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Life2018. 11. 12. 12:14


내 가까운 친구는 대학원을 졸업한 후에 어느 사립중학교 선생님이 되었다.  그리고 그 학교에서 주욱 근무하고 있다. 한 30년쯤 되었을 것이다. 그는 매일 똑같은 직장으로 출근해왔다. 30년 쯤.  내 가까운 친구는 어느 분야의 전문가이다. 그래서 그 쪽 전문분야의 일을 30년 넘게 주욱 해 왔다. 그 사이에 소속기관을 네군데쯤 옮겼지만, 그의 정체성이 변한 것은 아니었다. 그가 그의 삶을 돌아보며 내게 말했다, "직장을 세번이나 옮기고 이것이 네번째 직장이니...참 파란만장한 인생이었어..."


그를 따라 고개를 주억거렸다.  "직장을 옮기는 일은 배우자나 부모가 죽는것 만큼이나 큰 스트레스를 유발한다고 하는데, 참 파란만장했군...네번이나 직장을 옮겨야 했나니...." 


그의 파란만장한 삶에 비해서 내 삶은 너무나 평이해보인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내 삶을 돌아보니 나도 직장을 여러번 옮긴것 같았다. "그런데, 나도 직장을 여러번 옮긴것 같긴 해.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내가 애매한 표정으로 말하자 그가 '너 따위가 무슨 그런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겠니...' 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 어디 어디 다녔는데? 한번 세어봐." 


그래서 나도 희미한 기억을 더듬어 헤아려보았다.  


음, 그러니까 말야... 음...아르바이트 한거 빼고, 개인적인 컨설팅 해 준것, 개인지도 해준것, 번역한것, 글 써서 팔은것  그런거 다 빼고, 정식 기관이나 회사에서 월급 받으면서 일한 것만 따질까봐.  

    1. 해외 유학 컨설팅 회사에서 유학서류 꾸며주고, 인터뷰 영어 가르치고 그런 일을 했지. 유학 가본적도 없이 말이지.
    2. 그 일이 영 하품나게 재미가 없어서 무역회사에 가서 명품 오더하고, 세관 서류 작성하고, 이중장부의 기술 이런거 전수 받다가, 역시 재미 없어서 그만두고
    3. 잡지 편집을 좀 했지. 재미있는 일이었어. 그런데 아무래도 그 잡지사가 영 희망이 없어서 잡지 편집하면서 다른 직장을 찾아보았지. (역시 그 잡지사는 내가 떠난 후 1년쯤 후에 문을 닫았어)
    4. 외국 제약회사에 들어갔지. 독일어와 영어를 사용하는 자리였는데, 내게 경영학 공부를 좀 해보라고 해서 경영학 공부를 조금 했지. 눈이 빠지게 회계서류를 봐야 했는데, 적어도 이 회사는 치사하게 이중장부 놀음은 안했지만, 리베이트라는것이 있었지. 약사들과 의사들에게 나가는 리베이트에 대해서 소상하게 배웠었지.  이 회사에서 몇 년 일했는데, 애 낳고 살림하려고 그만뒀지.  (그리고 애 낳고 살림을 했지.)
    5. 벨기에 필름회사에서 역시 국제 업무를 잠시 했고
    6. 모교에서 불러서 대학 영자신문 간사를 2년을 했지...까마득히 잊고 있었군...그당시, 출근 할때면 둘째를 업고, 첫째를 걸리고 달리는거지. 그러다가 넘어지면 청바지 무릎이 나가고 무릎에서 피가 흐르는데, 등에 업힌 애 다쳤을까봐 아기부터 들여다보고. 대단했어 하하하. 지금 하라면 못하지. 젊은피가 흐를때만 가능한 일이지. 
    7. 일간지 리포터로 필명을 날렸고
    8. 차례차례, 세개의 초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쳤지. (초등학교 세개를 그냥 한가지로 칠게. 계산하기 성기시니까) 교사교육도 했지만, 그것도 그냥 여기에 포함시키고. 
    9. 중학교에서도 영어를 가르쳤고
    10. 미국에서는 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쳤지. 그래서 한국의 초등-중등 영어에 이어 미국에서 '고등'까지초중고 영어를 섭렵했다고 할 수 있지. 
    11. 박사학위 마치고 처음 시작한 일이 대학원 과정 하나를 새로 만들어내는 일이었는데, 거기서 주임교수를 몇년 했지. 워싱턴과 미주리주를 오가며 강의를 했지. 
    12. 메릴랜드주의 몽고메리 커뮤니티 컬리지에서 세학기
    13. 그리고 버지니아의 모 주립대에서 강의를 하다가
    14. 한국으로 와서 섬마을 여선생으로 또 몇년 살았지




물론, 그냥 일회성 계약직이나 뭐 칼럼 쓰고 이런거는 헤아리지 않았어. 그냥 월급단위로 움직인것만 헤아려본것이지.  직장을 도대체 몇번을 옮긴거야?  아마 빠트린것이 있을거야.... 잘 모르겠어. 기억이 희미해서...한 학기동안 초등학교 1학년 미술 보조교사를 '자원봉사'로 했던 것이 인상적이야. 내 인생에 미술 보조교사라니.  대단한 일은 아니지만, 매주, 아이들 미술작업 고안하고 준비하고, 아주 즐거운 시간이었지. 월급을 받지 않았으니 뭐 딱히 경력에 포함할 생각은 없지만, 나로서는 흐뭇한 경력이야.  나중에 할머니가 되어 그 비슷한 작업을 또 할 수도 있겠지... 그래서, 만약을 위해서 '한국어 교육' 자격증도 따 놓았지... 혹시 모르니까, 언젠가 내가 어딘가로 가서 한국어를 가르치게 될지. 자격증이라면, 그것 말고도... 음...그것은 나중에....


내가 중얼중얼하면서 뭔가 좀더 회상하려고 하자, 직장을 세번이나 옮긴 파란만장한 삶을 자부하던 그이는 두 손을 가로저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그만해! 그만해!" 


입을 닥치라는 뜻이었다.  그래서 나도 겸손하게 말했다, "뭐, 별거 없어. 손에 쥔게 아무것도 없는 모래와 같은 인생이야.... 끈질긴데가 없어, 쉽게 싫증이 나서 한군데 오래 붙어있을수가 있어야 말이지. 그러니까, 남편과 두 아들에 대해서 나는 책임이 있으니까, 그 책임은 죽을때까지 안고 가는거고, 나머지는 언제든 떠나거나 떠나 보낼수 있는것이지. 나를 한자리에 묶어두는 이는 남편과 두 아들 뿐이지.  그들을 위해서 돌아올 뿐, 나는 매일 길을 떠나는거야.    


언젠가, 우리 언니가 '내가 결혼이후에 몇 번이나 이사를 했냐면...' 하고 헤아리길래, 나도 옆에서 덩달아 손가락 셈을 했는데, 역시 우리 언니가 내 입을 손바닥으로 틀어 막았다. "닥쳐! 그만해!"  내가 줄줄이 읊어대는 이사의 이력에 언니의 귀가 따가워졌던 것이다.  


가끔 나는 내가 수백년을 살은것 같은 피로를 느껴.  남들이 수백년동안 살아낼것을 한 생에서 살아낸것이 아닌가 그런 느낌이 들기도 하지.  그러니까, 난 언제 죽어도 별로 억울하지 않다는 생각이지.남들보다 아주 많이 살았거든.  앞으로 내 인생이 어디로 흘러갈지 난 몰라. 우리 예수님만 아실일이지. 그래도, 예수님하고 같이 가는 길이니까 그다지 힘이 들지는 않겠지. 이 생의 끝이 어딘지는 모르지만, 또 하루 사는거지 뭐. 어디쯤서 이 이야기는 끝이 나는걸까?


 



질투는 나의 힘


                        -기형도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 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 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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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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