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2023. 9. 1. 08:41

내 삶에서 반복되던 그 기분 나쁜 꿈이 돌아왔다. 아무래도 내가 기도가 부족한가보다. 

 

아주 오랫동안 잊을만하면 내게 나타나는 기분 나쁜 꿈이 한가지 있다. 늘 상황은 똑같다. 어떤 이유에선지 나는 어떤 알수 없는 사람을 이미 살해했고, 그 시신을 집안에 꼭꼭 숨겼으며, 그 시신이 부패하여 사라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저벅저벅 누군가가 다가오고 - 나는 이제 그들이 아직 사라지지 않은 그 시신을 찾아내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불안하다. 그리고 잠에서 깨어난다. 

 

'누구나 벽장속에 해골을 감추고 있다 (Everybody has a skeleton in the closet)'라는 속담처럼, 나도 집안 어딘가에 내가 살해한 시신을 감추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저런 속담이 있는 것을 보면 - 이런 나의 악몽은 인류의 원형질과 맥을 함께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누구에게나 감추고 싶은 비밀, 치부 뭐 그런것이 한두가지 쯤은 있겠지. 

 

이 악몽은 최근 수년간 나를 찾아오지 않았다. 아마도 내가 기도 생활을 성실하게 하고, 하루하루를 거룩하게 살기 위해 노력하는 동안 - 내 영혼이 평안하였던 모양이다. 새벽에 이 악몽이 다시 나를 찾아왔다. 내 기력이 약해져서 불안이 내 영혼을 다시 잠식하려는 모양이다.  해답은 - 깊이 깊이 기도하는 시간을 되찾아야 한다는 것이리라.  약해진 몸에 영양제를 주입하고, 몸에 좋은 음식들을 먹이듯 - 약해진 내 영혼에도 밥을 먹여야 한다. 기도가 답이다.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3. 8. 31. 09:48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해를 두려워 하지 않음은 주님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함이나이다...'

 

내 영혼의 불이 다 꺼지고 내가 깊은 우물속으로 깊이 깊이 빠져들어갈때 - 나는 깨우는 장치들이 있다는 것을 나는 최근 발견하게 되었다.  그것은 예고없이 갑자기 울리는 다급한 전화벨소리, 혹은 예고없이 들이닥치는 업무회의.

 

며칠전에도 나는 죽어가고 있었다. 내 영혼이 깊이 깊이 나락으로 빠져들어 나는 숨을 쉴 수도 없었다. 물론 숨을 쉬고 있었지만 내 영혼이 숨을 쉬지 못하고 있는것 같았다. 나는 꼼짝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집요하게 전화가 울려댔다.  나는 대체로 전화를 받지 않고, 내게 전화를 거는 이들은 그것이 로봇이 거는 피싱전화이거나 광고전화이거나 혹은 가까운 사람들의 전화이거나 간에 내가 대여섯차례 벨이 울려도 받지 않으면 더이상 나를 괴롭히지 않는 편인데, 그날은 집요하게 계속해서 전화가 울려댔다. 끊었다 다시 걸고 끊었다 다시 걸고를 반복했다.  그렇게 한참동안 내 전화를 울려대던 그이는 마침내 내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님, 저 *** 인데요. 전화 통화 가능하실까요?"   그는 아마도 내가 '모르는 전화'라서 수신을 안한다고 상상했던 듯 하다.  물론 내 전화에 그의 번호가 등록되어 있어서 나는 그가 전화를 걸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단지 대답하기 싫어서 응대하지 않았던 것인데 - 그는 지속적인 전화와 문자메시지로 나를 불러대고 있었다. 엔간히 급한 일인가보다.  나는 마지못해 진땀을 닦으며 그에게 전화를 걸어준다.  내용은, 예상했던 것보다 별것이 아니었다. 어쩌면 내게는 별것도 아닌 것이지만 그에게는 매우 중대한 일일 수도 있으리라. 아마도 그러했을 것이다. 

 

그의 소원수리를 해주기 위해서 나는 컴퓨터를 켜고 들어가서 간단한 작업을 해야 했는데 - 그러다가 문득 내 영혼에 불이 켜졌다. 어둠속에서 성냥불 하나가 켜지면 그게 꽤 밝아진다. 어둠속에서 순간 성냥불하나가 켜진것처럼, 문득 내 영혼에 불이 들어왔다. '모두들 지금 생존하기 위해서 열심히 움직이고 있다구!  너는 지금 누워서 뭘 하고 있는거야 사지가 멀쩡해가지고는. 어서 일어나지 그래!'  -- 누군가 내 엉덩이를 걷어차며 나를 흔들어 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그날 나는 벌떡 일어나서 진땀을 내며 책상앞에 앉아 밀린 일들을 해 치웠다. 오랫만에 수직으로 일어나서 (주로 수평으로 누워있었으니까) 작업을 하니 그동안 누워있던 것이 효과가 있었던 듯 짧은 시간안에 매우 효과적으로 일들을 해치웠다.  물론 그러고나서 다시 시체처럼 누워 지내야 했지만 말이다.

 

어제도 오후 한시에 책상앞에 앉아서 노닥거리고 있을때, 내 프로젝트를 관리해주는 스태프님이 예고도 없이 내 연구실에 들이닥쳤다. 대개는 방문 직전에 "지금 시간 되세요? 미팅 하시죠"라는 문자라도 주곤 했는데 어제 그는 이런 짧은 메시지도 없이 그냥 들이닥쳤다. 예전에 그런 적이 한번도 없었는데 말이다. "뭔가 일이 생기신것 같아서 그냥 와 봤어요"가 그의 설명이었다.  그냥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것 같았다고.  그와 앉아서 미루고 있었던 일들에 대한 논의를 했다. 내가 해야 하지만 하기 싫어서 결정을 미루고 미적거리고 있었던 일들. 그 안건들을 가지고 그가 들이닥쳤다. "힘드시면 취소하셔도 될것 같은데요..."그의 배려심 가득한 한마디가 내게 용기를 줬다. "그래도 하겠다고 약속한 일이니까, 해야지요. 지금 스케줄 잡읍시다."  우리는 아주 짧은 시간에 큼직큼직한 것들을 결정하고 스케줄을 세웠다. 그와 사업 얘기를 하다보니 - 내가 정신이 제자리로 돌아온다. 누군가 깊은 우물속에 '오필리어처럼 누워있던' 내 영혼을 끄집어 내는것 같았다. 

 

그와의 미팅을 마치니, 지금 내가 서둘러서 일을 해야 한다는 각성이 일면서 뿌옇던 머릿속 안개가 조금씩 걷히는 듯 했다.

 

어제 오후에 아주 짧은 시간에 나는 또 많은 중대한 일들을 해치우고, 밀렸던 메시지들을 소화해 냈다.  그리고 모처럼, 저녁을 근처 한정식집에가서 외식으로 했다. 오랫만에 이런저런 반찬과 뜨거운 돌솥밥을 맛있게 해치웠다. 숭늉까지도 아주 달게 먹었다. 식사를 마친 후에는 홈플러스에 들러서 계란과 식료품들을 사고, 나오는 길에 - 바카스를 한 상자 샀다. 나는 평소에 박카스나 그런 드링크를 안먹는다. 바카스는 어쩐지 공무원들이나 시골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건설 노동자들이 먹는 것이라는 해괴한 상상을 품고 살아왔기 때문에 그것은 어딘가 내게는 금단의 영역이었었다. (내가 위의 직업군에 어떤 편견이 있는 것은 아니다. 옛날에 우리 엄마가 동사무소에 뭔가 서류 떼러 갈때면, '와이로'로 바카스 그런거 한상자 사들고 갔던 것이 머리에 박혀 있어서 그럴뿐이다. 하하하)  그런데 진열대에서 바카스를 발견한 나는 손을 뻗어 그것 한상자를 카트에 담았다. "여기 구론산도 있고, 여기 이것은 1+1 행사인데, 이건 어때?" 남편이 옆에서 나를 약간 비웃으며 거들었다. 남편도 바카스나 그런 미신적인 음료수는 입에도 대지 않는 사람이다. 우리는 그런 것들이 모두 카페인 덩어리라는 미신적 편견을 갖고 있다. 

 

나는 나를 비웃듯, 조롱하듯, 구론산이니 뭐니를 가리키는 남편에게 정색을 하고 - 노려보며 - 신경질적으로 - 진지하게 말했다. "내가 지금 농담할 기분인 줄 알어? 난 지금 이거라도 먹고 이 무거운 우울증에서 벗어나고 싶은거라구! 내가 술을 해? 담배를 해? 커피도 안마시쟎아. 이 우울증에서 벗어날 뭔가 조력장치가 필요하단 말야. 난 이 바카스의 도움이라도 받고 싶다구!" 

 

사람들이 아마도 그래서 술이나, 프로포폴이나 환각제 뭐 그런 것에 빠져드는 거겠지? 하지만, 나는 거기까지는 가지 않을거야. 왜냐하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가 그것을 내게 허락하지 않으실거니까. 그 전에 나를 치유해주실거니까. 내게는 아버지가 계시다구... 나보다 더 많이 한숨지으실 내 아버지가. 

 

오늘 아침은 어제보다 낫다. 기적적으로 아침 여덟시부터 학교에 나와 앉아있다. 집에서 나올때 바카스 몇병을 챙겨 나왔다. 학교에 오자마자 청소를 하고 바카스 한병을 마셨다.  뭔가 기분이 좋아지는것도 같고. 하하하. 

 

어둠속에 벨이 울릴때 - 누군가가 우울의 늪에서 나를 건져내기 위해 전화를 하거나 예고 없이 들이닥칠때, 나는 우리 하나님께서 나를 살리시려고 고민고민하시다가 저 사람을 내게 보내셨구나 하고 알아차린다. 나는 우리 하나님이 나를 항상 돌보시고 계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누군가 지금도 나를 위해서 기도를 하고 있을 것이다.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3. 8. 30. 14:13

평소대로 잠이 깨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일어날 기운도 없다. 멀거니 누워있다가 - 차려주는 아침을 먹고, 평소같으면 부지런히 단장을 하고 일찌감치 학교로 향하겠으나, 너무 피곤하므로 조금 쉬었다 가자고 생각하고 티브이를 켜고 소파에 누워서 선풍기 바람을 쐬다가 티브이를 켜 놓은채로 다시 잠이 든다.  점심을 먹으라는 소리에 깨어서 맛도 없는 점심을 먹는둥마는둥한다. (아침 먹고 누워잤으니 점심을 먹을 필요도 식욕도 없음이 당연하다).  그나마 포도나 사과와 같은 제철과일은 나를 기쁘게한다. 그것들을 갖다 주는대로 먹는다.  티브이를 켜니 섬에가서 뭔가 만들어 먹는 오락프로그램이 나오는데 그들의 삶이 평화로워보여서 그것을 물끄러미 보다가, 그들이 주고 받는 실없는 농담과 맛있어보이는 음식들 그런것들 덕분에 기분이 조금 좋아진다. 그래서 기분이 좋아진 김에 일어나서 씻고, 대충 입고, 집을 나서서,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가운데 가까운 카페에 가서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잔을 사 들고 연구실에 와서 앉는다. 오후 한시.   

 

지금부터 해야 할 일을 하도록 하자.  그래도 연구실에 나오면 나는 사람처럼 작동을 한다. 마치 어느 구역에서만 작동하는 기계처럼 말이다. 그러니까, 집에서 연구실까지의 그 짧은 거리가 천리같이 먼것이 문제다. 여기만 오면 나는 그래도 작동을 시작한다. 

 

 

내가 해야 할일

 

 * 내 직무상 해야 할 일들은 다행히 밀리지 않고 해 내고 있다. 

 * 내가 개인적으로 해야 할 일들 - 예컨대 미장원에 가서 머리를 좀 잘라야 한다던가, 얼굴에 난 사마귀 같은 것을 제거하기 위해서 피부과 예약을 하고 가봐야 한다던가 그런 사소한 것들을 마냥 미루고 있다. 그런것들을 미뤄도 사회적으로 문제가 발생하지는 않으니까. 

 

사회생활

 

 * 여전히 여기저기서 초대가 오고 주변은 뭔가 활발하게 돌아가고 있다. 나는 내가 반드시 꼭 해야만 할 최소한의 응대만 하면서 버티고 있다. 아직 주변에서는 눈치를 채지 못했을 것이다. 그냥 단지, '요즘 그이가 잘 안보이네' 정도로 알듯 모를듯 느끼고 지나칠것이다. 하지만 나는 나의 사회생활 영역의 여기저기에서 조금씩 지우개로 지우듯 지워지고 있다. 초대를 받고 거절하는것이 참 힘들다. 그래서 거절을 잘 못한다. 하지만, 거절하는 표현을 연습해서 - 거절을 할것이다. 

 

이런것을 '가면을 쓴 우울증'이라고 하는건가? 사람들은 모른다, 내가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내가 여전히 활기차고 언제나 웃고, 그리고 언제든 자신들이 힘들때 찾아와 위로 받을수 있는, 에너자이저라고 상상하고 있을것이다.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3. 8. 29. 16:39

 

 

친척 오빠가 동네 이웃에서 살았었다.  체격이 자그마하고 예쁘장한 얼굴이었고, 마음씨도 순하고 착했다. 그리고 몸이 약했다. 그 오빠는 원인 불명의 질환으로 서서히 몸이 약해져갔다.  그러니까 어릴때는 그냥 약해보이는 예쁘장하고 순한 오빠 였는데, 점점 자라면서 체격이 자라지도 못했고, 점점더 몸 움직임이 약해졌다.  그래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어딘가 대학을 다니던 오빠는 어느날부터 집에서만 생활하게 되었다.  오빠는 집에만 박혀 있기 답답해서인지, 집앞에 놓이 평상에 나와서 바람을 쐬며 시간을 보내는 일이 잦아졌다.  오빠는 평상에 앉은채 집 앞을 지나치는 동네 사람들과 일일이 눈을 맞추고 인사를 나누고 이야기를 하며 지냈다.  그의 머리위로 구름이 흐르고 바람이 불고, 계절이 흘러갔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나도 새벽에 집을 나섰다가 밤에 돌아오는 하루하루라서 집앞 평상에 앉아 시간을 보내는 오빠와 마주칠 일이 별로 없었다. 오빠가 새벽부터 밤까지 평상을 지키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대학생이 되고 나의 일상이 훨씬 다채로워지면서 내가 대낮이나 오후 한나절에 집에 돌아올때도 있었고, 그럴때면 나는 반드시 평상을 지키는 오빠를 지나쳐야 했다. 그 댁을 지나쳐야 우리집이 나왔기 때문이다. 처음에 나는 그 순하고 착한 오빠가 대학생활도 못하고 앉은부처처럼 평상을 지키는 것이 슬프고 딱해서, 그를 지나칠때마다 살갑게 인사를 하곤 했다, "오빠, 날씨 좋네" 뭐 이런 가벼운 인사였다.  오빠는 사람좋은 미소를 보내며, "학교 갔다 오니? 넌 점점 더 예뻐진다" 뭐 이런 일상적인 인사를 보내곤 했다.  처음엔 그랬다. 처음엔 나도 살가웠고, 인사를 빠뜨리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집에 가기 위해 오빠의 평상 앞을 지나칠때마다 그자리에 늘 오빠가 붙박이로 앉아서 저 멀리서부터 내가 걸어오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반복되고 반복되자 나는 서서히 그 상황이 짜증스러워졌다.  그리고, 어느날부터인가 나는 앉은부처같이 평상을 지키는 그 오빠에게 눈길을 보내지 않고 지나쳤다. 그냥 생각에 잠긴듯 그 앞을 지나쳤다. 아마도 그렇게 지나치는 계기가 된것은 어느날 내가 너무나 우울하여 아무와도 말을 섞고 싶지 않아서 그자리를 그냥 지나쳤을 것이고, 한번 그렇게 지나치자 그 다음에도 스스로 우울하기로 결심하고 우울한 표정으로 그 앞을 지나쳤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일이 반복되는 가운데 습관으로 굳어졌으리라.  그렇게 나는 평상에 앉아 바람을 쐬며 지나치는 동네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는 오빠를 싹 무시하고 지나치게 되었다.  내가 인사를 하지 않았으므로 오빠도 내게 인사를 하지 않았다. 그냥 내가 지나치는 것을 물끄러미 보고 있었으리라.   그러다가도 어쩌다가 내가 뭔가 기분이 좋아져서, 예외적으로 오빠에게 인사를 건네면, 오빠는 언제나처럼 밝게 웃으며 내 인사에 화답을 해줬다, "야, 너 요즘 바쁜것 같다. 잘 지내지?" 그는 내가 모른체 지나가면 그대로 그자리에 돌부처처럼 있었고, 내가 어쩌다 기분이 좋아져서 인사라도 하면 우리가 항상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라는듯 다정하게 화답을 하곤 했다. 

 

그 오빠는 몸이 너무 약해져서 나중에는 반신불수가 되었는데, 매일 평상 앞에서 자리를 지키던 그는 어느날 그의 집 1층의 작은 가겟방에 비디오가게를 차리고 스스로 '사장님'이 되었다. 그는 이제 평상이 아닌, 비디오가게 사장의 자리를 지키며 날이면 날마다 일년삼색육십오일 하루 이십사시간 창밖으로 지나가는 동네 사람들을 관조 할 수 있게 되었다.  그의 거동이 불편한것을 아는 동네 친구들은, 서로 돌아가면서 자원봉사 '비디오가게 점원' 노릇을 해 주었던 것 같다. 진열장 높은 곳에 있는 비디오를 꺼낸다거나 아니면 회수된 비디오를 정리하여 제자리를 찾아 주는 일등은 그의 마을 친구들이 알아서 처리해 주었다.  그가 집앞 평상에서 풍천노숙하는 동안 그는 헛짓을 한 것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는 마음씨가 좋은 사람들과 친구가 되었고, 그 친구들의 도움으로 비디오가게를 성공적으로 운영해 나갔다.  그는 게다가 인정도 많아서, 이제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잡고, 그리고 결혼한 나에게 "야, 너 성인물 비디오 온것 있는데 빌려줄게 갖다 봐라"라며 으스대기도 했다.  물론 콧대가 하늘이었던 내가 오빠에게 성인물 비디오따위를 빌려다 보지는 않았다.  어쨌거나 오빠는 우리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애엄마가 되는 그 시절에도 묵묵히 그 자리를 지켰다. 

 

어느날 우리 동네의 화제는, 강원도 어딘가에서 잘생긴 남매들이 비디오 가게에 들이닥쳐서 한바탕 눈물바다를 이뤘다는 것인데, 그 오빠가 비디오가게 운영해서 번 돈의 일부를, 그것도 꽤 많이, 어린이 보호단체에 정기적으로 보내서, 그와 여러명의 어린이들이 연결되어서, 결국 그가 많은 어린이들의 성장을 도와 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후원해주던 어린이들 중에서 누군가가 성인이 되어 동생들을 이끌고 크리스마스 즈음에 비디오가게에 선물을 갖고 쳐들어와서 한바탕 눈물 바다를 연출했다고 하는 것이다.  오빠는 그가 받은 선물의 몇배가 되는 많은 돈을 선물로 그 방문자에게 줬다고 한다. 어쨌거나, 애인도, 와이프도 없이 혼자 나이를 먹어가던 비디오가게 사장 오빠는 버는 돈을 쓸데도 별로 없었으므로 그렇게 많은 어린이들을 후원하면서 나이를 먹어갔다. 

 

오빠는 그렇게 늙어갔고, 회갑을 살지 못하고 몇해전에 운명했다. 나도 그의 장례식에 가서 자리를 지키며 그의 입관을 보았다. 그는 나비의 애벌레같이 곱디 곱게 싸여져 우리곁을 떠나게 되었다.

 

그의 입관을 마치고 난 후에 장례지도사가 입을 뗐다, "고인의 직계 가족 누군가 나와 주세요."  그 오빠의 동생이 나와 동갑이었는네 그가 가족을 대표하여 장례지도사의 부름에 응했다. 장례지도사는 뭔가 필기구를 동생의 손에 들려주며 말했다, "여기에  고인의 이름을 쓰세요" 아마도 입관을 마치고, 관에 고인의 이름표를 부착하는것 같았다. 다른 입관 된 고인과 헛갈리면 안되기에 그런게 아닐까 생각했다.  그것을 직접 직계가족이 쓰도록 하는 모양이었다. 난생처음으로 이렇게 위중한 장례식에서 가족 대표가 되어버린 내 동갑짜리 - 그오빠의 동생은 저으기 당황한 표정이었다. 그는 평생을 조용히 살아온 사람이다. 수줍음도 많고 나서길 좋아하지 않는다. 절대 가족을 대표한다거나 어떤 작은 모임의 대표를 해본적이 없는 사람이다. 심지어 그가 결혼을 하고 자녀를 거느리고 있는 작금에도 그의 아내가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지 않은가. 본디부터 그는 권력이나 대표, 명예 이런것에는 뜻을 둔적이 없었던 터라서 가족 대표로 '이름'을 쓰라는 지시에 갑자기 현기증을 느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장례지도사가 가리키는 곳에 이름을 끄적거렸는데 - 잠시후 장례지도사가 그의 얼굴을 째려보듯 쏘아보듯 노려보는 것을 나는 감지했다. 그는 타박하듯 말했다, "이건 고인의 성함이 아닌데, 아니 이양반아 본인 이름을 쓰면 어떡해? 고인의 성함을 여기다 써야지. 당신이 죽었어?"

 

나는 웃지 않았다. 오빠의 누이 동생이며 내게는 언니인 그 언니가 자신의 오빠를 입관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가, 장례지도사의 말씀에 빵 터졌다. 언니는 깔깔대고 웃었다.  나는 웃지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내가 오빠의 입관식에서 웃으면 오빠에게 예의가 아니지 않는가.

 

내가 요즘 약간 '우울증'이다.  아마도 정신의학과에 가서 검사를 받고, 의사와 상담을 하면 그는 내게 '경미한 우울증 증세가 있으니 일단 약을...' 하며 아마도 뭔가 약을 처방해 줄것이다.  내 주위에 우울증 진단 받은 사람들로부터 대충 전해들은 프로세스가 그런 식이라 아마도 나도 그런 식을 처방을 받을 것 같다. 우울한 가운데, 나는 과거의 많은 나의 과오들을 하나 하나 꺼내어 조사하고, 들여다보고 그리고 생각에 잠기게 된다. (이것이 우울증의 전형적인 증상중의 한가지이다).  오늘 나는 문득 평상에 앉아서 세월을 보내던 오빠, 그 오빠를 '사물'처럼 대하고 외면하던 나의 어린시절이 생각났다. 사람이 사람에게 그래선 안된다. 반성한다. 앞으로 사람을 항해 이런 무례를 저지르지 않으리라. 

 

오빠 미안해.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3. 8. 27. 16:59

나는 요즘 내가 '우울증'이 아닐까 의심을 품어 본다. 

https://nct.go.kr/distMental/rating/rating02_2.do

 

국가트라우마센터

 

nct.go.kr

이곳에서 대충 검사를 해보니 중간수준의 점수가 나왔다. 나의 증상은 이러하다.

도무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그러니까 세시간 정도 집중해서 하면 끝내는 일이 있다고 할 때, 예전에는 '빨리 해치우고 놀아야지' 하는 마음으로 후딱후딱 두시간에 일을 잽싸게 해 치우고나서 여유있게 놀면서 '도대체 꾸물대고 못하는 사람은 뭐지? 결국 자기 의지 문제가 아닌가?' 이런 기고 만장한 생각을 하곤 했다. 모든것이 자신의 '의지'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여전히 내가 집중해서 하면 세시간도 안되어 끝낼 일임을 알고 있는데 - 일을 하기가 싫다. 그래서 그냥 누워서 며칠을 빈둥대다가 내 일상에 치명적이지 않을 정도로 일을 뚝딱 해치우고 만다. 그러니까, 아직까지는 내가 치명적인 실수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평소 같았으면 나서서 해치웠을 여러가지 일들에서 나는 손을 떼고 있다. 그냥 안하기로 한다. 예를 들면, 내가 공들여 진행하는 일이 있는데, 관련 기관에서는 '포상 신청서'를 작성하라고 한다. 그러니까 이러저러한 공을 세웠다는 보고서를 작성하면 연말에 무슨 '상'을 받을수 있는 기회다. 경쟁이 심하지도 않고, 보고서만 작성하면 상을 받을것이 확실하다. 기한도 충분히 주었다.  그런데, 하루 정도 날 잡아서 끄적이면 될 일을 - 안하기로 결정한다. '아쉽지만 귀챦군. 어차피 내가 죽어서 관속에 들어갈때 그 따위 상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구. 그쪽에서 상을 줘도 내가 받으러 가기 귀챦다구...' 이런 마음이 된다.  작년에는 내가 며칠간 그 보고서에 공을 들여서 내가 소속한 기관이 큰 상을 받았는데, 지금은 한글자도 쓰고 싶지 않다.

 

내가 공들여 키운 프로젝트도 내년부터는 안하겠다고 알렸다. 그리고 대체로 무엇을 하러 들지 않는다. 여기저기서 개인적으로 일회성 부탁이 들어오는 것을 거절할 수가 없어서 '자원봉사' 차원에서 그러마고 해 주지만, 다른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하나하나 정리를 해 나가고 있다.  나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단지 심리적인 것만은 아니다.

1. 일단 나는 최근에 코로나 확진을 받았다. 작년 5월에 이어서 두번째 확진이다. 경과는 나쁘지 않았다. 코로나 치료제도 먹지 않고 지금은 코로나에서 회복했다. 하지만, 나는 현재 기운도 없고, 입맛도 없고, 뭐랄까 늘 속이 울렁거린다. 

2. 일어나 앉아있기도 싫고, 늘 누워있고 싶다. 에어컨을 약하게 틀고, 선풍기를 미풍으로 약하게 틀어놓고 온종일 누워있으러 든다. 

3. 머리가 아프다거나 뭐 특이한 증상은 없지만 나는 늘 멀미가 느껴진다. 

맡은 책임이 중요한 것이 여러가지가 있는데 그 중대한 일들을 내가 아직까지는 잘 해내고 있는데, 어느순간부터 그 일들이 서서히 무너지는게 아닐까 슬슬 불안해진다. 그래서 일요일 오후에 학교에 나와서 밀린 일들을 하려고 책상 앞에 앉았다.

 

나는 마치 깊은 우물속에 잠겨서 깊이 깊이 가라 앉는것 같은 암담한 기분이 든다. 하나님께서 나를 일으켜세워주시길. 하나님 저를 우물에서 건져주셔요. 제가 이대로 죽을것 같습니다.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