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찌기 허드슨강변의 화가 Thomas Cole 의 작품을 소개하면서 허드슨강변의 풍경화가들 (http://americanart.textcube.com/267)에 대해 잠시 언급한 적이 있는데요. 이제 그들중에서 대표적인 몇사람을 소개할 시간이 된것 같습니다.
http://americanart.textcube.com/360 이전 페이지에서 알버트 비어시타드의 대형 풍경화를 소개했지요. 비어시타드도 허드슨강변의 화가로 분류되는 사람입니다. 다음은 코코란 미술관에서 발견한 그의 대형 그림인데요, 왼편에 보이는 것은 Frederick Edwin Church 라는 화가의 '나이아가라' 라는 작품이고요, 오른쪽에 보이는 것이 비어스타드의 '미국들소의 최후'라는 작품입니다. 프레데릭 처치 역시 허드슨 강변의 화가에 속하므로 비어스타드 페이지를 마치고나서 소개를 하겠습니다. 일단, 사진에서 보시듯이, 작품들이 크죠.
들소떼의 최후
(오른쪽 그림) The Last of the Buffallo, 1888, oil on canvas
Albert Bierstadt, 1830-1902
2009년 10월 3일 워싱턴 코코란 미술관에서 촬영
그림의 제목이 '버팔로 (미국들소)의 최후'입니다. 1888년 작품인데 화가가 58세때 그린 것이므로 그의 화풍이 충분히 완성된 시기의 작품으로 봐야겠지요. 제목이 이미 어떤 비극성을 띄고 있지요. 최후라...
역사적으로 보면 1870년대에 미국의 평원지대에 살던 들소떼가 거의 멸종 상태에 달 할 정도로 무차별 사냥이 진행되었다고 합니다. 들소의 가죽 때문이었지요. 그러니까, 들소 가죽을 얻기 위해서 들소를 죽인거죠 (마치 코끼리의 상아를 얻기 위해 코끼리를 죽이듯). 이 들소떼의 사냥에 적극적이었던 집단은 평원의 인디언들이었다고 합니다. 이들 역시 살기 위해서, 백인들에게 들소 가죽을 넘기기 위해서 들소들을 몰살했겠지요. 그리고 그 인디언들 역시 비슷한 최후를 맞이합니다. 결국, 이 그림은 어떤 면에서 미국대륙의 '원주민들'이었던 아메리칸 들소떼와, 아메리칸 인디언들의 최후를 그린 셈이지요.
The Last of the Buffallo, 1888, oil on canvas
Albert Bierstadt, 1830-1902
2009년 10월 3일 워싱턴 코코란 미술관에서 촬영
부분: The Last of the Buffallo, 1888, oil on canvas
Albert Bierstadt, 1830-1902
2009년 10월 3일 워싱턴 코코란 미술관에서 촬영
기개있게 피를 흘리며 싸우던 들소떼도
부분: The Last of the Buffallo, 1888, oil on canvas
Albert Bierstadt, 1830-1902
2009년 10월 3일 워싱턴 코코란 미술관에서 촬영
창을들고 들소와 대적하던 인디언들도
The Last of the Buffallo, 1888, oil on canvas
Albert Bierstadt, 1830-1902
2009년 10월 3일 워싱턴 코코란 미술관에서 촬영
저 들판을 질주하던 들소떼들도 이미 종적을 감추고 없었을겁니다, 비어시타드가 이 그림을 완성하던 1888 무렵에는. 이 그림은 사라진 것들에 대한 향수, 추억 같은 것이지요. 실재 상황을 실재 현장에 가서 스케치해서 그렸다기 보다는 비어시타드가 전에 본 일이 있던 풍경위에 그가 상상한 장면들을 덧입혀 그려낸 '상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비어스타드가 그의 경험과 상상력을 기반으로해서 탄생시킨 이 그림은 21세기에도 여전히 현장의 역동성을, 우리가 약자들에게 자행한 살륙의 역사를 생생하게 전해주고 있지요.
이 그림 보면요, 어릴때 배운 미국 민요 '내집 가련다 들소들 거닐고~' 이 노래가 생각나요.
http://en.wikipedia.org/wiki/Home_on_the_Range 이 페이지에 여러가지 가사가 소개되는데요, 어쨌거나 이렇게 시작하죠
1870년대에 처음 불려진 기록이 있다는데요, 그때는 들소떼가 아직 남아 있었죠. 바로 그 1870년대에 들소 사냥의 열풍이 불어서 1880년대가 되었을때, 들소는 '추억'으로만 남게 된거죠. 사람들은 그가 지구의 어디에 있건 근본적으로 '그리움'이라는 정서를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데요. 신생국 미국도 국가의 발전과 산업화와 함께, 이들이 잃어버린것이 많지요. 그리고 그렇게 사라진것들은 그리움으로 남아서 울리게 되지요. 제가 지금 버팔로의 최후 그림을 보면서 떠올리는 것은 들소떼가 사라져버린 미국의 어느 평원이 아니지요. 제 머릿속에는 아파트 개발로 사라진 내 고향마을이지요. 들소떼도 사라지고, 내가 멱감던 실개천도 사라지고... 모두 죽거나 사라지거나, 그런거죠.
에메랄드 호수
The Emerald Pool, 1870, oil on canvas
Albert Bierstadt, 1830-1902
2009년 11월 29일 크라이슬러 미술관에서 촬영
위의 들소떼의 최후나, 그 전 페이지에 소개가 되었던 시에라 네바다의 풍경이 '상상화'에 가깝다고 한다면, 이 풍경은 실재 풍경에 가깝다고 할 만 합니다. 1869년 뉴햄프셔주의 White Mountain 에 스케치 여행을 가서 습작을 그려 온 것이라고 하는데요, Mount Washington 에서 동쪽으로 수마일 가면 에머랄드 호수가 있다고 합니다. 그림 속에 멀리 희게 보이는 산이 Mount Washington 이라고 합니다. 동부에 실재하는 자연 풍광을 그린 이 작품은 허드슨 강변의 화가들이 즐겨 그렸던 소재나 분위기를 여실히 전해주고 있지요.
The Emerald Pond, 1870, oil on canvas
Albert Bierstadt, 1830-1902
2009년 11월 29일 크라이슬러 미술관에서 촬영
루쩨른 호수, 스위스
Lake Lucerne, 1858
이 그림은 비어시타드가 28세때 그린, 청년기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스위스의 루쩨른 호수를 담았습니다. 아마도 스위스 여행중에 보았던 풍경이었을거라 짐작합니다. 대형이지요. 비어시타드는 이미 청년기부터 초대형 풍경화를 그렸던 것 같습니다.
비어시타드는 1830년 독일에서 태어났는데, 그가 3세 되던 해에 그의 가족이 미국의 매사추세츠로 이주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23세가 되던 1853년부터 1857년까지 독일의 뒤셀도르프에서 미술 수업을 받고, 미술 지도를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1859년 미국으로 돌아와 뉴잉글랜드 지역에서 그림 활동을 하게 되지요. 그러니까 이 루쩨른 호수 풍경은 그가 미국에서 활동하기 직전의 유럽 풍경을 담은 것으로 보입니다.
Lake Lucerne, oil on canvas, 1858
Albert Bierstadt, 1830-1902
2009년 9월 11일 워싱턴 National Gallery of Art 에서 촬영
1859년 그는 미국 정부의 후원을 받고 서부로의 여행을 떠납니다. 화가로서 그가 할 일은 서부의 풍경을 담아 오는 일이었지요. 그러니까 그 당시 미국 동부에서 볼때 서부는 아직 미개척의 땅이었고, 여러분야의 탐사가 필요했을 것입니다. 풍경을 스케치 할 화가도 탐사팀에 필요했겠지요. 비어스타드는 그 후에도 여러차례 동부에서 서부로 향하는 스케치 여행에 올랐고, 게다가 그는 그의 그림을 이용해 돈을 벌어들이는 재주도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대형 미국의 풍경화는 그것이 진경이었건, 사실에 근거한 상상의 산물이었건 유럽 사람들의 신대륙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켜주었습니다. 그는 살아 생전에 400점이 넘는 풍경화를 팔아 넘겼고, 그의 인기는 그의 사후에도 여전하다고 합니다.
비어시타드의 대형 풍경화가 저에게 그리 매력적인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의 그림이 갖는 역사성을 보면, 경의를 표하게 됩니다. 저는 학교에서 수업할때 'context' 읽기를 강조 할 때가 많습니다. 누가 어떤 발언을 했을때, 그 발언의 'context'가 무엇인가를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어떤 책의 누가 한 말을 인용할 때 역시 그 말이 나온 앞뒤 전후 사정을 파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즘 어떤 기자가 '잘못된 보도'를 해서 좀 시끄러웠는데요. "자기 문제 자기가 해결할 능력이 있는 사람만 오라"고 어떤 사람이 말을 했다고 해서, 그 말 한 어떤 사람이 졸지에 '죽일놈'이 되었다가, 며칠 지나자 그런 잘못된 보도를 한 기자가 '죽일놈'이 되었다가 이리저리 뒤집어지고 시끄러웠습니다. 아니 뭐 지진이 난것만도 재앙인데, 그런 일 가지고 서로 죽이네 살리네 한다는 말입니까. 서로 협동해서 잘 해도 어려운 판인데요. 서로간에 여유와 아량이 필요한데요. 보도를 접하는 우리들까지 모두 포함해서 말이죠. 왜 며칠사이에 이사람, 저사람이 죽일놈이 되고 그러냐하면, 정확한 컨텍스트 없이 말이 이리저리 흘러서 그런 것이지요.
19세기 중반에 그려진, 지금으로부터 150여년전에 그려진 비어스타드의 대형 풍경화를 오늘날 현대인의 시각에서 보면 사실 별것 아닙니다. '좀 크군...' 하면 그만 입니다. 풍경이 뭐 스펙터클 하다 한들, 우리들은 이미 대형 스크린의 무지무지한 스펙터클에 익숙한 세대인걸요. 그런데요, 그 그림이 150년 전에는 어마어마한 스케일이었다는 것입니다. 미지의 땅, 우리들이 한번도 가보지 못한 땅, 그 땅의 풍경을 실제크기처럼 어마어마하게 그린 그림. 말하자면, 비어스타드의 그림은 오늘날의 입체영화관에서 상영되는 3D 스펙터클 영화 만큼이나 당시 사람들에게 놀라운 경험이었을거란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가 우리 시대의 그림이 아닌, 백년 혹은 이백년 혹은 수백년 이전의 작품들이나 역사적 사실들을 볼때는, 현대적 안목으로 한번 살핀후에, 당시의 상황속에서 그것을 살펴보는 시각도 필요합니다. 현대적 안목으로는 별 것 아니지만, 당시에는 혁명적인 아디디어였을수도 있고요, 또 당시에는 별것 아닌것처럼 보였을지라도, 현대인의 안목으로 봤을때, 시대를 초월하는 획기적인 무엇이 들어 있을수도 있고요.
그래서요. 제가 요새 미술관 돌아다니며 여러 시대의 작품들을 한꺼번에 주루룩 살필 기회가 많은데요. 이렇게 한시대의 다양한 장르 혹은 여러시대의 명작들을 한꺼번에 훑다보니, 세상을 볼때도 조금 다른 시각이 자라나는 것을 느낍니다. 전후, 좌우를 살피는 습관이 들었지요. 어떤 상황에 대해서도 여러가지 다른 시각으로 생각해본다거나, 특히 내가 짜증나는 일이 있을때, 그 사건을 나의 시각이 아닌 다른 사람의 시각으로 살펴본다거나 그런 시간이 많아졌지요.
세상 돌아가는 일을 '그림'처럼 보면, 관조하는 여유가 생기는것도 같아요. 컨텍스트를 들여다보고, 컨텍스트 바깥에서 들여다보고, 이리저리 사물의 다양한 면을 보는 것이지요. 누가 실수 했을때, 너무 나무라지 말고, 너무 몰아세우지 말고, 주의 주고, 반성할 시간 주고 좀 여유있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요즘 자주하게 됩니다.
비어스타드의 풍경화가 내 눈에는 뭐 '좀 크네' 하는 정도이지만, 그렇지만, 그 당시엔 정말 대단했겠다. 그랬겠다 하고 다시 생각해보는것. 미술감상하다가 생긴 안목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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