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엄마2011. 7. 15. 01:36



메트로폴리탄에 로댕의 '칼레의 시민'이 있다.  높다란 유리벽 너머로 뉴욕 센트럴파크가 펼쳐져 있다. 이 조각품 왼쪽에 카페가 있다.

작품 칼레의 시민의 배경이 되는 역사가 있다. 백년전쟁 당시에 영국군이 프랑스 칼레지방을 정복한다. 칼레 시민들은 완강하게 저항하다 패배하고 마는데, 영국의 에드워드 3세는  저항이 심했던 칼레 지방 사람들이 괘씸했을것이다. 그는 칼레의 모든 사람들을 죽이고 싶어했다.  하지만 주변의 만류도 있었고, 결국  칼레를 대표하는 여섯명을 처치하겠다고 했다.

누가 칼레를 위해 죽을 것인가? 

이때 칼레의 어느 귀족이 '내가 죽겠다'고 자원하고 나섰다.  그러자 칼레의 고위 귀족들이 차례차례 나섰다. 여섯명의 자원자가 나타났다.  결국, 에드워드 3세는 이 여섯사람을 방면하고, 칼레의 시민 어느누구도 희생당하지 않았다.

'귀족정신'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사례가 될 만하다. (아무나 이런 행동을 할 수 있는것은 아니다.)

이야기도, 로댕의 작품도 모두 감동적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나를 감동시킨 것이 있다.

나는 이 작품앞에서 엄마에게 별다른 설명을 안하고 그냥 지나쳤다. 엄마도 별 말 안하고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내가 휠체어를 미는대로 그냥 가만히 지나가셨다.

그런데, 나중에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앞 계단에서 스케치를 할때, 엄마는 이 칼레의 시민을 스케치를 하셨다. 여섯명의 사람이 모여 서 있는 그림.  "엄마,, 근데 이건 뭐야?" 내가 이 사람들의 정체를 모르고 엄마에게 묻자, 엄마가 말했다. "그 조각있쟎아. 사람들이 서 있는 조각. 그 사람들이 여섯명이 서 있었어. 그치?"

엄마는 제목도 모르는채로 그 여섯명의 사나이를 기억하고 있었다. (난 사실 칼레의 시민이 여섯인지 다섯인지 기억을 못하고 있었다.)  엄마는 이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채로, 이것을 선명하게 떠올리고 있었다.  (이 대목에서, 나는 엄마가 뭘 모른다거나, 무식하다거나, 딴소리만 해 댄닫거나, 내 말귀를 못알아듣는다고 단정할수 없다는 것을 자각하게 된다.)  엄마는 분명, 내가 못보는 - 모르고 지나치는 것들을 보고 있다.

나는 엄마에게 작품 칼레의 시민의 배경 이야기를 해 드린다.  엄마는 내가 해 드리는 얘기를 기억할까? 알수 없는 노릇이다. 엄마는 자신의 스케치에 칼레의 시민이라고 적어 놓았다.


Posted by Lee Eunmee
WednesdayColumn2011. 7. 14. 09:54

[살며 생각하며] 세상을 두 눈으로 볼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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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만이 소리를 듣는 것의 의미를 알 수 있고, 오직 앞을 볼 수 없는 사람만이 무엇을 본다는 것이 얼마나 축복인지 절실히 알 수 있을 것이다.” 타고난 시청각 장애를 딛고 일어나 영감 가득한 작가로 변신한 헬렌 켈러(1880-1968)는 그의 수필 ‘세상을 사흘간 두 눈으로 볼 수 있다면 (Three Days to See)’에서 이렇게 역설한다.

 헬렌 켈러가 사흘의 시간이 허락 된다면 보고 싶었던 것들은 무엇이었을까?

 첫째 날, 그는 자신을 교육시켜준 설리반 선생님의 얼굴을 보고 싶다고 꼽는다. 그리고 가까운 친구들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 보고 싶다고. 그 다음으로 그가 꼽는 것은 사랑하는 개, 그리고 그의 일상을 지키는 물건들. 매일 그의 손이 닿지만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소중한 물건들. 오후가 되면 숲으로 가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고, 밤이 되면 인간이 만든 조명의 아름다움을 쳐다보고 싶다고.

 둘째 날, 새벽에 동이 트는 것을 지켜본 후에, 그는 인류가 수 천 년을 살아오면서 이룩한 자취들을 보기 위하여 박물관에 가고 싶다고 한다. 그가 가장 보고 싶어한 곳은 뉴욕의 자연사 박물관과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자연사 박물관에서 자연과 인간의 역사를 볼 수 있다면,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인간이 이룩한 예술의 성전이라고 그는 말한다. 저녁이 되면 그는 영화관이나 공연장을 찾아가 무대 위에서 진행되는 연기와 빛과 움직임을 보고 싶다고 한다.

 셋째 날, 새벽 동이 트는 것을 본 후에 그는 사람들이 분주하게 하루를 시작하는 도시의 풍경을 보고 싶기 때문에 뉴욕으로 가고 싶다고 한다. 수백만의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광경은 굉장할 것 같다고 그는 상상한다. 그리고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으로 그는 바삐 달려가 발 아래 펼쳐지는 도시를 내려다보고 싶다고.

그리고 나서 도시의 골목에 서서 사람들을 쳐다보면서 기쁨과, 슬픔을 느끼게 될 것이라고 그는 상상한다. 마지막 날 저녁이 다가오면, 그는 극장으로 달려가 유쾌하고 웃기는 연극을 보겠노라고 한다. 그는 아마도 깜깜한 어둠으로 돌아가기 전의 슬픔을 달래고 싶었던 모양이다. 헬렌 켈러가 마지막 날 아주 웃기는 연극을 보겠다는 글을 읽으면서, 그의 슬픔이 전이가 되어 나는 그만 눈물을 흘리고 만다.

 만약에 나에게 남겨진 시간이 사흘뿐 이라면, 나는 어디서 무엇을 하면서 그 마지막 사흘을 보낼까? 가끔 이런 상상을 하면, 매일 똑같이 흐르는 일상이 갑자기 보석처럼 빛나 보이기도 한다. 언젠가 ESL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업을 하면서 “오늘이 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는데, 학생들 대부분 집으로 가서 가족과 함께 마지막 시간을 맞이하고 싶다는 답을 했다. 어느 여학생이 가족 얘기를 하며 눈물을 글썽이자, 그 눈물이 전이가 되면서 여러 명의 학생들이 눈물을 질금거리는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

 헬렌 켈러는 “내일 갑자기 시력을 잃게 될 것처럼 그렇게 오늘 세상을 바라보라”고 말한다. 그것이 평생 어둠 속에서 상상으로만 세상을 바라봤던 한 사람이 우리에게 건네는 조언이다. 한국에서 엄마가 오셨다. 나는 시간을 쪼개어 엄마를 모시고 워싱턴 일대의 미술관들을 돌아다닌다. 엄마는 거동이 불편하셔서, 미술관에 가면 무료로 대여해주는 휠체어를 빌려 엄마를 태우고 다니며 엄마에게 내가 사랑하는 작품들을 보여드린다. 나는 엄마가 아직 기운이 있을 때, 아름다운 이 세상을 많이 보여드리고 싶다.

 내일은 엄마를 모시고 새벽에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으로 떠난다. “엄마, 엄마가 가는 그 미술관은, 옛날에 평생 아무것도 볼 수 없었던 사람이, 눈을 단 한번이라도 뜰 수 있다면 가장 먼저 가서 보고 싶어하던 곳이에요. 그러니까 엄마도 꼭 보셔야 해요. 그런데, 엄마, 나는 이 세상 무엇보다도 엄마 얼굴이 가장 보고 싶을 거예요.”

*** 월요일에 급히 원고를 써서 보냈는데, 신문이 나온 날은 뉴욕에 다녀온 다음날 (수)이 되고 말았다. 그렇다고 원고 쓰면서 벌써 다녀왔다고 쓸수도 없었고, 고민을 하다가, 그냥 '내일은'으로 썼다...
Posted by Lee Eunmee
Diary/엄마2011. 7. 14. 09:35



Posted by Lee Eunmee
Diary/엄마2011. 7. 14. 09:02




집으로 돌아오기 위하여 공원 입구로 차를 모는데 눈앞에 아기 사슴 한마리가 한가롭게 나타났다.  가만히 차를 세우고 내가 카메라를 가지고 다가가도 사슴은 도망가지 않았다. 아기사슴은 오히려 신기하다는 듯 나를 자세히 보기위해 다가오기까지 했다. 그래서 이 아기사슴과 그 어미를 동영상으로 촬영할 수 있었다.






사슴 촬영을 마치고 다시 천천히 차를 모는데, 이번에는!  곰 한마리가 한가롭게 길가에 나타났다. 숲에서 나와서 차가 다니는 기슭으로 혼자 산책을 나온것 같았다. 곰은 내 차를 발견하자 다시 숲으로 가서 몸을 숨기더니 움직이지 않고 내 차를 바라봤다.  곰이 내 앞을 어정거리는 동안 나는 차를 세우느라고 카메라를 잡을 수가 없었다.  내가 카메라를 집어 들었을때 곰은 이미 나무 그림자로 숨은 후 였다. 내 육안으로 보이는 곰을 차창을 통해 카메라로 잡았는데, 상태가 좋지 않아 곰의 윤곽을 잡아내기 어렵다.  하지만 사진 중앙에 곰의 코를 비롯한 얼굴 형상이 보인다. (숨은그림 찾기).

내 일생에 '야생 곰'을 두눈으로 보기는 오늘이 처음이다. 그것은 엄마와 찬홍이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오늘은 우리 세명에게 아주 운이 좋은 날 인것 같다.

단지 눈앞에서, 살아있는 곰을 봤다는 것 만으로도 오늘은 기분이 참 좋다. (그것을 엄마와 함께 봤다는것도 아주 자랑스럽다. 엄마도 아주 좋아하셨으니까.)




Posted by Lee Eunmee
Diary/엄마2011. 7. 13. 20:50


오후 다섯시, 미술관을 출발한 이후에, 조수석에 앉아있던 엄마가 엄마 카메라로 찍은 사진들. 

내가 운전을 해야 하므로 차창밖의 생생한 거리 풍경 사진을 찍을수가 없어서 엄마한테 숙제를 드렸다, "엄마, 한번 저 풍경을 찍어봐!"

엄마는 서툴지만 그럭저럭 창문 유리에 카메라를 갖다 대고 열심히 사진을 찍으셨다.




뉴욕의 아름다움은, 번쩍거리는 초고층 건물들 사이사이로 낡은 건물들이 삐뚤빼뚤 채워져 있고, 그 사이 좁은 길을 활기차게 걸어가는 사람들.














링컨터널 표시판이 보인다. 링컨터널을 통과하면 맨하탄을 빠져나와 뉴저지로, 남쪽으로 달리게 된다.





링컨터널을 빠져나와 뉴저지의 고가 차도에서, 멀리  맨하탄이 눈에 들어온다. 신기루처럼 아쉽게 아쉽게 우리 시야에서 멀어져가는 도시.



오후 여덟시 반 쯤, 델라웨어 강을 건너면서 강 건너로 붉고 둥근 해가 지는 것을 보았다. 엄마가 사진을 찍겠다고 카메라를 켜는 사이에 (엄마가 서툴게 카메라를 들고 쩔쩔매는 사이에) 해가 '꼴까닥' 넘어가고 말았다. (아쉬움.)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