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Walking2011. 8. 18. 00:26

나 어렸을때, 시골에서 살때, 그러니까, 내가 네 살때, 우리들이 마당에서 놀다가 일없이 하는 자랑질 중에는 "너 버스 타봤어?" 이런거였다. 내가 이것을 분명 네살 때라고 기억하는 이유는 명백하다. 그해에 우리 부모님과 형제들이 나를 떨어뜨려 놓고 서울로 가버렸으니까. 그리고 내가 버스를 처음 탄 기억은 아직 시골에서 할아버지 할머니 고모, 우리식구 이렇게 모두 모여서 살던 시절이었으니까.  그러니까 내가 네살이거나 그 전이었다는 것이지.

버스를 처음 탔을 때의 기억.

흑먼지 막 날리고, 그리고 창밖으로 사물이 막 휙휙 지나가는 그 놀라움! 와 와 세상이 막 지나간다!!!

버스를 처음 탄 아이들은 대개 너무나 놀라서 울음을 터뜨리기도 하고 그랬다.  그래서 버스를 타봤냐 못 타봤냐 점검이 끝나면, 그 다음에는 "너 울었냐 안 울었냐" 이런 조사였다. 난 울었는지 안 울었는지 잘 모르겠다. 내 성격에, 안 울었을것 같다 (너무너무 겁이 나서 쫄았겠지만 겉으로는 태연한척 했겠지...)   아, 창밖에 미루나무가 막 다가왔다가 휙 지나가던 광경을 잊을 수가 없다.

그 후에 우리들이 초등학생이 된 후에, 그 마당에 놀던 아이들의 화제는


"너 에레베타 타봤어?"  --> 일단 에레베타가 뭔지 모르면 한수 꺽이고 들어가는거다.
"너 에스카레타 타봤어?" --> 역시 타고 못타고를 떠나서 이것의 존재 자체를 안다는 것 자체가 중요했다.

그리고 그 후에

"너 서울에 있는 전철 타봤어?"

서울에 가서 전철을 처음 타 본 아이는 우리 이웃의 유순이였다.  서울가서 전철 탔다고 자랑질을 엄청 했다.  모든 것이 신기하고 놀이같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며칠전에 찬홍이와 왕눈이와 산책을 하다가  문득, 걷는 것이 무척 신기하고 재미있게 느껴졌다.  갑자기 그런 느낌이 들었다. 내가 다리를 움직일때마다 세상이 조금씩 움직인다. 멀리 있던 것이 가까이 다가오고, 그리고 내 곁은 지나쳐간다. 내가 다리를 움직이면, 세상은 영화처럼 돌아간다. 움직인다. 세상이 움직인다.  내가 다리를 움직이지 못하면, 세상은 정지해 있을 것이다. 내가 다리를 움직이면 세상은 살아 움직인다.  그런 현상이 참 신기하고 재미있게 느껴졌다.  어쩌면, 옛날에, 옛날에, 내가 한돌쯤 되었을때, 내가 처음으로 일어나서 걸음마를 시작했을때, 그 때, 한걸음 한걸음 떼면서 나는 세상이 마구 흔들리고 그리고 덜컹거리며 움직인다는 느낌이 들었을 것이다.  내게 세상은 얼마나 신기했을까?  나는 여기 있는데, 나는 왜 나의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걸까?

Posted by Lee Eunmee
Diary/Walking2011. 8. 17. 23:37


요즘, 아침에 (강변에 나갈수 없는 평일에) 내가 걷는 산책 코스.  

우리 아파트 앞 일직선으로 나 있는 도로가 Margarity Road 인데, 지난해에는 아침에 이 길을 따라서 매클레인 하이스쿨까지 가서 트랙을 몇바퀴 돌고 돌아오는 (총 3마일) 워킹을 하곤 했다.  (우리집은 이 마가리티 도로 중간쯤에 위치한다.)

그런데 내 성격상, 운동장을 뺑뺑이질 하는 것을 진심으로 즐길수가 없다. 난 뱅글뱅글 도는 일이 굉장히 지루하다.  그래서 학교 찍고 근처 공원을 에둘러서 막 이리저리 돌아다니곤 했는데, 그것도 질서가 없어 보여서 금세 싫증이 났고.  오늘 아침에 지도에 있는 노선을 '확정' 지었다. (당분간 아침마다 이 노선대로 산책을 나가겠다는 것이지.)  그러니까 내 성격이,  반복해서 뭘 하는것은 지겨워하고, 그렇지만 뭔가 정해진 질서를 필요로 한다. 무질서한것은...매력이 없어 보인다. 무질서 속의 질서. 그것이 가장 매력적일 것이다.

구글 맵으로 계산해보니 일직선 2.1 마일. 한바퀴 돌면 4.2 마일이 되겠다.  4.2 마일이면 빠른 걸음으로 한시간이면 걸을수 있다. 달린기를 하는 사람들은 30분이면 가능한 거리. (이길을 달리는 사람들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난 타고난 거북이라서 달리기를 하면 금세 지치고 만다. 

이 길의 장점은 일직선으로 길이 뻗어있되, 구불구불 완만한 언덕길을 오르 내리게 된다. 그러니까, 내가 걸을때는 잘 모르겠는데, 막판에 반환하는 지점 언덕에서 내려다보면 멀리 오르락 내리락 완반한 언덕길이 펼쳐져 있는 풍경이 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완만한 언덕길을 오르내리며 걷는것도 재미있다. (평지는 약간 지루하다).

나는 여전히 포토맥 강변길로 나가곤 하지만, 아침 출근전에 몇시간씩 강가에 갔다 올수는 없으므로, 아침 운동은 이길에서 보낼 때가 잦을 것이다.  오죽 맘에 들었으면 내가 지도까지 갖다 붙여놓고 이러고 있을까. :-)  새벽에 혼자 이길 걸을때 기분 무척 좋다.
Posted by Lee Eunmee
WednesdayColumn2011. 8. 17. 18:08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244121

지난주에 극장가에 개봉된 영화 ‘The Help’는 백인 가정의 하녀로 생계를 유지했던 1960년대 남부 흑인 여성들의 끈질기고 용기 있는 삶을 스케치하고 있다. 말콤 엑스와 마르틴 루터 킹 등의 적극적이고 격렬한 흑인 인권 운동이 펼쳐지던 1960년대 초반, 미국 남부 흑인의 삶은 어떠했을까?

흑인과 백인은 ‘동등’하지만 각자 ‘분리’해서 살아가는 (equal but separate) 사회 풍경이 연출되고 있었다. 버스에서도 백인과 흑인의 칸이 분리 돼 있었고, 식당 역시 흑백을 구분하여 손님을 받았다. 심지어 ‘변기’를 흑인이 사용하면 질병을 옮긴다고 해 집에서 일하는 흑인들에게는 별도의 ‘변소’를 사용 하도록 했다. 영화 속에서는 태풍이 몰아치던 날, 바깥의 ‘변소’에 갈 수 없었던 흑인 하녀가 백인 집주인의 화장실을 급히 사용했다가 그 자리에서 바로 해고를 당하는 장면이 나온다.

말콤 엑스의 어린 시절 일화 중에 이런 것이 있다. 학급에서 유일한 흑인 학생이었던 말콤 엑스는 8학년 수업 중에 변호사가 되고 싶다는 말을 하는데, 그에게 선생님은 “깜둥이 (niggar)가 어떻게 변호사가 된다는 거냐”고 대꾸한다. 그날 말콤 엑스는 학교를 그만두고 다시는 백인들의 학교에 돌아가지 않았다. 그리고 혼자 힘으로 공부를 하여 인권 운동가로 성장한다.



지난 7월에 백악관에 그림 한 장이 새로 걸렸다는 보도가 있었다. 노만 로크웰 (Norman Rockwell)의 1963년작 ‘The Problems We All Live With (우리 모두가 안고 살아가는 문제들)’이다. 나는 2년 전 여름에 매사추세츠주에 있는 노만 로크웰 미술관에서 이 작품을 감상했었는데, 이 그림이 백악관으로 왔다니 참 반갑고, 기쁘기도 하다. 이 작품은 1960년 알라바마의 어느 초등학교에서 일어난 일을 그리고 있다. 그림 중앙에 흑인 소녀가 앞을 보고 당당하게 걸어가고 있고, 흑인 소녀의 앞뒤로 경찰관들이 호위하고 있다. 알라바마 주에서 흑백차별을 철폐하고 흑인과 백인이 동일한 학교에 다니도록 조치를 취했으나 흑인 학생의 등장에 백인들은 등교 거부를 했고, 이 흑인 소녀는 일년 동안 텅 빈 학교에 혼자서 다녀야 했다.


이 사건으로부터 50년이 흘렀고, 백악관에는 흑인 대통령이 입성했다. 그러나 현재 오바마 대통령의 길은 험난해 보인다. 공화당뿐 아니라, 민주당 내부에서도 차기 대통령 후보로 클린턴 국무장관을 점치는 사람들도 나타났다. 이제 그림 속의 주인공은 흑인 소녀가 아니라 오바마 대통령 자신일지도 모른다.

영화 The Help 에 나오는 흑인 아주머니들의 이야기나, 독학으로 인권 운동의 길에 접어든 말콤 엑스의 이야기, 혹은 일년 넘도록 등교 투쟁을 한 흑인 소녀와 위기 앞에 선 오바마 대통령. 이들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가? 나는 이것이 먼 다른 별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거나 남의 일이라고 보지 않는다.

내가 중학교에 입학하던 해에, 내 고향 소꿉동무는 가난한 엄마의 손에 이끌려 상경하여 병원 집 식모살이를 하러 떠났다. 내 또래 소녀들이 공장으로 혹은 버스 안내양의 길로 가기도 했다. 나는 어릴 때, 내가 누리는 것과 그들이 누리는 것이 당연한 것 인줄 알았다. 하지만, 나이 들면서 사사건건 내 발목을 잡으러 드는 “계집애가, 여자가, 애 엄마가, 아줌마가 어딜……” 소리를 들을 때마다 내가 처한 상황에 대한 좌절감과 함께, 전의를 불태웠다.

어떤 종류의 차별 이건 간에, 차별 당할 때 팔자 소관으로 알고 순응하는 대신에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용기이다. 사방 넘을 수 없어 보이는 벽을 넘고자 하는 용기. 시련이 내다 보여도 한걸음 내디딜 수 있는 용기. 이 영화가 한바탕 시원한 웃음과 기쁜 결말을 선사 했듯, 우리 삶의 풍경 속에서도 차별 당하고 억눌린 사람들이 한바탕 웃는 그런 세상이 오기를 나는 꿈꾼다.

Posted by Lee Eunmee
Diary/Walking2011. 8. 15. 09:22
2011년 8월 12일 (금)

새벽에 일어나서 키브리지까지 왕복했고,

저녁에 혼자 나가서 조지타운 거리와 반즈앤노블 책방을 구경하고 밤길을 걸어 돌아왔다. 밤의 숲속은 캄캄한데, 막상 어둠속을 혼자 걷는 일도 나름대로 운치가 있어 좋았다.  나중에 정말 배낭 하나 매고 천지 유람을 해도 될것 같다.

해질녘, 조지타운의 올드 스톤 하우스 앞에서 두명의 악사가 파헬벨의 캐논을 연주하고 있었다.  단지 음악이 흘렀을 뿐인데, 나는 낯선 도시를 여행하는 방랑자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2011년 8월 13일 (토) 버크 레이크

아침 일곱시, 버크 레이크의 태양.




이른아침, 호수에 배를 띄우고 낚시를 하는 가족.  미국의 아빠들은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자녀들에게 낚시를 가르쳐주거나 혹은 스포츠를 함께 하는 것을, 어떤 신성한 의무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먹고 살만한 사람들의 문화...)

 


2011년 8월 14일 (일)

온종일 날이 흐렸다, 비가 왔다, 개였다, 다시 흐렸다를 반복하고 있다. 저녁에는 천둥 번개를 동반한 폭우가 예보되고 있지만 얼마나 쏟아져 줄지는 미지수다. 아침에 비가 부슬부슬 오길래 그냥 키브리지까지 걸어갔다 왔다.  90분간 걷는 도중 소나기가 후두둑하고 쏟아지거나 부슬부슬 비가 내리거나 개이거나 그랬다.  시원하고 좋았다.


일기예보와 달리 쨍쨍한 저녁.  풀장에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모두들 비가 쏟아질것을 예상하고 안 나온 모양이었다. 한시간동안 쉬지 않고 수영을 하고 돌아왔다. 물속에 있을때는 내가 물고기가 된것처럼 자유롭고 시름도 사라진다.  하지만, 이 좋은 수영도 앞으로 일주일 정도 하면 여름이 갈 것이다. 일주일후에 생리가 오고, 그래서 물에 못들어가고  며칠 지나면 서늘한 바람이 불겠지.  그런 생각을 했다. 모든 아름다운 것들은 빨리 지나간다. 그래서 청춘도, 인생도 금세 지나간다.



매일 운동을 거르지 않고 하고 있다. 날이 추워지기 전까지는 꾸준히 근육을 키워야겠지...
Posted by Lee Eunmee
Diary/Walking2011. 8. 12. 12:02


새벽 네시에 잠이 깨면, 그 때부터 잠을 못잔다.  그래서 버스럭거리면서 동이 트기를 기다리다가, 동트면 찬홍이네 학교까지 해서, 동네를 한바퀴 돌고 들어온다. 그러면 한시간이 지난다.  오늘 아침에도 그렇게 아침 운동을 했다.

퇴근 후에는 찬홍이와 곧바로 아파트 수영장에 가서 한시간동안 쉬지 않고 수영을 했다. 며칠 연달아 하다보니 할수록 는다. 신기하다 사람의 몸이. 사람의 몸은 써줄수록 발달된다.

수영 마치고 집에 와서 샤워하고 곧바로 포토맥으로 나갔다.  조지타운에 도착하니 예배당의 종이 아홉번을 때렸다. 다시 터벅터벅 걸어서 출발 지점으로 돌아와, 집에 돌아오니 열시 반이다. 빠진 살 다시 찔까봐 내가 아주 발광을 하고 있다....  (찬홍이도 기숙사 들어가기 전에 살을 좀 빼줘야 하겠어서...)

아직 보름 되려면 2-3일 남은것 같은데, 달이 참 환했다. 밤의 숲속길을 걷는것이 참 좋은데, 찬홍이 기숙사 들어가고 나면 나 혼자서는 밤길 못다닌다. (새벽에 다니면 되겠지...)  밤은 신비롭고 그윽하다. 그리고 공기가 시원하다. 참 아름다운 달빛 속 산책이었다.  내일 또 나가야지.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