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americanart.textcube.com/359  존 제임스 오드본의 페이지에서 잠시 스미소니안 미국 미술관 2층의 입구 풍경을 보여드렸는데요. 통로를 따라 이동하면 저 끝에, 커튼이 살짝 드리워진 방에 대형 풍경화가 있다는 이야기를 했었지요.  기왕에 발길 닿는대로 가는 인생,  이번에는 그 커튼 속의 대형 풍경화 이야기를 마저 해 볼까요.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19세기의 대형 풍경화의 시대를 전체적으로 다뤄야 할 것같아 뜸을 들이고 있었는데, 뭐 차근차근 진도 나가보죠.)

 

자, 발길을 따라 저와 이동을 해 보는겁니다.  이 통로를 따라 슬슬 걷다 보면

 

 

 

2010년 1월 31일 스미소니안 미국미술관에서 촬영

 

 

 

 

 

 

 

 

자, 이런 방을 하나 만나는 겁니다. 이 방에는 기이하게도 커튼이 드리워져 있습니다. 그리고 벽면을 가득 채우는 거대한 풍경화가 있습니다.  방 가운데에 푹신한 벤치도 있습니다.  이제부터 이 벤치에 앉아서 그림을 보는겁니다.

 

 

 

2009년 1월 29일 스미소니안 미국미술관에서 촬영

 

 

그러면, 도대체, 이 방 입구에는 왜 커튼을 쳐 놓은 것일까요?

 

사연을 이야기 하기 전에.

 

제가 딴소리의 대가라는 것은 익히 아시지요? 늘 허접한 주변 얘기 하다가 본론을 잊고 마는 고질병이 있는데요.  '플란다스의 개' 이야기 아시지요?  저로서는 이세상에서 가장 슬픈 얘기, 너무 슬퍼서 심지어 테레비 어린이 만화 프로로 아로와와 네로가 행복하게 뛰어노는 장면이 보여도 그거 채널 돌리곤 했습니다. 결과를 다 아니까. 너무너무 슬픈 일이 결국 벌어질거니까. 절대 안본다 이거죠.  그렇지만, 줄거리 다 알거든요.  아무리 슬퍼도 몇번은 읽었으니까...  네로가 성당에 있는 그림을 무척 보고 싶어 하쟎아요.  이야기속에서는 그게 '루벤스'의 그림이었는데요.  그래서 저는 미술관에서 '루벤스'의 그림을 발견하면 엉뚱하게도 '플란다스의 개'를 떠올립니다.  "너 때문에 네로가 죽었단말야!" 뭐 이런 말도 안되는 심술을 루벤스의 그림을 향해 그려보는것입니다. 뭐 대단치도 않은 그림을 그리워하다가 네로가 죽고 말다니... 이런 심술도 나고요.  아무튼 네로때문에, 슬픈 이야기때문에, 저는 루벤스를 싫어합니다. (말 안되고 있죠?  루벤스는 억울하겠지만...)

 

그런데 그 플란더스의 개 이야기에 보면, 그 루벤스의 그림을 평소에 볼 수가 없쟎아요.  커튼으로 가려 놓아가지고, 특별한 행사때만, 혹은 돈을 내야만 그 그림을 볼수가 있었지요.  지금 생각하면 참 납득이 안가는데요, 그림에 커튼을 쳐 놓고 필요할때만 열어 보았다니요. 그런데 옛날엔 그랬다는군요.  그림에 먼지 탈까봐 그랬는지. 귀한거라 가려놓은것인지 알수 없지만.  아무래도 귀한것은 숨기고 싶은 법이라,  귀한 그림을 함부로 남이 볼수 없게 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요, 또 이것이 납득이 가기도 해요. 뭐냐하면, 우리가 어디서 전시회 한다고 하면 돈내고 가서 보쟎아요.  요즘 한국에서 앤디 와홀전 한다는데 얼마 내고 보시나요? 못잡아도 만원은 넘게 낼거라고 추측하는데요. 뉴욕의 현대 미술관 입장료가 20달러도 넘으니까, 그림 보려고 이만원도 넘게 내고 들어가서 보는거쟎아요. 돈 없으면 그림 구경 하고 싶어도 못하는거죠.  물론 평생에 한번 볼까 말까한 명품들을 돈 일만원 이만원 내고 볼 수 있는것도 기쁜 일인데요, 하지만 돈 없는 사람에게 그 돈이 간단한 돈이 아니죠.  그러니까, 오늘날에 전시장에 돈 내고 들어가는 시스템이나, 옛날에 그림에 커튼 쳐 놓고 있다가 돈 받고 그림 구경 시켜준 시스템이나 뭐 큰 차이가 안나죠.  그렇게 생각하면 그림에 커튼치고 돈받고 구경시켜준 일도 납득이 간다는거죠.

 

 

 

 

 

 

 

미국이 18세기 중엽에 독립을 선포하고 독립전쟁도 하고 그랬지만, 그 당시에도 그리고 19세기 중반까지도 미국은 유럽에서 볼때는 낯선 곳이었지요.  그리고 미국이 독립하던 당시에 동부의 13개주만 참여했을뿐 나머지 지역은 아직 미 합중국에 속하지도 않았거든요.  미국은 독립당시에도 광활한 미개척의 땅이었던 것이지요.

 

이 그림은 미국의 풍경화가 Albert Bierstadt (알버트 비어시타드)의 작품인데, 그는 미국의 서부를 직접 여행하며 스케치를 하기도 했지만, 정작 그가 이 그림을 그린곳은 이탈리아 로마였습니다. 로마의 자신의 작업실에서 그림을 완성하여 영국으로 보내 전시를 했지요.  전시장에 적절한 조명을 밝히고, 천막을 쳐서 그림을 가리고, 사람들에게서 입장료를 받은 후에 짜잔 하고 그림을 보여주는거죠. (서커스단에서 천막안에 진귀한것 갖다 놓고 돈받고 구경시켜주는것과 비슷했겠죠).  사진도, 인터넷도 없던시절,  유럽 사람들은 거대한 미국의 풍경화를 보면서 - 저곳은 신의 땅이 아닌가! 에덴동산이 아닌가!  경악하기도 하고, 이민의 꿈을 꾸기도 하고 그랬겠지요.

 

이 그림은 유럽을 돌며 돈을 긁어모은 후에 미국으로 건너와 보스톤에서 전시가 되었는데, 당시에 이 그림을 뜯어본 비평가중에 이 그림이 실제 미국의 '진경 산수'가 아니라는것을 알아챈 사람이 있었다고 합니다. 미 서부의 풍경이라고 했지만 사실 실제 이런 장소는 없었지요. 비어시타드가 서부를 돌면서 스케치했던 이곳 저곳의 풍경 중에서 근사했던 것을 총 집합시켜서 하나의 풍경화에 '때려 넣은'거죠.   하지만, 이것이 '진경산수'가 아니고 그냥 이것저것 섞어서 만들어낸 가상의 풍경이라고 해도 미국의 장대한 자연을 제대로 연출해냈다는 평을 받았다고 합니다.

 

만약에 독자중에 실제로 스미소니안에 가서 이 그림을 보게 되는 분들은, 이 그림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저 푹신한 의자에 앉아서 보시기를 권합니다.  저 의자가 괜히 저기 있는것이 아니고요.  저 의자가 놓여진 곳에 앉아서 이 풍경화를 볼때, 그때 화가가 의도한 가장 '완벽한' 각도가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복도에서 흘끔 보고 그냥 지나치지 마시고, (혹은 의자에 앉아도 되나 안되나 눈치 보지 마시고) 의자에 편히 앉아서 이 풍경속의 숲과, 동물과, 물과, 산 그런것들을 즐기시길. 

 

 

 

 

 

 

Among the Sierra Nevada, California, 1868, oil on canvas

183x305 cm

Albert Bierstadt, 1830-1902

2009년 12월 29일 스미소니안 미국미술관에서 촬영

 

 

 

내킨김에 19세기의 대형 풍경화와 풍경화가들을 시리즈로 적어볼까요.  ... 누굴 추리나...(부시럭 부시럭.)

 

 

2010년 2월 6일 RedFox

 

* 참고로 Albert Beirstadt 는 독일 태생의 미국인인데요, 그 사람 이름을 독일식으로 읽으면 /알베르트 비어쉬타트/에 가깝거든요. 그런데 미국에서는 그를 /비어시타드/라고 발음하는 편입니다. 저는 독일어도 배웠고, 현재는 미국어를 많이 쓰고 있는데, 이경우 갈등이 좀 생겨요. 비어쉬타트라고 읽어야 할지 비어시타드로 표기를 해야 할지.  머릿속으로는 비어쉬타트 라고 읽고, 정작 표기할때는 비어시타드라고 합니다. (어렵지요. 어차피 남의 나라말. 남의 나라 이름들.)

 

http://americanart.textcube.com/361 2편에서 계속...

 

 

Posted by Lee Eunmee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