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americanart.textcube.com/237  토마스 윌머 듀잉의 소개하는 페이지에서 스미소니안 미국미술 박물관에 소장된 그의 '백악관 피아노' 장식작품과 다른 그림들을 소개한 적이 있는데요.  사진 상태가 안좋아서 안타까웠죠. 옛날에 똑딱이 카메라로 대충 찍었던거라서.

 

그래서 일전에 (2009년 12월 29일) 미술관에 갔을때, 이 피아노실에 있는 '모든' 듀잉의 작품을 새로 사진기에 담아왔습니다. 새해를 맞이하여,  제 독자들께, 아름다운 피아노와 선녀같이 평화로워 보이는 듀잉의 여신들을 선물하고 싶습니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시건, 늘 아름답고 평화로운 마음을 지키고 간직하시길.  건강하시길. 

 

 

 

 

 

 

 

 

 

 

 

 

 

 

 

 

 

 

 

 

 

 

 

제목을 차차 달아 놓을게요.  우리가 듀잉에 대하여 이야기 한 것을 회상하시면서 감상하시면 좋을것 같죠. :)   백악관에서 미국 대통령들과 세계 정상급 국빈들을 위해 연주하던 피아노를 우리도 우리 삶에 들여놓고,  비록 가난하고 힘들어도, 마음은 재벌처럼 우아하게, 한번 폼잡고 살다 가는거죠. 뭐 삼시세끼 먹기는 재벌이나 나나 마찬가지고... 나도 내 한몸 잘 침대가 있고, 끼니 걱정이 없으니, 복되도다 복되도다.

 

 

2010년 1월 1일. 재벌같은 하루의 시작.  redfox.

 

 

 

Posted by Lee Eunmee
American Art History Sketch2009. 12. 28. 04:53

토마스 윌머 듀잉

 

 

토마스 윌머 듀잉 (Thomas Wilmer Dewing 1851-1938) 은 매사추세츠주 보스톤 태생의 화가 입니다.  1876년부터 1879년까지 (그의 나이 25세부터 29세까지) 파리와 뮌헨에서 미술 수업을 받았으며 미국으로 돌아온 후에는 Society of American Painters 그룹에 속하여 잡지 편집인이었던 Richard Watson Gilder의 살롱을 중심으로한 뉴욕 문화계에 어울리게 됩니다.  길더는 당시의 유명한 미술가, 작가, 재벌들과 친교를 맺으면서 이들과 '황금시대 Gilded Age'를 펼쳐 나갑니다.  미국미술사에서 '황금시대'는 말하자면 '돈'과 '예술'의 만남이었다고 할 만 하지요.

 

이곳에서 듀잉은 건축가이며 디자이너이기도 했던 Stanford White 와 친교를 맺게되는데 이들간의 돈독한 우정은 스탠포드 화이트가 죽을때까지 (1905년) 이어집니다. 스탠포드 화이트는 살해되었지요. 듀잉의 상심이 컸다고 합니다.  제가 듀잉 관련 페이지에 소개해드렸던 그의 작품들, 그 작품들이 '액자' 디자인은 모두 스탠포드 화이트의 작품입니다.

 

Gilder 의 살롱에서 듀잉은 그의 평생 아내가 되는 Maria Oakey (1845-1927)도 만나게 됩니다.  그러고보니 듀잉보다 여섯살 연상이군요.  마리아 역시 화가였습니다. 마리아는 John La Farge 와 함께 미술 수업을 받았는데, 듀잉에게 화면을 전체적으로 부드럽게 조정해보라는 조언을 합니다.  듀잉이 Tonalist 로 나아간데는 아내의 역할이 지대했던 것이지요.

 

1890년부터 듀잉은 뉴 햄프셔의 스튜디오에 머무르며 초록색 계열의 이상화된 자연속의 여성들을 창조해냅니다. 1897년 그는 Society of American Painters 에서 탈퇴하여 Ten American Painters 모임에 합류하여 20여년간 이들과 함께 활동하게 됩니다.

 

The Ten (미국 인상주의 화가들) 뒤에 서있는 사람들중에서 오른쪽에서 두번째 콧수염 신사가 듀잉

Seated, left to right:

(1) Edward Simmons,  (2) Willard L. Metcalf, (3) Childe Hassam, (4) J. Alden Weir, (5) Robert Reid
Standing, left to right:

(6) William Merritt Chase, (7) Frank W. Benson, (8) Edmund C. Tarbell, (9) Thomas Wilmer Dewing, (10) Joseph Rodefer De Camp

 

그리고 1905년부터는 그간의 야외 풍경에서 벗어나 실내 중심의 작품 활동을 합니다. 그의 그림에서 실내는 부드럽게 채색되고, 색조(tone)가 통일되어 있습니다.  인물들은 하나 혹은 둘이 간결한, 대부분이 생략된 공간에 존재합니다.  남자를 찾아보기 힘든 그의 그림에서 여성 인물들은 손으로 다가가 잡을수 없는 거리에서, 이상적인 형태로 그리고 고요하게 존재합니다. 그의 그림에서 인물들의 숨소리나 체온을 느끼기는 힘듭니다. 마치 숨쉬는 풀잎들처럼 그들은 존재합니다.

 

듀잉은 미국의 인상주의 미술을 이끌었던 10인회의 회원이었으므로 미국 인상파 화가로 분류가 되기도 하지만,  좀더 국소적으로는 Tonalist (색조주의자) 군에 속합니다. Tonalism (색조주의)는 1880년경부터 1915년에 이르기까지 미국출신의 화가들이 풍경화를 그릴때 보였던 양상인데 George Inness 와 James McNeill Whister 가 그 대표적인 화가들입니다.  듀잉역시 화면의 전반적인 색조로서 화면의 분위기를 전달하는데 공을 들였지요.  이 색조주의는 미국에서 인상파 화풍이 우세해지면서 그 명맥을 잃게 됩니다.

 

듀잉은 미술가로서는 매우 행운아였습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미술사에서 '당대'의 인정을 받고 영예를 누리다가 죽어서도 여전히 대가로 인정받은 화가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오히려 비참하게 살다가 인정도 못받고 죽은후에 사후에 인정받아 그림값만 하늘 높을줄 모르고 뛰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네덜란드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가 그러하였고, 우리나라의 박수근 선생 역시 미군부대에서 양키들에게 초상화를 그려주는 '노동'으로 간신히 연명할수 있었으며...  그런데 듀잉은 일찌감치 뉴욕의 보험업자였던 John Galletly 그리고 디트로이트의 철도차량 사업가였던 Freer (워싱턴의 프리어 갤러리를 기증한 사람)의 열렬한 애정과 지원을 받는 행운을 누립니다.  결국 Galletly 가 수집했던 작품들은 스미소니안 미국 미술관에, 그리고 프리어가 수집한 작품들은 스미소니안 프리어 갤러리로 옮겨지게 됩니다.

 

 

초록 안개의 꿈

 

http://americanart.textcube.com/234 페이지에서 우리는 몇장의 그림을 보고 듀잉 작품세계의 어떤 특징을 꼽아본 적이 있습니다. 해당 페이지의 내용을 옮겨 보겠습니다.

 

(1) 그림속의 주인공들이 모두 '여성'들입니다.  남자 안보이지요?  :)  '여름'과 '낭송'에서는 각각의 화면에 두명의 주인공들이 들어있습니다.  세폭 병풍같이 생긴 작품 속에는 한폭마다 한명의 여자가 그려져 있지요.

 

(2) 모두 유화이군요.

 

(3) 배경이 모두 초록색 계열이지요.

 

(4) 그리고 배경이 모두 '자연'입니다.  인공적인 '건물' 같은것은 안보이지요?

 

(5) 안개가 낀듯 화면들이 대개 '아슴프레'하지요?  사진사가 사진 실력이 없긴 하지만, 원래 작품이 이래요. 촛점이 어긋난것처럼 아슴푸레한 것이 이 세작품의 공통점입니다.

 

(6) 여성들이 현실적으로 보이십니까? 아니지요? 팔은 가늘고 하체는 무척 길죠.  '이상화'된 여성의 체형인것처럼 보입니다.

 

우리는 단지 '몇 편'의 작품만으로도 듀잉의 이런 특징들을 발견해 낼수 있었는데요.  듀잉의 이야기들이 이어지면서 뭐가 새로 추가가 되었을까요?

 

(1) 그림하고는 상관이 없지만, 그가 남긴 작품들의 '액자'가 모두 통일되어 있지요. 그것이 워싱턴에 있건 피츠버그 카네기 미술관에 있건 액자는 동일한 사람의 작품입니다. 그와 막역한 친구이기도 했던 건축가, 디자이너 Stanford White 가 디자인 한 것입니다.

 

(2) 일정한 색조를 유지하면서 그 색감 자체가 그림의 '주제'였다는 점에서 듀잉 활동당시 서로 교류하며 영향을 주고 받았던 James McNeill Whistler (제임스 맥닐 휘슬러), George Inness (조지 이네스)의 Tonalism 을 그의 그림에서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3) 그가 후에 십인회에 가입하게 되는데, 십인회의 주요 멤버들이 미국미술사에서 '미국 인상파 화가들'로 자리매김 하게 됩니다.

 

(4) 1905년 이후에는 실내에서 여인들이 악기를 들고 있는, 실내 중심의 그림들이 많이 발견됩니다.  제가 소개드린 작품들을 찬찬히 보시면, 이 블로그에 소개된 작품들 만으로도 듀잉의 활동이 '야외'에서 '실내'로 옮겨가게 된 것을 파악할수 있습니다.

 

(5) 당시에 미국이나 유럽 화가들을 사로 잡았던 '일본화' '일본화풍'이 듀잉에게도 영향을 끼친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6) 그는 당대에 '부자들의 후원'을 듬뿍 받은 운좋은 화가였지요. 그는 산업의 폭발적 발전으로 신흥대국이 된 미국의 재벌들의 '돈'과 유럽등지에서 예술 공부를 하고 돌아온 미국의 예술가들이 어울려 이뤄낸 '황금시대'의 아이였고, 수혜자였던 것이지요.  금박으로 떡칠을 하여 백악관에 기증한 스타인 피아노의 장식이나, 디트로이트 재벌 프리어의 실내 장식이나 장식용 그림을 제작해내면서, 그는 예술을 위해 배를 곯거나 화구를 사기위해 막노동을 할 필요가 없는 '아름다운' 세월을 보낼수 있었을 겁니다.

 

 

그리하여, 듀잉의 그림에서 우리는

'안개속을 걷는듯한 상쾌하고 촉촉한,'

'몽환적인,'

'어디선가 아름다운 멜로디가 들려오는 듯한,'

'사람의 숨소리나 땀냄새가 느껴지지 않는'

'선녀들같이 아름다운 여인들이 가볍게 춤을 추는'

'연두색 물감이 이러저리 스며들다 내 영혼에까지도 스며들듯한' 

이러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실제로 프리어 갤러리의 듀잉 전시실에 가면 호흡도 고요해지고, 마음도 잠시 편안해집니다.

 

 

영혼의 부재

 

그렇다면, 이토록 아름다운 작품들이, 왜 미국 미술사 책에서, 미국 미술 비평 앤솔로지에서 크게 주목을 받지 못하는 것일까요? 왜 듀잉의 이름이 세계적인 화가 반열에 오르지 못하고 미국 미술의 언저리에서 희미하게 맴돌다 마는 것일까요?

 

이전페이지에서 저는 이를 간단히 '페이소스 (pathos)가 안보인다'로 정리한 바 있습니다. 듀잉의 색조는 우리 영혼에까지도 스며들것같이 부드럽고 습기가 있으며 정제되어 있지만, 그토록이나 아름답지만,  안타깝게도 듀잉의 여인들에게서 우리는 영혼을 느낄수 없습니다. 사람의 숨소리나 땀냄새가 나지 않으므로 관객인 우리가 끼어들 여지가 없습니다. 천상에만 존재하는 주인공들 곁에 우리는 다가갈수 없습니다.  다가갈수 없으므로 공감이 불가능해집니다.  저들은 관객인 나와 공감하지 않습니다. 나의 고통을 들어주지도 않고, 나의 신음소리를 듣지도 못합니다.  나는 그림으로부터 소외감을 느낍니다.

 

이런 재미있는 설이 있는데요. 백화점 판매직원이 '너무나도 아름다우면' 오히려 매출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수 있다고 하지요.  내가 물건 사는 사람이고 판매원은 내게 도움을 주는 사람인데, 그 사람이 너무 근사하고 잘생기면 오히려 손님인 내가 의기소침해진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너무 잘난 판매원은 오히려 물건을 잘 못 판대요. (믿거나 말거나). 

 

듀잉의 그림속에는 '관객 (비평가들이나 미술사가 모두 포함)'들이 동감하거나 공감할 삶의 고통이 보지지 않습니다. 부조리함이나 비뚤어짐, 망가짐 같은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극복해야할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오직...팔자 늘어진 어떤 사람들이 식후에 페퍼민트 한잔으로 느끼함을 지우려하듯, 딱 고만큼의 아름다움만이 존재 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이 아름다운 그림들은 우리 눈앞에 나타났다가 안개처럼 사라지고 그리고 지워지게 됩니다.  여기까지가 화가 듀잉의 몫인것 같습니다.

 

듀잉이 만약에 물감을 사기위해 막노동을 해야 했거나,  캔바스를 새로 장만할수 없어 그림위에 또다시 그림을 그려야 했던 상황속에서 고민하고 고통을 겪었더라면, 이 아름다운 선녀들은 우리에게 좀더 아름다운 노래를 불러줬을지도 모릅니다.  (미술가는 배부르면 안돼? 꼭 고생하다 죽어야 미술이 완성돼? 이렇게 반문하고 싶으시죠?  영화 누리면서 떵떵거리다가 세상 하직한 대가들도 여럿 있죠.  듀잉의 예술은 거기까지도 미치지 못했겠지요.)

 

저는 듀잉의 그림들을 좋아합니다. 편안하고 좋아요...  그러니까 이렇게 페이지를 여섯개씩이나 만들면서 상세하게 그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는 것이지요.  그렇지만 동시에 안타까움도 느낀다는 것이지요...  안개처럼 희미하게 사라지고 만 그의 예술세계가 안타까운 것이지요.

 

인생은...고통스럽지만...고통을 견디면...나는 조금 더 사람 냄새를 풍기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고통을 견뎌야 하는 이유 같은것을 이렇게라도 찾게 되는군요.) 나를 불후의 명작으로 만들수 없다해도, 죽는 순간까지는 불후의 명작을 만들기 위해 노력을 해야겠지요 뭐...

 

2009년 12월 27 redfox.

 

 

 

 

 

 

 

 

 



 

Posted by Lee Eunmee
American Art History Sketch2009. 12. 27. 23:59

 

 

스미소니안 국립 미국미술 박물관, 듀잉의 작품 전시실 입니다. 2009년 7월 13일에 촬영한 것들인데요. 보시다시피...사진상태가 여엉 '아니올시다' 입니다. DSLR 갖고 다니기 전에 소형 디지털카메라로 대충대충 찍었던 사진들이라서.  (조만간 다시 들러서 작품사진들을 담아 오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스미소니안 미국미술관 2층에 전시되고 있는 이 스타인웨이 피아노는 스타인웨이 피아노사의 창립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미국 백악관에 기증할것을 목적으로 제작된 것인데 Theodore Roosevelt 대통령 재임시 (1903) 듀잉이 '장식'을 담당한 것입니다.  이 피아노는 스타인웨이가 제작한 피아노중에서 십만번째 작품이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라흐마니노프도 이 피아노를 연주한적이 있다고 합니다. 이 피아노는 태프트, 윌슨, 하딩, 쿠어리지, 후버, 그리고 프랭클린 루즈벨트 임기까지 백악관에 있었다고 합니다.

 

 

 

흰 바탕에 금박으로 장식을 하고, 뚜껑 안쪽에 열명의 고운 아가씨들이 있는데요, 맨 왼편의 아가씨는 의자에 앉아있고, 나머지 아홉명은 원무를 추듯 서있는데요. 스타인웨이가 듀잉에게 작품을 의뢰하면서 America Receiving the Nine Muses (아홉명의 뮤즈들을 맞이하는 아메리카)라는 고전적 주제를 제안했다고 합니다.

 

아홉명의 뮤즈는 제우스와 네모신 (Mnemosyne) 의 아홉명의 딸들을 가리키는데 예술의 상징으로 서양 고전물에 많이 등장하지요.  듀잉은 뮤즈들을 그리면서 미국 건국 초기의 여성들의 옷차림을 한 여인들을 그려넣음으로써 서양 고전화에서 살찍 비껴갔다고 합니다. 뮤즈를 그리더라도 미국식으로 그리겠다는 자존감의 표현이었는지 알수 없으나 이를 애국적인 시각에서 해석하는 평자도 있습니다.

 

 

 

 

 

 

 

 

아래 작품은 In the Garden, 정원에서 (1892년) 작품입니다.

 

 

 

 

 

2009년 7월 13일 워싱턴 스미소니안 미국미술관에서 촬영.

 

 

 

redfox.

 

 

Posted by Lee Eunmee
American Art History Sketch2009. 12. 27. 23:59

 

프리어 갤러리의 듀잉과 타이론 전시실.  왼편에 있는 작품들이 듀잉. 오른쪽 벽에 걸린 작품들이 타이론의 풍경화들입니다.

 

듀잉의 작품, 왼쪽부터 (1) The Four Sylvan Sounds, (2) Before Sunrise, (3) After Sunset, (4) The Blue Dress 가 차례차례 보입니다.  대강 전시실이 이러한 분위기이고, 전시실에 걸린 작품들의 실제 크기가 이정도 된다는 '감'을 독자들께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사진에 찍힌 전시물외에도 입구쪽에, 그리고 다른 전시실에 작품들이 있으므로, 제가 프리어에서 '사냥해온' 작품들을 차례차례 보면서 이야기를 나누겠습니다. (전시된 작품은 '모두/깡그리' 찍어왔습니다 ^^)  <--- 이 돌쇠식 열정~ (아이참...사진 기술을 좀 익혀야 하는데...제가 게을러서요...전 아무래도 선생님이 필요해요...게으른 사람들에게는 '교실'이나 '선생님'이 동기가 되지요.  이 대충주의를 버려야 하는데...

 

 

 

이 전시실에 걸린 작품들은 디트로이트에 기반한 독신 사업가 프리어씨가 디트로이트 외곽에 저택을 지으면서 실내 장식을 목적으로 주문한 것들 위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File:Charles Lang Freer House.jpg

디트로이트시에 1887년 세워진 프리어씨의 저택

 

이 집이 지어진 19세기 말 (1887년)은 미국이 남북전쟁 (Civol War, 1861-1865)을 넘어서서 산업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황금 시대를 구가하던 때 입니다. 그래서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반까지의 시기를 황금시대 (Gilded Age)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요. 이 Gilded Age 는 '허클베리핀의 모험'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미국의 '진정한 소설가, 이야기꾼' 마크 트웨인 (Mark Twain)이 처음 소개한 표현입니다.  피츠버그의 카네기와 록펠러, 디트로이트의 헨리 포드와 그리고 철도용 기차 사업가였던 프리어등 모두 당대의 재벌들이었지요. 이 신흥 산업국가 미국의 재벌들은 경쟁이라도 하듯이 (걸신들린듯) 유럽의 명품들이나 아시아의 명품들을 사냥하고 포획하고 서로 자랑하는 것으로 삶의 기쁨을 누렸던 듯 합니다.  (제 표현이 너무 냉소적으로 느껴지신다면...죄송합니다.  그런데 제 눈에는 뭐 돈갖고 해볼거 다해보고 더이상 할게 없어서 이런게 아닌가 이런 생각도 하게 됩니다. 돈이 있어야 문화고 뭐고 있는거니까. 특히, 문화는 돈이 없으면 끝장이 나고 맙니다... )  저야 그저 부자들의 이런 취미 덕분에 그거 헐값에 구경하는 은혜를 누리고 있으므로 불평의 여지가 없지요~ ~   앗참, 2009년 8월에 코넥티컷주 하트포드에 있는 마크 트웨인의 저택을 구경했는데요, 이 아저씨도 집안을 무슨 '중세 사원'처럼 금박으로 장식을 했더라구요.  아주 금칠갑을 했던 겁니다. (그래서, 저는 마크트웨인에게 실망을 하고 돌아서고 말았지요.)

 

 

그래서 이렇게 황금시대를 구가하던 미국인들이 20세기 초반을 지나면서 1930년대 대공황을 맞이하게 되는 것인데요.

 

 

 

그림으로 가지요.  =)

 

'화환 Garland'이라는 제목의 이 작품은, "도대체 어디에 화환이 있다는거야?"하고 나름 두리번거리게 만드는 제목입니다. 여자의 왼손끝에 뭔가 희미한것이 보이실텐데요. 아주 작고 희미한 꽃줄입니다. 그 꽃줄을 시계차듯이 손목에 감지요. 그 보일락말락한 희미한 꽃줄을 그림의 제목으로 삼았습니다.  미술사가들은 Thomas Wilmer Dewing (1851-1938)이 1920년 이후에는 그림 작업을 하지 않았다고 전하기도 하는데요 (그러고보니 1920년대와 그 이후에 제작된 그림이 안보이는군요. 안그렸다는 뜻인가봐요) 그런 견지에서 보자면 1916년에 그려진 이 작품은 그의 말기작에 해당된다 할 수 있습니다. 이 그림은 프리어씨의 저택을 장식하기 위해 제작된 것은 아니고 후에 프리어씨가 사들인 것입니다.

 

여인이 앉아있는 의자나 테이블의 다리가 아주 가늘고 간결하지요? 테이블위의 도자기의 딱딱함과 반지르르함이 간결한 화면과 조화를 이룹니다. 여성의 자세나 표정도 '조각상'처럼 정제되어 있고 '고요'합니다. 오직 살아있는 생명체는 여성의 손에 들린 꽃줄 뿐인것 같습니다.  눈에 잘 띄지도 않는, 그러나 화면의 정 중앙에 배치한 꽃줄이 화면 전체에 고요한 '생기'를 불러일으키는듯 해 보입니다.

 

 

The Garland (화환) c. 1916

Oil on Canvas

2009년 12월 프리어갤러리에서 촬영

 

 

 

이 피아노라는 작품은 1891년 프리어가 듀잉에게서 사들인 최초의 작품입니다. 듀잉이 작업하던 뉴욕의 스튜디오에서 발견하여 사들였다고 합니다. 당시에 프리어는 그가 새로지은집의 치장에 열중해 있었고, 실내 일부를 듀잉이 맡아서 치장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듀잉이 실내장식을 맡은 방에 듀잉의 작품을 걸은 것이지요 (아 돈있는 사람들은 이러고 노는군요 헤헤헤.  난 돈 없으니까, 내가 실내장식 하고, 내가 내 그림 걸고 그러면 되는거지요 하하하.  우리는 셋방에 살아도 재벌과 다를게 없습니다. 내가 내 공간을 장식하고 내 작품을 그려 붙이고, 내가 나를 부려먹고, 내가 나의 명령을 받고, 뭐 혼자서 다 하면 됩니다.)

 

화면이 여전히 간결하죠?  절제되어있고, 뭐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같지도 않습니다. 그냥 그림을 보고, 음, 편안하고 좋구나 이러면 되겠지요. 그래서 듀잉의 그림은 어릴때 침을 흘리며 들여다보던 아슴프레한 요정들의 세계 그림 같아요. 그냥 보면 좋은거죠. 편안하고, 아늑하고...

 

The Piano (피아노) 1891

Oil on Wood Panel

2009년 12월 프리어 갤러리에서 촬영

 

 

 

 

 

 

'네가지 숲의 소리'는 듀잉이 뉴햄프셔주의 스튜디오에서 작업을 한 것입니다. 뉴햄프셔는 뉴잉글랜드 지방의 일부입니다. 저도 지난 여름 (2009년 8월)에 뉴햄프셔주의 농가 (시인 Robert Frost 가 살았던 농장)를 가본적이 있는데요, 뉴잉글랜드의 여름의 숲의 정경이 바로 이 그림속에 스며있다고 할 만 하지요. 그림을 제작하던 당시 듀잉이 프리어와 주고받은 편지에 이런 사연이 있었다고 합니다. "I wish you could be here taking in this cool fresh air filled with bird notes and scents of flowers... 당신이 이곳에 와서 새들의 노래와 꽃향기 가득한 이 차고 상쾌한 공기를 마실수 있다면 좋을텐데요."

 

 

저는 듀잉의 이와같은 서술이 '사실'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뉴잉글랜드 지방까지 갈것도 없이 제가 살고 있는 버지니아, 워싱턴 지역만해도 강변의 숲길이나 호숫가 숲으로 가면 바로 이런 몽환적인 초록색의 숲에 몸을 잠기게 됩니다. 특히나 이른 봄, 겨울나뭇가지에 새순이 돋기 시작할때부터 녹음이 우거질때까지, 매일 매일 나가서 숲길을 걷다보면 그 연초록이 짙은 초록으로 물들어가는 색조의 변화가 서서히 눈에 들어옵니다.  그래서 워싱턴에서 듀잉을 발견하고, 그 이듬해 봄 내내 숲길을 산책하면서 제가 깨달았던것 - "아하, 듀잉의 그림은 근원지가 미국이었구나. 그는 환상의 세계가 아닌, 그가 눈으로 본 아름다운 세상을 화폭에 옮긴것이구나."  물론, 그의 그림에 나타나는 주인공 여성들은 모두 환상의 세계에 살법한 뮤즈들처럼 보이지만, 그의 작품들의 배경은 뉴잉글랜드 지방의 초록색 풍경이었던 것이지요.

 

 

이 네폭 병풍은 듀잉이 '일본화'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1895년 듀잉은 파리에서 작업하고 있던 제임스 맥닐 휘슬러의 화실에서 일본화와, 휘슬러가 작업하던 일본풍 작품들을 발견하고 일본화 기법에 감탄을 하게 되지요. 듀잉이 이 네폭 작품 작업을 하던 당시에 프리어 역시 여러점의 일본 병풍작품들을 사들이고, '일본화'의 영향이 듀잉의 그림세계에도 스며들었다 할만하지요.

 

 

 

The Four Sylvan Sounds (네가지 숲의 소리) 1896-97

Oil on Wood Panel

2009년 12월 프리어 갤러리에서 촬영

 

 

 

Before Sunrise 작품 작업을 하고 있을때 듀잉은 일본을 방문중이던 프리어로부터 일본화를 한묶음 전달 받습니다. 그리고 일본화의 매력에 빠지게 됩니다.  그는 Kitakawa Utamaro 의 작품들에 열광하였고, 그의 작품에도 일본식 등불이 등장하게 됩니다. Before Sunrise 화면 뒷쪽의 작은 여자가 들고 있는 것이 일본식 랜턴입니다. 심지어 그는 이 작품을 Dedicated to Utamaro (우타마로에 헌정함)이라는 제목으로 부르기도 했다는 군요.  그리고 그의 작품을 거는 방에 우타마로의 작품도 함께 전시를 하여 두 작품이 어떻게 연관되는지 보여주고 싶어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우타마로의 작품을 구글에서 검색해보면 ... (이제부터 18금) 흠...켁...춘화 작품도 엄청시리 많십니다...ㅋㅋ.  아무튼, 앞으로도 여러차례 논의가 되겠으나 근대에 일본화가 서양미술가들에게 끼친 영향을 '막대'합니다. (orz)  입맛이 씁쓸하지만, 사실은 사실이죠 뭐...

 

 

 

 

 

Before Sunrise (해뜨기 전) 1894-95

Oil on Canvas

2009년 12월 프리어갤러리에서 촬영

 

 

 

 

After Sunset 은 Before Sunrise 와 같은 크기의 그림입니다. 해뜨기전에 붉게 물든 하늘이 보였는데, 해가 지고 난 후에는 저 숲 가장자리에 기웃이 보이는 것은 저녁달 일까요?  이 작품은 듀잉이 'The Pink Dress'라고도 불렀다고 하는데, 다음에 보이는 그의 The Blue Dress'와 짝을 이루고 있지요. 분홍 드레스의 아가씨와 푸른 드레스의 아가씨의 포즈가 일치합니다.

 

 

 

After Sunset (해가 진 후) 1892

Oil on Canvas

2009년 12월 프리어 갤러리에서 촬영

 

 

듀잉은 프리어 저택의 방에 전시된 그의 작품들 중에서 특히 이 작품을 사랑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The Blue Dress (푸른 드레스) 1892

Oil on Canvas

2009년 12월 프리어 갤러리에서 촬영

 

 

 

 

 

 

다음에 소개되는 작품들 역시 프리어의 소장품들입니다.  악기를 들고 있거나 연주하는 세명의 아가씨들이 각각 그림의 주인공들입니다. 그림 속의 악기, 연주는 시각적인 예술과 청각적 예술의 조화를 가능케하지요.  우리는 그림을 보면서 상상속에서 악기의 소리, 울림, 곡조를 듣고 흥얼거리게 됩니다.  참, 예술지상주의적인 작품들이지요.  듀잉의 작품들속에는 인간사회라는 것이 존재하는것 같지 않습니다. 아름다운 자연과, 아름다운 여인들과, 아름다운 악기.

 

이것이 듀잉의 세계입니다.  아마도...듀잉이 미술사가들로부터 주목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어쩌면 사람들의 삶의 양태로부터 동떨어진 너무나 예술지상주의적인 듀잉의 미술에 대한 태도가 아마도 비평가들이나 미술사가들에게 매력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인것 같습니다. 도대체 '이슈'가 없쟎아요.  부자들의 눈을 기쁘게 하는 장식물로 적당했을뿐...  한마디로, 그에게는 페이소스 (pathos)가 없었다는거죠.

 

(계속...)

 

 

 

Girl with Lute (류트와 소녀) 1904-1905

Oil on Wood Panel

2009년 12월 프리어 갤러리에서 촬영

 

 

 

Lady Playing the Violincello (바이올린 첼로를 연주하는 숙녀) ca. 1908

Oil on Wood Panel

2009년 12월 프리어 갤러리에서 촬영

 

 

 

An Artist (예술가) ca. 1906

Oil on Canvas

2009년 12월 프리어 갤러리에서 촬영

 

 

 

Posted by Lee Eunmee
American Art History Sketch2009. 12. 27. 08:19

 

 

Lady in Black and Rose (검정색과 장미색 드레스를 입은 숙녀) c. 1905-1909

Oil on Panel

44 x 55 cm (가로 세로)

2009년 11월 피츠버그 카네기 미술관에서 촬영

 

 

 

Morning Glories (나팔꽃) c. 1900

Oil and Canvas on Three Panel Boards

183 x 164 cm (세폭 전체 크기)

2009년 11월 피츠버그 카네기 미술관에서 촬영

 

 

이전 페이지, 디트로이트 미술관 ( http://americanart.textcube.com/234 )소장 듀잉 작품들을 감상하면서 논의했던 듀잉 작품의 특징들이 이곳에서도 여전히 발견됩니다.

 

그런데, 이전 페이지에 이어서 뭔가 새로운것을 발견 하셨는지요?

 

음...'액자' 디자인이 일정한 패턴을 유지하고 있지요? 일단 금박이고, 액자를 세밀하게 들여다보면 액자에 새겨진 무늬들이 일정합니다. 한 사람의 작품처럼 보이지요? 어쩐 일인지 알 수 없으나 듀잉의 작품들을 감싸고 있는 액자들은 모두 '동일범'(?)의 소행처럼 보입니다.

 

이 액자들을 디자인 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퀴즈로 남겨 둬 볼까요?)

 


 

 

 

 

Posted by Lee Eunmee
American Art History Sketch2009. 12. 27. 07:58

 

음, 제가 갖고 있는 토마스 윌머 듀잉의 작품 사진 파일이 많은 편입니다.  이것들을 어떻게 정리할까 고민하다가,  미술관별로 그림 소개를 하고 그리고 전체적인 정리를 하는 것이 이 아름다운 그림들을 감상하는데 도움이 될것 같다고 판단했습니다.  사실 듀잉의 그림은,  설명보다는, 그냥 그림이 전해주는 '느낌'을 받아들이시면 될 것 같습니다.  듀잉의 그림속에 어떤 사회, 문화, 정치, 역사적인 '메시지'가 있는것도 아니고  화면가득한 '색채'와 색깔의 각기 다른 깊이 (tone)이 주는 것을 관조하는 것이 그림 감상의 포인트라고 봅니다.

 

습자지에 먹물이 번져가는 것을 지켜보듯, 그냥 편안하게요...  듀잉의 그림중에는 '악기'를 들고 있는 여인들, 혹은 악기 제목의 작품들도 많이 보이는데, 같은 맥략이라고 생각합니다. 기타줄이 퉁 하고 울릴때, 잔잔하고 길게 퍼지는 소리... 딩.....이런 소리는 소리가 '들린다'기보다는 소리가 스며들죠. 

 

 

Summer (여름) 1893

Oil on Canvas

디트로이트 미술관 소장

2009년 10월 31일 사진촬영

 

 

 

Classical Figures (고전적 형상) 1898

Oil on Panel

디트로이트 미술관 소장

2009년 10월 30일 촬영

 

 

 

 

The Recitation (낭송) 1891

Oil on Canvas

디트로이트 미술관 소장

2009년 10월 31일 촬영

 

 

 

 

자, 위의 세작품에 보이는 듀잉화의 공통점들을 찾아볼까요?  제가 미술 전문가가 아니고 그저 '교양인' 수준으로 미술품을 '구경'하는 차원이라서, 뭐랄까, 미학적 분석보다는...음...텍스트 분석하듯 하는 점이 있는데, 그냥 미술을 '읽는' 저의 개성이라고 해두지요. 네, 인정합니다. 저 미술가 아닙니다. 미술 비평가도 아닙니다. 저는 텍스트(언어)를 주로 분석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만물을 텍스트 읽듯 들여다보는 편입니다. 이제 그림을 있는 그대로 그냥 들여다보는겁니다.

 

세 작품의 공통점으로 어떤것이 있을까요?

 

(1) 그림속의 주인공들이 모두 '여성'들입니다.  남자 안보이지요?  :)  '여름'과 '낭송'에서는 각각의 화면에 두명의 주인공들이 들어있습니다.  세폭 병풍같이 생긴 작품 속에는 한폭마다 한명의 여자가 그려져 있지요.

 

(2) 모두 유화이군요.

 

(3) 배경이 모두 초록색 계열이지요.

 

(4) 그리고 배경이 모두 '자연'입니다.  인공적인 '건물' 같은것은 안보이지요?

 

(5) 안개가 낀듯 화면들이 대개 '아슴프레'하지요?  사진사가 사진 실력이 없긴 하지만, 원래 작품이 이래요. 촛점이 어긋난것처럼 아슴푸레한 것이 이 세작품의 공통점입니다.

 

(6) 여성들이 현실적으로 보이십니까? 아니지요? 팔은 가늘고 하체는 무척 길죠.  '이상화'된 여성의 체형인것처럼 보입니다.

 

 

자 이런 공통점 외에 다른 특징을 혹시 찾아내셨는지요?  찾아내셨으면 제게도 알려주십시오.  :)

 

이 그림들을 보면 어떤 음악이 떠오르시나요? Secret Garden 의 몽환적인 음악이 잘 어울릴것 같지 않은가요?  (예...제가 꽤 촌스러운 사람이라서...헤헤.)

 

 

 

 

 

다음페이지로 넘어가겠습니다.

 

2009년 12월 redfox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