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미술가'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0.12.24 Mary Cassatt: An American in Europe 메리 커셋
  2. 2009.11.22 타샤 튜더 (Tasha Tudor) 의 삶과 예술
American Art History Sketch2010. 12. 24. 09:17


(위 그림은 2009년 12월 19일 Smithsonian American Art Museum 에서 촬영했다)


메리 커셋 (Mary Cassatt 1844-1926)은 미국의 펜실베니아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독일과 프랑스에서 보냈으며, 16세때는 펜실베니아 미술학교 (Pennsylvania Academy of Fine Arts in Philadelphia)에 입교, 미술 수업을 받았다. 이후에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미술 수업을 받고, 평생 프랑스 파리와  인근지역에서 활동한 미국 화가이다. (그이은 결국 82세의 나이로 프랑스에서 운명했다)

메리 커셋은 당시 프랑스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던  인상파화가 (Impressionists)들중 유일한 미국출신, 여성 화가로 기록되고 있다. 특히나 Edgar Degas 와의 교류가 널리 알려져 있는데, 드가가 메리 커셋의 예술성을 발견하고 커셋의 멘토가 되어 주었다고도 하지만, 커셋 역시 자기 주장이 확실했던 화가였다고 한다.

커셋의 작품들은 대개 '여성'들의 일상적 삶의 풍경에서 그 소재를 취하였다.  이는 당시 여성들의 활동의 폭이 제한적이었음을 대변해주기도 한다.  그래서, 21세기를 살아가는 여성의 시각에서 커셋의 그림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남성중심의 시스템에 갖혀있는 극히 제한적인 여성의 삶의 묘사에서 그 한계를 느끼게 되지만, 그것은 21세기 여성의 시각에서 그러한 것이고, 커셋이 살아가던 19세기 말과 20세기 초반에는 메리 커셋이라는 화가가 화단에서 활발한 작품 활동을 벌이고 그 실력을 인정받을수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여성 해방적인' 의미를 갖는다.

이쯤에서 조선의 '신사임당'을 떠올려 볼 수 있다.  물론 신사임당이 유명해진 이유 속에는 조선의 석학 이이 선생의 모친이었다는 것이 한몫 하긴 하지만, 신사임당이 그려낸 화조도는 그 상세한 묘사나 애정어린 시각, 사물을 묘사하고 표현하는 테크닉에 이르기까지 시대를 뛰어넘는 탁월성이 있다. 그이의 주요 소재가 꽃이나 과일, 작은 짐승들과 같이 울타리 안에 갖혀사는 여인네가 관찰할수 있는 한정된 대상이었다고 해서 현재의 페미니스트의 시각에서 이를 비판하거나 그 가치를 과소 평가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신사임당이라는 한 여성의 탁월성은 그대로 여성들의 모델이 될만도 하다.

마찬가지로 어머니와 아기, 집안의 여성들의 한정된 일상적 삶의 풍경의 그 제한성이나 진부함으로해서 메리 커셋의 예술성을 폄하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커셋은 여성들에게 입교가 허용되지 않는 미술학교에 들어가고 그림 수업을 받는 담대함을 가지고 그 자신의 예술 세계를 개척한 투사이기도 했던 것이다.






다음은 2010년 1월 16일 워싱턴 디씨의 국립 미술관 (National Gallery of Art)에서 촬영한 커셋의 작품들.





상기한 바 대로 프랑스 화가 Edgar Degas 가 커셋의 예술성을 발견한 이래 미술적 멘토, 친구로 평생 지내게되는데, 커셋의 그림의 구도를 함께 의논한다거나 혹은 소품을 어떻게 늘어 놓을 것인지에 이르기까지 드가는 세심하게 조언 내지는 '참견'을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커셋은 드가의 조언이 맘에 들지 않을 경우 감정을 드러내고 격하게 대응하기도 했다. (기묘한 관계다.) 드가는 커셋의 초상화를 그리기도 했다.  그래서, 이들의 관계 때문인지, 큼직한 미술관에 이들의 그림이 걸릴 경우 드가 작품 옆에는 대개 커셋의 작품을 걸어 놓는다.  오른쪽에서 두번째 작품이 커셋의 The Loge 이고, 그 왼편에 Degas 선생의 작품이 걸려있다.  글쎄, 모르고 지나갈 수도 있지만, 이들의 관계를 알고 있는 관객으로서는 이 두작품이 나란히 걸려 있는 것을 보면 그만 픽 웃게 된다.  전시를 기획한 디렉터의 의중을 대충 짐작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짝꿍으로 전시되는 작품들은 커셋과 드가 외에도 오스트리아의 클림트 선생과 에곤 쉴레. 클림트가 쉴레의 후원자였고 이들은 격렬한 관계를 유지했었다. 그래서 미술관이 두 사람의 작품을 소장할 경우 기를 쓰고 두 사람 작품을 나란히 전시하는 편이다. (하하하),

































Posted by Lee Eunmee
American Art History Sketch2009. 11. 22. 08:51

 

Tasha Tudor (1915-2008)은  우리나라에 삼일운동(1919)이 일어나기 4년전인 1915년에 출생하여 지난해인 2008년까지 생존했던 미국의 삽화가이며 미술가입니다.  제가 우리나라의 삼일운동 얘기를 왜 하느냐하면,  타샤가 태어나 성장하던 시절 한국은 어떤 상황이었는지 돌아봄으로써 좀더 구체적으로 이를 기억하기 위해서이지요 (^^)  피상적인 어떤 '시간'을 좀더 구체적인 사항와 연결지어 생각하면 나중에도 선명하게 기억할 수 있습니다. (^^).  삼일운동하면, 저는 33인보다는 유관순 '누나'를 먼저 떠올리게 되는데요. 생각해보니, 타샤 튜더는 우리 할머니와 동시대의 인물이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 할머니가 열 여덟에 시집을 와서 열아홉에 우리 아버지를 낳으셨는데, 우리 아버지의 생년을 헤아려서 우리 할머니의 생년을 거꾸로 헤아리면 대충 우리 할머니와 타샤 튜더의 나이가 비슷하게 맞아 떨어진다는 것이지요.

 

이 페이지의 사진들은 클릭하면 커집니다.

 

 

타샤 튜더와 나

 

 

 

타샤 튜더는 동화의 '삽화'를 그리거나 자신이 직접 글과 그림을 그린 삽화가이면서 동화작가이기도 하고, 미술가이기도 했던 여성입니다.  제가 이분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은 우연히 서점에서 발견한 한권의 책 때문이었습니다. 책이 하도 아름다워서 이 책을 산것이 2006년 12월의 일이군요.

 

 

The Private World of Tasha Tudor

 

 

다음은 2006년에 책을 다 읽고 간단히 메모했던 독후감입니다.

타샤 튜더 할머니의 그림 세계를 보면, 스스로 생계를 해결하기 위하여, 꽃 구근을 많이 사기 위하여 그림을 그려서 판다고 말할정도로 매우 현실적이다. 그의 현실성은 그의 그림에서도 나타난다. 그는 직접 자신이 관찰한 내용을 그린다. 모형을 갖다 놓고 그걸 그리는것이 아니라 살아 숨쉬는것들을 관찰하고 이를 바탕으로 그림을 그린다. 이런 면에서 신사임당의 그림과도 많이 닮았다. 늘 맨발의 그녀는 육체노동을 마다하고 그림만 그리는 사람도 아니다. 스스로 노동하고, 자투리 시간을 그림을 그려서 그림을 팔아 살림에 보태고 스스로 먹고 사는것이다. 언제부터 화가가 전업화가이고 철학자가 전업철학자였던가. 언제부터 오로지 그림만 그리는 사람을 프로페셔널이라고 일컫고 생활속에서 살면서 그림 그리는 사람을 아마추어라고 부른것일까? 전업=프로페셔널이라는 이 잘못된 신화를 타샤 튜더 할머니는 맨발로 간단히 일축하고 마는지도 모른다. 상업화가이건 순수화가이건 사실 그건 구분의 요소라고 할수 없을지도 모른다. 보는 사람이 보고 '좋다' 이런 말이 나오면 된다는것이지. 좋다. 이 한마디가 얼마나 어려운것인가.

 

그래가지고, 당시에 약간 '헤까닥'해서 공부 하다말고 자투리 천 사다가 이런 놀이고 하고 놀았습니다. 요것이 말하자면 타샤 튜더 스타일의 앞치마인데, 손바느질로 탄생시킨 '어마어마한!' 작품이었지요... 사실 그 후에도 조각보를 만든다거나, 뜨개질로 이불을 세개나 짜내는 '괴력'을 발휘하기도 했는데, (하하하), 조각이불 세개중에서 가장 근사하게 만들어진 최종 작품은 한국의 우리 엄니한테 갖다 드렸고, 하나는 제가 현재 사용하고 있지요. 그것도 지금 돌아보면 공부 스트레스때문에 약간 '돌아가지고' 저지른 '난동'이었다고나 할까요.  아아 곱게 미쳤던 것인지도 몰라요. 어쩌면 인생 자체가 그냥 한바탕 꿈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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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치마를 입은 모습입니다. 앞의 털복숭이는 우리 강아지 (아무리 늙어도 영원한 강아지)

ChristmasGift_006.jpg

 

 

 

타샤 튜더 할머니는 본업이 삽화가, 미술가이긴 하지만, 그가 우리나라에까지 알려지게 된 것은 아마도 한국에도 번역소개 된 '타샤 튜더의 정원'류의 그의 삶을 모습을 닮은 책들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환경문제가 전지구적인 화제로 대두 되고, 웰빙 바람이 불면서 미국에서 친자연적으로 살아가는 화가의 삶이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그 분위기가 일본과 한국에도 흘러 들어오면서 타샤 튜더가 일약 유명인사가 된 것으로 생각됩니다.

 

 

위에 소개한 책 외에도, 도서관에서 아래의 책들을 빌려 올 수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탸샤 튜더 관련 책들이 많이 있지요.

 

 

탸샤 튜더의 어린시절

 

타샤는 매사추세츠주의 보스턴 (Boston)에서 1915년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건축 설계자였고, 어머니는 미술가였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좋아했는데, 여주인공 이름인 나타샤를 딸에게 붙여주었는데 결국 '타샤'로 자리를 잡게 됩니다.  튜더라는 성은 어머니의 성이었습니다. 어머니가 어린 딸을 데리고 친구를 만날때, "여기 튜더의 딸이 왔노라"하고 말하길 좋아했으므로, 타샤는 자신의 이름이 타샤 튜더인줄로 알았다고 하는데요,  공식적으로는 아버지의 성을 갖고 살다가 첫 남편과 결혼한후 남편의 성을 사용했고, 그 남편과 이혼 하면서부터 '튜더'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기로 결정 했다고 합니다.  (타샤 튜더는 두번 결혼하고 두번 이혼했습니다.)

 

'나로'님이 타샤 튜더에게 한국인 며느님이 있다는 이야기를 해 주셔서 웹 검색을 해보니 그분이 쓰신 시어머니 타샤 튜더에 관한 이야기가  여러곳에 나옵니다. (내용이 좋으니까 여러 블로거들이 스크랩을 한것으로 보입니다.)  그 중에 http://kr.blog.yahoo.com/jjssslee/15  페이지를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시어머님은 학교교육을 8학년까지밖에 받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아트에 관한 한 그 누구보다도 더 많은 지식과 재능을 갖고 있습니다.”

이 부분은, 약간, 타샤 튜더를 이해하는데 '방해'가 될 것 같습니다. 타샤 튜더의 교육 관련 자료를 찾다 보면 그가  Boston Museum School of Fine Arts (http://en.wikipedia.org/wiki/School_of_the_Museum_of_Fine_Arts,_Boston) 에서 수학했다는 내용이 있고, 그 외에도 미술가들로부터 개인 지도를 받았다는 내용도 있습니다. 타샤 튜더가 이 학교의 어떤 과정에서 몇해동안 수학했는지 알 수 없고, 이 학교에서 8학년 과정까지 공부를 했다는 것인지도 모릅니다만, 타샤 튜더가 성장하던 시기 (1915년생 미국 소녀가 성장하던 시기)에 미국 여성들중 정규 대학 교육을 받은 고학력 인구가 얼마나 될지 상상해 본다면 타샤 튜더의 8학년까지의 교육 이력이나 혹은 그의 미술학교 수학 이력이  교육적으로 열악한 상황이 아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타샤 튜더의 어머니도 미술가였고,  어머니와 교류하던 절친한 사람들도 미술가였던 점, 그리고 그가 미술학교에서 공부하거나 미술가들로부터 개인지도를 받았음을 볼때, 그는 미술가가 될만한 교육을 충분히 받았다고 봐야 마땅할 것입니다. (당시 조선의 소녀였던 우리 할머니는 소학교도 못다닌 농가의 규수였지만, 아무도 우리 할머니를 학교 교육도 못받은 불학무식한 처자로 보지 않았습니다. 당시의 교육제도는 오늘날과 달랐으므로.  똑같은 이유로 타샤 튜더가 설령 8학년까지만 학교를 다녔다해도, 오늘날의 기준으로 그의 교육을 가늠하면 곤란하다는 것이지요.

 

 

타샤 튜더의 부모님은 타샤가 9세가 되던 해에 이혼을 합니다. 타샤는 엄마와 함께 뉴욕의 예술가들의 거리에서 살면서 성장하다가 후에는 커넥티컷주에 있는 엄마 친구의 집에서 지내면서 이따금 엄마를 만나게 됩니다.  아래의 지도는 미국 영토중에 우리가 '뉴잉글랜드'라고 말하는 지역의 지도입니다.  이 뉴잉글랜드 지도를 왜 소개하는가 하면 '미국사'혹은 '미국 문화사'에서 뉴잉글랜드가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기 때문이고,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인 타샤 튜더가 전생애를 이 뉴잉글랜드 지역에서 지냈으며 뉴잉글랜드의 전통 문화를 평생 지키며 살다간 사람이기 때문 입니다.

 

뉴잉글랜드

 

 

Map of New England.

https://americancoloniesdana.wikispaces.com/Economy+-+New+England+Colonies

 

 

우리나라에서 호남, 영남 뭐 이런 식으로 지역을 구분하듯이 미국에서도 땅덩어리를 몇개의 구역으로 나눠서 이름을 붙이는데, 중서부도 있고, 서부도 있고, 여러가지 갈래중에 '뉴잉글랜드'라는 갈래가 있습니다. 

 

 * Connecticut 커넥티컷

 * Rhode Island 로드 아일랜드

 * Massachusetts 매사추세츠

 * New Hampshire 뉴 햄프셔

 * Vermont 버몬드

 * Maine 메인

 

이상의 여섯개 주가 뉴잉글랜드 문화권에 속합니다.  며칠후에 미국에 추수감사절 (Thanks Giving Holidays)이 다가오는데, 이 추수감사절은 이 뉴잉글랜드에 미국 건국초기에 정착했던 사람들이 인디언들에게 감사의 표시로 식사접대를 한것에서 유래합니다.  뉴잉글랜드는 말하자면 신생국가 '미국'이 태어나 태를 묻은 곳과  같은 곳입니다. 뉴잉글랜드라는 이름에서 볼 수 있듯, '영국'을 기리는, 영국의 문화가 많이 스며든 곳이기도 하지요. 

 

뉴잉글랜드에서 결혼 생활 그리고 동화책 작업

 

 

 

뉴잉글랜드의 매사추세츠주에서 태어난 타샤는 부모 이혼후에 뉴욕에서 지내다가 커넥티컷주의 농가에서 아름다운 농가 생활에 반하게 됩니다.  타샤는 아름다운 전원생활을 일찌감치 꿈꾸게 되지요. 1938년 타샤는 Thomas Leighton McCready, Jr. 와 결혼하여 코넥티컷의 '어머니의 농가'에서 살림을 시작합니다 (어머니가 과테말라로 미술 여행을 떠나서 집이 비어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같은 해에 남편쪽 조카를 위해서 Pumpkin Moonshine 이라는 그림 동화를 그려서 출판하게 되는데, 이 작품이 좋은 반응을 얻어 그후로 타샤 튜더는 직접 자신의 그림동화책을 만들어내거나 삽화를 그리는 일로 평생을 보낼수 있게 됩니다.  Pumpkin Moonshine 은, 미국에서 호박속을 파낸후 호박등을 만드는 전통과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어린 소녀가 호박밭에 가서 아주 큰 호박을 하나 발견하는데 그 호박이 제 멋대로 띠굴띠굴 굴러다니면서 사고를 치다가 결국 잡혀서 호박등이 된다는 이야기 입니다.  호박등은 매년 10월 마지막날인 할로윈데이 (만성절 이브)에 많이 만들지요.  이 작품이 그이의 출세작이었다 할 만 합니다.

 

 

 

 

 

1945년에는 그가 삽화를 그린  Mother Goose (전통 동요 모음집)로 Caldecott 상 (http://en.wikipedia.org/wiki/Caldecott_Honor ) 을 받기도 하고, 그의 동화와 삽화작업은 그에게 각종 상과 훈장을 불러옵니다.

 

 

 

 

 

 

1945년에는 그가 삽화를 그린  Mother Goose (전통 동요 모음집)로 Caldecott 상 (http://en.wikipedia.org/wiki/Caldecott_Honor ) 을 받기도 하고, 그의 동화와 삽화작업은 그에게 각종 상과 훈장을 불러옵니다.

 

 

 

 

 

 

 

 

 

 

 

이들 부부는 뉴햄프셔주로 이사하여 자신들의 집과 농장을 갖게 되는데, 이곳에서 이들의 네명의 아이들이 태어나 자랍니다. 이들 부부는 1961년 이혼합니다. 이때 그는 자신의 성을 비롯 자녀들의 성을 모두 '튜더'로 정하게 됩니다.  1971년 타샤는 뉴햄프셔주의 집을 팔고 버몬트주로 이사하는데, 이곳에는 그의 아들 Seth가 이미 와서 정착하여 있었습니다. 아들 Seth는 이웃으로 이사 온 어머니를 위해 직접 '손'으로 농가주택을 지어냅니다. 그것이 타샤 튜더가 2008년 작고하기까지 살게되는, 오늘날 남아 있는 집입니다.

 

 

1971년은 타샤 튜더가 '버몬트'주로 이사한 해 이기도 하지만, 그의 대표작이라 할수 있는 Corgiville Fair 가 출판되어 널리 알려진 해 이기도 합니다. Corgi는 타샤 튜더가 아끼는 개 종류이지요. 영국 여왕이 사랑하는 종류의 개라서 '여왕의 개'라고 알려져 데요.  이 개를 의인화하여 코기마을을 하나 탄생시키고 코기종의 개를 비롯하여 다양한 동물들이 마을을 이루고 살아가는 배경입니다.  이야기도 삽화도 모두 타샤의 창작물인데, 배경을 보면 식민지시절 (미국 초기 시절)의 뉴잉글랜드 마을의 풍경이 세밀하게 묘사가 되어 있습니다.  주인공들이 개나 고양이 혹은 작은 들짐승이지만 배경에는 미국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지요.  저는 지난 여름에 이 뉴잉글랜드 지역을 여행 한 적이 있는데, 타샤 튜더 그림책속의 마을 모습과, 내가 눈으로 확인했떤 전통적인 마을의 모습이 여전히 일치했지요.  이 책이 크게 성공했기 때문에 이후로 Cogville 시리즈가 출판되기에 이르릅니다.  (타샤는 그림을 팔아 꽃뿌리를 샀겠지요.)

 

 

 

 

 

 

 

 

고집쟁이 타샤

 

버몬트에서 정원과 농장을 가꾸며, 미국 식민시절의 삶의 스타일 (복장이나 삶의 방식)을 고집하고 살면서 그림을 그리거나 동화책을 만들어 돈벌이도 하던 타샤 튜더.  그는 그림과 동화 작가라는 전문 영역과,  정원가꾸기와 농장 돌보기라는 또다른 영역을 함께 일궈냈다고 할 만 합니다.  한가지도 이루기 힘든데 두가지를 한 것이지요.  그의 결혼 생활을 보면 1938년에 첫남편과 결혼하여 1961년에 이혼했으니 첫 결혼은 23년간 지속되었고, 후에 또 한번 누군가와 결혼 했는데 오래 가지 못하고 다시 이혼했다고 합니다. 이혼 사유는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짐작하기에 타샤 튜더는 자기 세계가 확고한, 고집스러운 사람이었을 겁니다.  고집스럽게 세상 문명을 등지고 역사의 어느 시기, 그가 '이상화 했던' 어떤 시기의 삶을 고집하고, 그 시기의 라이프 스타일을 고수하는 것, 이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요.  우리나라의 안동이나, 이와 유사한 '역사적인' 마을에 가면 아직도 조선시대의 양반 복장을 고집하고, 당시의 풍습대로 제사지내고 당시의 풍습을 고집하는 분들이 살고 있다고 합니다.  이분들에게는 자신이 지켜야 할 어떤 이상향이 있을 것입니다. 타샤 튜더 역시 이런 '자신만의 이상향'을 추구하고 고집했던 사람으로 보입니다.  이것이 옳다 그르다를 논할 이유는 없지만, 아무튼 평범하지는 않은 것이지요.  그렇게 살아간다는 일이 간단하지 않지요. 

 

타샤 튜더 관련 책들 (사진으로 도배가 된 환상적인 책들)을 보면 이분의 삶의 풍경이 천국처럼 아름다워 보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가꿔내기 위해서 타샤가 얼마나 열심히, 부지런히 일 했는지 우리는 잘 가늠할수 없습니다. 삶의 한 장면은 아름다울수 있지만, 그 장면 뒤에 숨겨진 노고는 사진에 잘 드러나지 않지요.

 

 

타샤 튜더의 아름다운 삶이 가득한 사진집 속의 어느 미국 할머니 (타샤)를 보고 있으면 그이와 거의 같은 시기에 조선땅에서 태어나 조선인, 한국인으로 살다가 타샤보다 몇 해 일찌 저승으로 떠나신 우리 할머니의 삶이 포개집니다.

 

 

 

 

 

특히나 아래에 보이는 풍경속의 타샤는 우리 할머니와 참 닮았습니다.  집도 풍경도, 사람 모습도 우리 할머니의 풍경과는 다르지만, 쌓인 눈과, 겨울 나무와, 좁다란 길을 걷고 있는 할머니의 모습이 우리 할머니 같습니다.  튜더의 정원, 튜더의 아름다운 실내장식보다는 저것을 가꾸기 위해 저 노인이 기울였을 노력, 한낮의 현기증, 한겨울의 추위, 가을의 소슬바람, 이런 것들이 이제 제 눈에 들어옵니다.

 

"너 타샤 튜더처럼 살고 싶은가?" 누군가 묻는다면 저는 아마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말 것입니다. 일단 저는 매우 게으르고, 농사짓는것 힘들다는것 잘 알고...  게으른 주제에 이런 아름다운 삶을 탐하면 안되겠지요. 그대신 평생 내 힘으로 일하고 내 밥벌이 내가 하고, 가능하면 남 도와주면서 사는 인생, 불평안하고, 남 탓 안하는 인생. 그런 인생은 희망하는 편입니다.  그렇게 살다 죽으며 좋을것 같습니다만 ... 아 그것도 요원하군요 저야말로 잘되면 내탓 안되면 모두 남의탓으로 돌려버리고 이불 뒤집어쓰고 신세한탄하기 일쑤이므로. ㅎㅎㅎ.

 

 

 

 

 

 

 

 

 

 

 

미국 미술사 속의 세명의 할머니

 

제가 알거나 기억하는 범위 안에서, 미국 미술계에서 '눈에 띄는' 할머니 셋을 고르라면  저는

 

(1) 모세 할머니 Grandma Moses (1860-1961) http://americanart.textcube.com/category/Grandma%20Moses

(2) 조지아 오키프  Georgia O'Keeffe (1887-1986)  http://americanart.textcube.com/category/Georgia%20O%27Keeffe

(3) 타샤 튜더 Tasha Tudor (1915-2008)

 

이렇게 세명을 꼽고 싶습니다.  (조지아 오키프 페이지도 차근차근 만들겠습니다.) 뭐, 적어도 '할머니' 소리를 들으려면 90가까이 살면서 활동을 해야겠지요.  =)

 

이 세사람중에 (1) 모세 할머니는 가난한 농가의 딸로 태어나 평생 평범한 농가의 안주인으로 남편과 해로하다가, 남편이 사망한 후에 눈이 침침해서 (!) 뭐 심심풀이로 그림 그렸다가 대박! 터진 천재였고요. (2) 조지아 오키프는 엘리트 미술 교육 과정을 거쳐 미술계의 별이 된 화가였고요, (3) 타샤 튜더는 삽화와 동화 분야에서 평생 그림을 그리며 살다가, 막판에 (?) 그의 라이프 스타일로 더욱 유명해진 분입니다. 각자 삶의 이력이나 그림의 분야가 다르지만,  '장수한 미국 미술가'라는 공통점도 있고, 다들 개성있고 매력적인 여성이었다는 공통점도 있지요.  =) 참 매력적인 할머니들이라는 것이지요.

 

그렇지만, 나는 우리 할머니가 가장 힘있고 매력있는 할머니였다고 생각해요. 내 할머니 이니까~  나를 키워준 할머니이니까요. (무조건인거죠)

 

 

 

 

 

 

 

정리 2009년 11월 21일 RedFox

 

 

 

http://www.tashatudorandfamily.com/index.html  : 2008년 작고한 타샤 튜더 할머니의 가족이 운영하는 홈 페이지.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