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s2013. 6. 8. 0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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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매우 흥미로웠던, <금시초문>이었던 내용은 러시아 성화에 나타나는 <물구나무 선 원근법> 제하의 '시각'에 관한 설명이다.   우리가 학교에서 교육받으면서 배우게 되는 것이 멀어질수록 -- 소실점에 가까워질 수록 짧아지는 대각선을 마주 하는 형식의 원근법이다.  그런데, 러시아의 성화에 나타나는 그림들은 그러한 서양식 원근법의 기준으로 보면 곤란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위의 첫번째 그림 속의 테이블은 둥근 곡선 형태를 취하고 있는 면이 실제로는 직선 이라고 한다.  곡선이 직선이라니?  책의 저자는 굴절된 인간의 눈동자의 예를 들어 -- 우리가 인지하고 있는 사물이 직선 형태가 아닌 굴절된 형태일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니까 직선으로 보는가 곡선으로 보는가 하는 것도 문화권마다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교육받은 문화권은 서양식 원근법의 세계였으므로 곡선으로 그려진 직선 상황이 낯설지만 이 그림이 그려진 당시의 러시안들에게 이것은 지극히 당연한 그림이라는 것이다.


옛날에 브라운관 텔레비전을 보던 시절, 우리는 티브이에 어리는 상이 굴절되어 전해진다는 것을 직접 확인 할 수 있었다.  오목, 볼록 렌즈에 비친 상이 늘어나거나 줄어들며 굴절된다는 이치도 안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의문이 생긴다 -- 그러면 '어째서' 러시아 사람들은 직선을 곡선으로 인지하거나 곡선으로 그려야만 했을까? 저자인 진선생은 러시아 사람들의 굴절된 직선 그림에 대한 설명으로 이 장을 마쳤다.  왜 러시아 사람들의 시각이 그러한지, 설명이 필요한데...  


이 문제를 골똘히 생각하던 중, 그것이 러시아의 자연 환경과 관계가 있지 않을까 하는 추측에 이르게 되었다.


하루키의 소설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에 이런 일화가 나온다.  러시아의 농부는 한 없이 펼쳐진 벌판에서 아침을 맞고, 밭을 갈기 시작하여 해가 서쪽에 지면 집으로 돌아가 휴식을 취하고, 다시 아침이 오면 온종일 밭을 간다고 한다. 그런데 그 벌판이 하도 넓어서 영원히 그런 삶이 지속된다고.  그러면 러시아 농민 중에는 착란을 일으켜 끝도 없이 서쪽으로 향해서 걷다가 쓰러져 죽기도 한다고 한다.  그것이 소설속의 에피소드이므로 허구인지 사실에 바탕한 것인지 나를 알지 못한다.  한가지, 한없이 펼쳐진 러시아 평원을 상상 해 볼수는 있다.


한없이 펼쳐진 평야지대, 밭 가운데 서서 사방을 둘러보라. 세상은 네모가 아니라 둥글다.  '사방'을 둘러볼수없다. 세상은 네 귀퉁이 '사방'이 아니고 원방이니까.   내가 몸을 한바퀴 돌려봐도 그저 저기에 지평선이 펼쳐져 있을 뿐이므로 세상은 둥글게 보일 뿐이다. 그런데, 여기에 내가 앉아,  저쪽에서 걸어가는 이, 그 둥글어 보이는 지평선의 이쪽에서 저쪽으로 (그 곡선위를) 걷는 이를 바라볼때, 내 눈에 그는 곡선을 걷지만, 걷는이는 직선으로 걸을 뿐이다.  직선은 '곡선'의 일부일 뿐이다.  그러니 휘어진 '직선'을 러시안들은 자연스럽게 수용하는게 아닐까?



그리고, 아래쪽 그림.  테이블에 올려진 접시들이 테이블의 가장자리에 있다. 러시안들은 이렇게 그림을 그려놓고 그 접시들이 테이블의 중앙에 있다고 인지한다.  우리가 보기에 낭떠러지 같은 가장자리에 위치한 것을 그들은 '중앙'이라고 받아들이다니. 이상하지 않은가?


이 문제 역시, 나는 러시아 평원에서 답을 찾는다. 


농부가 있다. 끝없이 펼쳐진 평원에서 일을 하는데 해가 뜨겁다. 농부는 저 지평선에 서 있는 커다란 나무를 본다. 저 나무그늘에 가서 쉬어야지. 지평선 (지구의 끝)에 있는 나무.  농부가 나무에 도착했을 때, 농부는 그 나무 너머에 끝없이 펼쳐진 평원을 발견한다. 나무는 내가 보기에 가장자리에 위치했으나, 실제로는 지구의 중심에 있는거다.  그러므로 러시안들은 테이블의 가장자리에 접시를 그려놓고 그것이 중심에 있다고 인지할 수 있는거다. 


여기까지는 이 책을 읽고 엉뚱한 상상의 나래를 편 나의 추측이다.  


밭고랑이 수마일씩 이어진 그런 평원에 나가서 그 평원에 서서 세상을 보면 거기서 보이는 세상은 도시의 빌딩 아래에서, 혹은 울창한 밀림지대에서 보는 세상과는 판이하게 다를 것이다. 도심에서 건물과 건물 사이의 직선거리는 그저 직선일 뿐이다.  평원에서 지평선의 이쪽 점과 지평선의 저쪽 점 사이의 거리는 직선이 아니고 곡선이다.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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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우선 이건 순전히 이글을 읽다가 떠오른 제 상상력입니다만...
    제가 읽었던 톨스토이 단편들 중에 하나가 생각이 나서 러시아 정교회의 성화들은 문맹이 많은 러시아 사람들에게 대체로 성경을 대신할 정도의 권위를 가지니까요..
    그림을 가까이 눈앞에 놓고 볼수 없었을것 같다는 생각이어요.. 눈높이보다 높이, 또 멀리 있는 그림을 보게 된다면 그런 원근법과 중심점이 좀 이해가 되어요.. 은미님 글덕분에 떠오른 즐거운 상상이요.. ^^

    2013.06.10 08:45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높이, 멀리, 기둥에, 휘어진 벽에 ...등등 여러가지 변수가 있을수 있겠지요.
      요즘 '시각'의 문제에 대해서 심심풀이로 생각 할 때가 많은데
      심지어, 식탁에 앉아서도 -- 이 식탁은 평평한데, 평면에 이것을 그릴때는 어느 모서리는 종이의 윗쪽에, 어느 모서리는 종이의 아래쪽에 그리면서도 우리는 상하 관계는 잊고 평면만을 떠올린다. 그것을 이상하다고 받아들이지 않는다. -- 뭐 이런 생각까지 하고 있어요.

      문득, 내가 '일상적'으로 인지하던 것에 '물음표'를 붙여보거나 '낯설게 보기'를 하게 되지요. 역시 흥미로운 책을 만나면 삶이 좀 -- 덜 심심해지지요. :-)

      2013.06.10 17:54 신고 [ ADDR : EDIT/ DE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