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Life2018. 11. 27. 13:15


'스킨답서스' 혹은 '신답서스'라고 불리우는 식물.  설령 이 식물의 '이름'을 기억하지는 못한다해도 누구나 한 번쯤 집 구석에서 혹은 공공장소에서 쉽게 볼만한 식물이다.  값도 비싸지 않고, 죽는 일 없이 잘 살고.  공기정화에도 좋다고 알려져 있다. 


이 식물은 줄기를 아무데나 잘라서 물병에 꽂아 주면 뿌리를 내리는데, 그걸 화분에 옮겨 심으면 잘 자란다. 그러니까 꺾꽂이도 가능한, 돌쇠같이 강인한 식물이다. 내게도 이 신답서스 화분이 있는데, 처음 섬마을 학교에 부임했을때, 학교 현관에 넝쿨이 늘어진 것을 보고 그냥 줄기를 잘라다 물병에 꽂는 것으로 그와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뿌리가 생겼길래, 자그마한 화분에 심어서 또 한참을 보냈다. 이 식물은 늘 그자리에 있는듯 없는듯 군소리 하는 법 없이 물을 많이 주거나 안주거나 불평하는 법 없이 곁에 있었다.  


지난 초가을 무렵에,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내가 인근 다이소에 가서 천원짜리 플라스틱 화분이며 비료흙이며, 그냥 한무더기 사 온적이 있다. 그리고 일괄적으로다가 콩알 만한 작은 화분들에 심겨진 조그만 화초들을 조금씩 큼직한 화분으로 옮겨 심어주었다. 숨좀 쉬고 살으라고.


그런데, 콩알만한 작은 화초들을 몸집이 큰 화분에 옮겨 심어주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갑자기 이 작은 화초들이 무섭게, 왕성하게, 미친듯이 몸집을 늘리기 시작하더라는 것이다.  신답서스만 하더라도, 뱀처러 길게 길게 자라기만 하던 녀석이, 큼직한 화분과 기름진 흙이 제공되자 갑자기, 잎새 모퉁이마다 새롭게 가지치기를 하고 막 이리저리 새로운 가지를 뻗기 시작했다.  (그 속도가, 어휴, 가히 충격적이라고 할만했다. 완전 -- 식물 도깨비를 보는것 같았다.) 


그러니까 마치, 좁디 좁은 상자 속에서 가만히 옹그리고 있던 생명체들이 갑자기 기지개를 켜면서 활개를 치며 자라나는 것 같았다. 


놀라워서 웹 검색을 해보니, 화분에 담겨진 식물은, 뿌리의 센서가 자신이 뻗어나갈 한계를 가늠하고, 딱 주어진 환경 사이즈 만큼만 몸집을 유지한다고 한다.  한마디로 말해서, 화초를 작은 화분에 담으면 그 화초는 작게 자라고, 큰 화분에 담으면 크게 자란다는 것이다.  그 원리를 이용한 것이 '분재'라고 한다. 


그래서 나는 요즘 '도깨비'처럼 한도 끝도 없이 자라날것만 같은 나의 신답서스 화분을 들여다보면서 생각하곤 한다.  식물도 제 처지를 가늠하고 성장을 멈추거나 느리게 하는데, 사람은 안 그렇겠나?  사람도 어릴적부터 '넌 요만큼이다.  아예 꿈도 꾸지 말아라. 넌 딱 요만큼이다'라는 저주를 듣거나, 혹은 아무도 신경 안써줘서 제가 갇힌 골방이 온 세상이라고 상상하고 자라거나 그러면, 그러면 그 아이들은 어떻게 되겠나. 


또 한편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사람은 화분에 심겨진 식물이 아니니까, 설령 한정된 상황속에서 살아간대도, 곁에 누군가가 좋은 선생님이나, 좋은 언니나, 친구가 있다면, 궁벽하고 도무지 희망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사랑을 쏟아주는 좋은 부모가 있다면, 그 아이는 큰 화분같이 좋은 환경으로 옮겨졌을때 대성 할수도 있겠지. 아니, 최소한 큰 꿈을 꿀수도 있겠지.  환경을 개선하려 노력을 할 수도 있겠지... 사람이니까... 


그러니까 내가 할 일은 아이들에게 기름지고 커다란 화분같은 좋은 환경을 만들어줘야 하고, 설령 불행한 환경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꿈을 꾸고 그 꿈을 향해 나아갈수 있도록 응원해줘야 하는 것이다. 식물은 가만히 웅크리며 기다려야 하지만, 발 달린 사람은 환경을 좀더 적극적으로 개선 할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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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