 그렇겠죠.) 술도 몇잔 마셨겠다, 화딱지가 난 슬로언이 그 자리에서 의자를 집어던져가지고 이 그림이 상처를 입었다고 합니다. 그래가지고,  나중에 이 그림을 또다시 그리게 되는데 그 (2)번 그림은 필립스 콜렉션에 소장되어 있고, 이 (1)번 그림은 슬로언이 (2)번 그림 그린후에 손을 봐서 오늘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Beal 2002).  아무래도 이런 뒷 이야기를 듣다보면, 이 페리선의 풍경이 슬로언과 그의 아내의 풍경이었다 싶기도 하지요.

 

 

 

 

 

 

이상에서 보신바와 같이 대도시의 뒷골목의 삶의 풍경, 이런 풍경은 Henri 가 주도했던 Ashcan 일당들의 주요 소재라 할 수 있습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시각에서 '이런 그림이 뭐가 대단한가?' 의구심이 들 수도 있을것입니다.  그런데 이 그림이 그려진 1922년 미국 화단의 상황속에서 이 그림의 의미를 생각해보면 우리의 생각은 달라질수도 있습니다.

 

미국의 미술의 역사는 유럽에 비해서 '일천'할수밖에 없지요. 제가 에드워드 힉스나 조쥬아 존슨과 같은 초기의 '포크 아트' 작가들에 대하여 애정을 갖고 소개를 한 이유가 있는데요, 미국은 초기에 유럽 강대국들의 '식민지'였고 유럽 문화권의 식민지이기도 했습니다. 미국 자생의 문화가 없었다고 봐야지요 (아메리카 인디언 문화를 제외하면).  그래서...Henri 를 위시한 '사실주의' 화가들의 탄생 이전의 미국 회화사는 '유럽 베끼기'의 연장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장차는 미국의 인상주의나 그 이전의 풍광, 초상와 위주의 미술과 미술가들을 차례로 소개하겠지만, 제가 왜 이들부터 시작을 안하고 풍속화가 잠깐 건드리다가 '사실주의'로 점프를 해버렸는가하면, 미국의 사실주의 화가들 이전의 작가들에게서 제가 별 매력을 못 느끼기 때문입니다. 뭐 대략 사이비 유럽미술 냄새가 고약하게 난다는 느낌이 드니까요. 제가 감지하기에 미국의 사실주의 화파들부터, 미국의 미술은 자신의 정체성을 슬슬 세워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들에서부터 미국의 풍경이, 미국의 서민이 화면의 중심에 슬슬 등장을 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슬로언의 전철 그림과 도심 그림이 매력적으로 비쳐지는 것이지요. (이것은 미국인이 아닌, 아시아 출신의 어느 외국인이 이방인의 시각으로 미국 미술을 보는 관점이긴 합니다.)

 

 

 

Yeats at Petitpas'

 

이 그림은 뉴욕 웨스트 사이드의 어느 하숙집에서 열린 파티 장면입니다.  Petitpas 는 프랑스 출신의 두 자매가 경영한 하숙집 이었습니다. 

 

이곳에 영국의 철학자이며 예술가였던 John Butler Yeats (존 버틀러 예이츠 1839-1922)가 머물렀는데, 그는 영문학도들에게 (그리고 교양 차원에서 영시를 읽은 사람들에게)  친근한 시인 William Butler Yeats(1865-1939) 의 아버지입니다.  존 버틀러 예이츠는 69세 되던 해에 뉴욕으로 이주하여 '애시캔' 화가들과 친교를 맺었고, 결국 뉴욕에서 사망하여 뉴욕에 뼈를 묻었지요. 그러고보면, 그의 아들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는 '유럽'문화를 이상화 했는데, 아버지인 자신은 말년에 문화 불모지와 같은 뉴욕에 와서 세월을 보내다가 갔군요.

 

흰 턱수염의 노인이 존 버틀러 예이츠이고, 오른쪽 끝에 보이는 검은머리 남자가 존 슬로언이군요. 음식을 들고 서있는 이는 하숙집 주인이고요, 그이의 왼쪽에 모자를 쓴 여인이 슬로언의 부인이라고 합니다. 존 버틀러 예이츠가 이 하숙집에 머무는 동안 이곳은 당시 미술, 문학을 사랑하는 젊은이들이 즐겨 모이는 장소로 유명했다고 합니다.

 

Yeats at Petitpas' (1910)

Oil on Canvas

워싱턴 Corcoran 미술관에서 2009년 10월 3일 촬영

 

 

 

해부학교실

 

존 슬로언은 펜실베니아 미술학교에서 Anschutz 선생의 지도를 받았는데, 다음 작품은 해부학 강의를 하는 안슈츠 선생을 에칭 판화로 묘사한 작품으로 보입니다.

 

 

 

 

 

Anshutz on Anatomy (1912)

해부학 교실의 안슈츠 선생

Etching

필라델피아 미술관에서 2009년 9월 19일 촬영

 

 

 

 

제 사진 상태가 좋지 못해서, 웹에서 좀더 선명한 이미지를 빌려 왔습니다.  강단아래에 안슈츠 선생이 서서 강의를 하고 있고,  강단위에 인간 골격이 서있고, 그 옆에 성기만 가린 남자 누드 모델이 서있습니다. 그리고  학생들이 둘러 앉거나 서서 해부학 강의를 듣고 있는데요. 학생들중에 여학생도 보입니다.  아마도 여학생들이 없었다면 남자 누드 모델이 성기를 가리지 않아도 되었을 것입니다. 1900년대 초반에 미국 미술 학교에서는 남녀학생이 함께 작업하는 곳에서는 누드 모델이 성기를 드러내면 안되었다고 하지요.

 

 

슬로언에 관심이 많아 자료를 많이 보긴 했는데, 막상 제가 가진 작품 사진 파일이 미미하여 그의 미술 세계를 구체적으로 생생하게 소개할수 없어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저는 화집이 아닌 '내 눈'으로 본 것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하기로 작정을 했거든요.  나중에라도 슬로언 작품들이 보이면 보이는대로 잘 갈무리하여 좀더 그에대한 이야기를 이어나가고 싶습니다. 화집에서 본, 제가 좋아하는 그의 작품들로는 그의 '빨래'관련 그림들인데요. 슬로언이 도심에서 빨래를 널거나, 걷거나 하는 여인들을 모티브로 그린 그림이 많이 있습니다. 참 아름답지요. 그래서 '빨래' 주제의 페이지를 하나 만들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는데요, 이것 역시 훗날로 미루기로 하겠습니다.

 

 

 

참고문헌:

 1. http://www.nga.gov/fcgi-bin/tinfo_f?object=52079

 2. Sherry Babbit (2008). Philadelphia Museum of Art: Handbook of the Collections. Philadelphia, PA.

 3. Graham W. J. Beal (2002) American Beauty: Paintings from the Detroit Institute of Arts 1770-1920. Scala Publishers Ltd. London, UK.

 

 

 

 

2009년 12월 6일 red fox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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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p Art2009. 9. 14. 08:36

 

 

미국 미술가들을 차례차례 정리하다보면 훗날 Roy Lichtenstein (로이 리히텐시타인)에 대한 챕터도 정리가 되겠지만, 오늘은 National Galler of Art (워싱턴 국립 미술관)의 조각공원 (Sculptor Garden)에 설치된 그의 작품 한가지를 소개한다.

 

사실, 이 작품은 워싱턴에 2년 넘게 드나들면서 자주 보던 것인데, 며칠 전에야 이 작품의 진정한 '매력'을 발견했던 것을 고백한다.

 

(사진감상)

 

 

 

'집'이라는 이 작품은 보는 각도에 따라서 그 입체감을 달리한다. 귀여운 집이다. 어떻게 보면 공중에 떠있는것 같기도 하고.  언덕위의 집을 이각도 저 각도에서 보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사실, 이곳은 평지이다. 평지인데 어떻게 언덕위의 집처럼 보이는가?

 

그 비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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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착시현상을 이용한 작품이다.  :)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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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2009. 8. 23. 08:05

 

 

 

 

며칠 전에 아마존에 주문한 책들이 속속 도착을 하고 있다.  내가 피상적으로 이해하고 감상하던 작품들을 이제 체계적으로 살피고 정리하려고 마음먹고 구입한 책들이다.  앞으로 당분간 '오로지' 미국미술에 집중해서 들여다 볼 것이다.  개별적인 작가들의 경우, (나는 겨우 담배값이나 버는 서생이므로) 도서관이나 책방에서 관련자료를 보면 되지만, 큰 줄기가 될만한 개론서는 집이나 연구실에 놓아두고 꼼꼼히 살필 필요가 있다.

 

새학기를 코 앞에 두고 이런 짓을 저지르는 것은, 분명, '회피', '외면', '직무유기'에 해당하는 짓일지도 모르지만, 현재 이것만이 나의 유일한 생존의 방법일지도 몰라 외도아닌 외도로 접어든다.  나의 외도가 근사한 스캔들이 되길 빈다.

 

(음, 나는 이 사진 대충 막 찍는 버릇을 고쳐야 한다. 이제 DSLR 가지고 정확히 찍는 습관을 들여야겠다.)

 

 

 

 

목록

 

 1. America: A History in Art, William G. Sheller,

 2. American Visions: The Epic History of Art in America, Robert Hughes

 3. Framing America, Frances K. Pohl

 4. 요것은 미술책은 아니고, 심심풀이용으로, Made in America, Bill Bry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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