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걷기를 시작해서 3.5마일 쯤 지점에 호수 멀리까지 내다보이는 장소가 나타난다. 고리 모양/그네모양의 매달리기 운동 틀이 있는 곳이다. 이제 1마일 더 걸으면 한바퀴. 이쯤에서 먼 풍경을 내다 보면서 다리 쉼을 해 줘도 좋을 것이다.
등뒤로 아직도 뜨거운 저녁 햇살을 받으며 호숫가 벤치에 한참을 앉아 바람을 쐬고 쉬었다.
이렇게 해가 뉘엿뉘역 지려고 하는, 땅을 달구던 열기가 조금씩 식어가는 시간, 내가 야외의 자연 풍경속에 있을 때면 내게는 늘 똑같은 장면이 떠오른다. 사람의 기억이란 것도 따지고 보면 마흔 여덟장 화투패처럼, 결국 몇가지 그림이 돌고 돌면서 반복한다는 느낌이다.
여름 저녁 해 질녘 내가 산들바람 부는 강변이나 호숫가에 앉아 있을 때면, 내 곁에 할아버지가 스르르 다가와 앉으신다. 할아버지는 저 멀리 개울 건너 한길을 걸어가는 처녀를 보면서 "저 시악시좀 봐라, 참 곱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거나, 혹은 황금빛 새가 휙 날아가는 것을 손으로 가리키시며 "은미야, 저기 꾀꼬리가 난다" 하고 외치신다.
여름 저녁, 들 일을 마친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논둑이나 밭둑, 감나무 그늘에 앉아 당신들이 오늘 하루 농사 지은 일을 돌아보셨다. 그 얼마 안되는 한가로운 시간. 찜통 더위라도 감나무 그늘은 언제나 서늘하였다. 멀리서 매미가 종일 울다 지쳐서 기운이 떨어지고, 햇살도 기운을 잃을 그 시각. 할머니 할아버지는 우리들을 집 앞 '우리 개울'로 몰고가 '"말갛게 씻거라" 호령하시고, 우리들이 개울에서 물장구를 치며 씻는둥 마는둥 하는 사이, 호미며 가래, 쟁기 이런 흙묻은 기구들을 물에 깨끗이 씻으셨다.
이렇게 하루 일을 마친 후, 할머니는 부엌에서 달그락거리며 저녁을 지으셨고, 할아버지는 소를 먹일 풀을 베러 나가셨다. '쇠 꼴 베러 간다'고 했다. 어둑어둑 할 즈음 마당에 멍석을 깔고 저녁을 먹고 나면, 할머니는 금세 선잠이 드셨고, 밤하늘 별은 더욱 총총해져갔다.
할머니는 '난 초저녁 잠이 많아서...'라는 말씀을 종종 하셨는데, 새벽 네시에 일어나서 하루종일 쉴 틈없이 종종걸음으로 부지런을 떠는 이가 초저녁에 잠에 빠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 아니었을까. 내가 네시도 안되어 잠이 깨는 것은 아마도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를 닮아서일것이다.
뭐 이런 생각들을 두서없이 하면서 오랫동안 호수를 쳐다봤다.
내 모든 아름다운 화투패같이 정형화된 기억은, 대개는 할머니, 할아버지 품에서 지낸 시절의 것들이다. 그러니까 하루 24시간을 시간대별로, 삶속의 이미지를 하나씩 맞춰 본다면, 가령 여름날 저녁 해질녘은 밭둑에서 나와 나란히 앉아있는 할아버지, 여름 핏빛 황혼의 어둠시간은 큰고모를 망가리에서 배웅하고 어두워져 가는 마을 길을 나혼자 무서워 무서워 무서워하면서 걸어오던 장면, 뭐 이런식으로 어떤 장면들이 자꾸만 반복된다는 것이지. 분꽃이 피어나는 여름 저녁은 -- 나를 업어주던 할머니. 바람이 선선한 맑은 날 저녁은, 내가 말 안듣는다고 빗자루로 막 사정없이 때리고 그리고 돼지처럼 꽥꽥거리며 울던 나. 할머니한테 맞은 기억은 달콤한데, 아버지한테 맞은 기억은 비참하다. 할머니의 때리는 손이 매워도 할머니가 따뜻한데, 아버지가 때리던 손은 무지막지하고 슬펐다. 스무살 넘어서 아버지한테 맞는 일은 어딘가 슬픈일이다, 내가 맞아서가 아니라 아버지를 그렇게 화딱지나게 만드는 나의 성격적 문제 때문에. 그때 내가 왜 좀 살갑고 다정하게 행동하지 못했을까. 내 사랑을 제대로 못 받은 내 아버지가 딱하다. 내가 문제가 많았던거다.
그래서, 저녁 호숫가에서 문득, 내 아름다운 기억의 장면속에 아버지가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날 낳아주고 키워주고 훌륭한 아버지였던 분인데, 아버지와 뭔가 아름다운 기억이 없다니. 그래서 나는 매일 새벽 기도할 때 특히 내 아버지를 위한 기도를 아주 많이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살아 있는 시간동안, 서로 좋은 기억을 많이 만들어놔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