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8. 10.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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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Walking2011. 8. 7. 22:29
2011년 8월 7일 일요일 아침 6시-8시

곧 비라도 쏟아질것 같이 찌푸린 하늘.  일요일 아침.



어제 아침에 멀쩡했던 길에 나무 한그루가 쓰러져 길을 막고 있다.



달리기 행사를 하는듯 단체로 뛰는 사람들 행렬.



그래서 포토맥 강변에 나가면 저절로 운동에 대한 자극을 받게 된다. 미끈한 선수들이 총 집결을 하니까.




Posted by Lee Eunmee
Diary/Walking2011. 8. 7. 06:26
2011년 8월 6일 토요일

아침에 찬홍이와 조지타운까지 왕복. 마침 오늘은 여러 단체에서 마라톤이나 걷기 행사를 열어서, 평소보다 강변 길이 활기가 넘쳤다. (아래) 단체 달리기 행사를 하고 집결한 사람들.








오후에, 버크 레이크에 갔다. 찬홍이 태권도 연습 하는 날이라서 나는 두시간 반을 기다렸다가 데려와야 하는데, 카페에 가서 책을 읽는 대신에 호숫가를 걸었다.  날이 후텁지근 했지만 그래도 바람도 불고, 그럭저럭 걸을 만 했다. (이미 여름은 갔으니까.... 7월이 가면, 여름도 간다...)



바위 주위를 찰랑이는 이 호수 물을 한참 동안 들여다 보았다. 나는 물을 들여다보는 일이 참 재미있다. 그냥 온종일 물속을 들여다본대도 좋을 것이다.




나를 황홀하게 해준 나비.  나도 나비처럼 멀리 훨훨 날아가고 싶다. 꽃잎에서 자고, 바람을 타고 나르고.















숲길을 걷다가, 쓰러져서 풍화해 가는 커다란 나무 기둥들을 보면서 문득 생각했다.
--나무는 죽어도 부패하는 악취가 나지 않는다.
사람이나 동물, 생선은 죽으면 악취를 풍기는데, 나무는 쓰러져 죽으면 그냥 곱게 마르고 그리고 흙으로 돌아간다.  나무는 약취를 풍기지 않는다. 나무는 어떻게 그렇게 좋은 냄새가 나고, 그리고 죽어도 악취가 나지 않는 것일까?   나는 나무로 태어났으면 좋았을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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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
WednesdayColumn2011. 8. 3. 19:17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236143

“일생에서 가장 빛나던 순간이 언제였나요?”

 일전에 존경하는 어느 부인과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이런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이름을 대면 누구나 알만한 저명한 분의 부인이기도 한 그분은 부군을 내조하며 남들이 누리기 힘든 영예로운 삶의 살아오셨는데, 나의 질문에 아주 소박한 대답을 했다. “학창 시절에, 내 작품이 큰 미술상을 탔는데, 그 때가 내 삶에서 가장 기쁘고 빛나는 순간이었다”고.

 내 생애에서 가장 가슴 뛰던 순간은? 대학시절에 쓴 단편소설로 상을 받았을 때, 그 때 온 세상에서 종소리가 나는 것 같았었다. 그 후에 내가 직업 소설가가 된 것도 아니고, 내가 열망하던 다른 것들을 성취했지만 지금 돌아봐도 그 일은 가슴을 쿵쿵 뛰게 하는 엄청난 사건이었다. 나는 똑같은 질문을 나의 독자들께도 던지고 싶다, “일생에서 가슴이 쿵쿵 뛰도록 행복하고 빛나던 순간이 언제였나요?”

 최근에 알렉산드리아의 극장에서 개봉된 한국 영화 ‘써니 (Sunny)’는 이제 중년이 된 사람들에게 우리 일생에서 가슴이 뛰던 한때로 시간여행을 하게 해 준다. 영화 내내 흐르는, 내가 고교생이던 시절 듣던 팝송들, 그리고 과외가 금지된 시절 밤늦게까지 학교에 남아 입시 공부를 하다가 집으로 가던 심야 버스에서 듣던 이종환의 음악 방송.

식구들이 모두 잠이 들어 아무도 대문을 열어주지 않는 날이면 담을 타 넘어가기도 하던 나의 고3 시절. 대학 입시준비한다고 아무도 특별히 신경 써주던 사람도 없던 시절. 뉴스 시작하면 늘 1번으로 출연하던 어떤 사람. 나는 영화 속 소녀들처럼 서클에 가입하지도 않았고, 크게 사고를 치지도 못하고, 평범하고 눈에 안 띄는 고교 시절을 보냈지만, 그러나 영화를 보던 내내 영화 속 소녀들과 함께 춤추고, 웃고, 울고 있었다.

 고교 시절, 나는 친구들과 어울리기 보다는 잘생긴 남자 선생님 한 분을 점 찍어 놓고 허구 헌 날 그 선생님 생각으로 한숨 지으며 3년을 보내고 말았다. 그 때 그 선생님을 짝사랑하지 않았다면 나 역시 친구들과 어울리며 사고를 치고 다른 일로 가슴 아파했을 것이다.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나는 웃는다.

 영화 ‘써니’는 얼핏, 몇 해전에 흥행했던 ‘말죽거리 잔혹사’의 여학생 버전처럼 보이기도 한다. 말죽거리의 소년들이 성룡의 쿵후에 미쳐 있었다면, 비슷한 시대 서울 시내 어디쯤의 교복 자율화 여고생들은 나미의 ‘빙글빙글’과 보니앰의 ‘써니’에 맞춰 춤을 추는 것에 열광했다. 말죽거리의 고교생들이 가출, 자퇴, 퇴학의 과정을 거쳐 검정고시 학원에서 청춘의 한 순간을 보냈듯, 써니의 여고생들도 집단 퇴학을 당하고, 이제 중년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나타났다. 각자 다른 삶의 풍경으로부터.

 중년에게만 추억이 빛나는 것은 아니다. 최근에 팔순을 내다보는 내 어머니가 손자에게 옛날 얘기를 해주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자식인 나도 모르던 내 엄마의 이야기. “수원에 있는 양재학원에 다니고 싶었는데, 아버지가 계집애가 돌아다니면 안 된다고 반대를 하시는 거야. 그래서 집 뒤 울타리에 개구멍을 뚫어놓고, 몰래 그리로 내뺐지.” 공부를 하고 싶어 목이 마르던 엄마는, 처녀시절 아버지 몰래 몇 십 리 길을 걸어 공부를 하러 다니던 이야기를 손자에게 하다가 말고 펑펑 우신다. 나도 모르던 엄마의 역사.

엄마에게 가장 가슴 뛰고 눈부시던 순간은 언제였을까? 나는 엄마에게 왜 이런 질문을 한번도 하지 않았던 걸까?

 아들에게, 그리고 남편에게 나는 고백한다. 당신들이 내 삶에 와준 것은 분명 축복이고 기쁜 일이다. 그런데 내게는 분명 현기증이 날 정도로 기쁜 나만의 역사가 있다. 아마 당신들도 그러하겠지. 그러하길 빈다.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다 해도, 나에게는 나의 역사가 있다는 것을 새삼 일깨워주는 영화 ‘써니’. 눈부신 여름 날, 온 가족이 이 영화를 보기 위해 소풍을 나가는 것도 유쾌하리라. 써니!

***





알렉산드리아 호프만센터의 에이앰씨 극장은  에스컬레이터가 엄청 높다. 무서워서 다리가 후덜덜.  극장 2층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기도 무섭다.

2011.8.2.수
Posted by Lee Eunmee
WednesdayColumn2011. 7. 27. 20:50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231421


“21세기를 창조할 사랑스런 젊은이들에게 말해 주고 싶다, 창조한다는 것은 저항한다는 것이며, 저항하는 것은 창조하는 것이라고.”

 2차대전 당시 프랑스 레지스탕스 활동을 했으며, 나치의 유태인 수용소에 수감된 적도 있고, 유엔 인권 헌장의 기초를 작성했던 프랑스의 사회 운동가 스테판 에셀(Stephane Hessel)의 아주 짧은 책 한 권 ‘분노하라! (Indignez Vous!)’가 한국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 말로 번역되어 성난 사자처럼 우렁차게 독자들에게 다가가고 있다. 나는 ‘Time for Outrage!’라는 제목의 영문 번역서를 구해서 읽어보았는데 삼복 더위에 폭포수를 맞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제목 그대로 스테판 에셀은 독자들에게 ‘분노하고, 저항하라’고 역설한다. 그에게 분노란 무엇인가? 우리는 무엇에 분노해야 하는가? 우리는 어떤 가치를 지키기 위해 분노해야 하는가?

 유태인으로 나치의 학대를 당했던 에셀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난민들에 행하는 폭력에 분노한다. 압제를 받았던 자가 약자를 짓밟은 압제자가 된다면 그 역시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그는 보는 것이다. 경제의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부자는 더욱 소유를 증가시키고 못 가진 자는 더욱 기초 생존권을 박탈당하는 사회구조에 그는 분노한다. 누군가가 기초적인 인권을 누리지 못하는 것을 발견하거든 그가 최소한의 인권을 누릴 수 있도록 우리는 도와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것이 그에게는 분노와 저항이다.

 저항의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을 수 있을까? 사회정의 실천을 위해서는 폭력도 불사해야 하는가? 이 문제에 대하여 이 93세의 청년은 깊은 고민의 과정을 거친 듯 하다. 그는 “어떤 형식이건 폭력으로 이루어진 것은 실패에 불과하다”는 사르트르의 말을 인용하면서 폭력을 중지시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비폭력’이며 비폭력이 인류의 역사에서 ‘비폭력적 희망’을 유지시킬 수 있다고 역설한다. 그에게 있어서 ‘폭력이란 희망에 등을 돌리는 행위’인 것이다. 그는 ‘저항’을 역설하지만 동시에 ‘비폭력’을 강조한다.

 해마다 노벨상 수상자를 선정, 발표하며 인류의 발전에 기여하는 각계 인사들을 격려하는 노르웨이에서 최근에 무서운 일이 일어났다. 아직 배후가 정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는 가운데 알려진 바로는 이슬람 문화에 적대적인 노르웨이 사람이 다문화적인 것에 관용적인 사회적 분위기에 반감을 품고 백 여명 가까운 사람들을 살상하는 사고를 저질렀다고 한다. 이 범행의 배후가 누구인지, 단독 범행인지 조사가 진행되어봐야 알겠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그의 행동이 어떤 식으로도 정당화 될 수 없다는 것이다. 폭력은 희망에 등을 돌린다.

 그렇다면 나는 개인으로서 무엇에 분노하고 저항해야 하는가? 에셀은 눈을 뜨고 문제를 들여다 보라고 제안한다, 그것이 시작점이라고. 그런데 그것이 쉬운 일일까? 우리는 눈을 뜨고 있다고 해서 주변의 현상을 모두 보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눈을 뜨고도 못 보거나, 두 눈 뜨고 보면서도 외면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 스텐리 코언 (Stanley Cohen)의 ‘잔인한 국가 외면하는 대중’에 이런 ‘외면’의 사례들이 많이 소개가 된 바 있다.

 가족 중에 힘없는 아동이 성적인 학대를 당할 때 ‘설마 우리 식구가 그럴 리가 없어’라고 외면하는 일은 아동 성학대의 현장에서 비일비재하다. 눈 앞에 일이 일어나도 못 보거나 안 본다. 전철에서 누군가가 행패를 부릴 때 이를 나서서 말려주는 대신에 그 자리를 피해버리는 일은 나 역시 저지르는 일이 아닌가? 나는 왜 분노하지 않는가? 나는 왜 저항하지 않는가? 나는 왜 나서서 “그러지 마세요”라고 말하지 않는가? 나는 왜 희망에 등을 돌리고 모르는 척 하는가?

 우리 사회에서 누군가가 고통 당하고 있을 때 그의 고통을 직시하고 도우려는 몸짓을 하는 것이 사회 구성원의 임무다. 그것이 에셀이 말하는 분노이며 평화적 저항이다. 그것이 희망의 역사를 창조하는 방법이다.

 나는 최근 93세의 청년을 만났다. 그는 내게 ‘분노하라’고 속삭였다.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