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의 스미소니안 미국미술관 2층으로 올라가면 오른편에는 초상화 갤러리가 시작되면서 장군시절의 조지 워싱턴이 서 있고요 (거기서 오른편으로 향하면 초상화 갤러리로 가는 것이고), 그 자리에 서서 왼쪽을 보면 이런 통로가 보입니다. 이 사진은 조지 워싱턴 초상화를 보다가 카메라를 왼편으로 돌려서 찍은 것입니다.
자 머리위로 Smithsonian American Art Museum 이라는 표시가 보이지요. 통로 가운데에 미니어쳐 자유의 여신상이 서있고요, 그 뒤로 중앙에 새 그림이 붙어있습니다. 새 그림 뒤로 통로를 따라 가다 보면 저 뒤에 어두운 색조의 커튼이 드리워진 작은 방이 보이지요? 그 커튼이 있는 방에 풍경화가 한점 있습니다. 알버트 비어슈타드의 초대형 풍경화인데요. 이 통로를 따라서 전시실들이 늘어서 있는데 이곳을 따라 이동하다보면 미국의 식민지 시절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미국미술사를 눈으로 훑을수 있게 됩니다.
바로 그, 미국 미술사 전체를 보여주는 전시장 입구의 중앙을 장식하는 것이 John James Audubon 의 독수리 그림입니다.
2010년 1월 31일 스미소니안 미국미술관에서 촬영
Washington Sea Eagle c. 1836-39
Oil on Canvas
John James Audubon 1785-1851
Born Les Cayes, Haiti, Died New York City (아이티 출생, 뉴욕에서 사망)
2010년 1월 31일 스미소니안 미국미술관에서 촬영
미국에서 존 제임스 오드본 (1785-1851) 이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은 많아도, Audubon 이라는 이름은 그다지 낯설지 않습니다. 미국의 아무 책방에나 가보면 아주 간단한 손바닥만한 책에서부터 두꺼운 하드커버 양장본 책에 이르기까지 '새 관찰'관련 책에 Audubon Society 라는 이름이 박히지 않은 책이 별로 없거든요. Audubon 이 뭔지 알수 없으나 Audubon Society 는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 National Audubon Society 라는 이름에 등장하는 Audubon 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오늘 짧게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데요. 북미 지역에서 '새 그림' 그린 사람 - 하면 그냥 자동으로 오드본을 떠올려도 될 정도로 오드본은 '새'에 미친 사람이었습니다.
요즘 남미의 아이티 (Haiti)에 발생한 지진으로 아이티나 한국이나 시끌시끌한데요, 존 제임스 오드본은 그 아이티에서 태어난 사람입니다. 당시 아이티는 프랑스 식민지였지요. 존 제임스 오드본의 아버지는 이 아이티에 대규모 농장을 경영하던 프랑스 출신의 선장이었는데요, 그와 아이티 원주민 여인과의 사이에서 존 제임스 오드본이 태어났습니다. 오드본의 생모는 출산 6개월 후에 사망하고, 오드본은 프랑스 낭트의 본가로 보내졌습니다. (그는 사생아였죠.) 프랑스의 본가에서 기다리던 프랑스인 어머니와의 사이가 어땠는지는 알 수 없고, 그는 비교적 간섭받지 않는 자유로운 어린시절을 보냈던것 같습니다. 그는 주로 들로 산으로 나 돌아다니며 자연 관찰 하는 일을 즐기며 성장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가 18세 되던 1803년 그의 아버지는 나폴레옹의 징집을 피하기 위하여 오드본을 미국으로 보냅니다. (징집 기피이군요). 그는 필라델피아 인근에 있던 아버지의 농장에서 살다가 이웃 처녀와 결혼을 합니다. 비록 혼혈 사생아로 태어나긴 했으나 부유한 아버지의 도움으로 사는데는 어려움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1819년 그가 파산을 하여 알거지가 되자, 그는 미시시피 강 연안을 따라 이동하면서 새 그림을 그리기로 작정합니다. 북미의 모든 새를 다 그리겠다는 포부였지요. 중간에 그가 그린 새 그림을 모두 유실하는 사태를 겪기도 했지만, 그의 노력은 영국의 Ryoal Society in London 에서 인정을 받았고 1827년부터 1838년 사이에 북미의 새 435장을 출판해 냈습니다. 1840년대 초반부터는 북미의 포유류를 모두 그리겠다는 프로젝트를 시작했지만 완성을 보지 못하고 1851년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그가 완성하지 못한 프로젝트는 그의 아들인 Victor Gifford Audubon 과 John Woodhouse Audubon 에 의해 완성 됩니다.
오드본의 새 그림의 특징은, 한정된 면 안에 새를 거의 실물 크기로 재현해 냈다는 것입니다. 새를 최대한 사실에 부합되도록 정확히, 생생하게 그려내기 위해서 오드번이 기울인 노력은, 한종류의 새를 다치지 않게 여러마리 사냥하여 그 새를 여러가지 각도로 핀으로 고정시켜놓고 스케치를 했다고 하지요. 그러니까 한장의 새 그림을 그리기 위하여 그는 여러마리의 동일한 종류의 새를 희생시켜야 했던 것이지요. 이렇게 치밀한 관찰을 통해 그려진 그의 새 그림은 아직까지도 북미 지역의 새들을 연구하는데 좋은 자료가 되고 있고요, 그의 이러한 철저한 관찰정신을 높이 사서 National Audubon Society (http://www.audubon.org/) 에서도 그의 이름을 기렸고요, 관련단체에서 새 관찰 관련 안내서들도 많이 나옵니다.
아이티의 지진 사태로 많은 희생자가 생겼고, 하필 이렇게 불행한 일로 인해 요즘 아이티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는데요. 아이티에서 태어난 사람중에 미국의 대표적인 '새 그림 화가'도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페이지를 만들어 봤습니다. 프랑스와 아이티 원주민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 사생아 존 제임스 오드본. 그는 미국이 자랑하는 '새 그림 화가'로 성장하여 아직까지도 그의 독보적 미술세계와 시대를 앞서간 자연 관찰정신이 존경의 대상이 되고 있지요.
혹시 나중에 책방에서 '북미의 새들, 오드본 소사이어티' 뭐 이런 책 표지를 발견하시면, 아이티에서 태어난 한 혼혈 소년을 떠올리시기를.
2010년 2월 6일 RedF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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