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Life2019. 1. 17. 01:22


나는 대체로 방관자로 살아왔다. 정의와 개인의 안위 사이에서 늘 개인의 안위 쪽을 선택했다. 불편함과 편안함 사이에서 늘 편안함을 선택했다. 한푼이라도 이익이 되는 것과 손해를 보면서도 다른이를 돕는것 사이에서 한푼의 이익을 선택해 왔다. 



나는 비겁했으며, 겁에 질려 있었고, 도망가거나 회피하는데 익숙한 삶을 살아왔다. 그래서 중학교 3학년 때 음악선생님이 방송실에서 나를 포옹 했을 때에도 도망을 쳤으며, 동일한 선생님이 내 친구를 내 앞에서 포옹하고 입을 맞추고 내 친구가 겁에 질려 비명을 지를 때에도 나 혼자 살겠다고 벌벌 떨면서 도망을 쳤다.  나는 내게 행해지는 악덕에 대해서 입을 다무는 방식으로 악덕에 협조했고 악덕과 공생하려 애썼다.  나는 한번도 정의로운 편에 서 본 적이 없다.



나는 또다시 그러한 유구한 악덕의 물줄기 앞에 서 있고, 다행스러운(?)점은 피해자가 내가 아니고 다른 사람이라는 것이다. 나는 모른척 지나칠 수 있다. 다른 사람이 내게 도움을 청했을때 나의 가장 현명한 선택은 이제까지 내가 살아온 방식으로 '바이스탠더 bystander, 방관자'가 되어서 입에 발린 말을 하면서 상황을 모면하는 것이다. 



입에 발린 말이란 이런 것이다. 

"저런, 정말 나쁜 놈이구나. 그런 놈은 가만 놔두면 안돼.(끝)"

"저런, 정말 몸쓸 일을 겪었구나. 그러니 남자들은 믿으면 안돼. 여지를 주면 안돼. 네가 조심해야지 어쩌겠니 (한숨)"

"여자가 얼마나 단정치 못하면 그러겠니. 네가 좀더 처신을 잘 해야지. (비난)"

"할수 없지. 세상이 그렇단다. 법이라는게 우리편이 아니야. 입 다물고 다 잊어버려. (미래지향적 판단)" 



내가 알고 있는 선생님들이, 이웃의 나이들은 성인 여성들이 대체로 이렇게 코치를 했다. 수업시간에 여자 선생님들도 이런식으로 우리들을 가르쳤다. 미투 운동이 활발한 21세기의 오늘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신문에 방송에 크게 떠든다고 상황이 갑자기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의 판단력은 크게 진보하지 않는다. 숨기고 은폐하고 덮고 지나가고 아무일도 없었던듯 침묵하라고 회유하거나 강요한다. 



이제 나는 이런 사회정의와 규약에 협조할 생각이 없다. 나는 내 식대로 문제를 풀어 갈 것이다. 어쩌면 형편없고 치졸한 전략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다른 대안이 없으면 그렇게 하는 수 밖에 없다. 나는 말하고, 연대하고,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이끌어 낼 것이다. 물론 치사하게 SNS나 언론에 불어버리는 식은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 명예훼손으로 소송당할수 있으니까. 그것보다는 좀더 규칙을 지키며 저항하되, 저항을 계속 할 것이다. 



가만히 앉아서 저들이 만들어 놓은 규칙에 양순하게 협조하면서 스스로를 '이만 하면 됐다. 나는 모범시민이다'라고 추켜세우지는 않을 것이다.  적어도 단 한번만이라도, 살면서 단 한번만이라도 나는 정의의 편에 서서, 휘어지고 망가진 것을 곧바로 펴고 고쳐놓고 싶다. 일회성이라고 해도.  죽을때, 딱 한번이라도 나는 정의로웠다고 회고하고 싶다. 죽을때 말이다. 나는 엉망진창의 인생을 대충대충 멋대로 비겁하게 살아왔지만 딱 한번은 정의로웠다고 회고하고 싶다.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