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Walking2016. 7. 27. 01:17


내가 하루 50킬로 장거리에 걷기에 신고 나간 신발은 KEEN Whisper Sandal 이다. 5년 가까이 이 샌들을 봄 여름에 가볍게 걸으러 나갈때 신은것 같다.  그러니까 10마일 (16킬로미터) 정도는 이 샌들을 신고,  장거리 15-20마일 갈때는 여름에도 발목까지 감싸는 하이킹화를 신었다. 이것이 두켤레째인데 작년 겨울에 아마존에서 싸게 사서 (겨울에 여름제품 산거니까 그냥 떨이값에) 잘 보관하다가 올 여름에 꺼내 신었다.


처음에 집 근처 대략 10마일 안팎 걸을때는  맨발로 신었는데 (샌들이니까), 그래도 자질구레하게 발에 상처가 났다. 뒷꿈치에 물집이 생긴다거나 이러한.  내가 가볍게 걷는다해도 10킬로미터 정도를 걷는거니까.  그렇다고 더운 여름에 발목 하이킹화를 신기도 덥고, 그래서 내가 생각해 낸 것이, 발등만 가리는 양말을 신고 그 위에 샌들을 신는 것이다.  양말을 신으니 발 피부는 보호를 받고, 샌들의 통기성은 그대로 유지를 하고.  이렇게 걸으니 자질구레한 발 피부 상처 문제가 사라졌다.  발도 시원하고. 


일년에 한번만 해도 영광인 50킬로 대장정을 할까 말까 어쩔까, 그냥 별 준비도 없이 걸으러 나가면서 역시나 양말신고-샌들신고를 선택했다. 걷다가 발 아프면 그냥 오지 뭐, 이런 심산으로. 


그런데 이러한 방법이 내겐 매우 효과적이었다. 걷는 내내 발이 아주 편했다. 마지막 5마일 걸을때는, 아무래도 발이 붓고 피곤하니까, 양말도 벗어버리고 그냥 샌들만 가볍게 신고 걸었다.  킨-샌들. 합격 (two thumbs up!) 


하여, 장거리 워킹을 '조금'하는 경험자 입장에서 내가 추천하는 '발' 관리 및 신발 선택 방향은,

(1) 평소에 내 발을 잘 관찰하면 오른발, 왼발 따로따로 취약점이 있음을 알게된다. 가령 내 발은 왼발 네번째 발가락의 살이 유난히 통통해서인지 옆발가락과 마찰이 일어나면서 물집이 생기곤 한다. 장거리 걸으면 영락없다. 그래서 걸으러 나가기 전에 그 부분에 부드러운 밴드를 붙여준다. 그러면 아무런 문제도 생기지 않는다.  이렇듯 자신의 발의 섬세하고 연약한 어떤 부위가 있어서 습관적으로 그 부위에 물집이 생긴다 싶으면, 걷기 전에 문제의 부분에 부드러운 밴드를 겹쳐 붙여서 사전에 조치를 취해준다. 


(2) 신발은 전쟁터에 나가는 병사의 무기와 같다. 좋은걸 사 신는다. 내 발에 편안하고, 발이 부어도 발가락이 자유롭게 움직일수 있는 넉넉한 사이즈로. 끈을 조일수 있는 구조로 (좀 넉넉한 사이즈로 사서 끈으로 적당히 조여주면 된다).  여름 장거리 평지 워킹에 (등산이 아닌 평탄한 트레일 수준) 킨-샌들 같은 아웃도어 샌들이 제법 믿을만 하다. 그래도 섬세한 발 피부 보호를 위해서는 양말을 신어주고 그 위에 샌들을 신어도 아주 좋다.  샌들은 다른 사람들이 사용해보고 추천하는 것이 안전할 것이다.  가벼운 하이킹이나 장거리 워킹에 적합한.  내가 사용한 것으로는 킨 샌들이 듬직하다. 그러나 반드시 킨 샌들만 좋은것은 아니다. 7년 전에는 끈 가느다란 (시내 돌아다니는 용도의 날렵한) 나이키 샌들을 신고 바위가 뒤섞인 트레일을 아무 생각없이 다녀온 적도 있다. 그래도 발은 무사했다. 그냥 뭐 튼튼한 것을 추천한다 (걷는데 샌들 끈이 끊어진다거나 이런 불행한 사태가 나면 안되니까.)


(3) 나는 걸으러 나갔다 오면 '자동'으로 플라스틱 통에 물 받아다가 족욕을 한다. 그게 너무 즐거워서 -- 마치, 족욕을 하기 위해 땀 뻘뻘 흘리며 걸으러 나간것도 같다.  족욕은 즐겁다. 지상 낙원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다. 플라스틱 물통에 발 담그고 앉아서 비누칠하고 비누칠하고 비누칠하고 발 여기저기 닦아주고 또 비누칠하고...참...즐거운 인생이다. (뭐 수천만원 들여서 창녀를 불러다가 짧게 재미보고 길게 사회적 망신을 산단 말인가. 그냥 물통에 물 받아다가 비누칠 놀이만 해도 파라다이스인데. 참, 이 재미를 모르다니. 안타까운 일이다.)





Posted by Lee Eunmee
Diary/Walking2016. 7. 26. 20:59



어제 2016년 7월 25일, 하루에 50킬로미터 걷기를 시행하여 결과적으로 53 킬로미터를 약 13시간에 걸쳐 마무리를 하게 된 쾌거!를 기념하는 사진 몇장.


새벽 5시 10분 버크 호수.  아직 해가 뜨기 전이라 컴컴했다(무보정).  하늘이 보이는 호숫가도 이렇게 어두우니 여기서 나무 울창한 숲길로 들어서면 눈앞이 잘 안보인다.  그래도 조심조심 걷다보면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고, 작은 돌멩이가 덮인 길이 '희게' 빛난다.   그래서 노래 '이루어질수 없는 사랑'에서 '밤새워 하얀 길을 나 홀로 걸었었다....' 이 가사가 경험자에 의해 씌어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군. 달이 없는 밤이라도 대체로 길은 하얗게 보인다 (모래알갱이나 돌멩이들이 덮여 있을때). 희게 빛나는 길에 의지해서 더듬 더듬 걷다보면 날이 밝아온다.  참 신비로운 경험이다.  어둠속에 혼자 있을 때, 하느님과 가까워진다. 무서우니까 하느님 손을 꼭 잡게 되는 것이다. 







버크 호수 걷기 노선중에서 내가 '호수 요정이 숨겨 놓은 길'로 부르는 좁다란 오솔길.  바로 옆에서 호수가 찰랑거리고, 어릴적 논둑길, 밭둑길 같은 그런 아주 좁다란 길이 잠깐 이어지는 곳이 있다.  총 여섯바퀴를 도는 동안 노선을 이리저리, 방향도 이방향 저방향 바꾸면서 걸었는데 이 요정의 길은 다섯번 지나쳤다.  지나칠때마다 행복하다.  요정의 길이니까. 








이 빵 사진에 대한 정확한 기술을 위해서, 어제 아이폰 메모장에 썼던 기록을 가져와 보았다.  (최종 편집이 오늘 아침 시각으로 되어 있는 이유는 마지막 떠난 기록까지만 되어 있고, 마친 시각을 기록을 안해놔서 그걸 마저 적고 총 시간을 적었기 때문이다. ) 이 기록이 한뼘안에 들어가는 짧은 것이지만, 난 이걸 적기 위해 13시간 가까이 거북이 놀이를 해야 했다. 


기록을 보면 1-2-3 까지는 시간이 점점 단축된다.  그러니까 한바퀴에 오마일여 (오마일 조금 넘음)를 걷는것인데 90분 -- 85분 --80분으로 줄어든다. 그 전날 밤에 열대야 때문인지 두시간만에 잠에서 깨어 뜬눈으로 보내고, 잠도 안오니까 홧김에 새벽에 길을 나섰기때문에 처음에는 길도 어둡고, 몸도 무겁고, 그냥 터벅터벅. 두번째 돌때는 꾸벅꾸벅 졸기까지 했다.  두번째 돌고나서, 차에서 쉬다가 잠깐 잠이 들었다. 아주 잠깐, 한 20분쯤 푹 잠을 잔것 같다.  그런데 그 잠이 꿀잠이었던 것 같다. 세바퀴 돌때는 내 발에 날개가 달린듯 가볍고, 몸도 가벼웠다. 


세바퀴 돌았으니 목적한 거리의 절반을 수행해 낸 것이다. 그 때부터 반환점에 들어선 셈인데 몸도 슬슬 지치기 시작한다. 벌써 25킬로를 걸은거라구, 당연히 지치지.  그래서 속도가 떨어지기 시작한다.  네번째 돌때는, 배가 고팠다.  배가 쓰린듯 고팠다. 고통스럽게 여겨졌다. 나는 먹을것을 챙겨오지 않은것이다.  새벽에 가게에 들를수도 없고, 그냥 나온건데 이렇게 걸을줄 몰랐지.  네바퀴 돌고나서 나는 이렇게 적었다.  '배고프고 지친다. 먹을게 아무것도 없다.'  


별 생각없이 나왔으니 그냥 이쯤에서 집으로 가야 된다.  그런데, 내 내부에서 더 가고자 하는 의지가 어떤 의지 같은것이 솟아올랐다.  나 지금 잘 걷고 있어.  오늘 50킬로 걸을수 있을것 같아. 벌써 2/3를 마쳤다구. 이제 10마일만 더 가면 돼.  



빵의 기적 



나는 주차장의 내 차 주위를 살폈다.  하이틴으로 보이는 남녀 학생들 몇명이 차 트렁크 쪽을 열어 놓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열린 트렁크로 아이스박스가 보였다.  소풍 나왔을것이다. 소풍 나왔으니 먹을것을 챙겨 왔을 것이다.  가서 뭔가 먹을것을 구해 와야지.  내가 다가가서 (지친, 노브라, 노화장, 시커먼 오십대 아시안계 남루한 아줌마의 형상), "Excuse me, you guys have anything to eat? I'm on my walking project now.  I have enough water but I am out of food. I need something to fill my stomach. Bread or muffin or anything."  여학생들은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뚜---한 표정으로 서 있는데, 키가 장대같이 크고 빼빼마른 전형적인 미국 남자 고등학생 녀석이 "Hey, I have bread in my car..." 하더니 바로 옆 차문을 열고 가방에서 '사라 리' 식빵 봉지를 꺼낸다.   그러더니 맨 위에서부터 식빵 네장을 꺼낸다. "It it enough?" 그는 나의 의향을 묻는다. 더 필요한지 이거면 되는지. "Oh, thank you, that's good.  I can pay you. I'm just out of food, nowhere to buy here."  내가 빵값을 내겠다고 하자 소년은 손사래를 치며 됐단다.  소녀들은 여전히 뚜--한 표정으로 빵을 구걸하는 나를 쳐다보고 서있고.  


그렇게 해서 얻은 빵이 저 사진속의 빵이다. 나는 나무그늘, 차에 앉아서 이 빵 네장을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맛있는 음식으로 먹어치웠다.  이 빵을 먹으면서 나는 알았다. 주기도문에 'Give us this day our daily bread'의 실체를. 내가 고통스러운정도로 배가 고플때, 무상으로 주어지는 딱 알맞은 만큼의 지상의 양식. 다른 무엇, 다른 어떤 가치도 이 빵을 이길수는 없는거지.  나는 '하느님'이 내게 보내신 빵을 먹으면서, 오늘 나의 프로젝트가 성공할 것임을 직감했다. 나는 결국 중도포기 하지 않고 이걸 해 낼거야.  (빵이 하늘에서 떨어져야만, 혹은 마법사의 모자에서 나오는 비둘기처럼 튀어나와야만 기적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평생 한번도 기적을 경험하지 못할것이다. 엉뚱한 곳에서 엉뚱한 것을 찾고 있으므로. 기적은, 그것이 거기에 있는 것이다.  내가 배가 고플때 먹을 음식이 있다면 그것이 기적이다.  구걸을 해서라도 음식을 마련한다면 은혜와 기적이 어우러진 것이다.  내가 배가 고픈데, 누군가  낯선이가 새로산 빵봉지에서 새 빵을 꺼내 몇장 준다면 은혜가 넘쳐 흐르는 일이다.  그게 하느님이 일부러 나를 위해 마련한 것이라고 믿어버리는 것은 나의 믿음의 방식이며 생존의 방식이다. 내가 용기를 내어 50킬로미터를 지옥같은 염천에 해 치우는게 가능했던 것은 -- 하느님의 빵을 먹었다는 확고한 믿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 








얼음의 기적 






빵을 먹고, 배고픈 것을 해결하고, 쉬고 다시 걷기에 도전하는데 숲길 입구쪽에 버려진 얼음덩이들.  아마도 피크닉 나왔던 사람이 아이스박스를 정리하면서 얼음덩이를 내버린 모양.  그래서 화끈거리는 발을 그 얼음덩이위에 얹고 냉찜질을 한참 하였다.  발이 훨씬 가벼워졌다.  나는 이것을 '얼음의 기적'이라고 부른다.  주님께서 염천에 내가 걷는 것을 염려하시어 길위에 얼음덩이를 뿌려 놓으시다.  얼음 버린 사람이야 자기가 뭘 하는지도 몰랐겠지만, 그건 글쎄 우리 하느님이 내 발 찜질해주시려고 그렇게 하신거라구.  



고난의 길 


이 길은, 약 200미터 이어진 호수의 뚝방 길이다. 호수의 물높이를 조절하기 위해 만든 뚝길 일 것이다. 볕 좋은 가을날 이 길을 산책하면 참 좋다.  탁 트이고 호수 전체를 내다 볼 수도 있고.  하지만 화씨 100도를 넘는 뜨끈뜨끈하고 쨍쨍한 날씨에 이 길은 한마디로 '튀김솥'이다. 장작이 이글거리는 아궁이 속에 던져진 것 같은 미치게 뜨거운,  사진은 더위가 한풀 꺾이 오후 4시반에 찍은 것이라 그나마 내가 '이제 살겠네' 하면서 여유가 생겨서 찍은 것이다. 한낮에는 이 길을 통과하는게 너무 무서워서 사진이고 뭐고... 그냥 통과하기에 바빴으니까.  여섯번 이 길을 통과한 중에서 한낮 세번 통과는 고통 그 자체였다. 땅에서, 하늘에서, 사방에서 불길이 훅훅 내게 오는것 같았으니까.  게다가 한낮에는 숲길 산책로에도 사람이 없었다.  날이 하도 뜨거우니까, 사람들이 호수 기슭에서 뱃놀이를 즐기거나 하는 정도였고, 산책로에, 낚시터에 사람이 안보였다.  그 큰 호숫간 숲길이 그냥 '무인천지'였다.   그런 뜨겁고 찌는 날을 택해서 나는 50킬로 장정을 나간 것이다. (낸들 알았나. 알았으면 안했겠지... 하지만 난 해냈다는 것이지.)


집에 와서 지삐한테, "지삐야, 엄마 오늘 50킬로 걷고 왔다. 너도 50킬로 걸어봤나?" 했더니, 지삐 왈, "군대에서 완전무장하고 70킬로 행군 해봤는데요..."  


50킬로미터를 걸었다.


내 영혼은 좀 가벼워졌는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열두시간도 넘는 그 행군하는 동안 하느님이 내 손을 꼭 잡고 계셨다는것을 시시각각 느꼈다.  서늘한 나무 그늘, 푸른 잎사귀들, 잔잔한 물결, 새소리, 내 주위를 에워싸는 모든 것 속에서 하느님이 웃고 계셨다. 



Posted by Lee Eunmee
Diary/Walking2016. 7. 26. 08:38



오늘 새벽에 나가서 32.92 마일 (53 킬로미터)를 걷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 (새벽 5시 10분에서 오후 6시까지 이어진 나홀로 장정).  원데이하이크 제한 시간이 오전 10시부터 자정까지, 14시간이고, 나는 12시간 50분 걸렸으니까 조금 느리지만 기준 시간 안에 제대로 해 낸 셈이다.  내가 갖고 있는 기록중에 가장 오래 걸리긴 했지만, 내가 이걸 해 낼수 있을거라는 생각을 못했었다.  잠도 설치고 거의 뜬눈으로 새다 시피하고, 잠이 안와서 새벽에 나갔던 것인데 -- 글쎄, 내가 이걸 해 내다니.  (아무래도 하느님이 개입하신 것 같다. 내가 딱해보이셨나... 너무 친절하신 하느님. 아멘.)


오늘은 죽은듯이 깊이, 오래 잘 수 있겠지.  사지가 뻣뻣할정도로 지쳤으니까. 



Posted by Lee Eunmee
Diary/Walking2016. 7. 25. 16:44




2011년, 2012년, 2013년 4월 마지막 토요일.  그날 내가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나는 기억한다.  일기나 지나간 블로그포스트를 찾아보지 않아도 나는 잘 안다.  



그 삼년간, 일년중 가장 날씨가 좋은, 부활의 계절 4월의 마지막 토요일마다 나는 포토맥 강변을 하루종일 걷고 있었다.  하루에 50킬로미터 걷기 행사.  2011, 2012년은 매클레인에 살때.  2013년은 메릴랜드 칼리지파크에 살때.  첫해 기록은 12시간쯤.  두번째 해 기록은 11시간쯤.  세번째 해 2013년에는 열시간 이내에 골인을 했다.  기록은 점점 좋아졌다. 이 행사를 성공 시키기 위해서 내가 한 사전 준비는, 20마일 (30킬로미터 안팎)거리를 사전에 두세번 걸어서 기초 근력을 확인하고, 확보하는 일이었다. 평소에 걷는 것은 말 할 나위도 없고.  



2012년 11월에 나의 왕눈이가 죽었다.  나의 왕눈이가 죽은 후 -- 아, 왕눈이의 죽음과 함께 무언가 내 삶에서 보이지 않는 불꽃 같은것이 빠져 나간걸까?  왕눈이가 죽은지 아직 만 4년도 안되었는데, 그 사이에 10년쯤 흐른것 같기도 하다. 왕눈아.  



2014년 봄. 치열한 경쟁을 뚫고, 그 행사에 등록을 했지만, 나는 장거리 워킹용 하이킹화를 사 놓기까지 해 놓고도, 그 걷기 행사에 가지 못했다.  내게서 불꽃이 빠져 나갔기 때문일것이다. 2015년 봄, 나는 50견에서 회복중이었고 내 몸은 녹 슨 고철 인형처럼 삐걱댔다.  하루에 50킬로미터를 걷는 일을 감히 엄두조차 낼 수 없었다.  올 해 봄, 물리적으로 나는 미국 밖에 있었거니와 설령 내가 미국에 있었다해도 상황은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나는 기운을 잃은 것처럼 보였다. 내 생애에서 하루에 50킬로미터를 걷는 일은 이제 요원하거나 불가능한 꿈이 된걸까?





하루 50킬로미터는 마일리지로는 31.1 마일쯤 된다.  31.1마일은, 내가 종종 나가서 걷는 버크 호수를 여섯바퀴 돌면 되는 거리이다. 2주쯤 전에 나는 왕복 16마일, 아코팅크 레이크 다녀오는 일을 별 일 없이 잘 해 냈다.  엊그제 버크 호수 세바퀴 도는 일을 잘 해 냈다.  과거에 비하면 걷는 속도는 현저히 떨어진 것 같은데, 느려진 속도 외에 다른 신체적 컨디션에는 별 무리가 없어 보인다. 대체적으로 신체가 노화 되었을 것이고, 그동안 운동도 부족해서 둔해진 측면도 있고, 이래저래 과거의 '영화'를 기대하기는 힘들어보인다.  그 몇년 사이에 평소 체중도 3킬로그램 정도 증가되었다. 나잇살일수도 있지만, 운동부족으로 인한 나잇살이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음.  나이탓을 하고 싶지는 않다. 평소 체중이 증가한것은 내가 그만큼 게을러졌다는 것일뿐. 



버크호수 세바퀴 돌은 기록으로, 그 두 배를 해 낼 수 있을까? 나는 자다 깨어 그 점을 곰곰 생각해본다. 



내가 조금 걱정이 드는 것은, '더위'가 한몫을 한다는 점이다.  며칠전 버크호수에 새벽에 나가 두바퀴를 걸은적이 있는데, 그날은 선선했다. 새벽날씨는 오슬오슬 서늘하기까지 했다. 약간 서늘한 날씨가 걷기에는 최고 좋다. 그래서 새벽에서 아침 나절까지 두바퀴 도는 일이 가뿐했다. 엊그제는 새벽에 나갔는데도 훅훅 더운 열기가 올라왔다. 찜통 더위였다. 새벽이슬조차 매달리지 않았고, 나무그늘에서도 시원한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두바퀴 돌았을 때 무척 지쳤고, 세바퀴째 돌때는 있는대로 게으름을 피우기까지 했다.  날씨가 조금 서늘하다면...50킬로미터를 도전해 볼 만도 한데...



올림픽 경기중에서 가장 근사한 종목은 '마라톤'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스포츠중에서 가장 신성한 것을 나는 마라톤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달리기를 잘 하지 못한다. 달리라고 하면 달리기는 하겠지만, 그 흔한 '조깅'조차도 나는 힘들게 여겨진다. 나는 그냥 달리기를 하는게 힘들고, 전혀 즐겁지 않다.  어릴때는 바람개비를 들고 들판을 뛰어 다니기도 한 것 같은데, 동네에서 저기 떨어져있는 전봇대까지 누가 먼저 달려가나 경주를 하면 나도 지는편보다는 이기는 편이었는데, 달리기는 내게는 무거운 운동이다.  나는 인간이 혼자서 42.195 킬로미터를 쉬지 않고 달릴수 있다는것이 경이롭게 여겨진다.  마라톤 선수들은 달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어떤 무시무시한 고통'을 견디고 있을거라는 상상을 하는 편이다.  숨이 차고, 가슴이 벅차고, 그냥 그대로 뛰던 다리를 멈추고, 팔을 늘어뜨리고 터벅터벅 걷고자 하는 '악마의 욕망'을 꾹꾹 눌러 참는 것이 아닐까, 그런 상상을 하게 된다.  내가 가장 존경하는 운동선수는 '마라톤 선수'이다. 



하지만 나는 달리기를 잘 하지 못한다. 달리기를 잘 하려는 욕구도 없다.  난 -- 걸으면 되니까.  난 내가 잘하는 것을 하면 된다. 나의 발과 나의 다리는 내가 아무리 멀리 걸어가도 내게 불평하지 않는다. 내 심장은 투덜대는 일 없이 평온하게 제 할일을 하며, 대체로 나는 평온하다.  조금씩 조금씩 지칠 뿐이지만, 지치면 지칠수록 내게 찾아오는 '평화'도 있다.  지칠수록 더 가까이 다가오는 평화.  그것의 정체를 나를 인간의 언어로 설명하기 힘들다.  신체의 언어로만 설명할수 있을 것이다. 지쳐 쓰러질때까지 걷는자가 얻게되는 평화 -- 그것은 직접 지쳐 쓰러지도록 걸은 자만 느낄수 있을 것이다.  아마 마라톤 선수들도 그들만의 희열을 맛보고 싶어서 힘들어도 끝까지 달리는 것이겠지.  그들의 경지를 나는 절대 알수 없지만.  (그러니까...미루어 짐작컨대...인생이 캄캄한 어둠 속을 혼자 걷듯 외롭고 두렵고 힘들다고 해도, 불평하지 않고, 도중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살아내면, 끝까지 견디고 살아낸 것에 대한 보상으로 죽음이 비둘기의 깃털처럼 고요히 내 눈에 내리지 않을까?  두렵고 무서운 죽음이 아니라, 견딘것에 대한 보상같은 평화로운 죽음 같은것. 그런게 아닐까? 그러하다면, 나는 끝까지 견뎌내는 일에 좀더 성의를 다 해야 할 것이다. 마라톤 선수처럼.   )





나는 죽고 싶다.  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싶다.  (사람들은 가끔 이런 상상이나 충동을 느낄 수 있다.) 



나는 상상한다.  내가 하루에 50킬로미터를 걸으면, 나는 어쩐지 한번 죽었다가 새로운 영혼으로 새 옷을 입고 새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과 비슷한 체험을 하게 되지 않을까? 나는 어떻게든 내 시간을 견뎌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번 죽었다가 다시 태어나는 의식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엊그제, 지친 걸음으로 기도조차 멈추고 늙은 개처럼 꾸역꾸역 걷다가 문득 발견한 고요한 평화 (그건 기적같았다. 고요한 감사의 기도가 저절로 나왔으니까)를 상기하며, 나는 즐거운 상상을 해본다.  50킬로미터를 참고 걸으면, 마지막엔 좀더 큰 평화가 내 가슴에 내릴지도 몰라.  죽었다가 다시 살아날수는 없겠지만, 50킬로미터를 걸어도 안되면, 더 멀리 더 멀리 멀리 멀리 아주 멀리까지 가 보면 되겠지.  그렇겠지... 



준비물: 꽁꽁 얼린 물 두병.  소금 조금 (혹시 소금기 빠져서 기절할까봐), 주먹밥 한덩이. 냉장고에 사과가 없어...  신발은 하이킹화와 하이킹샌들 두가지를 준비해서, 상황에 따라서 갈아신고. 


불리한 상황: (1) 써포트 스테이션이 없다는 점.  (2) 여섯바퀴 도는 일이라 중도 포기가 용이하다는 점. 그냥 지치면 때려치고 차에 자빠져 잘게 뻔하다.  게다가 난 의지박약이야.  걷는내내 '하느님 제가 이걸 해내게 도와 주세요. 못하면 하느님 책임입니다 뭐 이렇게 협박을 해야 하려나. 그래봤자 '맹랑한 년' 이러고 못들은척 하실걸.  진짜 행사때는 단방향 50킬로미터 걷기라서 중도포기 자체가 불가능하지...난 여섯바퀴니까 세바퀴 이후부터 계속 유혹에 시달릴거다, 그만하자, 그만하자, 그만하자. 음 그걸 극복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유리한 상황: 쓰러져 죽을 일은 없다. 힘들면 중도 포기하기가 용이하므로. 백팩을 짊어지고 다닐 필요가 없다. 차에 물건 다 놓아두고 돌다가, 필요하면 한바퀴 마쳤을때 차에 가서 꺼내 먹고, 꺼내 마시고 하면 되니까. 


월요일 새벽에 거사를 치르려고 했는데, 어쩐지 물건너 간것 같다.  잠을 못잤다.  (고질적인 수면 장애.) 어제 저녁에 수영을 다녀왔어야 했어. 


***


일요일 아침 예배 마치고나서, 쇼핑 몰에 갔다. 찬삐가 돈 벌었다고, 내게 뭔가 선물을 사 주고 싶어 했다.  내가 좋아하는 검정 가죽 누비 지갑 아주 세련된 것이 보여서 둘이 만져보고 눈독을 들였다. 정말 내 맘에 꼭 드는 물건이었다. 만지작거리다가 그냥 내려놓았다.  

왜, 왜, 왜! 왜 그냥 돌아서는 것인가요?


내게 선물을 사주고 싶어하는 아들이 아쉬운 표정으로 내게 화를 내듯 물었다.  "지갑이 있어..." 


내가 현재 사용하는 지갑은 선물 받은 것이다. 선물 받은 것인데, 선물 받을때부터 '이거 중국 갔다가, 머라머라 짝퉁, 머라머라 똑같아서 비싼 돈 주고 사온건데, 짝퉁이라 미안해. 그냥 쓸래?'  뭐 이런 사연으로 내가 선물 받아서 몇 해 들고 다니는거다.  그거 몇년 썼으니 정품 새거 사준다고 찬삐가 성화를 하길래, 나는 아주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근데 옷장 서랍에 똑같은거 새거 또 있어... 나중에 또 하나 선물 받았어.. 쏘리, 쏘리." 


찬삐가 짜증난다는 표정으로 나를 잡아먹을듯이 으르렁댔다. "엄마는 왜 불법 짝퉁을 쓰시나요?"  아니, 내가 일부러 산게 아니고, 누군가가 선의로 그걸 선물했는데, 그럼 그걸 면전에서 쏘아 붙이고 버려? 좋은 마음으로 선물했으니 귀하게 써야지... 내가 불법으로 산건 절대 아니야...  


찬삐는 내가 아주 못마땅하다.  난, 뭐 내가 뭘 들고 다니건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그게 뭐건, 나로서는 짝퉁이건 찢어진 것이건, 지갑 안에 돈이나 많았으면 좋겠다. 하하하.  내 인생이, 나라는 인간 자체가 짝퉁이 아닐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난, 나 자체가 뭐랄까 짝퉁 같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내 소유물이 아니라, 나라는 인간성 자체가 가짜 같은 것이다. 가짜.  그걸 극복할수 있다면. 내가 짝퉁이 아닌 순정의 무엇일수 있다면.  


찬삐야, 엄마 선물 살 돈 나줘. 내가 짝퉁이 아닌 진짜 일에 쓰게. 응? 지갑 사주지 말고, 지갑에 돈이나 많이 채워줘. 난 지갑보다 돈이 더 좋아. 진심이야. 



사실 내가 요즘 눈독 들이고 있는 친구는 따로 있다. 뉴요커들 사이에 알려져 있는 앰지월리스, 검정 가죽 누비 메트로 토트백.  475달러.  매트로 가방을 좋아하는데 검정 가죽으로 나왔대서 작년 크리스마스 때부터 침흘리며 쳐다보던 것이다.  참 예쁠거야... 갖고 싶은 것을 그냥 상상만하면서 쳐다보는 일도 재미있다. 





Posted by Lee Eunmee
Diary/Walking2016. 7. 24. 23:30




어제, 7월 23일 산책 기록. 


어제, 15.6 마일 (25킬로미터) 걸었던 기록.  아침 6시에 버크 레이크를 걷기 시작.  대략 5마일 안팍 (걷는 노선에 따라 약간 다른 길이)의 호수 주변을 세바퀴를 돌았다.  다섯시간쯤 걸렸다.  두바퀴까지는 한바퀴에 90분 유지. 마지막 바퀴는 그냥 쉬엄쉬엄 걸었다. (나는 여름 휴가가 끝나기 전에 이 호수 주변을 여섯바퀴를 온종일 돌까 궁리하고 있다. 내 목표는 하루에 50 킬로미터 걷기. 여섯바퀴 돌면 된다.  --참 스투피드해 보이는 계획이지만, 내가 본래 스투비드 쪽으로 천재급이라, 실행에 옮길수도 있을것이다. 애매한 추측). 새벽 5시쯤 출발하면  오후 서너시 (열시간 잡으면) 될걸 아마. 운이 좋다면 말이지... 


동틀무렵 시작된 바보스러운 걷기. (늙은개가 걷듯...느릿느릿, 바보스럽게, 하염없이.)


데이타에 의하면, 나는 평균 하루에 만 사천보를 걷고, 거리로 따지면 하루 평균 10.5 킬로미터 (6.5 마일)를 걸었다.  걷기 기록이 안보이는 날은, 수영장에 가서 한시간정도 수영을 하거나, 온종일 소파에서 뒹굴거리거나.







뭐 혼자 걷는거니까, 내 주변 만물이 내게 말을 건다. 나는 그들과 대화하느라 바쁘다.  혼자 있다고 혼자는 아니다. (전형적인 내향적 성격파탄자들의 증세--인트로버트 증후군).  부엉이나 올빼미 같지, 응, 응?   요즘 유행하는 포켓몬고의 증강현실 캐랙터는 절대 아니라굽쇼. 




세바퀴 마칠 무렵, 벤치에 앉아 쉴 때 내 눈길을 끌었던 두 사람.  소녀는 4살쯤 되어 보이고, 곁에 있는 이는 머리가 허연 노인. 할아버지였을 듯.  소녀는 물에 들어가 풀을 뜯어 관찰하다가 지친듯 물에서 나왔고,  할아버지는 그녀의 젖은 발을 수건으로 닦아주고 앙증맞은 신발을 신겨주느라 몸을 굽히고.



어딘가 나를 사로잡는 광경.  어린 소녀와, 부성애 넘치는 아버지 혹은 할아버지의 모습은 늘 내 눈길을 사로잡는다.   내게도 할아버지가 있었다구!  물론 나는 저렇게 예쁜 소녀가 아니었고, 할아버지도 저렇게 곰살맞지는 않았지만.  '그림'하고는 거리가 멀었지만, 나에게도 내 가슴을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할아버지가 있었다구!  (소녀 곁에 있던 이가 할아버지가 아니고 젊은 아빠였다면, 나는 소녀를 질투했을 것이다. 그건 내 사정이고.)




혼자 서너시간씩 걸을 때, 나는 혼자가 아니다.  나는 늘 기도를 한다.  너무 지치면 기도조차 하지 않는다.  누군가 걷고 있는 나를 관찰하면, 내가 '미친 사람처럼' 혼자서 중얼중얼 속삭이듯 쭝얼거리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나는 지칠때까지 기도한다.  죄많은 인생.....


어제는, 문득, 내가 계획한 기도를 마칠때, 가슴이 평온해지면서 감사한 마음이 찾아 들었다.  하느님, 최소한, 최소한 말입니다. 내가 손발이 묶여 아무것도 못하고, 아무곳에 가지 못하고, 아무것도 되돌릴수 없다 하여도 말입니다.  아무것도, 아무것도, 아무것도 할 수 없거나, 아무것도 해서는 안된다는 이 암담한 기분이 지속된다해도 말이지요. 아무것도 할수 없지만, 최소한 내가 누군가를 위해  '기도'를 할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요. 하느님, 제가 기도할수 있게 해 주셔서 참 갑사합니다.  기도조차 못했다면, 저는 지옥에 있었을겁니다.  그러니 감사합니다.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