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Walking2011. 9. 6. 03:56


그저께 산 등산화를 길을 들이기 위해 (to make it broken well) 헤리티지 트레일에 나갔다.  지난 토요일에는 동일한 길을 반대 방향으로 진행했었다.  그러니까, 지난 토요일에는 평소대로 포토맥 강을 끼고 걷다가, 그냥 반환하기 심심해서 키브리지를 건너 로즈벨트 섬으로 진입하여 여기서부터 헤리티지 트레일을 따라서 체인브리지, 거기서 다시 포토맥 애비뉴까지 가는 동선이었는데. 내 예상보다 험난한 길이었다. (만만히 생각하고 들어섰다가 고생을 좀 했다.)  전에도 왔던 길인데, 왜 이렇게 험난하게 느껴질까? 곰곰 생각해보니 내가 동선을 잘 못 잡은것도 원인 이었던 것 같다.

그러니까, 이 동선은 '갈수록 태산' 이다. 가면 갈수록 힘든 코스.  이러면, 그렇지 않아도 힘이 빠지는데 갈수록 난감해지니까 말이다.

그래서, 오늘은 반대방향으로 시작을 했다.  일단 차는 평소에 두는 장소에 모셔놓고, 몸을 풀겸 편안하게 체인브리지를 건너서 헤리티지 트레일로 접어 든다.  체인브리지에서 들어가는 헤리티지 코스의 경우 로즈벨트 섬까지 4마일 거리중에서 처음의 약 1.5 마일이 난코스에 해당된다. 이 코스를 지나면 그저 강을 끼고 오르락 내리락하는 언덕길이 펼쳐질 뿐이다. 그러니까 걷기 시작할때, 아직 기운이 펄펄 날 때 힘든 코스를 통과하면, 그 후부터는 기운이 빠져도 별 어려움없이 평소 페이스대로 걷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역시 내 계획이 내 몸에 잘 맞았다.  로즈벨트에서 키브리지를 건너 조지타운에 접어 들었을때는 이미 내집 안방 같은 편안한 기분.  오늘은 무리없이 편안하게 한바퀴를 돌았다. 초년 고생은 사서도 한다.  힘든 코스는 처음에 해결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고생 다 끝나고, 키브리지를 통과할 무렵 길가에 펼쳐진 허니써클 무더기 무더기.  인적없는 길에 무리지어 핀 흰꽃무더기가 어쩐지 봄날의 찔레꽃처럼 슬프더라.  지홍이한테 편지쓸때 부쳐주기위해서 꽃을 좀 땄다. 눌러서 편지에 붙여서 보내주면, 지홍이가 이 꽃 향기를 맡을수 있을까?




강의 이편에서 강의 저편을 내다 보다.  주로 강의 저편에서 이쪽을 쳐다보곤 했는데, 이제는 내가 이편에 있다. 차안과 피안. 삶의 이편 저편을 경험하듯, 나는 강의 이편 저편을 걷는다. 이 길이 끝나면, 키브리지를 건너 다시 강의 저편으로.

집으로 돌아오는길, 내가 아침에 걸었던 길을 찾기 위해서 나는 기웃기웃 강건너편을 보며 걸었다. 나의 길. 인적이 뜸한 나의길.


새로산 등산화는 '합격'이다.  어제 산책할때 일부러 신었는데 편안했다. 그래서 오늘 용기를 내어 이걸 신고 산으로 간 것인데, 세시간 넘게 걷는 동안, 특히 바위 골짜기를 이리저리 넘나드는 동안 내 발을 잘 보호해주었다. 신발이 무겁지도 않고, 바닥에 닿는 착지감이 참 안정되고 좋았다. 새로 신었는데 발이 불편하지도 않았다. (요즘 신발 만드는 기술이 정말 좋은가보다. 새 신인데 불편하지가 않다니 말이다.)

키브리지 건너, 조지타운에 도착했을때 열두시쯤.  그래서 나의 단골 식당으로 가서 샐러드와 아이스티로 점심을 먹었다. 웨이터가 친절했고, (알아서 아이스티를 충분히 리필해주었다), 이웃 자리에 앉은 사람들도 친절했다. 내가 먹기 좋게 잼을 내 쪽으로 밀어 주었다.  땀을 흠뻑 흘리고 노곤한 상태에서 마시는 아이스티와, 적당히 배가 고플때 먹는 음식. 친절한 미소. 참 좋은 시간이었다.  혼자서 즐겁게 점심을 먹으며 내 생활의 '주제'를 정했다. '칸트 놀이'를 해야지. 칸트 놀이. 

칸트는 고약스럽고, 수다스러우며,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괴상한 성격이었다고 알려져있다. 그는 심부름하는 머슴에게 인색했다고 하며, 자기 몸을 꽤나 챙겼다고도 한다. 좀 웃기는 할아버지였던 것 같다. 나는 당분간 칸트 놀이를 하기로 했다. 생활을 규칙적으로 하면서, 산책하고, 사색하고, 공부하고 그렇게 살겠다는 뜻이다.  주말에는 '순례자' 놀이를 해야지. 주말에는 어디론가 낯선 곳으로 가서 한나절 걷겠다는 뜻이다.  나는 현재의 나의 삶을 '안식년'이라고 받아들이는 편이다. 잠시 주어지는 안식년. 나 혼자서 사색하고 생활하는 시간. 이 시간이 길어질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단 내게 주어진 이 고요한 시간을 나는 최대한 의미있게 보내고 싶다. 칸트 놀이를 하면서.

'Diary > Walking'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월, 100마일 프로젝트, Day 1 (수로 관리인 주택)  (0) 2011.10.18
시월, 100마일 프로젝트, Day 1 (21.4 마일)  (3) 2011.10.18
2011년 9월 운동 기록장  (0) 2011.09.06
등산화  (2) 2011.09.04
2011년 8월 운동 기록장  (0) 2011.09.02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