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2023. 9. 11. 11:22

나의 무기력 모우드가 개선이 잘 안되고 있다. 

 

증상은, 일단 학교에 출근하면 에어컨 세게 돌아가는 실내에서 음악 틀어 놓고 앉아서 그나마 활기차게 밀린 일들을 소화해내고 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언제나처럼 에너자이저처럼 학교를 누비고 돌아다니며 일을 해치우는 전사'처럼 비쳐질것이다.   사실 그전과 다르지 않게 행동하고 있다.  그러나, 학교까지 가는 길이 천리길이다. 그리고 일단 집으로 돌아가는 순간 소파에 쓰러져서 일어나지 않는다. 에어컨과 선풍기를 24시간 틀어놓고, 막 짜증을 내고 투덜댄다. 나의 배우자는 내게 무엇을 어떻게 해 줘도 무조건 화풀이를 당해야 한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내가 함께 사는 사람을 잡아 먹으려는 듯 짜증을 내고 투덜댄다. 내가 그 사실을 객관적으로 인지하면서도 순간순간 짜증 나는 것을 참을수가 없다. 내가 짜증내는 양상은, '도대체 덥고 찌고 살수가 없어 내가 살수가 없어...' (실내는 동거인이 느끼기에 썰렁하다 못해 춥게 느껴지는 수준이다. 내가 미친거다). 

 

거의 3개월만에 (미국에 두달 다녀오고, 이래저래 아프고 바빠서) 엄마에게 다녀왔다.  내가 주말에 다녀올때면 나는 대개 엄마를 휠체어에 모시고 최소한 동네 호수공원이라도 한바퀴 돌거나, 동네 마실 겸 뭔가 과일이라도 사러 가는 식으로 엄마가 바람을 쐬게 해드리거나 혹은 좀더 기운이 난다면 어디론가 한시간 거리의 드라이브를 해드리는 편이었다. 그래서 우리들 남매들중에서 내가 엄마에게 오는 날에는 엄마는 거동이 불편하신 가운데에도 외출 준비를 하시고 나를 기다리곤 하셨다. 콧바람을 쐬러 나갈거니까.  하지만, 이번에는 엄마에게 삼시 세끼 밥상을 차려 드리는 것 외에, 나는 엄마에게 말을 걸지도 않았고, 움직이지도 않았다. 그냥 소파에 모로 누워 테레비나 봤다. 모로 누워 자다가 테레비보다가 끼니 때가 되면 마지 못해 일어나 엄마의 밥상을 차렸다. 나는 말도 하기가 싫었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엄마는 엄마의 집 안에서도 나로부터 방치된 것 처럼 보였다.  엄마는 불평하지 않으셨다. 그냥 작아지고 약해지고 있을 뿐이다.  동료교수가 내 센터에 전시 해 놓은 엄마의 작품을 하도 좋아해서, 그것을 선물로 줬다는 얘기가 엄마를 기쁘시게 했다. 아마 그것이 가장 기쁜 선물이 되었을 것이다. 

 

예배에 가기 위하여 일요일 아침에 돌아왔지만, 나는 예배에도 가지 않았다. 하루종일 소파에 모로 누워서 티브이를 보다가 자다가 했다. 선풍기는 온종일, 밤새도록 내 발치를 지켰다. 남편이 내가 좋아할 만한 먹을거리로 세끼를 챙겨주었다.  집안은 TV소리외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말이 없었고,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은 짜증섞인 '더워서 못살겠다. 살수가 없어.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아. 나를 그냥 가만히 내버려둬' 뭐 이런 것들이 변주될 뿐이었다.  남편은 혼자서 산책을 나간다. 전에 내가 신나게 다니던 산책로를 이제 남편이 혼자 돌아다니고, 나는 꼼짝도 하지 않는다. 내 몸이 내 몸 같지 않다. 뭔가 내가 남 같다. 이건 내가 아니야, 이런 느낌. 

 

오늘 학교에 와서 한 첫번째 일은, 기도 명상 음악을 틀어놓고 앉아서 '하나님, 제게 제발 힘을 주세요.제가 고장난 인형처럼 꼼짝도 안해요.제발 저를 일으켜주세요.' 이런 기도였다.

 

그리고 벌떡일어나 인근 지역의 '피부과'를  검색했다. 얼굴에 사마귀 같은게 자라나는게 계속 신경이 쓰이는데 이마에 한개, 뺨에 두개가 작은 여드름처럼 뾰로지처럼 솟아 올라와서 처음에는 여드림인줄 알고 짜내려고 했는데 짜지지 않았다. 사마귀 같은건가보다. 이 얼굴의 사마귀 같이 생긴 것은 일년 넘게 나의 신경을 긁고 있었다.  마침에 용단을 내렸다. 내가 자주 가는 건물에 피부과가 있다길래, 검색해서 나온 그 피부과에 전화를 걸었다. 드디어 이번 주 중에 그 사마귀들을 제거할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이 아무것도 아닌 일을 나는 일년넘게 질질 끌고 용단을 못내리고 있었다.) 상담원이 레이저로 사마귀같은거 제거하는데 한개당 11,000원이라고 별일 아니라는 식으로 내게 이야기를 해 줬다. 어쨌건 전문의가 검진하고 상담하고, 간단한 것이면 그자리에서 제거가 가능하다고.  기분이 제법 좋아진다. (나는 학교에 일단 오면 사람처럼 움직인다.).

 

나에게 한가지 '소망'이 생겼다. 조만간 이사를 하는 것이다. 내가 일년 넘게 미루고 있던 일이 있다. 집을 팔고 집을 사는 일이다. 나는 오랫동안 갖고 있던 집을 팔고, 그리고 인근에 집을 사려고 생각한다. 바다가 보이는 집을 살 것이다.  베란다에 화단을 만들어서 남편에게 선물할 것이다. 갖고 있는 집을 팔고 인근에 집을 사는 일은 실행에 옮기기에 어려워 보이지 않는다. 단지 내가 게을러서 안하고 있었을 뿐이다.  남편이 좋아하는 산책로 인근의 집을 살 것이다. 바다를 내다보고, 숲을 내려다보고, 사람들이 행복하게 산책하는 광경이 보이는 곳에.  그리고 아주 예쁘고 편안한 소파를 하나 사서 내 전용 소파로 사용할것이다. 남편에게도 전용 소파를 사 줄것이다.  큰 침실에서 남편이 편안히 휴식을 취하게 하겠다. 그리고 각자 방 하나씩을 갖고 내 방은 내 취향대로, 남편은 남편 취향대로 그 방을 사용하도록 할 것이다. 

 

 

부엌을 최신 설비로 채울것이다. 가능하면 부엌 중앙에 아일랜드와 개수대 등을 설치하여 부엌일이 즐거운 일이 되도록 할 것이다.  여름에 아들네 집에 살때, 그집 부엌이 참 좋았다. 넓은 부엌의 중앙 아일랜드에서 온가족이 모여서서 요리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웃고 그랬다. 그게 가능한 집이었다. 거기서는 부엌일이 전혀 힘들지 않았다. 즐거운 행사였다.  나도 우리 아들네 부엌같이 행복한 부엌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아지고 몸이 따뜻해진다. 덥지 않고 따뜻하다.  

 

사랑하는 하나님,  주님께서 주신 안락한 집에서 거의 8년 가까이 편안하게 지내오고 있습니다. 하나님, 이제 저희가 이 '기숙사'를 벗어나 '집'으로 가려는 소망을 품었습니다.  나그네처럼 떠도는 지상에서의 삶이오나, 너무 오랫동안 나그네처럼 살아온 삶에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쳤습니다.  20년 넘게 떠돌았으니, 이제 단 몇년이라도 내 집으로 머물러서 살 곳을 찾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하나님, 저에게 새로운 터를 주시고 그곳을 축복으로 채워주십시오.  매일 숲과 바다를 내다보며 기도하게 해 주십시오.  이것이 저의 소망이오나, 그보다 더 나은것을 계획하심이면 주님 뜻대로 하옵시고, 언제나 감사기도를 드리게 인도하소서. 

 

 

집에서 올때 커다란 타이레놀 한병을 갖고 왔다. 두통이 심할때 먹으려고. 오늘 아침에 한알 먹으려고 했지만, 지금은 타이레놀을 먹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즐거운 상상 때문일까?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3. 9. 2. 17:27

 

기운을 차리고, 텅빈 주말의 학교에 와서 라디오 틀어놓고 밀린 일들을 처리하다가, 나의 음악회 예매 내역을 확인해보고 근래에 업데이트 된 공연 한가지를 새로 추가하였다.  첼리스트 다니엘 뮐러 쇼트가 바흐의 무반주 모음곡을 가지고 송도에 온다.  내가 악기중에 제일 좋아하는 '첼로.'  만져본 적도 없고, 그냥 듣기를 좋아하는 악기이다. 가을에 잘 어울리겠다. 

 

 

내가 내 계정에 들어가서 예매 내역을 살펴보니, 모두 연초에 사 놓은 것들이다. 그 때, 예매를 하면서도 과연 내가 이 연주회들을 모두 가 볼 수 있을까? 안심할 수 없었다.  봄에는 그럭저럭 모두 가서 볼 수 있었다.  가을엔 어떨까? 불투명했는데, 최근에 담당 의사로부터 경과가 좋다는 말씀을 들었다. 6개월 후에 다시 검사를 받을 것이다. 그러니까, 가을 한철도 나는 음악회를 가 볼 수 있을 것이다. 안도가 되어서 - 다시 업데이트 된 각종 공연중에서 내 스케줄에 부합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다시 예매하기 시작한다. 음악회 예매를 해 놓고, 별 문제없이 그 음악회들을 섭렵할 수 있는 여건과 건강이 허락된다면 인생은 그 자체가 천국의 일상이다. 

 

 

다니엘 뮐러 쇼트라는 사람의 프로필 사진을 보면 아마도 미남축에 끼는것 같다. 옛날 같으면 나는 잘생긴 그의 용모도 마음에 들고 그래서 열심히 그의 배경을 검색해보고 여러가지 정보를 모았을 것이다. 지금 나는 그에게 별 관심이 없다. 그냥 저런 사람이 바흐를 연주하나보다 하고 생각한다.  바흐의 무반주 첼로 조곡은 주로 카잘스나 로스트로포비치가 연주한 씨디로 들었다. 미샤마이스키의 연주 음반도 있었는데, 일단 거장들이 내 귀에 들어온 후에는 미샤마이스키를 꺼내 듣지 않게 되었다. 내게 바흐의 무반주 첼로조곡은 파블로 카잘스 또든  로스트로포비치이다. 다니엘 뮐러 쇼트가 이 거장들의 소리에 익숙한 나를 기쁘게 해 줄수 있을까?  안될걸. 아무도 그 위대한 할아버지들을 능가할 수는 없을걸? 뭐 혼자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보는 것이 즐겁다. 괜챦아, 거장들만큼 깊지 않아도 괜챦다. 진지하게 연주만 해달라. 그러면 된다. 

 

 

* 내가 노인이 되어간다는 것을 실감할 때: 전에는 미소년이나 미남이 눈에 들어왔는데, 지금은 잘생긴것에 관심이 없어진다. 모든 인간은 나름 아름답다. 특별히 잘생긴 사람은 없다. 모두 하나하나 매력적이고 아름답다 - 이러한 것을 최근에 알게 되었다.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3. 9. 1. 08:53

어제 저녁에는 아트센터송도에서 열린 [직장인을 위한 퇴근길 콘서트] 공연을 다녀왔다.  나는 이따금 공연 일정이 업데이트 되는 것을 확인하고, 앞서서 티켓을 사 놓곤 하는데, 지난 봄에 이미 이 표를 사 놓았던 모양이다. 공연 문자가 와서 '표 값을 냈으니 가보자'고 그냥 아무 생각없이 나섰다. 무슨 공연인지 확인도 안했던 것인데 - 주제가 '라틴 음악' 이었다. 라틴 재즈가 주를 이룰것으로 짐작했다.

 

나쁘지 않았다. 일단 팜플렛에 소개도 되 있지 않았던, 서울 음대 출신 바리톤 가수가 '닐리 맘보'를 불러줬는데 - '아 저것은 내가 기타로 연주하던 그 마리아 엘레나구나!' 하면서 25년전 내가 한창 클래식기타를 연주할때 악보를 보면서 연습했던 그 마리아 엘레나를 떠올렸고, 그 시절을 떠올렸고. 그리고 생각했다, "오늘 이 마리아 엘레나를 저 바리톤 가수가 불러준것 - 그것만으로도 표 값은 톡톡히 받아냈다. 나머지는 아무래도 좋다" 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이 문제였다. 나머지는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했던 그것. 

 

나머지도 좋았다. 그러나 나는 피곤했다. 지휘자가 작두를 탄 만신처럼 혼자 굿을 해 대는 통에, 출연가수들이나 연주자들을 모두 잡아먹는 무대였다. 지휘자 혼자 미쳐 날뛰는 통에, 주위에 있던 가수, 연주자들이 빛을 잃은 이상한 무대. 나중에 집에 돌아와 '도대체 그 사람 뭐지?' 싶어서 검색을 해보니 천재라고 알려진 사람이다. 마치 '내 생일 잔치에 와서 정말 고마워, 한 상 잘 차렸으니 잘 놀가가기 바래' 하고 학예회 하듯이 혼자 굿하고 노래부르고 춤추고 난리를 치던 그 지휘자. 내가 보아왔던 지휘자 중에 '최악'이다.  연주자들의 빛을 다 꺼버리는 사람. 혼자서만 빛나는 사람. 혼자서 빛나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의 빛과 기운을 모두 빨아들이고 혼자 발산하는 사람. 다시 보고 싶지 않은 지휘자다.

 

그래도 인내심을 발휘하여 끝날때까지 기다렸다. 그들이 무대인사를 마치고, 내가 나오는데 문을 지키던 안내직원이 소근소근 물었다, "앙콜 공연 있는데 안보고 가세요?" 나는 슬픈 표정으로 대꾸했다, "앙콜을 꼭 봐야해요?" 직원은 말없이 문을 열어주었다.

 

....

공연 관람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공연자에 대학 악평만 남기는 것은 매우 무례하고 사악한 행동이라는 마음의 소리가 들려온다.  그래서, 화단의 식물들을 다듬다 말고 뭔가 개선 방향을 생각해보기로 한다.

 

그 지휘자는 천재로 알려져 있고, 한국의 공연 예술 발전을 위해서 열정적으로 일하는 예술가이다. 나는 사전에 그 사람에 대한 아무런 정보 없이, 편견 없이, 기대 없이 '무지한' 상태로 공연을 관람했으므로 - 나의 시각은 내 개인의 주관과 그리고 철저히 무관심한 제 3자의 객관성을 띄고 있다는 점을 명시하고, 내가 생각하는 그 공연자의 발전방향은

 

 

 

1. 그 사람은 지휘자로 무대위에 섰을때, 자신을 드러나 보이지 않게 하려는 노력을 해 보면 좋을것이다.  무슨 말씀인가하면 - 어차피 지휘자가 공연을 이끌어간다. 지휘자가 아무말도 안해도, 관객을 쳐다보지 않아도, 어치피 처음부터 끝까지 지휘자가 무대와 객석을 이끌어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타에요, 제발 나를 봐줘요!'라고 외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러지좀 말라. 피곤하다. 유치원 학예회에 나온 어린애가 '제발 나만 쳐다보고 내게 박수쳐주세요' 하는듯한 행동을 멈추라. 당신은 가만히 있어도 빛난다. 미니멀리즘이나 선불교적 절제를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중간만 하라. 나를 보이지 않게 하라. 그러면 나는 더욱 돋보일 것이다. 

 

 

2. 베싸메 무쵸를 출연 남자가수와 함께 불렀다. 거기 노래를 업으로 삼는 여자가수가 이미 둘이 서 있었는데도, 남자가수는 '지휘자님'과 함께 베싸메무쵸를 부르고 싶다고 했고, 지휘자는 가창력 돋보이는 음색과 그에 걸맞는 요란한 자태로 베싸메무쵸를 불렀다. 무대를 들었다 놨다 하는 공연이었다. 그런데 잠깐...여기서 생각을 해보자. 나는 그 공연이 해괴하게 여겨졌다. 세상에 '키쓰해줘! 키쓰해줘!' 하고 지랄 난동 발광을 하는 어떤 여자가 있다면 - 상대는 정말 그 여자에게 키쓰하고 싶어질까? 난 그 키스해달라고 지랄 난동을 부리는 그 여자로부터 혹은 남자로부터 멀리 멀리 저 멀리 도망을 가고 다시는 쳐다보지 않을것 같다.  당신들은 지금 베싸메무쵸 노래에 무슨 짓을 저지르고 있는건가?  이것이 과연 새로운 곡 해석인가?  키쓰의 재해석인가 노래의 재해석인가? 아무튼 당신들은 키스의 달콤함과 은밀함 그리고 농염함에 똥을 퍼 부어댔다.  참 해괴한 무대였다. 곽객모독이라는 연극이 옛날에 있었는데 - 나는 그 연극 제목이 생각났다.  지휘자가 노래도 천재적으로 잘하는 사람이면, 그러면 가수를 하시던가.  아니면 지휘만 하시던가. 혼자서도 다 잘해낼것 같지?  아니... 뭔가 엉망진창 잡탕밥을 막 집어 던지는것 같았다. 그냥 한가지만 하시라.  그러면 더 빛나실 것이다. 이게 뭐 술자리도 아니고, 노래부르고 춤추고 장단 맞추고, 그러지 않는 것이 오히려 좋을 것이다. 

 

3. 무대에서 객석을 향해 하는 말이 너무 잡다하고 무례했다. '지금 몇시죠? 우리 이거 시간 안채우면 기획자가 뭐라고 그래요. 우리 어떻게 시간을 끌어야 할텐데요.'  --- 지휘자가 이런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끌때, 나는 간절히 바랬다, "그냥 시간 끌지 말고 빨리 끝내줘. 예의상 끝나길 기다리는 것 뿐이야."  참 무례했다. 관객이 마치 자기네 서울대학교 동문회에서 만난 가까운 친구나 후배인것처럼 행동하던 그 사람. 안하무인 천진난만 재기발랄.  아마 이런것이 한국의 음악계에 유포된 미신적으로 알려진 어떤 천재성의 특징인지도 모르겠다.  아직 젊으신 분이므로, 전도양양한 인재이므로 약간만 개선하시면 앞으로 주욱 발전하실 것이다. 발전하시길 빈다. 

 

 

이 무대를 보면서 나 역시 자성을 많이 했다. 내가 공인으로 다른 사람들 앞에 섰을때, 나는 어떻게 행동하는가? 내가 수업을 이끌때 학생들 앞에서 나는 어떤 지휘자인가. 나는 좋은 지휘자인가?  이런 문제들을 생각했다. 

  1.  나는 나의 '언어'를 매우 주의하겠다. 말 실수를 안하려면, 말을 조금만, 꼭 필요한 말만 하는 것이 좋겠고, 내가 사용하는 모든 단어에 대하여 세심하게 주의를 해야 한다. 
  2. 몸가짐 (옷 매무새와 서있는 자세, 말하는 자세) 이런 것들을 거울을 보고 세심하게 주의해야 한다. 너무 튀지 말아야 하고, 안정적이어야 하고, 그리고 겸손하면서 당당한 자세가 좋다. (이게 어렵지).
  3. 말은  짧게, 행동은 눈에 띄지 않게, 절제해야 한다.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3. 9. 1. 08:41

내 삶에서 반복되던 그 기분 나쁜 꿈이 돌아왔다. 아무래도 내가 기도가 부족한가보다. 

 

아주 오랫동안 잊을만하면 내게 나타나는 기분 나쁜 꿈이 한가지 있다. 늘 상황은 똑같다. 어떤 이유에선지 나는 어떤 알수 없는 사람을 이미 살해했고, 그 시신을 집안에 꼭꼭 숨겼으며, 그 시신이 부패하여 사라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저벅저벅 누군가가 다가오고 - 나는 이제 그들이 아직 사라지지 않은 그 시신을 찾아내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불안하다. 그리고 잠에서 깨어난다. 

 

'누구나 벽장속에 해골을 감추고 있다 (Everybody has a skeleton in the closet)'라는 속담처럼, 나도 집안 어딘가에 내가 살해한 시신을 감추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저런 속담이 있는 것을 보면 - 이런 나의 악몽은 인류의 원형질과 맥을 함께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누구에게나 감추고 싶은 비밀, 치부 뭐 그런것이 한두가지 쯤은 있겠지. 

 

이 악몽은 최근 수년간 나를 찾아오지 않았다. 아마도 내가 기도 생활을 성실하게 하고, 하루하루를 거룩하게 살기 위해 노력하는 동안 - 내 영혼이 평안하였던 모양이다. 새벽에 이 악몽이 다시 나를 찾아왔다. 내 기력이 약해져서 불안이 내 영혼을 다시 잠식하려는 모양이다.  해답은 - 깊이 깊이 기도하는 시간을 되찾아야 한다는 것이리라.  약해진 몸에 영양제를 주입하고, 몸에 좋은 음식들을 먹이듯 - 약해진 내 영혼에도 밥을 먹여야 한다. 기도가 답이다.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3. 8. 31. 09:48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해를 두려워 하지 않음은 주님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함이나이다...'

 

내 영혼의 불이 다 꺼지고 내가 깊은 우물속으로 깊이 깊이 빠져들어갈때 - 나는 깨우는 장치들이 있다는 것을 나는 최근 발견하게 되었다.  그것은 예고없이 갑자기 울리는 다급한 전화벨소리, 혹은 예고없이 들이닥치는 업무회의.

 

며칠전에도 나는 죽어가고 있었다. 내 영혼이 깊이 깊이 나락으로 빠져들어 나는 숨을 쉴 수도 없었다. 물론 숨을 쉬고 있었지만 내 영혼이 숨을 쉬지 못하고 있는것 같았다. 나는 꼼짝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집요하게 전화가 울려댔다.  나는 대체로 전화를 받지 않고, 내게 전화를 거는 이들은 그것이 로봇이 거는 피싱전화이거나 광고전화이거나 혹은 가까운 사람들의 전화이거나 간에 내가 대여섯차례 벨이 울려도 받지 않으면 더이상 나를 괴롭히지 않는 편인데, 그날은 집요하게 계속해서 전화가 울려댔다. 끊었다 다시 걸고 끊었다 다시 걸고를 반복했다.  그렇게 한참동안 내 전화를 울려대던 그이는 마침내 내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님, 저 *** 인데요. 전화 통화 가능하실까요?"   그는 아마도 내가 '모르는 전화'라서 수신을 안한다고 상상했던 듯 하다.  물론 내 전화에 그의 번호가 등록되어 있어서 나는 그가 전화를 걸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단지 대답하기 싫어서 응대하지 않았던 것인데 - 그는 지속적인 전화와 문자메시지로 나를 불러대고 있었다. 엔간히 급한 일인가보다.  나는 마지못해 진땀을 닦으며 그에게 전화를 걸어준다.  내용은, 예상했던 것보다 별것이 아니었다. 어쩌면 내게는 별것도 아닌 것이지만 그에게는 매우 중대한 일일 수도 있으리라. 아마도 그러했을 것이다. 

 

그의 소원수리를 해주기 위해서 나는 컴퓨터를 켜고 들어가서 간단한 작업을 해야 했는데 - 그러다가 문득 내 영혼에 불이 켜졌다. 어둠속에서 성냥불 하나가 켜지면 그게 꽤 밝아진다. 어둠속에서 순간 성냥불하나가 켜진것처럼, 문득 내 영혼에 불이 들어왔다. '모두들 지금 생존하기 위해서 열심히 움직이고 있다구!  너는 지금 누워서 뭘 하고 있는거야 사지가 멀쩡해가지고는. 어서 일어나지 그래!'  -- 누군가 내 엉덩이를 걷어차며 나를 흔들어 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그날 나는 벌떡 일어나서 진땀을 내며 책상앞에 앉아 밀린 일들을 해 치웠다. 오랫만에 수직으로 일어나서 (주로 수평으로 누워있었으니까) 작업을 하니 그동안 누워있던 것이 효과가 있었던 듯 짧은 시간안에 매우 효과적으로 일들을 해치웠다.  물론 그러고나서 다시 시체처럼 누워 지내야 했지만 말이다.

 

어제도 오후 한시에 책상앞에 앉아서 노닥거리고 있을때, 내 프로젝트를 관리해주는 스태프님이 예고도 없이 내 연구실에 들이닥쳤다. 대개는 방문 직전에 "지금 시간 되세요? 미팅 하시죠"라는 문자라도 주곤 했는데 어제 그는 이런 짧은 메시지도 없이 그냥 들이닥쳤다. 예전에 그런 적이 한번도 없었는데 말이다. "뭔가 일이 생기신것 같아서 그냥 와 봤어요"가 그의 설명이었다.  그냥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것 같았다고.  그와 앉아서 미루고 있었던 일들에 대한 논의를 했다. 내가 해야 하지만 하기 싫어서 결정을 미루고 미적거리고 있었던 일들. 그 안건들을 가지고 그가 들이닥쳤다. "힘드시면 취소하셔도 될것 같은데요..."그의 배려심 가득한 한마디가 내게 용기를 줬다. "그래도 하겠다고 약속한 일이니까, 해야지요. 지금 스케줄 잡읍시다."  우리는 아주 짧은 시간에 큼직큼직한 것들을 결정하고 스케줄을 세웠다. 그와 사업 얘기를 하다보니 - 내가 정신이 제자리로 돌아온다. 누군가 깊은 우물속에 '오필리어처럼 누워있던' 내 영혼을 끄집어 내는것 같았다. 

 

그와의 미팅을 마치니, 지금 내가 서둘러서 일을 해야 한다는 각성이 일면서 뿌옇던 머릿속 안개가 조금씩 걷히는 듯 했다.

 

어제 오후에 아주 짧은 시간에 나는 또 많은 중대한 일들을 해치우고, 밀렸던 메시지들을 소화해 냈다.  그리고 모처럼, 저녁을 근처 한정식집에가서 외식으로 했다. 오랫만에 이런저런 반찬과 뜨거운 돌솥밥을 맛있게 해치웠다. 숭늉까지도 아주 달게 먹었다. 식사를 마친 후에는 홈플러스에 들러서 계란과 식료품들을 사고, 나오는 길에 - 바카스를 한 상자 샀다. 나는 평소에 박카스나 그런 드링크를 안먹는다. 바카스는 어쩐지 공무원들이나 시골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건설 노동자들이 먹는 것이라는 해괴한 상상을 품고 살아왔기 때문에 그것은 어딘가 내게는 금단의 영역이었었다. (내가 위의 직업군에 어떤 편견이 있는 것은 아니다. 옛날에 우리 엄마가 동사무소에 뭔가 서류 떼러 갈때면, '와이로'로 바카스 그런거 한상자 사들고 갔던 것이 머리에 박혀 있어서 그럴뿐이다. 하하하)  그런데 진열대에서 바카스를 발견한 나는 손을 뻗어 그것 한상자를 카트에 담았다. "여기 구론산도 있고, 여기 이것은 1+1 행사인데, 이건 어때?" 남편이 옆에서 나를 약간 비웃으며 거들었다. 남편도 바카스나 그런 미신적인 음료수는 입에도 대지 않는 사람이다. 우리는 그런 것들이 모두 카페인 덩어리라는 미신적 편견을 갖고 있다. 

 

나는 나를 비웃듯, 조롱하듯, 구론산이니 뭐니를 가리키는 남편에게 정색을 하고 - 노려보며 - 신경질적으로 - 진지하게 말했다. "내가 지금 농담할 기분인 줄 알어? 난 지금 이거라도 먹고 이 무거운 우울증에서 벗어나고 싶은거라구! 내가 술을 해? 담배를 해? 커피도 안마시쟎아. 이 우울증에서 벗어날 뭔가 조력장치가 필요하단 말야. 난 이 바카스의 도움이라도 받고 싶다구!" 

 

사람들이 아마도 그래서 술이나, 프로포폴이나 환각제 뭐 그런 것에 빠져드는 거겠지? 하지만, 나는 거기까지는 가지 않을거야. 왜냐하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가 그것을 내게 허락하지 않으실거니까. 그 전에 나를 치유해주실거니까. 내게는 아버지가 계시다구... 나보다 더 많이 한숨지으실 내 아버지가. 

 

오늘 아침은 어제보다 낫다. 기적적으로 아침 여덟시부터 학교에 나와 앉아있다. 집에서 나올때 바카스 몇병을 챙겨 나왔다. 학교에 오자마자 청소를 하고 바카스 한병을 마셨다.  뭔가 기분이 좋아지는것도 같고. 하하하. 

 

어둠속에 벨이 울릴때 - 누군가가 우울의 늪에서 나를 건져내기 위해 전화를 하거나 예고 없이 들이닥칠때, 나는 우리 하나님께서 나를 살리시려고 고민고민하시다가 저 사람을 내게 보내셨구나 하고 알아차린다. 나는 우리 하나님이 나를 항상 돌보시고 계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누군가 지금도 나를 위해서 기도를 하고 있을 것이다.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