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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2.08 19세기 거대한 풍경화: Frederick Edwin Church

 

 

앞서서 Albert Bierstadt (http://americanart.textcube.com/361)  페이지를 열면서 코코란 미술관의 전시장을 보여드렸는데요.  오른쪽의 대형 그림이 비어시타드(1830-1902)의 '버팔로의 최후.' 왼편에 보이는 대형 그림이 프레데릭 에드윈 처치의 나이아가라 입니다. 오늘은 프레데릭 에드윈 처치(1826-1900)의 그림을 보기로 하지요. 제가 두 사람의 생몰 년대를 적어놨는데 처치가 4년 먼저 태어났지만, 형제들처럼 한 시대를 함께 활동한 화가들로 봐도 되겠지요.  (이래서, 미술관에서 비어시타드와 처치가 늘 함께 붙어다니거죠.)

 

 

나이아가라 폭포

 

2009년 10월 3일 워싱턴 코코란 미술관에서 촬영

 

 

 

제가 프레데릭 에드윈 처치라는 미국 화가에 대해서 눈을 뜨게 된 작품이 바로 이 '나이아가라 폭포'입니다. 2008년 5월 이른 아침에 코코란 미술관에 혼자 가서 열시의 개관 시간을 기다리던 일이 생각이 나는군요. 그 날 한가롭게 안내인의 안내를 받았는데, 이 그림 앞에 앉아서 제법 상세한 설명을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나이아가라 폭포를 직접 가서 본 것은 2005년 8월의 일이었는데요,  가서 보고 깜짝 놀랐었죠.  당시에 주변에 있던 유학생 가족들도 여름에 아이들과 미 동부 여행을 다녀오곤 했는데, 저는 돈도 없고 공부도 바빠서 여행도 제대로 못하고 있다가 여행 다녀온 사람들을 붙잡고 묻곤 했습니다.  "어디가 제일 좋았나?"  어른들은 뉴욕과 워싱턴이 인상깊었다고 얘기하고, 청소년들은 '나이아가라 폭포'가 너무너무 근사했다고 대꾸들을 했지요.  나이아가라 폭포야 그냥 폭포인데 그게 근사할게 뭐가 있나?  그냥 그러려니 했었는데, 막상 가보니 기가 막히더라구요.  나이아가라 관광하는 동안 정말 애들처럼 좋아 죽는줄 알았습니다. 신나서. 하하하

 

나이아가라는, 가서 봐야 하는거지, 영화 백날 봐 봤자, 현실감이 없죠. 

 

1700년대에 유럽인이 처음 나이아가라를 발견한 이래로,  유럽대륙에 나이아가라에 대한 환상이 자라났다고 합니다. 당시에 사진이 있었대도 흑백사진을 간신히 만들던 시절이라, 사진가지고 그 현장의 감동을 전하기는 어려웠을테고, 결국 그림이 가장 현실적인 수단이었겠지요.  그래서 프레데릭 처치 외에도 여러명의 화가들이 나이아가라 폭포 그림을 그렸습니다.

 

Niagara Falls, 1857, Oil on Canvas (42 1/2 x 90 1/2 inches)

2009년 10월 3일 코코란 미술관에서 촬영

 

 

이 그림이 처음 소개가 되었을때 유럽대륙에 없는, 오직 '신세계 New Worlld' 미국에만 있는 장관으로 사람들의 뇌리에 남게 되었다고 하는데요.  이 나이아가라폭포는 제작년대를 보니 프레데릭 처치가 27세때 그린 작품이군요. 이 그림의 성공으로 프레데릭 처치는 미국의 풍경화가로서 탄탄 대로를 나아가게 됩니다.

 

 

 

Frederick Edwin Church (1826-1900)은 커넥티컷주의 하트포드시에서 부유한 시계제조회사, 보험회사 사업가의 아들로 태어납니다. 선대가 부유하다보니 프레데릭 처치 자신은 먹고 살 걱정이 없었고, 그가 미술에 재능을 보이자 그는 일찌감치 허드슨 강변의 화가들 (Hudson River School)의 원조인 Thomas Cole (http://americanart.textcube.com/267)에게 연결되어 그의 제자가 됩니다.  그는 일찌감치 22세가 되던 해에 National Academy of Design 의 멤버가 되고 뉴욕에 정착하여 스케치 여행을 다니게 됩니다. 일년의 봄, 여름, 가을에는 여행을 다니고, 겨울에는 뉴욕으로 돌아와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리는것이지요. 그는 1853년과 1857년에 남미 여행을 하기도 하면서 남미의 숲이나 풍경을 그리기도 했습니다.  그후에는 유럽과 중동등 세계 여러나라를 돌면서 현지의 풍광을 스케치하고 대형 풍경화 작업을 했지요.  후기에는 그의 스승 토마스 콜과 마찬가지로 허드슨 강변에 대 저택을 짓고 정착하게 되지요.

 

 

아, 그런데 이 사람 이름이 특이하죠.  성이 Church 입니다. 예배당이 '처지' 쟎아요. 미루어 짐작컨대, 집안이 신앙심이 강한 사람이 아닐까 하는거죠. 미술 비평가들중에는 처치의 풍경화에서 어떤 '정신적인 spiritual' 면을 해석해내기도 합니다. 보편적으로 아름다운 자연 자체가 숭고성을 전하지 않나요? 어떤 사람에게 신앙이 있거나 없거나, 혹은 어떤 신앙이나 사상을 갖고 있거나 간에, 위대하고 장엄한 자연 풍경 앞에서는 스스로 옷깃을 여미고 풍경 너머의 어떤 의미를 사색하게 되쟎아요.  우리가 매일 보는 황혼이 어느날 유난히 붉을때, 혹은 달이 어느날 유난히 환할때, 별이 유난히 반짝일때도 우리는 그런 자연 현상에서 어떤 상징성을 찾고 싶어하지요. 설령 우리가 무신론자라 하더라도.

 

프레데릭 처치는 박물학자인  알렉산더 폰 훔볼트 (1769-1859) 의 저서인 Cosmos 를 탐독하고 그 영향을 받았다고 합니다. 훔볼트는 남미 지역을 탐사하면서 식물 지리학이라는 분야를 개척했고,  다윈(1809-1882)은 비글호를 타고 남미를 탐험했지요.  처치 역시 이들의 영향을 받아 그가 알지 못하는 세계로 눈을 돌리고,  그의 분야, 풍경화를 통해 그가 본 것들을 기록으로 남긴 것이지요.  그러고 보면 재미있어요.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지역을 돌면서, 어떤 사람은 박물학자가 되고, 어떤 사람은 '진화론'이라는 경천동지할 가설을 탄생시켜서 우리의 사고체계를 확 뒤집어버리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그것을 화폭으로 옮겼다는 것이지요.  여기서 저는 누가 더 똑똑하고 잘났다는 얘기를 하기보다는,  사람마다 타고난 품성과 재능이 각자 다르므로 각자 자신의 재능과 취미대로 자신을 펼치면서 살면 인생이 재미있고 다채로워질거라는거죠.  우리 모두가 다윈이 될 필요도, 우리 모두가 화가가 될 필요도 없죠. (관객도 필요해요~ ).  그렇지만 우리 모두 각자 위대한 개인임은 분명하죠.

 

뉴포트 산 풍경

 

New Port Mountain, Mount Desert, 1851, Oil on Canvas

Frederick Edwin Church 1826-1900

2009년 9월 11일 National Gallery of Art 에서 촬영

 

이 그림은 대형 작품은 아닙니다. (제가 게을러서 그림 사이즈를 정리를 안하고 이렇게 때우는군요.) 이 풍경은 뉴포트의 사실적인 풍경으로 보입니다.

 

 

 

오로라

 

스미소니안 미국미술관 2층의 한 갤러리에 있는 작품인데요, 이 갤러리 앞을 지나갈때면, 어디선가에서 빛이 번쩍 나면서 유리 깨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한 인상입니다.  이것이 오로라 인가봐요.  (저는 아직 오로라를 한번도 본적이 없습니다. 극지방에 가면 하늘에 오로라가 보인다고 하쟎아요).  오른쪽의 오로라 그림도, 왼편의 풍경화도 모두 프레데릭 처치의 작품입니다.  여기 의자가 있다는 얘기는, 이 의자에 앉아서 그림을 감상하시라는 뜻입니다. 바로 이 거리와 각도에서.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시면, 왼편 아랫쪽에 배하고, 썰매 팀이 작게 보이는데요, 이들은 탐험가 Issac Hayes 탐험팀입니다. 이들은 1860년에 북극 탐사를 했습니다. 그는 탐험 기록으로 많은 스케치를 가지고 미국으로 돌아왔는데 미국에 돌아와보니 내전 (남북전쟁 1861-1865)으로 나라가 분열되어 있었지요. 기가 막힌 상황이었죠. 프레데릭 처치는 북극 탐사팀에는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탐사팀이 가져온 스케치와 이야기를 토대로 상상력을 발휘하여 1865년, 이 오로라 그림을 완성시켰는데요. 스미소니안 미술관에서는 이 그림에 대해서 '암울한 국가적 갈등에 대한 불운한 전조'를 보여줬다는 식으로 설명을 하는데요, 관객인 제가 볼때 이 그림은 오히려, 희망의 상징처럼 보이거든요. 오로라는 신화에서 '새벽'의 여신인데, 1865년의 미국사와 '오로라'를 연결지어 본다면,  내전이 끝나고 새로운 역사가 동터오는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더 낫지 않나 하는거죠.

 

 

Aurora Borealis, 1865, Oil on Canvas

Frederick Edwin Church 1826-1900

2009년 12월 29일 Smiethsonian American Art Museum 에서 촬영

 

 

 

안데스 산맥의 코토팍시 분화구

 

Cotopaxi, 1855, oil on canvas

Frederick Edwin Church 1826-1900

2009년 12월 29일 Smithsonian American Art Museum 에서 촬영

 

프레데릭 처치가 남미를 여행하던 중에 봤던 풍경인것 같죠. 안데스 산맥의 코토팍시 산을 그린 것입니다.

 

 

 

 

 

빛의 강: 프레데릭 처치의 마지막 그림

 

 

 

기록에 의하면, 프레데릭 처치는 1877년 손 관절의 문제로 더이상 그림을 그릴수 없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빛의 강'이 1877년에 제작된 것이므로 이 작품이 그의 거의 마지막 작품인 것으로 보입니다. 그의 자료를 찾아보면 1877년 이후에 발표된 작품을 만나기가 힘듭니다. 왜 1900년까지 생존한 사람의 작품이 1980년대에 끝나는가 의문을 가졌었는데, 신병때문에 이후에 작품 활동이 불가능해졌던 것 같습니다. (아, 전에 소개드렸던 Grandma Moses 의 경우에는 http://americanart.textcube.com/93  모세할머니가 수놓기를 즐기다가 눈이 어두워지고 손도 불편하여 수놓는걸 포기하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여 출세을 했다고 하지요.사람 일은 알수가 없는거죠.)

 

 

 

El Rio de Luz (The River of Light), 1877, Oil on Canvas

213.7 x 138.1 cm

Frederick Edwin Church 1826-1900

2009년 9월 11일 National Gallery of Art 에서 촬영

 

 

이 작품은 1857년 그가 남미를 여행했던 당시의 스케치와 기록과 기억을 바탕으로 20년 후인 1877년에 그린  것입니다. 51세가 된 화가가 31세때 여행했던 기억을 되살려 그림을 그렸다고 것이지요.  그림을 들여다보면, 남미 열대기후에서 볼 수 있는 열대 식물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고요 뽀얀 새벽안개 속의 물빛도 왠지 따뜻할것 같습니다.  '빛의 강'이라니 이 물에 잠겨 수영이라도 하면 극락일것 같지요.  이 그림을 보면, 처치의 세밀한 자연관찰력과,  자연과학 너머의 숭고한 정신세계 그 양면적인 것을 그대로 보여주지요.

 

제가 남미에는 아직 못가봤지만, 미국의 최 남단인 플로리다에서는 한 오년을 살았는데요, 바다에 가면, 바닷물이 따뜻해요. (겨울에도). 강이나 호수는 고요하고 역시 따뜻해요. 열대 식물들이 빼곡하고, 악어, 도마뱀들이 태평하게 돌아다니고.  돌아보면, 참, 내가 낙원에서 일생의 오년을 보냈구나...이런 생각이 들어요. 특히나 지금처럼 백년만의 폭설이라는 눈때문에 방에 갖혀서 꼼짝도 못하고 있을라치면, 내가 잃어버린 낙원이 미치도록 그리워지지요.

 

처치가 후년에 대지를 사들여 저택을 지은 뉴잉글랜드 지방 허드슨 강변은 사실  겨울이면 엄청 추운곳입니다. 겨울엔 그런데서 살기 싫죠. 그래서 동부의 돈많은 갑부들이 플로리다에 겨울 별장을 마련해 놓고 즐기는거죠.  자,  손에 류머티즘이 와서 손도 불편하고, 날도 춥고, 어디 나가기도 불편한 겨울날, 오십대의 화가가 작업실에 앉아서 이 그림을 그리는 광경을 상상해봅시다. 그의 추억속의 남미, 빛의 강이 얼마나 그리울지, 얼마나 미적지근하고 습기로 끈끈하며 그의 시린 어깨를 녹여줄지.

 

그의 연보를 살피다가, 이 그림이 아마도 공식적으로 공개된 그의 작품으로는 최후의 작품인것을 발견하니 새삼, 그림을 다시 보게 됩니다. 프레데릭 처치는, 아마도 온화한 말년을 보냈을것 같아요. 그의 마지막 그림이 빛과 따뜻함에 감싸인 새벽의 강인것을 보면 - 그가 돌아간 세상도 이와 비슷할지 모르죠.

 

 

2010년 2월 7일 일요일 RedFox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