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2024. 1. 16. 22:09

 

Snow at my window, window snow... 

Tree At My Window

Tree at my window, window tree,
My sash is lowered when night comes on;
But let there never be curtain drawn
Between you and me.

Vague dream head lifted out of the ground,
And thing next most diffuse to cloud,
Not all your light tongues talking aloud
Could be profound.

But tree, I have seen you taken and tossed,
And if you have seen me when I slept,
You have seen me when I was taken and swept
And all but lost.

That day she put our heads together,
Fate had her imagination about her,
Your head so much concerned with outer,
Mine with inner, weather.
 
 
창가의 나무, 창문, 나무. 
 
문득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첫구절이 떠올라서 전문을 찾아보았다.  이런 시였구나...내식으로 번역해보자. 
 
창가에 나의 창문, 창문, 나무. 
내 창문은 밤이 오면 닫히지만, 너하고 나사이에 커튼을 드리우지는 말자. 
 
땅밖으로 솟아나온 애매한 꿈의 머리, 그리고 구름에 버금가게 산만한 
(바람에 네가 일렁일때) 너의 가벼운 혀가 떠드는 소리가 모두 심오한 것은 아니리.
 
하지만 나무야, 나는 네가 휘청이고 흔들리는 것을 보아왔지. 
그리고 만약 네가 잠자는 나를 봤다면, 
너는 내가 휘청이고, 뒤척이며 완전히 망연자실한것을 본것이지.
 
그날 운명의 여신이 상상력을 발휘하여 우리의 머리를 한데 모았던날 
너의 머리는 바깥세상의 날씨에,
나의 머리른 내적인 날씨에 근심하였지.
 
.....
 

겨울나무 가지에 눈이 쌓인 겨울아침 풍경은 언제나, 고향집 뒷곁으로 나를 돌아가게 한다. 눈쌓인 장독대, 얼어붙은 물펌프, 오래된 감나무 가지에 쌓인 눈, 그리고 햇살.

 

큰애가 애빙던에 살때, 그때도 나는 2층 방 창가의 책상에서 시간을 보냈고, 아기였던 고양이 토마스는 내 책상에 올라와서 창밖을 내다보며 시간을 보냈었다. 내가 창가에 책상을 가져다 놓자, 토마스는 그때와 다름없이 창가에 와서 창밖을 내다본다.  애빙던에서는 창밖으로 목장이 보였고, 얼룩소들이 온종일 풀을 뜯었다.  이곳에서는 다른 집들의 정겨운 창문들이 보인다. 이 역시 정겹다.

 

오늘 내가 할일:

1. 실러버스 한과목 언라인에 업로드해야 한다.
2. 연말정산에 필요한 기부금 영수증 한가지 다운로드 해야 한다. (그것이 완료되면 내일은 연말정산을 마치자).
3. 저녁에는 한국캠퍼스에서 진행하는 회의를 줌으로 참석해야 한다 (잊으면 안돼!!)

 

 

금주중에 마무리해야 할일
1. 센터 보고서 작성해서 전송
2. 평가보고서 초안 작성 

 

 

매일 해야 할 일

1. 하루 30분이상 창가, 이 자리에서 기도.

오늘 과제를 다 하면 하고 싶은일

1. 눈 산책
2. 반즈앤노블 책방까지 산책 (책 구경)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4. 1. 16. 07:14

 

Martin Luther King Jr. (MLK Day holiday) 기념일이다.  아침에 깨어보니 밤사이에 눈이 내려 쌓여 창밖이 환 했다. 어제, 일요일 오후에 눈발이 날리다 그치는가 했는데, 밤사이에 조용히 우리 곁에 와 있었다.

 

아들이 산책을 나가자고 해서 아파트 인근으로 온가족이 산책을 나갔다.  아들은 먼길을 돌아 마치 회귀하듯 - 그가 졸업한 고등학교 근처의 아파트에 자리를 잡았다. 우리의 산책 목표지점은 2010년부터 2013년까지 살았던 매클레인의 아파트 근처 세이프웨이 상점.  그곳은 내가 왕눈이를 데리고 나가서 상점 입구에 묶어 놓고 장을 보기도 하던 곳이다. 왕눈이가 잘 있는지 내다보면 왕눈이는 끈에 묶인채 내가 나오길 기다렸고 - 입구를 오가는 동네 사람들이 사랑스러운 강아지를 발견한듯 기쁜 눈빛으로 왕눈이를 쳐다보거나 미소를 짓곤 했다. 고등학생이던 찰리는 "나가서 스타벅스에가서 아이스커피 벤티 한잔 사오너라"하고 내가 심부름을 시키면 왕눈이를 데리고 이곳까지 와서 커피를 사다주곤 했다. 한쪽 모퉁이 주유소도 여전하다.  달라진 점이라면, 내가 살던 아파트 구역이 재개발되어 콘도미니넘으로 새로 지어져서 약 백만달러 가까운 금액으로 매매가 되고 있다는 것 정도.  

 

이곳에서 찰리가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에 입학해서 기숙사로 나갔고, 존이 한국군에 입대를 하러 나갔다. 좋은 일들이 많이 있었고, 벚꽃이 쏟아져 쌓인 나무 아래를 왕눈이가 무심히 코를 킁킁대며 산책하던 눈부신 봄날이 떠오른다.  엄마가 한달 가까이 지내다 가시기도 했다. 

 

존은 어딘가 전통적인 한국인 가족의 맏아들 같은 성품을 지니고 있다.  그는 살고 있는 아파트의 '안방 - 매스터 베드룸'을 온전히 한국에서 엄마 아버지가 오셨을때 사용할 방으로 꾸며 놓았다. 그리고 자신들은 그 옆의 작은 침실을 사용한다.  내가 '그래도 이게 너희 집인데 나는 어쩌다 일년에 한두번 손님처럼 다녀가는데, 큰 방을 너희가 써야지 이게 무슨 짓이야'했더니 그는 처음부터 약혼자와 살림을 합칠때부터 '한국사람들은 아버지 어머니를 모시고 살아야 하는 문화'라고 서로 합의를 보고 그래서 엄마가 오건 안오건 안방은 부모님 방으로 지정이 되었다고 했다.  찰리는 엄마가 쓰라고 방을 두개 꾸며 놓았지만, 매스터베드룸은 그들 부부가 사용한다.  큰아들과 작은아들이 부모를 신경써주는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작은아들이 좀더 자신들의 삶을 중심에 놓는다면, 큰아들은 '한국의 맏아들' 흉내를 내러든다. 

 

나는 뭐 - 자식들이 부모가 쓸 방까지 신경을 써주니 그저 하나님께 감사하며 '손님'으로 지내다 갈 뿐이다. 자식들에게 고맙게 생각한다.

 

 

흩날리는 눈발속에 눈을 밟으며 동네 한바퀴 5킬로미터 (약 3.5마일). 즐거운 산책이었다.  아파트 입구에  주민들 전용 작은 매점이 있는데 눈속에 있는 모습이 요정의 가게 같아보여서 사진을 한장 남겼다.  아이들이 커피 한잔 사러 들어간 사이. 저 가게안에 큰아들과 며느리가 들어있다. 내가 마실 뜨거운 커피 한잔을 사고 있다.

 

 

 

 

창밖으로 떡가루 같은 고운 눈이 솔솔솔 뿌려지고 있다. 온종일 솔솔솔.  근처 타이슨스 쇼핑몰에 책방 반즈앤노블이 있는데, 거기까지 산책을 다녀올까 말까 망서리고 있다. 눈길을 산책하여 책방에 들러 책 구경을 하고 돌아오는 상상을 해본다. 상상만으로도 참 아름답다.  아들은 눈길에 미끄러져 넘어질까봐 말린다. 그 마음씨도 아름답다.  

 

 

 

아들이 마련해준 내방 창가 책상에 앉아있으니 십여년전 바로 이 근처 아파트에서 지낼때 내가 매일 내다보던 창문과 별반 다르지 않아, 내 마음은 그 시절의 나에게로 돌아간다.  여전히 창가를 지키는 아름드리 나무와 나뭇가지들, 바쁘게 오르내리는 다람쥐들. 눈 속에 여전히 바쁜 다람쥐들.  십여젼의 세월이 흐르고, 이제 아들들은 장성하여 각자 자신들의 가정의 주인의 되어 살아가고 있다. 감사한 일이다. 

 

눈이 며칠 더 왔으면 좋겠다. 나는 이 창가에 앉아 눈을 내다볼것이다.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4. 1. 13. 04:32

 

내일 큰 아들네 집으로 갈 것이기 때문에 오늘 그림을 마무리 하기로 하고, 창가에 앉아서 간단히 마무리.  뭐, 어딘가 비어 있는 듯한 곳에 색을 더하고. 빛이 필요한 곳에 빛을 보내고.  마무리. 

 

 

 

 

마이클스라는 크래프트샵에서 산 아크릴 물감이 조금 의외였다.  그냥 개별 용기에 들어있는 빨강, 노랑, 파랑, 초록, 검정, 흰색 이렇게 몇가지 아크릴 물감을 사가지고 그렸으면 더 수월했을것 같다. 물감을 열어보니 내가 찾던 그런 것이 아니었다.  수채화를 그릴때도 그렇고, 아크릴도 마찬가지인듯 하다. 몇가지 원색을 가지고 마음껏 배합하면서 농담을 조정하는 편이 자연스러운 것 같다. 내가 구식이라서 그럴지도 모른다. 

 

아무런 일회용 플라스틱 컨테이너 뚜껑을 빨레트 삼아서, 페트병을 잘라서 물통으로, 커다란 붓 두개 (하나는 일반붓, 하나는 납작붓)가지고 대충 대충.  큰 아들네 집에 가면 고양이 두마리와 큰아들 부부의 가족화를 그려야지. 

 

강아지 스텔라 (돼지코, 왕눈이, 츄바카 등 다양한 별명의 강아지)가 매일 나하고 함께 잤는데, 내가 가고나면 개집에 가서 자야한다.  복된 시간이었다. 이 창가에서 성경 통독을 했고, 바람이 불거나 비가 오는 것을 내다봤고, 이웃 사람들이 드나드는 것을 무심히 쳐다봤으며, 집에 택배가 오면 누구보다 먼저 알수 있었다.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4. 1. 13. 01:06

 

 

(위) 2024년 1월 10일 버지니아 집에서 - 제목 (축복)
캔바스에 아크릴 

 

 

우리 찬삐 부부와 강아지 가족.  며느리가 이 그림을 아주 좋아한다, 그래서 기쁘다. 선물로 놓고 갈것이다. 

 

이 그림 사진을 본 내 친구가 단박에 이 그림을 해석해냈다. "온갖 금은보화와 축복을 그들 앞에 깔아놓아주고 싶었구나! 점점이 찍힌 것이 너의 축복이구나. 네 마음이 읽혀지는 그림이다" 라고 내 친구가 카톡으로 말했다.  내 친구는 정말로 soul mate 인것 같다. 내 혼까지 읽어내는 것 같다. 내 친구는 또다른 내 그림의 개성을 짚어냈다. "얼굴이 없는 사람" (얼굴이 없는게 아니라 눈코입을 생략한것이지만). 그것이 내 그림의 개성인줄은 나도 몰랐었다.  그리고 내 친구는 내가 그린 나무를 좋아한다. 내가 나무를 아주 잘 그린단다. 정말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얼굴의 눈코입을 안그리는 이유는 

 

 (1) 제대로 잘 그려낼 자신이 없어서.
 (2) 음...보는 관점에 따라서 제각기 다른 표정을 가질수 있도록.  이 그림을 간직할 며느리에게 내가 말해줬다, "엄마는 여기에 표정을 그리지 않았어. 네가 위로가 필요할땐 이 그림에서 위로의 표정을 찾아내길 바래. 네가 때로는 이 그림에서 기쁨을, 슬픔을, 평화를 찾아내길 바래. 천가지 얼굴을 만들기 위해서 나는 이대로 놓아두는거야"  며느리도 동의했다. 

 

 ... ...

 

아래 그림은 작년 12월에 내 친구하고 영종도 성수갤러리 카페에 갔던날 세시간만에 내가 그린 작품.  이 작품을 갖고 집에 왔을때, 내가 "성수 갤러리에 다녀왔지"라고 말하니까 작품을 받으면서 남편이 "이 그림은 거기서 사온거야?" 하고 물었다. 하하하.  "이거 돈 주고 사온것처럼 보여?" 내가 물으니 작품이 정말 맘에 들어서 내가 어떤 사람 작품을 사온거라고 상상했다고 한다. '갤러리'에 다녀왔다니까 거기가 그림 그리기 카페라는것을 몰랐던 남편의 단순한 착각이었다.  어쨌거나 돈 주고 살만큼은 된다는 말이지? 응? (스스로 대견해짐) 

 

 

 

 

(위) 2023년 12월 영종도 성수갤러리 카페에 친구와 함께 가서, 그날 그린 그림: 나무, 예수님. 

캔바스에 아크릴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4. 1. 6. 13:37

2023년 12/31 - 2024년 1/4 성경통독

 

지난 2023년 12월 31일은 일요일이었다. 전에 다니던 매클레인의 교회에 가서 아이들과 예배를 드리고 집에 와서 성경통독을 시작했다. 닷새동안 구약부터 신약까지 급행열차를 탄것 같은 속도로 성경 통독을 마쳤다.  내가 일년 중 보낸 시간중 가장 귀한 시간으로 기록 될 것이다.

 

위의 사진은 12월 31일.  (사진속) 맞은편 집 사람들은 자기네 차고 앞 에서 모닥불을 피우고 불멍을 때리며 새해맞이 카운트다운을 하였고, 아이들은 친구들과 아랫층 거실에서 파티를 하며 새해맞이를 했고, 나는 성경책을 읽으며 한해를 보내고 맞이하였다.

 

 

한해를 보내는 마지막 주일 예배. 목사님 설교가 아주 좋았다. 아이들도 모두 인상적이었다고 좋아했다.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 '아름다운 삶'의 시작이라는 메시지였다. 여기서 '한계'란 - 피아노의 키보드의 음계를 정확히 짚는것. 자유롭게 멋대로 열손가락을 모두 눌러서는 아름다운 음악이 안된다는 것 - 목사님은 직접 키보드의 키를 열손가락으로 꽝 하고 누름으로써 (어린 아이가 피아노를 칠줄도 모르면서 무장정 여기저기 눌러대는 그 불협화음을 연출해보여주며)  조화롭게 살아가는 것의 아름다움을 역설했다. 여기서 조화로움이란 - 하나님의 뜻에 부합함, 순종, 인간의 한계를 깨달음. 등 여러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빨간다리'가 타운과 상점가를 이어준다.  겨울 햇살 속에, 이 빨간 다리를 통과하여 근처 맥도널드나 식품점을 오간다. 찰리가 살고 있는 마을이다. 

 

 

 

버지니아주의 상징적인 새 Virginia for Lovers 라는 슬로건에는 꼭 이 카니널 새가 등장하는데, 버지니아에는 정말 카디널이 우리나라의 까치처럼 흔하다. 그리고 빨간 색 덕분에 쉽게 눈에 띈다.  빨간것은 숫놈. 암놈은 갈색빛이 많이 난다. 

 

 

크리스마스 밤에 도착했다. (그날 한국 출발 비행기표 값이 가장 쌌다. 그래서 그냥 그날표를 샀다).  시차 적응하느라 며칠 졸았는데, 잠이 오락가락 할때 책 읽기에는 머릿속이 뿌옇고, 심심해서 - 쿠션 커버를 짰다. 주황색 다알리아 네송이가 들어간 것을 먼저 짰고, 네가지 다른 색이 들어간 것을 나중에 짰다. 먼저 짠것은 둘째가 냉큼 가져갔고, 나중에 짠것은 큰애가 가져갈 것이다.

스텔라 (강아지)가 새식구로 들어와 - 손님으로 온 나를 반겼다. 요즘 이 강아지와 침대를 함께 쓴다. 강아지하고 자면 그 따스한 체온이 그대로 내게 스며들어서 꿀잠을 잘 수 있다. 

 

 

내일(주말)부터 한파가 닥친다고, 아들이 장을 보러가자고 해서 장보러 갔다가 - '바나나꽃'이 보이길래 '이건 어떻게 먹는거지?' 궁금해서 하나 사왔다.  아무래도 찜틀에 쪄서 (양배추 찌듯이) 뭐 쌈장에 찍어먹으면 될 것 같다. 내일 연구좀 해봐야지.

 

 

 

성경책을 5일에 통독하려면 하루에 350 페이지를 읽어야 한다. 그야말로 '읽기 전쟁'이다. 되게 힘들다. 다 읽고나면 - 영적으로 배가 부르다는 것 말고 그냥 신앙심을 빼고 난 관점에서 -- 무지막지하게 책 읽기를 한 결과 --> 다른 시시한 책 읽기가 정말 수월해진다.  그러니까 굉장히 높은 산을 힘들게 올라갔다가 내려온 후에는 - 웬만한 산에 오르는것이 매우 가볍게 느껴지지 않는가?  마찬가지로 무시무시한 읽기를 마치고나니 - 내가 읽어보려고 몇권 가져온 한글 책들이 너무 빨리, 쉽게 읽혀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한국에서 가져온 책들을 후딱 읽어치우고 - 아마존에서 새로나온 좋은 책들 몇권을 더 사서 읽어야지 하고 생각하고 있다. 

 

성경통독은 정말 힘든 일이다. 어떤 신앙심 강한 분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는데 정말 신앙심 만큼은 나에 비해서 태산같이 깊은 분인데 그분은 '성경통독'을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얘기를 했다.  그래서 나는 '사람마다 자신의 종교생활을 이어가는 방법이나 방향이 다 다르구나' 생각했다. 나는 뭘 하면 일단 관련 '문서'를 조사를 하는 편인데, 어떤 분은 '문서' 상관없이 그냥 '믿음'으로 가는 분도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나로서는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하는 것이 내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편이다.  그런데 성경통독은 마음을 아주 독하게 먹고 - 어떤 프로젝트로 진행을 해야 한다. 나는 대개 방학때 정해놓고 '며칠안에 끝낸다'고 작정하고 시작하는 편이다.  요 몇해동안은 해마다 한번은 했는데 2022년 2023년에 하지 못했다. 2022년에는 통독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대신 그때는 시편 필사나 기도를 많이 했었다. 신촌 세브란스병원 기도실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었다.  내가 성경통독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은 - 내 삶이 '정상'으로 돌아왔다는 - 아니 '평온'으로 돌아왔다는 뜻일 것이다. 그러니 그것만으로도 하나님께 감사한다.

 

 

2021년 겨울 크리스마스 즈음에 나는 성경 통독을 한 바 있다. 그 때, 나를 깜짝 놀라게 한 성경구절이 하박국 3장 17-19절 이었다. 그당시 나는 이 구절을 읽으며 '이건 뭐지?' 했다. '이건 뭔데, 내가 이 구절을 들여다보고 있는거지?' 곰곰 생각하다가 목사님께 메일을 보낸적이 있다.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으나 - 목사님, 이번 통독에서 이 말씀이 가장 강렬하게 제게 다가옵니다' 뭐 이런 메시지였다.  그러니까 그것이 2년전이었고, 2년후 나는 성경통독을 다시 하게 되었는데 - 그것에 대하여 까맣게 잊고 있다가 다시 하박국에 이르러 이 말씀을 발견했다. 

 

그리고 이제 나는 말씀을 뜻을 파악한 것 같다.  그 모든 고통의 시간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가득찼던 시간이었을것이다. 무화과 나무에 열매가 열리지 않았을때, 포도나무에 열매가 열리지 않았을때, 감람나무에 아무것도 열리지 않았을때, 밭에 먹을것이 없었을때, 양이 없고, 소가 없었을때 -- 그 빈곳을 가득 채우고 있었던 것. 그 텅빈 (고통, 고독, 아픔, 통증, 고난) 듯 해보인 곳을 가득 채운것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였을 것이다.  그러니까 세상 것을 다 잃어도, 심지어 목숨마저 잃어도 나는 두려워하거나 근심하거나 원망할 필요가 없다. 이미 하나님으로 가득차있으니까. 그가 내 아버지이니까.  내가 없어져도 나는 하나님속에서  없어지지 않으니까.  (아...그래서 안중근 의사가 광복을 위해서 목숨을 내 놓을수 있었던거구나. 그는 자신의 목숨이 없어져도 자신이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던거다.)

 

나는 매일 죽어야한다. 매일 망해야 한다. 그래서 매일 새로 태어나고 매일 새로 자라야 한다 - 하나님 속에서. 그의 사랑 속에서.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