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Walking2016. 7. 16. 22:14


이것은 발을 푹 담그고 물장구를 쳐도 물이 밖으로 튈 염려가 없는 '발 전용 세숫대야'라고 할 수 있다.  한국마켓에서 보이길래 석달열흘 쳐다보며 살까 말까 고민하다가 샀던 기억이 있다. 두어해 전에.  그리고는 그 이후로 '나의 사랑하는 친구'가 되었다.  물론 우리집에도 목욕시설 완비되어 있고, 체육관에 가면 건식, 습식 사우나에 월풀 사우나, 수영장, 뭐든 이용할 수 있다.  그런데도 이게 필요한가?  --- 예. 절대적으로 필요합죠.  저 위에 열거된 모든것을 다 이용해도 해 줄 수 없는 것을 이 플라스틱통이 해결해 줍니다요.


목욕탕이건 수영장이건 사우나건 어딜 가도, 내 발을, 오직 내 발만을 편히 쉬게 해 주는 시설은 그리 눈에 띄지 않는다.  내 발은 늘 내 몸을 지탱하고 서 있어야 해.  물속에 누워 있을 때에도 내 발만 특별 대접을 받는것은 아니지.  그런데  이 통은 '내 발'을 '황제'처럼 대접할 수 있는 도구이다. 그리고 참 간편한 도구이기도 하다. 


한때 내 인생의 암흑기가 있었다. 아주 깜깜한 암흑기였다. 직장에 사표쓰고, 세상과 연을 끊고, 오십견 와서 어깨는 '병신'이 되었고, 어깨가 아파서 잠을 이룰수도 없었고, 우울증이 심했고, 뭐 아주 '죽어라죽어라죽어라'의 시간이 모래처럼 흘러내리고 있었다 (아니 시간마저 멈춘듯했다). 늘 골치가 아팠고, 중이염이 떠나지 않았다.  최악이었다. 그리고 겨울이었지... 겨울이라서 발이 시려운데, 그런 물리적인 시려움 말고, 그냥 뼛속까지 시려웠다.  난 사람들이 한여름에도 발이 시렵다고 말하는 그 발시려움을 몰랐었는데 그 때 그 시려움의 정체를 알았다.  따뜻한 이불속에 있어도 발이 시려운 그런 시려움.   그래서 이 플라스틱 통이 내 눈에 띄었을것이다. 


이 플라스틱통으로 그해 겨울을 보냈다. 세상과 단절된 암흑의 겨울. 그 통에 따끈한 물을 그득 담아가지고 발을 담그고,  고무주머니에 뜨거운 물을 가득 담아서 아랫배에 안고 그렇게 춥고 시린 시간을 보냈다. 다시 직장을 찾고 세상으로 나가는 것으로 내 암흑기는 끝났다. 이 발 목욕통도 그래서 잠시 내게서 떠나갔다.  하지만 요즘 나는 거의 매일 이 친구와 시간을 보내고 있다.  걷고 돌아와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어도, 곧장 샤워를 하기보다는 미지근한 물을 떠다놓고 발부터 씻는다.  선물받아 아끼던 향기로운 고급비누를 꺼내다가 발에 문질러주고, 씻어내고, 또 다시 비누칠을 해 주고, 씻어내고, 발을 주물러주고, 발목도 종아리도 주물러주고, 다시 향기로운 비누로 문질러주고.  온집안이 비누향기로 가득찰때까지 ...  그렇게 '발을 위한 의식'을 치른후에야 샤워를 하거나, 혹은 그대로 소파에 누워 책을 보거나 한다.  발이 향긋하고 편안해지면 머리가 맑아지고, 몸이 끈적거린다는 느낌도 날아가고...



서민이 황제처럼 노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이 통하나면, 나는 황제가 부럽지 않다.  향긋한 비누와 뽀송한 타월이 곁에 있어주기만 하면 다른 무수리들은 필요도 없다.  유튜브 열어서 유제하 노래나 메들리로 들으면, 악사도 필요없어지지. 정명훈따위 트럭으로 없어진대도 세상의 음악은 충분히 아름다울수 있다.  내 발이 따뜻한 물에 잠겨 있을때.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