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Life2018. 10. 22. 13:11


강원도 지방의 설화 몇가지를 소설가 오정희씨가 그녀의 언어로 다시 엮은 이야기 책이다.  김소월의 시 '접동새'의 모티브가 된 아홉 오라비와 누이동생 이야기를 포함한 몇가지 이야기가 들어 있다.


책방에서 읽어도 금세 읽을만한 작은 이야기 책이다. 증정본으로 읽었다.  


소설가 오정희씨는, 내가 만약 소설을 쓴다면 이 사람처럼 쓰고 싶다고 생각하는 작가이다. 그녀의 '중국인 거리' 스케치 '새의 선물'은 너무나 매혹적이었다. 인천의 차이나타운에 가서 골목 골목을 걸을 때에도 나는 소설가 오정희씨의 발자취를 상상했었다.  최근에 발간된 오정희 전집도 증정본으로 한질 갖고 있었는데, 오정희에 푹 빠진 형제에게 양도했다. 아무래도 내가 소설책을 들여다 볼 것 같지가 않아서.  나중에 다시 '나의 소설의 시대 (소설책에 미쳐 지내는 시대)'가 온다면 그 때 다시 달라고 하면 돌려 줄 것이다. 



여러개의 이야기중에서 내게 가장 인상적인 이야기는 첫 작품.  누이(구렁이)와 인간 오래비의 이야기.  본디 구렁이였던 누이는 쌍둥이같은 인간 오래비를 극진히 돌보고, 온 힘을 다하여 죽은 오래비까지 살려내는데, 오래비 녀석은 제 삶에 취해서 누이와의 약속을 간단히 잊어버리고 만다. 뒤늦게 기다리는 누이를 생각해내고 딱 하루 늦게 집으로 돌아가니....(마지막 장면이 너무나 인상적이었다)...누이는 여기저기 풀이 듬성 듬성 난, 인적 없는, 방 가운데 앉아서 명주 한필로 오래비 녀석의 옷을 한벌 짓고는, 다시 뜯어서, 다시 바느질하고, 그걸 반복하며 늦게 당도한 오래비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더란다.  이 부분이 꽤 매혹적이었다.  음, 이 작품 하나 때문이라도 이 책을 소장할 이유가 있을 것도 같다. 책을 사도 좋으리라. 



두번째 작품도 구렁이아들 (아들을 낳았는데 구렁이) 얘기인데 -- 이 이야기는 어딘가 전세계의 설화가 갖는 보편적인 요소들을 갖고 있다.  막내딸이 '괴물'에게 시집가서 잘 사는 것을 보고 언니들이 시기심에 막내의 행복을 망가뜨리고, 막내는 자신의 실수로 인해 사랑을 잃고, 문제에 빠지고, 결국 고생고생 끝에 사랑을 되 찾는 그런 얘기. 



뭐니뭐니해도 '구렁이 누이'얘기가 나의 상상력을 찌르르하게 자극했다.  구렁이의 헌신은 인간이 되지 못하고 구렁이로 태어나 사내녀석을 사랑한 구렁이가 어차피 사랑을 이루지 못하니 헌신적으로 그를 돌보고 그에게 어여쁜 아내까지 만들어다 주는 것으로 그러니까 에로스적 사랑을 아가페적 사랑으로 치환한 것인데,  그렇지만 ....  사랑은 어쩔수가 없는것이지...  명주 한필로 사내녀석의 옷을 짓고, 뜯고, 다시 짓고 하면서 단 한번만이라도 그의 사랑을 확인할수 있는 시간이 오기를 기다리고 또 기다렸으리라. 오정희씨도 이제 할머니가 되셨구나...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