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mor2011. 10. 20. 00:37


필라델피아의 런던 그릴 (http://www.londongrill.com/ ) 1층 화장실 벽에 붙어 있는 주의사항. 이 식당의 2층에는 남녀 별도의 화장실이 있고 1층에는 남녀공용 화장실이 하나 있다. 1층 공용화장실 벽에 위와 같은 주의사항이 적혀있다:

우리의 목표는 이 화장실을 깨끗이 유지하는 것이다.

신사분. 그대는 조준을 하고,  변기 가까이에 대시오. 긍께 거시기는 그대가 상상하는 것보다 짧응께로

숙녀분, 작전 수행중에 자리에서 일어나지 마시오.

Posted by Lee Eunmee
Diary/Life2011. 10. 20. 00:07


필라델피아 미술관 인근의 오래된 밥집 거리.  이곳에는 이탤리안 식당이나 카페가 많이 있었다.


내 친구는 조지타운의 천주교회에 다닌다. 나는 가끔 내 친구네 천주교회에서 음악회를 하거나 바자회를 할때 내 친구를 보러 거기 간다.  이 천주교회의 주임신부님은 미국 최초의 한인 천주교 신부님으로 알려져있다. 이분 가족들은 미국에서 성공한 기업인들로 알려져있는데, 미국과 한국의 대학에 거액을 기부하는 사람들로 알려져있다. 최근에는 한국의 카톨릭대학에 장학기금을 전달한 것으로 신문에 소개가 되기도 했다.  (나는 나 먹고 살기도 바쁜데, 내 참 할말이 없다...  )

내 친구가 공부하는 모임에서 신부님과 함께 필라델피아 미술관에서 열리는 '렘브란트전'을 보러 가는 행사에 나를 끼워줬다. 이번 렘브란트 초대전의 주제는 '렘브란트와 예수의 얼굴' Rembrandt and the Face of Jesus (August 3, 2011 - October 30, 2011) 이다. 렘브란트와 그의 제자들이 작업한 예수님을 주제로 한 유화, 판화, 펜화등이 전시되고 있었다.  나는 그냥 소풍 가는 기분으로 따라 나선 처지라서, 이 전시회 자체에는 큰 관심도 없었고, 바람이나 쐬자는 취지였다. 






그런데 직접 운전대를 잡고 '미제차'에 '어린 양'들을 실어 나른 신부님이 참 소탈하신 분이었다.  필라델피아에 왔으니 일단 '필리 치즈 샌드위치'를 먹어야 한다며 식당을 찾아 가셨다. 미술관을 코 앞에 두고 식당으로 향하는 분이라니~  하하하. 평소의 나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래서 낯선 사람들과의 여행은 재미가 있다.)  덕분에 기름기 없는 필리 치즈 샌드위치를 잘 먹었다.





전시회는, 일없이 소풍삼아 따라나선 나에게, 예기치 않은 감동을 주었다.  렘브란트전시장 안에서만 두시간 가까이 보내면서 작품들을 천천히 보았다.  렘브란트 전시장을 빠져나온 일행은, 이 거대한 미술관의 다른 전시장들을 둘러보기를 단념하고, 그대로 밖으로 나왔다. (내 생애에 시간들여, 돈들여  초대형 미술관에 갔다가 조그만 전시장 하나만 보고 나오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런데 별로 아쉽지 않았다.  이 전시회를 관람한 나의 일행 모두가 똑같은 심정이었던 듯 하다.  '오늘은 이것만 보자. 더 보면 체한다.'

일행중의 한분은 동일한 전시회를 이미 파리에서 봤다고 한다. 그런데 파리의 전시회에서는 오늘같은 무거운 감동은 맛보지 못했다고 한다. 각자 다른 이유로 이 전시회에 감동받았을 것이다.  나 역시도.

전시회장을 떠났지만, 그러나 전시회장을 쉽게 떠날수 없었던 우리는, 미술관 계단에 앉아  기억을 정리하듯, 우리들이 보고 느낀것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누가 미리 계획을 한 것도 아니었고, 그냥 그리 된 것이다. 마침 나는 25장짜리 기념 엽서 세트를 샀는데, 그것을 돌계단에 펼쳐놓고, 각자 맘에 드는 것을 고르기로 했다.  기념 엽서중에서 내가 정말 갖고 싶은것.  사람들은 각자 자신에게 의미있는 그림들을 한두장씩 골랐다.

내가 고른  그림은, 렘브란트의 아주 작은 잉크화였는데, 예수께서 잡혀가기 전날 밤, 제자들과 함께 산에 들어가서 아주 힘든 기도를 하고 내려와 잠에 빠진 제자들을 보며 "느이들 시방 잠이 오니? 잠이? 그렇게 깨어있기가 힘드냐?" 이러고 한탄/꾸중을 하는 장면이다.  나는 이 장면이 슬프다. 절대고독 속의 한 인간을 보는 듯 하다.  눈물이 나게 슬픈 장면이다.




전시회의 감흥에 젖어 신부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일행들. 계단에 펼쳐진 엽서들. 내가 이날 찍은 사진중에 제일 맘에 드는 작품이라서, 출연자들의 허락도 받지 않고, 공개한다.


이날 나는 운이 좋았다.  내가 로댕의 지옥의 문을 보고 싶어하는걸 알고 일행이 모두 거기에 가보자고 했다. 가을 햇살이 아름다운 오후에 우리들은 경쾌하게 웃으며 느릿느릿 필라델피아 중앙 도로인 프랭클린가를 걸어 로댕 갤러리에 갔다.

전에 이곳에 왔을때 로댕 갤러리는 공사중이었는데, 외부 공사를 마친 이곳은 내부 수리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실내에 전시되던 칼레의 시민이 정원에 나와서 파랗게 부식되고 있었다. 청동이니까 파랗게 부식되겠지.  그런데 그렇게 부식된  모습이 더 근사해 보였다.




지옥의 문 앞에 다시 섰다. 2년전 10월에도 나는 이 앞에 서서 지옥의 문을 만져보며 삶의 위안을 얻고 있었다.


여행은 편안하였고, 유쾌했다.  복된 하루였다.  고마운 일이다.




지옥의 문 앞 연못  하하하 지옥문 앞에서 이렇게 웃을수 있는 여유~ 



Posted by Lee Eunmee
WednesdayColumn2011. 10. 19. 22:32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282047
“정당의 목적은 무엇인가?” 고등학생 시절, 사회과목 헌법 관련 시험에 이 문제가 나왔다. 사지선다형 문제였으므로 나는 ‘국민의 행복’과 같은 문항을 답으로 골랐다. 그런데 정답은 그것이 아니었다. ‘정당의 목적은 정권을 취하는 데 있다’는 것이 선생님의 설명이었다. 어린 마음에 나는 머리를 몽둥이로 한 대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선생님께서 정당이 정권을 취하기 위해서는 결국 국민이 행복해지도록 노력을 기울이게 되어 있다고 말씀해 주셨다. 어린 나는 어떤 숭고한 이상을 상정하고 있었고, 선생님은 정치학적 이론을 설명하셨을 것이다. 아무튼 그것이 내 인생 최초로 맛본 정치에 대한 환멸이었다고 기억한다. 삶의 환상 어딘가가 우르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내 인생 두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정치에 대해 환멸을 느낀 것은, 1990년 1월 김영삼씨가 3당 합당을 하고 노태우, 김종필씨와 나란히 서서 찍은 기념사진 앞에서였다. 사실 나는 우리 할아버지의 무릎에서 놀면서 신문 읽기를 배웠는데, 당시 아주 어린 내게도 여공들을 비호하다가 국회의원직에서 제명된 김영삼 의원은 민주주의의 위대한 전사였다. 내심 그를 존경했던 나는 1990년 그의 정치적 변신 앞에서 심한 어지럼증을 느꼈다.

 

1979년 와이에이치 사건, 그리고 어떤 영웅의 탄생


1990, 엉뚱한 곳에서  애매한 분들과  서 있던 어떤 사람




 그 사이에 나는 어른이 되었고, 이제 더 이상 정당의 기본 목표에 대해서 회의하지도 않으며, 야합의 다른 말은 ‘유연성’이라는 것에도 일부 수긍을 하게 되었다. 이상은 하늘에 있고, 정치는 땅에 뿌리를 내리는 것이니까.

 정치의 풍경이 내게 환멸만 가져다 준 것은 아니다. 나는 우리나라 대통령이 노벨 평화상을 받았을 때, 이것이 노 정치인에 대한 국제적인 치하라고 생각했다.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오바마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는 눈 앞에서 기적이 일어난 듯한 기분이 들었다. 흑인 오바마 대통령은 내게는 희망의 옥동자처럼 보였다. 설령 오바마가 아닌 힐러리 클린턴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고 해도 나는 역시 그에게서 희망의 싹을 발견했을 것이다. 미국 역사 최초의 유색인종 대통령이나,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나 새로운 역사가 쓰여졌다는 것은 마찬가지였을 테니까.



 최근 한국 사회의 아주 특별한 정치적 실험 두 가지가 내 눈길을 끈다. 그 한가지는 ‘투표거부’를 통한 투표권 개념의 확장이요, 다른 한 가지는 정당을 넘어서는 개인후보의 힘에 관한 것이다. 사실 서울시장이 아무도 등 떠밀고 나가라고 한 적도 없는데, 주민이 선출해 준 자리를 박차고 나간 것도 진풍경이기는 했다. 그런데 그것보다는 ‘투표거부’를 통한 정치적 목소리 내기라는 새로운 형태의 정치 행동이 나타났다는 것에 주목했다.

혹자는 이에 대하여 투표권을 내던져버린 반민주적 행동이었다고 비난을 하기도 하지만, 내 생각에는 이런 선례가 없었다고 해서 반민주적이라고 보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오히려 민주주의의 의미의 확대, 혹은 진화로 보는 편이다.



 둘째는 변호사이며 시민운동가로 활약하던 무소속 후보가 전체 야당의 지지와 후원을 받으면서도 여전히 무소속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비판적인 시각에서는 “이런 식으로 제대로 된 서울시 행정이 되겠는가?”라고 말할 수 있겠으나, 미리 안 된다고 단정을 내릴 이유가 없어 보인다. 이 역시 대의 민주주의 정신의 확장 팩이 될 수도 있다.



 세종대왕과 그 시대의 학자들은 남들이 모두 손사래를 치며 반대할 때 전례 없는 글자체계인 ‘한글’을 만들어내셨다. 선례가 없다고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김구 선생이나 안중근 선생이 타고나기를 혁명가로 난 것이 아니고, 시대가 이들을 혁명가로 키웠다. 판사하던 사람이 국회의원이 되고, 변호사가 시장이 되듯, 시민운동하던 사람이 무소속으로 시장이 된다 해도 이상할 일은 아니다.

 내가 성장하는 동안 정치의 어떤 풍경들은 나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고, 또 어떤 풍경들은 내 가슴을 쿵쿵 뛰게 만들었다. 감동을 주는 한판 승부, 서울시장 선거가 아름답게 마무리되길 기대해본다. 선거가 끝났을 때 승패가 갈리겠지만, 모두가 승자가 될 수 있는 그런 선거판을 꾸려주기를 내심 바라고 있다.

Posted by Lee Eunmee
Diary/Walking2011. 10. 18. 18:51

지난 3년간, 강변에서 길 막아놓고 공사하던 것이 끝났다.  조지타운에 오랫만에 나가보니 이렇게 말끔한 공원이 탄생.  매일 이 길 걷다가 서울로 돌아간 '조지타운 향우회' 회원 여러분을 위한 특별 뽀나쑤.























2011년 시월의 어느날



Posted by Lee Eunmee
Diary/Walking2011. 10. 18. 18:36


수로 22.5 마일 거리에 수문 (Lock 24)가 있고, 이곳 수문 관리원 주택이 문을 열고 방문객을 기다린다. 1870년에 이 집에 살았던 사람들의 일상 풍경이 그대로 남아있다.  이 지역 걸스카우트 여학생들과 부인들이 당시의 아주머니, 소녀의 복장을 하고 사람들을 맞는다. 각 방마다 걸스카우트 소녀들이 배치되어 조롱조롱 안내를 해준다.  <초원의 집>을 떠올리게 하는 소녀들의 복장과 실내 집기들.











손을 씻거나 세수를 할 수 있는 실내의 공간과 집기들. (2층 안방=부모의 방 구석에 있었다)


1층 거실에 놓여있던 의자와 인형.



 

1층 부엌 한 켠에 마련된 식탁.


부엌의 중심. 화덕.


역시 부엌의 오른쪽 구석에 마련된 빨래도구들. (집앞에 강도 흐르고 수로도 있으니 밖에 나가서 펑펑 빨래하면 되었을걸~)




초원의 집, 로라 잉걸스 같은 소녀가 생크림을 만든다고 휘젓고 있다.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