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lism2010. 1. 1. 02:14

미국의 1930년대 지역주의 (Regionalism) 3대 화가중 한명으로 알려진 토마스 하트 벤튼 (Thomas Hart Benton 1889-1971)은  Grant Wood 와 John Curry 와 마찬가지로 미국의 미드웨스트 (미조리 주) 지방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와 하원의원, 숙부가 상원의원이었다니 유복한 정치인 집안의 귀공자였던 것 같습니다.  1907년 시카고 미술학교 (Chicago Institute of Art)에서 미술 수업을 한 후에 1909년 프랑스로 건너가 줄리엥 아카데미에서 미술 수업을 계속합니다.  미술 수업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온 그는 1차 세계대전 당시 해군 소속으로 근무를 하고 1920년에 뉴욕으로 돌아가 미술 활동을 펼치면서, 당시에 유럽과 미국에서 유행하던 현대 추상미술을 등진채 사실주의 미술을 펼쳐 나갑니다.  설에 의하면 초기에 그는 추상미술 작업을 했지만, 도통 그의 성격에 맞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후에 그는 고향인 미조리주로 돌아가 신화와 사실주의가 만나는 미술 작업을 계속하게 됩니다.

 

자화상 (1927)

 

이 자화상은 벤튼이 아내와 자신을 직접 그린것입니다. 매사추세츠주의 South Beach 에 있는 작은 섬이었는데 이 한적한 곳에서 미술작업을 하면서 그가 잠시 관심을 보였던 현대 추상예술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사실주의적 작업으로 완전히 옮겨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선이 단순하면서 그만큼 '힘'이 느껴지지요. (남자가 좀,뭐랄까, 마초적인 인상을 주지만...뭐...내 남자도 아닌데, 멋대로 살게 내버려두지요..귀여운 마초랄까...) 그가 뉴욕을 기반으로 20여년간 활동하는 동안 그는 매년 여름마다 이 Matha's Vineyard 라는 휴양지에서 그림을 그렸습니다.

 

 

자화상 (아내 리타와 함께) 1922

National Portrait Gallery, Smithsonian 스미소니안 국립 초상화 박물관

(스미소니안 국립 초상화 박물관은 스미소니안 국립 미국미술 박물관과 함께 있습니다.

동일한 장소의 일부를 국립미술관으로 일부를 초상화 박물관으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Chillmark and Matha's Vineyard (마사의포도원섬과 칠마크 마을)

 

 

1920년부터 1975년 그가 사망할때까지, 벤튼과 그의 아내는 여름이면 매사추세츠 남쪽의 Matha's Vineyard (마사의 포도원)이라는 이름의 섬에 있는 Chillmark (칠마크) 마을에서 보냈다고 합니다.  아래의 그림 두장은 바로 그곳의 사람들과 풍경을 그린 것입니다.

 

People of Chilmark (Figure Composition) 칠마크 사람들 (인물구성) 1920

Oil on Canvas

2009년 12월 스미소니안 허시혼 미술관에서 촬영

 

 

 

 

Matha's Vineyard (마사의 포도원) c.1925

2009년 10월 3일 워싱턴 디씨의 코코란 갤러리에서 촬영

 

 

File:Martha's Vineyard map.png

http://en.wikipedia.org/wiki/File:Martha%27s_Vineyard_map.png

 

 

 

농장 길

 

 

그는 Art Student League of New York 와 Kansas City Art Institute 등지에서 미술 교육을 하였습니다. 그가 키운 제자중에 훗날 스승을 능가하여 자신만의 세계를 이룩한 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흩뿌리기'의 대가 잭슨 폴락 (Jackson Pollock) 입니다.  잭슨 폴락의 초기 작품중에 토마스 밴튼의 그림과 분위기가 비슷한 것이 발견됩니다.  토마스 벤튼이 유럽에서 현대 추상미술 사조의 영향을 입고 와서 추상화 작업을 하다가 집어치고 사실주의 작품들로 그의 그림을 완성시켰다면,  잭슨 폴락은 그러한 '스승'의 영향아래 사실주의적 미술로 시작을 하여 '어마어마하고 혼미하기까지 한' 자신만의 세상을 완성시킨후 지구를 떠났다고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세상을 돌고 도는 것이기도 하지만, 하늘아래 새로운것은 없지만, 또한, 하늘아래 반복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늘 기존의 무엇을 바탕으로 새로운 것이 태어나고, 죽고, 그 바탕위에 또 새로운것이 태어나는 것이지요.

 

 

 

 

 

 

Plantation Road  (농장 길) 1944-45

Oil and Tempera on Canvas mounted on Plywood

2009년 11월 6일 피츠버그 카네기 미술관에서 촬영

 

 

잭슨 폴락의 그림

 

 

밀밭: 황금의 이상사회

 

 

 

Wheat (밀) 1967

53.3 x 50.8 cm (가로세로)

Oil on Wood

 

 

이 '밀밭' 작품이 걸려있는 전시장을 보여드리고 싶군요.  (아래의 사진에서) 폴락의 대형 벽화가 걸려있는 전시장, 그 벽화 왼편 으로 구석에 아주 자그마한 그림 하나가 걸려있지요. 그러니까 벽화와 창문 사이에 걸려있는 껌딱지 같이 작은 그림이요. 그것이 바로 이 '밀밭' 그림입니다. 그가 1971년에 사망했으니까, 그가 78세에 그린, 거의 말기의 작품이라고 할만한데요.  한세상 전투적으로 사회주의 사상에 취하여 공공미술적 벽화 작업도 하고, 뚜렷한 자기 주관을 펼치면서 살았던, 지역주의 화가의 기수로 알려진 이 화가가 '노년'이 되어, 78세의 나이에 그린 그림임을 감안하고 보시면 그림에서 뭔가 새로운 의미를 찾아 낼수 있을것 같습니다.

 

그림 하단에 보시면, (시골에서 농사지은분들 이 그림 보면 바로 답이 나옵니다. 특히, 벼 베고 그러신 분들), 낫으로 베어낸 밀의 밑둥이 고르게 남아있습니다. 기계로 베었는지 높이가 일정합니다. 사람이 낫으로 베면 밑둥 높이가 들쭉날쭉 하지요. 그리고 그 밑둥 사이로 밀싹이 새로 올라오는 것이 보입니다. 한 세대가 가면 또 한세대가 솟아 나오지요.

 

밀대를 보겠습니다. 밀은 한웅큼씩 무리를 지어 고르게 자라났습니다. 간혹 부러져 기울어진 밀이 보이기도 합니다만, 조금씩 무리를 지어서 비슷한 크기로 자라고 비슷하게 열매를 맺었습니다. 밀대 너머로 끝없이 반복되는 밀의 고랑이 보입니다.  이 그림은 매우 사실적으로, 사진처럼 사실적으로 그려졌으면서도, 사실 너머의 메시지를 우리에게 생생하게 전해줍니다.

 

항웅큼씩 모여서, 서로 의자하여 서 있는 밀들은 그 자체로 인간 사회를 보여줍니다. 우리는 크거나 작거나간에 서로 무리를 지어서 살아갑니다. 우리 가족 이웃에 이웃의 가족이 있고, 우리 마을 이웃에 이웃마을이 있으며, 우리학교 이웃에 이웃학교가 있고, 우리 나라 이웃에 이웃나라가 있습니다.  무리무리는 서로 거리를 유지하면서 서로 의지하고 서 있지요. 키도 비슷하고 생육조건도 비슷하고. 이것이 벤튼이 이상화했던 사회주의의 풍경이었을것 같습니다. 서로 평등하게 서로 의지하고 서로 도우면서 사는 인간사회. 한세대가 사라지면 새로운 세대가 다시 희망처럼 자라나는 사회. 그리고 끝없이 이어질 인간의 역사. 혹은 생명의 역사. 노년의 벤튼이 꿈꾼 인간 사회가 이런 황금 밀밭의 풍경은 아니었을지...

 

이 그림을 보자니, 엘리노어 파전의 '보리와 임금님'이라는 동화가 생각납니다. 우리 나라에는 '보리와 임금님'으로 번역 소개가 되었지만, 사실 원작에서는 밀밭 이었지요... (http://www.gulnara.net/main.php?pcd=6.7.&_vpg=view&uid=95) 제가 참 좋아하던 동화였는데, 지금도 이 동화를 찾아서 읽으면 공연히 눈물이 납니다.  어릴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사람을 잘 안변합니다. 왜 눈물이 나냐하면, 너무 아름다워서. 밀밭은, 여우가 어린왕자와 함께 있을때도 나오지요. 앞으로 황금물결치는 밀밭을 보면 네 머리카락이 생각날거라고 여우가 종알거지요.  가수 문정선이 노래한 옛날 노래가 있습니다. 보리밭 사잇길로 걸어가면 뉘이 부르는 소리 있어 발을 멈춘다.... (이야기가 걷잡을수 없이 딴길로 새고 있습니다...)

 

한세상 씩씩하고 전투적으로 살아낸 노 화가가 그린 말기의 작품이 너무나도 절제되어있고 사색적이라서, 이것이 인생을 열심히 살아온 사람에게 다가오는 깨달음의 순간이었던 것일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황금 밀밭같이 풍요롭고 평등한, 인간의 세상. 저도 꿈꿔봅니다. 밀알은 각자 개성껏, 그러나 서로 의자하여, 미래의 싹을 간직한채, 영원히 살아남을겁니다. 하나의 밀알이 썩지 아니하면, 썩으면... 아아 성서적 은유인지도 모르겠군요.

 

이상으로 벤튼의 이야기를 마치겠습니다. 다음은 존 커리를 기대해주시길.

 

2009년 12월 31일 Redfox.

 

 

 

 

 

 

 

 

 

 

 

 

 

Posted by Lee Eunmee
American Art History Sketch2009. 12. 27. 08:19

 

 

Lady in Black and Rose (검정색과 장미색 드레스를 입은 숙녀) c. 1905-1909

Oil on Panel

44 x 55 cm (가로 세로)

2009년 11월 피츠버그 카네기 미술관에서 촬영

 

 

 

Morning Glories (나팔꽃) c. 1900

Oil and Canvas on Three Panel Boards

183 x 164 cm (세폭 전체 크기)

2009년 11월 피츠버그 카네기 미술관에서 촬영

 

 

이전 페이지, 디트로이트 미술관 ( http://americanart.textcube.com/234 )소장 듀잉 작품들을 감상하면서 논의했던 듀잉 작품의 특징들이 이곳에서도 여전히 발견됩니다.

 

그런데, 이전 페이지에 이어서 뭔가 새로운것을 발견 하셨는지요?

 

음...'액자' 디자인이 일정한 패턴을 유지하고 있지요? 일단 금박이고, 액자를 세밀하게 들여다보면 액자에 새겨진 무늬들이 일정합니다. 한 사람의 작품처럼 보이지요? 어쩐 일인지 알 수 없으나 듀잉의 작품들을 감싸고 있는 액자들은 모두 '동일범'(?)의 소행처럼 보입니다.

 

이 액자들을 디자인 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퀴즈로 남겨 둬 볼까요?)

 


 

 

 

 

Posted by Lee Eunmee
Museums2009. 11. 13. 03:43

피츠버그에는 피츠버그 대학교와 카네기 멜론 대학이 있습니다. 이 두 대학의 건물들이 서로 엉켜있는 시내 중심부에 카네기 미술관이 있습니다.

 

 

미술관 공식 홈페이지: http://www.cmoa.org/

 

 

피츠버그에는 네가지의 카네기 박물관이 있습니다.

 1. 카네기 미술관

 2. 카네기 자연사박물관

 3. 앤디 워홀 미술관

 4. 카네기 과학관

 

http://en.wikipedia.org/wiki/Carnegie_Museums_of_Pittsburgh

 

 

이 네가지 카네기 박물관중에서 카네기 미술관과 카네기 자연사 박물관은 입장료 (성인 15달러)를 내면 두군데 모두 관람이 가능합니다.  두가지 박물관이 서로 동일한 건물동에 있어서 미술관과 자연사 박물관이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한곳에 두가지 박물관이 있다고 하면 어쩐지 모두 협소하고 작을것이라는 인상을 주는데, 막상 가보면 두가지 박물관 모두 규모가 크고 전시물들이 매우 값진 것들입니다.

 

 

카네기 미술관은 1896년 (한국에 강철왕 카네기로 알려진) Andrew Carnegie 가 설립 한 이래, 오늘날에도 여전히 성장을 하고 있는 피츠버그 소재의 미술관입니다. 아래 사진은 카네기 미술관 건물을 저녁에 찍은 것입니다.  일단 전시회장을 둘러보고 폐관 시간이 되어 나와서 찍은 사진이라 주변이 어둡습니다.

 

 

 

 

통유리 벽 낭에 (분수 너머에) 알록달록한 초상화 두점이 보입니다. 알록달록한 색깔가지고 장난을 치고, 동일한 인물의 초상화 두장이 나란히 걸려있는 것을 봐서, 작가가 누구인지 짐작이 가시겠지요?  (이것은 퀴즈로 남겨 둘까요?)

 

 

 

 

 

 

 

 

 

사실 카네기 뮤지엄에 도착하기 전까지, 이 박물관의 '규모'가 어떠할지 전혀 짐작을 할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어딘가를 찾아 갈때에는 언라인으로 사전에 정보를 많이 찾아보고 짐작을 하고 가는 편인데, 이 박물관이 홈페이지에 제공한 정보는 어딘가 허술해보였습니다.  전시관 종류가 어떠한지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페이지도 없었고요.  그래서 좀 '만만하게' 보고 갔었던 것인데, 일단 박물관에 가보니 '기대이상'으로 잘 짜여진 전시장들이었습니다.  '이렇게 좋은 박물관이 제대로 홍보가 안되었구나. 홈페이지에 문제 있다' 이것이 제가 내린 결론입니다.

 

이 미술관에는 세계 여러나라의 유수의 문화재들 예술작품들이 널려있습니다.  그리스의 조각품들도 있고요,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의 명품들도 많이 있습니다. 단 제가 '미국미술' 을 연구중이므로 다른 전시장들은 그냥 쓱쓱 지나치고 주로 '미국 회화' 쪽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 편입니다.

 

 

이 미술관에서 아쉬웠던 점은, 아래 사진에 보이는 근대 유럽과 미국의 회화 전시장의 진열상태였습니다.  사실 이 벽에 널려있는 작품들이 간단한 작품들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렇게 다닥다닥 붙여놓은 데다가, 전시장 입구에 그냥 이 작품들의 작가와 제목등 간단한 정보가 들어있는 안내문 폴더 하나를 비치해 놓았습니다.  작품의 제목이나 작가가 궁금하면 그 폴더를 들여다보고 번호와 대조해서 확인을 하라는 것입니다.  폴더는 딱 한권 뿐이었습니다.  만약에 내가 그 폴더를 들고 돌아다니면서 찬찬히 작품감상을 한다면, 다른 사람도 그 폴더의 정보가 궁금하다면, 그는 내가 감상을 마칠때까지 기다려야 할 처지입니다.  이 명화들을 이렇게 무지막지하게 늘어놓고 정보도 제대로 제공을 안하다니! 

 

 

 

 

 

이 그림 무더기 속에 있었던 장 프랑소아 밀레의 '씨뿌리는 사나이' 그림입니다.  밀레의 그림은 대개 우리에게 친근하게 다가오지요?  저도 어릴때 우리 시골집 안방 벽에 밀레의 '저녁종' 액자가 걸려있었서 아기때부터 그것을 보면서 성장했습니다. 밀레의 저녁종 그림은 내가 매일 먹는 엄마의 젖이나 할어니가 씹어서 먹이던 밥처럼 그렇게 내 삶의 일부였지요.  아마 우리들은 대개 이와 비슷하게 밀레를 만났을것 같습니다. 이발소나 식당이나 혹은 친척집 마루에 걸려있던 액자나...

 

장 프랑소와 밀레를 '성자'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그의 그림은 어딘가 종교적인 느낌이 들지요. 종교가 어떠하건 관계없이 그의 그림에서는 삶의 엄숙함이 아름다운 종소리처럼 울려퍼집니다.  빈센트 반 고흐가 가장 사랑하던 화가가 '밀레'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고흐는 공개적으로, 열광적으로 밀레를 칭송했습니다.  고흐는 이 씨뿌리는 사나이와 흡사한 구도로 그의 작품을 그린적이 있습니다.  밀레와 고흐의 화집을 들여다보면 고흐가 밀레의 그림을 자기식으로 재 창조해 낸 작품이 몇가지가 발견됩니다. 밀레와 고흐. 화풍은 달라도 서로 영혼이 통했던 작가들이었지요.

 

 

 

한가롭고 여유있는 전시장 내부입니다. 주말 오후에도 이정도 한가하다는 얘기는, 이곳이 늘 이정도로 한가할 거란 뜻이지요.

 

 

 

 

 

 

 

 

 

 

 

미술관 현관에 마침 가을이라서 그런지 Alex Katz 의1999년 작품 Autumn 이 걸려있었습니다. Alex Katz 는 (나중에 소개드리겠지만) 잭슨 폴락의 영향을 받다가 후에 자신만의 독특한 미술세계를 이룩한 현대 화가입니다. 이 그림 앞에 서면 내가 가을 속에 들어있다는 기분이 듭니다. 행복한 가을. (색깔치료 받는거지요).

 

 

 

미술관은 카네기 자연사 박물관으로도 연결됩니다. 공룡의 화석도 보이고, 펜실베니아의 광물을 소개하는 전시장도 있고, 고생물학 자료가 많이 있습니다. (미술 블로그이니까 자연사박물관 소개는 생략하겠습니다만...)

 

 

 

 

이 미술관을 둘어본 후에 앤드루 카네기에 대해서 자료를 좀 살펴보았습니다.  뉴욕에 가면 카네기 홀이 있지요.  그 카네기가 이 카네기입니다. =).  피츠버그에 카네기 멜론 대학이 있습니다. 역시 카네기 입니다.  피츠버그에 카네기 박물관 소속 전시장이 네가지가 됩니다. 규모도 크고 알찹니다. 모두 그 대단하다는 재벌 '강철왕' 카네기가가 기증하고 후원한 것들입니다.  그러면 이 카네기 아저씨가 참 훌륭하고 대단한 분인것 같습니다.  워싱턴 디씨에는 '국립 대성당 (National Cathedral)'이 있습니다. 원래는 '성공회 Episcopal = Anglican Church' 소속이긴 하지만, 종교나 이념에 상관없이 누구나 들어와서 각자의 방식으로 기도하도록 공개된 곳입니다.  그런데 이 대성당의 스테인드 글래스중에는  앤드루 카네기씨를 기념하는 작품도 있습니다.  정작 카네기는 '무신론자'였지만요.  :)  (카네기가 자연사 박물관을 후원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이 대단한 자선가, 박애주의자에 대해서 제가 새삼스럽게 삐딱선을 타고 삐딱하게 들여다 볼 필요는 없어보입니다.  그러나, 그의 이력을 살피다보면, 그가 피츠버그에서 한 행적중에 매우 불행한 사태가 있었습니다.  그는 제철소로 급 성장을 했고, 피츠버그의 노동자들 대부분이 카네기 소유의 공장에서 일을 하고 살아갔다고 할수 있습니다. 이들 사이에서 노동운동이 일어났을때, 카네기는 '노조 탄압' 혹은 '노조 소탕' 쪽으로 가닥을 잡아갑니다. 노동자들은 노동운동 결과 오히려 임금이 삭감되거나 일자리를 잃거나,  설 자리를 잃게 됩니다. 아주 무시무시하고 철통같은 노조 탄압이 자행된 결과 였습니다. 카네기는 노조를 물리치는데 성공합니다.  그러나, 그의 성공여부와 상관없이 당시 이 재벌에 대한 사회적 시선은 '냉소'와 '멸시'로 가득찼다고 합니다. 그는 한때 피츠버그에서 제대로 얼굴도 들지 못하고 살아야 했다고 합니다.

 

그후 그는 자선가로 변신합니다. 막대한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는데 노력합니다. 그는 국립 대성당에서 그를 기념하는 스테인드 글래스를 만들정도로 '천사'같이 삶을 마감합니다.  그가 '한때의 실수'를 이런식으로 개선한 것일까요? 오늘날 카네기를 비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이 양상을 들여다보면서 저는 한가지를 깨닫게 됩니다.  이는 오늘날 오바마 정권에 대한 공화당의 비판, 혹은 중산층 미국인들이 오바마를 보는 시각과도 연결됩니다.

 

오바마가 의료개혁을 하고, 전국민 의료보험 정책을 시행하고 싶어하는데, 공화당과 미국 시민들은 이를 '사회주의 정책'이라고 비난합니다.  돈을 많이 버는 사람들이 세금을 조금 더 내는것은 '사회주의적 발상'이라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사회주의는 한국에서 빨갱이 라는 말처럼 무시무시한 말입니다. 한국에서 빨갱이 소리 들으면 삼족이 위험에 빠지듯, 미국에서는 아직도 사회주의가  반기독교 정신처럼 지옥에 빠질 개념입니다.)  미국 시민들은 '부의 재 분배'에 대하여 적대적입니다.  이들은 그 대신 '부의 사회환원'에 박수를 칩니다.

 

'부의 재분배'와 '부의 사회 환원'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부자가 세금을 많이 내고,  가난한 사람이 세금을 조금 내는 것은 --> 부의 재분배 입니다.  이것에 대하여 '내가 열심히 노력해서 돈 많이 벌었는데, 왜 내가 일도 안해서 가난뱅이로 사는 저 쓰레기 같은 인간들을 위해 세금을 더 내야 한단 말인가?' 이런 시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극단적인 예입니다.)

 

돈을 많이 번 사람이 사회 기금이나 자선행사에 돈을 왕창 기부하는것은 ==> 부의 사회 환원 입니다. 미국은 이런식의 사회 환원에 박수와 찬사를 보냅니다.

 

정리:

 

 그들의 개념  Socialism  Capitalism
 그들의 이해  수익(부)의 재분배  수익(부)의 사회환원  
 그들의 반응

 "빨갱이!"

 

오바마는 빨갱이다!

사회주의를 외치는 놈들은 죄다 빨갱이다!

 

 "자선가!"

훌륭하신 기업인!

사회 환원 하겠다는데 탈세좀 하면 어때?

재산좀 세습하면 어때? (탈세좀 봐주면 안되니?)

 

 

 

카네기는 어떻게 했는가? 제 단견이지만, 카네기는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근사하게 돈을 사회에 환원하고 죽은 사람입니다. 이 사람 위대합니다. 내가 상상할수도 없는 많은 돈을 사회에 주고 돌아갔으니까.  하지만 한번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카네기가 노동자를 탄압하는 대신에 그가 공장에서 벌어들인 돈을 그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복지와 교육에 풀었다면? 노동자들에게 월급을 더 많이 주고 그들의 주거환경 개선에 좀더 힘썼다면? 그랬다면?  당시 노동자들의 삶은 더욱 윤택했겠지요. 그들은 카네기를 그들의 진정한 친구로 사랑하고 존경했겠지요.

 

하지만 카네기는 노동자들의 임금을 삭감까지 해가면서 그의 부를 키웠고,  그리고 폼나고 근사하게 학교 세우고 박물관 세우고 각종 자선기금 펑펑 내 놓은 후에 천사처럼 천국으로 향했습니다. 돈 참 폼나게 잘 썼습니다.  광나고 폼나는 일에 잘 썼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노블리스 오블리제라고 칭송을 하기도 하는데, 그게 무슨 말인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카네기는 부의 재분배 대신에 부의 사회 환원을 선택한 머리 좋은 사람입니다.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쓰는것을 우리는 비난할수 없습니다.  하지만 정승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쓸줄 아는 사람이 더 훌륭한 사람일것입니다. 카네기는 개와 정승의 조합입니다.  (제 눈에는 그렇게 보입니다.)  그나마 정승처럼 써줘서 땡큐를 날립니다. 덕분에 저같은 사람도 박물관에 가서 좋은 것을 많이 볼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하지만 그 뒤에 피츠버그 노동자들의 고혈이 있음도 잊어서는 안될것입니다.

 

자기가 집에서 부리는 '일꾼'들에게는 '인색'하게 굴면서 밖에 돌아다니며 자선행사에 열중한다면?  하지만 세상은 이런 자선가들에게도 경의를 표합니다. (일단 내가 그 희생자가 아니라면 억울할 이유가 없으니까.)  "넌 왜 하필 그런것을 들여다보는거니 빨갱이처럼?" 누군가 이렇게 묻는다면 할말이 없습니다. 그냥 궁금해진다는거지요. 그저 궁금할 뿐입니다.

 

 

 

 

2009년 11월 7일 토요일 방문.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