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Life2009. 10. 18. 11:50

Letters to Sam: A Grandfather's Lessons on Love, Loss, and the Gifts of Life

 

집의 책꽂이에 꽂혀 있길래 심심풀이로 집어들었다가, 설득력이 있어서 끝까지 본 책.  목소리는 잔잔하나 울림은 깊다.  이 책이 호소력이 있는 이유는, 저자가 나보다 더 심한 고통을 겪어내고 희망을 갖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페이소스를 주므로 힘이 있는 것이지.  내가 느끼는 고통에도 페이소스란 것이 있을까?  책을 읽는 동안은 위로를 받았다.  그가 제안한대로, 때로 사람은 그냥 시간이 해결해주길 기다리며 흘러가야 할 때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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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
American Art History Sketch2009. 10. 16. 03:35

Man Ray (Artists of the 20th Century)

 

 

뒤샹의 초상화를 만 레이가 작업한 것이 있어서, 그를 알게 되었는데, 뉴욕 현대미술관에 가니 그의 작품들이 몇 점 눈에 띄어서 그에게 약간 관심이 생겼다. 다다이스트 (dadaist) 작가로 분류되는 예술가. 미국 태생이지만 주로 파리에서 활동했고 그곳에서 인정 받았으며 2차 대전중에 난리를 피해서 LA로 옮겨가 작업을 했으나, 크게 성공하지 못하자 다시 파리로 가서 활동하다가 그곳에서 사망.

 

일단, 그가 남긴 '회화'들은, 분위기가 대체적으로 맘에 든다. 피카소와 같은 큐비즘 계열의 회화들을 남기기도 했으나 그의 회화들은 예각이 두드러지지 않으므로 내가 보기에도 편안한다.  회화 이외의 여러가지 작업들은, 글쎄...분명 예술작업 일 것이다. 그런데, 내가 예술품을 보는 시선이 무척 고루한 편이라, 튀는 영감은 느껴지지만 낯설고 멀게 느껴진다.

 

가령,

 

갖고 싶은 작품인가 아닌가?  나는 미술관에서 작품들 볼때 이런 질문을 내게 던지곤 한다.  보니까 특이하다. 영감이 느껴진다. 멋있다. 이렇게 느낄수 있다.  그렇다면 그 다음에 "이거 주면 가질래?" 하고 자문해본다.  이런 자문에 대해서 나 스스로 도리도리질을 하거나 고개를 갸우뚱할때가 종종 있다.  좋지만 갖고 싶지는 않은 작품들도 분명 있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서 꿈에 볼까 무서운 끔찍스렁 작품들도 있다.  나는 '멋있고 예술적이지만 갖고 싶은 생각은 없는' 작품들을 '미술관 전용' 작품들이라고 부르는 편이다.  만 레이는 주로 '미술관 전용' 혹은 '콜렉터의 창고'에 들어갈만한 작품들을 많이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  평범한 대중에게 친근하게 다가가기에는 실패 했다는 뜻일것이다.  하지만, 원래 앞서가는 사람은 고독한 법이므로, 내가 알아주지 않는다해서 그의 예술성에 상처를 입는 일은 없을 것이다.  (회화는, 좋았어요 만 레이님.)

 

 

 

 

 

 

 

Posted by Lee Eunmee
American Art History Sketch2009. 10. 15. 08:45

Jackson Pollock (Artists of the 20th Century)

 

잭슨 폴락 디비디가 도서관에 보이길래 빌려다 보았다.  내가 미술관을 다니면서 본 폴락의 작품은 그의 후기 (완성기)의 작품들이 대부분이라 할 수 있는데, 초기의 그의 습작부터 점진적으로 변화해가는 전 과정을 살필수 있어서 좋았다.

 

그러니까, 내가 알고 있는, 혹은 내가 좋아하는 그의 대작들은 '완성기'에 해당하는 것들인데, 그 이전에 그가 시도했던 과정중의 작품들은, 사실 내 취향이 아니다 (내 취향이 변할지도 모르지만, 현재는 그러하다).  잭슨 폴락은 피카소의 큐비즘의 영향을 받았고, 그 영향으로 미국땅에서 찾아 볼 수 있는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마스크를 연상시키는 이미지들을 그의 그림에 등장시키기도 한다.

 

미술관들을 소풍삼아 돌아다니다 보니, 근래에 미술작품에 대한 내 취향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나는 (1) 사실주의화 (2) 색깔위주의 극단적 추상화 앞에서 안도하고  오랜 시간을 머물지만, 큐비즘 계열의 그림들은 아주 빠른 속도로 지나쳐 버린다는 것이다. 뒤샹의 '계단을 내려오는 모델' 같은 작품을 비롯한, 피카소나 브라크의 입체파 작품들은 내게는 '피곤하다.'  예각으로 면을 분할하여 조각조각 내 놓은듯한 화면을 보면 나는 골치가 아파지고, 그리고 '분노' 같은 것을 느낀다.  그리고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 (혹은 창녀들)의 그림에 나타나는 아프리카 가면같은 괴이쩍은 얼굴 모양도 내 맘에 안든다. 그림속에 샤머니즘적 무시무시하거나 괴상한 가면같은 얼굴이 등장하거나 흩어져 있으면 나는 외면하고 얼른 지나치는 편이다.  왜 그것이 싫은가 묻는다면 따로 설명 할 길이 없다.  이는 고기를 잘 못먹는 내게 '왜 고기를 못 먹는가?' 하고 묻는 것과 같을 것이다.  "너 왜 소세지를 못먹지?" 하고 물으면 난 달리 할 말이 없다. 그냥 안먹는거다.  "너 왜 그 대단한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 그림이 싫은가?" 물으면 난 할말이 없다. 그것이 미술사적으로 얼마나 획기적인 사건인가는 논리적으로 알고 있고, 설명도 잘 해낼수 있다. 그러나 나는 그런 그림이 싫다.  프랑스계 미국 미술가인 브르주아의 작품들도, 설명할 길이 없어 난감하지만 기분나쁘고 싫다.  미술적 가치를 설명하라면 마지 못해 설명을 할 수는 있지만, "너 가질래?" 그러면 나는 "나 주면 내다 팔을래" 하고 대꾸할것이다.

 

그래서 잭스 폴락의 그림 세계를 시기별로 살피면서, 내 맘에 들었던 작품들은 초기의 사실주의적 화풍을 유지하던 작품들, 그리고 말기의 추상화들이다.  나는 폴락이 피카소를 흉내내던 시절에 요절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결국 여러가지 실험을 거쳐서 자기 세계를  찾는데 성공 했으니까.  하지만, 또 한가지 내가 깨달은 것은,  내가 좋아하는 그의 말기의 작품들 속에는 내가 '좋아하지 않는' 그의 '각종 실험적' 요소들이 기저에 깔려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큐비즘적인 요소, 혹은 원시 샤머니즘을 떠올리게 하는 요소들 없이 폴락이 정상에 오를수는 없었다는 것이다. 그 점을 나는 기억해야 한다.  왜냐하면...내가 내 삶을 완성시키기 위해서, 나 역시 실험적인 노력들을 기울여야 하는데, 때로는 설령 그것이 고통이거나, 일탈이거나, 혼돈이라고 하더라도, 나는 그 터널을 통과해야 한다는 것이지...  터널의 끝에, 빛의 세계가 있을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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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
American Art History Sketch2009. 10. 14. 02:53

 

 

Andrew Wyeth와 Edward Hopper 페이지들을 대략 마무리 짓고 나니, 미국의 사실주의 화가들의 계보가 대략 머릿속에 정리가 된다. 신생국가 미국의 미술은 유럽의 미술사와는 약간 시기적으로, 성격적으로 차이가 나게 진행되었다.  예컨대 유럽에서 19세기 중반, 후반에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의 영향으로 사회주의적 색체가 강한, 혹은 사회 비판적인 사실주의 화풍이 휩쓸고나서 '인상파' 화가들이 새로운 작법을 가지고 등장하지만, 미국의 경우에는 오히려 인상파 작법이 활발하게 진행되는 속에서 20세기에 들어오면서 사실주의적 작법이 공존하게 된다.  사회비판적인 사회 사실주의적 화풍은 오히려 미국의 인상파 화풍이 물러나면서 1930년대에 꽃피게 된다.

 

19세기말, 20세기초부터 진행되던 미국의 사실주의는 1930년대에 들어오면서, 경제대공황으로 인한 빈민층 증가와 뉴딜정책의 일환으로 실시된 공공미술 프로젝트 등으로 사회성 메시지가 강한 미술 작업이 활발하게 진행된다. 이 사회성이 강한 미술의 일부는 '사회주의 사상'과 무관하다고 할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소련의 공산주의를 지지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미국적 토양위에서 자생한 미술사조로 보는 것이 더 적당할 것이다.  도시빈민의 문제, 혹은 노동의 문제등 사회 문제를 그림으로 옮긴 화가들의 모임중 '애시캔 (Ashcan)' 학파, 이들과 정체성에 차이가 없는 '8인회 (The Eight)'이 유명하다.   이들을 Social Realist (사회 사실주의자)라고 통칭한다.

 

한편 비슷한 시기에, 역시 공공 미술 프로젝트의 영향권 안에서 '미국의 풍경'을 통해 미국의 '정체성'을 살리자는 취지의 회화운동이 미국의 중서부 화가들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이들을 지역주의자 (Regionalist)라고 부른다. 위의 사회사실주의적 화가들이 '진보적' 성향의 인물들이었다면,  '미국의 풍경'에 역점을 둔 '지역주의 화가'들은 다소 보수적인 색채를 띄고 있었다 할 수 있다. 대표적인 화가로 Grand Wood, Benton 등이 있다.

 

Edward Hopper 는 사회사실주의의 기수라 할 수 있는 Henri (헨라이-로 발음한다)의 제자였고, 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혹자는 Edward Hopper 를 애쉬캔 (Ashcan) 학파의 일원으로 분류를 하기도 한다.  그런데 정작 에드워드 호퍼 자신이 이런식의 분류를 싫어했다. 호퍼는 스스로 자신이 어떤 사상적 그룹에도 속하지 않으며 미술가로서 이런 사상적 색채를 띈다는 것 자체가 유치한 짓이라는 입장을 평생 관철했다.

 

Edward Hopper 보다 한세대 이후에 탄생한 Andrew Wyeth 를 '지역주의자' 무리에 포함시키는 미술사가도 가끔 보인다. 그런데 이또한 무리스러운 노릇이, Wyeth 역시 예술지상주의자인지라 어떤 '이데올로기'와 자신의 그림을 연결짓는 것을 싫어했다는 것이다. 

 

이런 정황때문에, 나는 미국의 사실주의 미술가 계보에서 Edward Hopper 와 Andrew Wyeth 를 '외톨이'들로 분류하는 편이다. 나는 외톨이들을 좋아한다. 아마도 그런 이유로...내가 미국미술사를 정리하면서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앞부분에서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앞으로 우선 할 일은, 사회 사실주의자들 중에서 내 맘에 다가오는 (혹은 잘생긴) 화가들을 정리하고, 그리고 지역주의자들을 정리하는 일 일 것이다. (물론 이러다 기분 내키면 식민시절의 풍속화가를 갑자기 소개하게 될지도 모른다.)

 

연결: http://americanart.textcube.com/133

 

 

Posted by Lee Eunmee
Diary/Life2009. 10. 14. 01:49

 

느지막하게 아침겸 점심을 먹고,  책가방을  차에 싣고, 차를 출발하려다 생각하니 문간까지 나를 따라와 '잘 다녀와라'하고 말해줄 왕눈이가 안보이는거다.  아침에 시무룩하게 내 침대 발치에 있던 것 까지는 생각이 나는데 그후로 왕눈이를 본 기억이 없었다.   집안 구석구석, 옷장까지 뒤져봤으나 왕눈이는 없었다.

 

뒷문을 통해서 나간 모양이다.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내게 등을 돌리고 하나 하나 사라져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내게서 멀어져 사라져간다. 세상의 모든 별들이 급속한 속도로 하나하나 꺼져가는 듯한 환각.

 

왕눈이는 동네 어떤 집 마당에 묶여 있었다.  한시간도 넘게 혼자 어슬렁거리고 있길래, 차에 치일까봐 묶어 놨다고.

 

왕눈이는 자박자박 소리를 내면서 내 방으로 뛰어온후에 기쁜 표정으로 내게 덤벼들었다. 사실 세달 가까이 나는 왕눈이를 산책도 시키지 않고, 거의 버려두다시피 했다. 산책도, 목욕도 아무것도 시키지 않았다. 왕눈이를 돌보는 것은 다른 식구들 차지가 되어 버렸고,  그래도 왕눈이는 내 발치에 와서 내게 붙어서 잠이 들곤 했었다.

 

감기가 다 낳으면, 제일 먼저 할일은, 왕눈이를 동네 지정병원에 가서 종합적으로 체크업을 해주고, 밀린 예방접종도 다 맞춰주고, 그리고, 털을 예쁘게 깍아주는 일이다. 그것부터 해주자.  나는 왕눈이에게 너무 무책임했다.  무책임하면 안된다. 개 한마리라도, 무책임하면 안된다.

 

왕눈이가 돌아와서 다행이다.

왕눈이가 다칠까봐 묶어놓고 주인이 오기를 기다린 착한 이웃이 있어서 다행이다.  (친절함이란 이런 것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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