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 19일 필라델피아 미술관에서 촬영
2009년 가을, 햇살 좋던날 필라델피아 미술관에 갔었지요. 사실 저는 여기서 앤디 와홀의 작품을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비극의 주인공 재클린이 보이지요.
2009년 9월 19일 필라델피아 미술관에서 촬영
그런데 재클린의 푸른색의 비극이 보이던 건너편에, 이번에는 불길한 붉은색, 푸른 색조의 뭔가가 보이는겁니다. 다가가서 보니 역시 앤디 와홀의 '전기의자'였습니다. 사형수들이 앉는다는 전기의자 말이지요. 재클린의 비극만큼이나 이 전기의자, 불길하죠... 불길한데, 충격적이죠. 그리고, 사람들은, 어떤 '충격'에서 쾌감을 느끼기도 하지요. (사람, 참 복잡해요...).
그렇게 제가 '앤디 와홀'님의 불길하고 충격적인 작품에 눈독을 들이다가 우연히 '발견'한 것이 이 파란 천장입니다. "뭐냐 이거, 동그라미, 세모, 네모, 가위표 다 있네 이거...천장에다가도 별 짓을 다 했어요..." 뭐 별일이다 싶어서 사진도 찍고, 그렇게 그냥 지나쳤던 것인데요.
Wall drawing #351, 1981
Chalk and latex paint on plaster
On a blue ceiling, eight geometric figures: circle, trapezoid, parallelogram, rectangle, square, triangle, right triangle, x.
Sol Lewitt (1928-2007)
2009년 9월 19일 필라델피아 미술관에서 촬영
벽화 351번으로 알려진 이것은 1981년작 입니다. 물론 이 천장화를 그리기 위해서 솔 레윗이 직접 미술관에 온것은 아닙니다. 그는 그저 그의 '지시 노트'만 보냈을 뿐입니다.
파란색 천장에, 여덟가지의 기하학적 도형: 동그라미, 사다리꼴, 평행사변형, 직사각형, 정사각형, 삼각형, 정삼각형. 가위표.
솔 레윗의 지시에 따라서, 필라델피아 미술관의 어느 돔형 천장에 이런 천장화가 완성되었고, 그렇게 천장화가 탄생했습니다. 솔 레윗은 작업을 감독하러 나타나는 행동은 하지 않았습니다. 이 작품은 솔 레윗이 이탈리아의 아씨씨(Assissi) 지방에 있을때 창작해 낸 것이라고 하지요. 돔형 천장은 르네상스기의 성당 천장을 연상시키지요. 유명한 미켈란젤로의 시스틴 성당 벽화도 이런 둥근 천장에 그려진 것이지요. 르네상스기의 천장과 21세기의 개념미술이 만나면 필라델피아 미술관의 천장화와 같은 작품이 탄생하는 것이지요.
제가 이전 페이지를 통해서 솔 레윗의 작품 사진을 올리고 이야기를 했는데요, 그런데, 미술 미평책을 들여다 볼 필요도 없이, 솔 레윗의 작품들을 그냥 시대 무시하고 주루룩 살펴보니 이들이 갖고 있는 어떤 속성이 보입니다. 어느 시기의 어떤 형식의 작품이건 간에 솔 레윗의 작품들이 갖고 있는 공통적인 면들은:
1. 삼각형 (혹은 사면체), 사각형(혹은 육면체)들이 어떤식으로든 평면적으로 혹은 입체적으로 교차한다
2. 선과 면들이 평면적으로 어루러져서 입체감을 드러내거나, 혹은 입체면이 평면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3. 결국, 선과 선, 삼각형, 사각형들로만 이루어져 있다.
4. 단순하다 (군 말이 필요가 없다)
5. 경쾌하다.
6. 작가의 싸인이 없지만, 작가의 개성을 감추지는 못한다. (너무나도 개성이 돋보인다)
그러니까, 이 솔 레윗의 개념미술 작품의 재미있는 점이 뭔가하면, 작가가 작품에 직접 개입하지도 않고 악보 던져주듯 개념만 던져주는 식으로, 자신의 창작품에서 한발짝 물러서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사람이 고안해낸, 혹은 개념화한 작품은, 그 사람의 스타일을 고스란히 전달하면서 작품 자체가 그 사람의 시그니처 (signature)가 되더라는 것이지요.
이런 현상을 놓고, 우리의 소비 행태를 생각해보면요,
가령, 청소년들이나 젊은이들, 혹은 이제 명품에 눈을 뜬 사람들은 - '나는 명품이오'하는 물건들을 삽니다. 가방에 그 회사의 상징 무늬를 크게 새긴다거나 혹은 무늬가 확실히 눈에 띄는 브랜드의 물건을 사지요. 멀리서만 봐도, 그 무늬만 봐도 이것이 얼마나 비싼(!) 물건인지 알아봐줘야 하는거죠.
그런데, 웬만한 명품브랜드들을 섭렵했거나 혹은 돈이 지천으로 깔려서 딱히 돈 많다는것 티 낼 필요도 없는 진짜 선수들...이런 선수들은 '눈에 띄는 브랜드'를 잘 안쓰죠. 오히려 브랜드가 뭔지 도무지 짐작이 안되는 물건들을 두르고 돌아다닙니다. 헤헤헤.
개념미술 작품에는 작가의 서명이 없습니다. 하지만, 알만한 '선수'들은 서명도 없는 그 '명품'을 알아보고 잘난척을 하지요. 사실 아무런 표시를 안해도, 어떤 물건의 '개성' 자체를 감추기는 힘들지요. 솔 레윗이 작가 싸인을 안해도 그 작품 자체가 작가를 드러내는 것이지요. 개념미술 작가들은 '작가'가 '작품'에 개입하는 것에 의문을 품고, 작가가 작품으로부터 한발 떨어지는 시도를 했지요만, 그들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작품 자체가 갖는 작가 고유 컨셉의 정체성은 작가에게서 아주 분리될수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다음페이지에서 Sol LeWitt 의 예술, 그리고 개념 미술이 무엇인지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2010년 2월 8일 RedF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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