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워드 파일 전시실, 델러웨어 미술관, 2010년 1월 9일 사진 촬영
미국의 19세기 삽화가 (illustrator) 하워드 파일 (Howard Pyle 1853-1911)은 미국 델러웨어주의 주도(수도)인 윌밍턴 태생입니다. 델라웨어 미술관 (http://americanart.textcube.com/288) 과 인근의 Brandywine River Museum (http://americanart.textcube.com/43 ) 에 하워드 파일의 전시관들이 있습니다. 브랜디와인 뮤지엄에서는 전시물 사진을 찍을수가 없어 자료 소개를 할수가 없고, 델라웨어 미술관에서는 영구 소장품에대한 사진 촬영이 허용이 되어 이곳에서 하워드 파일의 일러스트레이션 작품들을 사진에 담아올수 있었습니다.
하워드 파일은 아직 사진이 보편화되지 않던 당시, 청소년을 위한 각종 이야기책의 일러스트레이션및 정기간행 인쇄매체를 위한 삽화가로 활동하던 화가입니다. 미국의 사실주의 화가 앤드루 와이어드를 소개할때, 그의 아버지가 미국 삽화계의 거물이었다는 (http://americanart.textcube.com/44 )이야기를 한적이 있는데요, 그 N C Wyeth (1882-1945) 보다 더 큰 거물이 Howard Pyle 이었다고 할만합니다. 하워드 파일이 N C Wyeth 의 스승이었지요. 하워드 파일은 직접 미술학교를 열어 운영을 한 적도 있고요, 후에 N C Wyeth 가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후진 양성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들 하워드 파일과 N C 와이어드및 그 후학들을 일컬어 브랜디와인 리버 그룹 (Brandywine River School)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합니다.
사진 클릭하시면 커집니다. 영문자료 읽기 원하시면 두번클릭하여 큰화면으로 읽으시면 편안하실겁니다.
2010년 1월 9일 델러웨어 미술관에서 사진 촬영 (전시장 입구, 안내문)
하워드 파일은 '로빈후드'와 같은 이야기의 삽화뿐 아니라, 그 자신이 직접 이야기를 짓고 삽화를 그리기도 했다고 합니다. 하워드 파일이 작업을 할때나 후진양성을 할때, 그가 역설한 '삽화의 원칙'은 -- "글에 씌어진 내용을 삽화로 재현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책에 씌어진것은 이미 독자도 알고 있으므로 그림으로 반복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행간의 장면을 그려야 한다는 것이지요. 우리말로 '행간을 읽으라'는 표현이 있고, 영어로 "Read between the lines"라고도 하는데요, 글에 명시되지 않은, 그러나 그 속에 간직된 것을 파악하고 포착하여 재현해 내라는 것이지요. 글에 씌어진 내용을 재현하기도 어려운데, 행간의 내용을 상상하여 그리기 위해서, 삽화가는 글을 철저히 이해하고 깊이 있게 연구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워드 파일에게 있어서 삽화는 단순히 글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글을 뛰어넘어 한단계 높여 놓는 완성작업이었겠지요. 삽화가에게 이정도의 프로페셔널리즘이 있어야 이야기의 삽화가 진정으로 살아서 독자에게 다가갈수 있을 것입니다.
인어공주
The Mermaid (인어공주)
하워드 파일은 1911년 이탈리아의 피렌체 (플로렌스)로 벽화 공부를 하러 갔다가, 그곳 스튜디오에서 작업하던중 신장병으로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하였습니다. 이 그림은 그의 플로렌스 작업실에 세워져 있었던 미완성 작품입니다. 그는 이 작품을 완성하지 못하고 사망했습니다. 그래서 델라웨어 미술관이 파일 전시장 입구에 이 그림과, 이 그림이 세워져있던 그의 작업실 그림이 이젤에 세워져 있습니다
한스 안델센의 '인어공주'이야기를 대개 알고 있지요.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 이 인어공주 이야기를 '망쳐 놓아버려서, 어쩌면 오늘날의 청소년들은 '엉뚱한' 인어공주 이야기를 알고 있을지도 모르는데요. 제가 어릴때 읽은 안델센의 인어공주 이야기는 가슴이 아파서 책장을 넘기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어릴때, 양장판, 일러스트레이션이 환상적인 동화책 (필시 일본책 번역한것)속의 인어공주 이야기를 한 번 읽은후에, 그 이야기가 너무 가슴이 아파서, 일부러 그 부분을 얼른 지나치던 일들이 생각납니다. 그 부분은 책을 절대 안 열어보는거죠. 왜냐하면, 가슴이 아프니까 피해가는거죠. 그렇게 가슴아파서 피해갔던 이야기가 인어공주 이야기하고, 플란더스의 개 마지막 장면.
돌아보면, 어릴땐 두가지를 무서워했어요.
1. 영국 동화책에 나온 아일랜드의 '반시'라는 무서운 요정 -- 무섭게 생겼으니까
2. 인어공주의 마지막 장면과 플란더스의 개 마지막 장면
저는 이 두가지 '공포'와 '슬픔'을 피해다니면서 책장을 넘겨야 했습니다. 아직도 그 생각을 하면 ....무섭습니다... 저에게는 삶이 아직도 어두운 숲처럼 무섭고, 이세상에 슬픈일이 일어나는것이 슬픕니다.
그림속의 장면은 인어공주가 인간세상을 구경하러 왔다가, 배가 난파되어 물에 빠진 왕자를 구해내는 장면인것 같죠. 왕자는 의식이 없고, 공주는 자신이 구해낸 그 인간의 왕자에게 반하고 말지요... 인어공주는 한마디 말도 못하고, 절대 한마디 말도 해서는 안되고, 사랑하는 왕자를 찔러 죽일수도 없고, 결국 자신이 사라지는 것을 택할수밖에 없는데. 그 인어공주의 침묵을 생각하면, 어릴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가슴이 무너집니다. 이 세상에 여러가지 형벌이 있는데, 그중에 한가지가 침묵의 형벌일것입니다.
그래가지고, 이 그림 앞에 하염없이 서서,
내가 어릴때나, 성인이 된 지금이나, 인생은 여전히 무섭고 슬프고 고통스러운거구나, 그리고 아름답기도 한거구나 이런 생각을 두서없이 했겠지요. 이 그림앞에 서면 파도소리가 들리고요, 그리고, 한숨이 나옵니다. 한숨이... 말할수 없는 것들에 대하여 침묵해야 만 하는 것에 대하여.
카리브해의 해적
자, 독자 여러분
혹은, 사랑하는 어린이 여러분
이 그림을 보면 무엇이 떠오르나요?
The Buccaneer was a Picturesque Fellow (그 해적은 특이한 친구였다) 1905
1905년 12월 월간지 Harpers Monthly Magazine 에 하워드 파일이 실은 '보물 마을의 운명' 삽화
Oil on Canvas
델라웨어 미술관에 '어린이' 관객들이 단체로 올때면 전문 안내인이 어린이들을 이끌고 이 해적 그림 전시실로 안내를 한다고 합니다. "뭐가 보이나요?"하고 물으면 꼬마들이 "조니 뎁!" 이라고 외친대요. 영화 카리브해의 해적에 Jack Sparrow 연기를 한 Johnny Depp 을 아이들이 떠올리는 것이지요.
영화 '카리브해의 해적'을 제작할때, 제작진은 당시의 해적의 복장이나 장면의 자료와 고증을 위하여 델러웨어 미술관을 찾아와 협조를 구했다고 합니다. 하워드 파일의 해적 그림들의 많은 부분이 영화에 등장하는 해적들의 복장이나 장면에 반영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영화 마지막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때 Delaware Art Museum 도 올라간다고 합니다.
Which Shall be Captain? (누가 캡틴이 될것인가?) 1911
Oil on Canvas
이 그림은 1911년 1월 Harper's Monthly Magazine 에 실린 작품으로 'The Baccuneers (해적)'라는 시의 삽화로 그려진 것입니다. (*참고로, Baccuneer는 해적중에서도 17세기 서인도 쪽에서 활약하던 해적들을 일컫습니다.) 그림 아랫쪽에 보시면 삽이 있고, 보물상자로 보이는 상자가 드러나있지요. 그리고 두명의 해적이 서로 맞장을 뜨고 있습니다. 결국 해적들중에서 가장 힘이 센 이 두명중에 이기는 사람이 캡틴이 되고 저 보물상자에서 나오는것중에서 가장 많은 몫을 차지하게 되겠지요.
당시 해적들은 마치 군대조직과 같이 '나름대로 법과 질서가 분명'했다고 합니다. 두 사람이 다투기는 하되 한사람이 죽을때까지 싸우는것은 아니고, 둘중에 하나가 항복하면 그것으로 게임 오버라고 합니다. 일단 캡틴이 정해지면 질서가 잡히는것이고요. 그 당시 해적선을 탔던 사람들은 일단 크게 한건 하면 그것을 서로 약속한대로 분배한 다음에 각자 자신의 고향으로 가서 집사고 땅사서 살았다고 합니다. (물론 다시 해적질을 하러 돌아오는 사람도 있었겠지만요). 해적이 되기 위해서 배에 오를때, 이들은 계약을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만약에 '작업(?)' 도중에 팔을 하나 잃으면 얼마, 다리 한짝 잃으면 얼마, 눈을 하나 잃으면 얼마, 목숨을 잃으면 얼마 이런식으로 '보험' 들어두듯 보상금 계약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수입'이 생겼을때 그런 보상 계약이 철저히 지켜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해적을 연구한 사람들은, 해적의 시스템이 꽤나 계약적인, 그리고 당시로서는 보기 드문 혁신적인 시스템이었다는 설명을 하기도 합니다.
해적들이 해적질을 하긴 했지만, 그 조직이나 수익 분배구조는 나름대로 합리적이고 투명했다고 하는 것이지요.
아 이그림은 1911년에 그려진 것이쟎아요. 하워드 파일이 이탈리아 플로렌스에서 1911년에 사망하쟎아요. 이 작품이 그의 마지막 해적 그림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The Flying Dutchman (날으는 네덜란드인) 1900
Oil on Canvas
검색해보니
[음악에서 'Flying Dutchman'은 '방황하는 네덜란드 인(Der fliegende Holländer)'를 뜻합니다. 바그너가 작곡한 곡입니다.
폭풍우를 만나 난항 중에 있던 네덜란드인 선장이 구출된 뒤, 다시는 배를 타지 않겠다고 신에게 맹세합니다. 그러나 그는 이 맹세를 저버리고 다시 바다로 나가 배를 타고 항해합니다. 신은 이렇게 맹세를 지키지 않은 벌로써, 그는 유령선을 타고 영원히 7대양을 헤매도록 합니다. 그러다가 만 7년째가 되자 단 한 번 상륙이 허용되지요. 그러다가 한 여성에 의해 구원을 얻게 됩니다.
그러나 이 내용은 완전히 새로운 것이 아니고, 북유럽에 떠돌고 있던 전설에 기초한 것입니다. 즉 한 네덜란드 선장이 신에게 저주를 받아 영원히 희망봉 근처를 맴돈다고 하는 것이지요.
Flying Dutchman은 이 전설 속의 유령선이나 그 유령선의 선장을 일컫는 말입니다.]
라고 돼 있네요! 이종격투기선수중에 플라잉 젠틀맨이라는 별명을 가진 레미본야스키 라는 네델란드 흑인이 있지요... 흠.
예 위의 그림은 1900년 12월 8일 Collier's Weekly 에 실린 전설의 일러스트레이션입니다. 위에 나로님이 옮겨주신대로, 동인도해를 항해하던 네덜란드 배의 선장이 희망봉 근처에서 풍랑을 만났다고 합니다. 이때 그 네덜란드인 선장이, 내가 설령 인류 최후의 날 (Judgement Day 죽을때까지)까지 항해를 하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이 곳을 통과하겠노라고 장담을 했답니다. 사탄이 이것을 듣고 그 선장과 선원들에게 저주를 내렸지요. 그래서 이들은 끝없이 영원히 항해를 하는 저주를 받았다고 합니다. 오직 7년에 한번 뭍에 오를수 있는데, 이때 순정한 여인을 만나 영원한 사랑을 약속받으면 저주가 풀릴수 있었다는 것이지요.
사실 이 그림은 해적선이라기보다는 '유령선'이야기라고 할만하죠. 그런데 해적선과 유령선 이야기는 늘 함께 손잡고 다니죠. 유럽의, 항해를 많이 해야했던 해양국가들 문화에 이런 유령선이나 해적선 이야기가 많겠지요.
그런데, 저 선장님, 참 근사해보이지요. 아무리 풍랑이 쳐도 절대 무릎꿇지 않겠다는 자세이쟎아요. 허만 멜빌의 해양소설 'Moby Dick (백경)'에서 선장 Ahab (에이합)이 바로 그런 인물이지요. 절대 굴하지 않는. 그 캡틴 에이합의 이미지가 헤밍웨이의 The Old Man and the Sea (노인과 바다)에서 노인의 모습으로 다시 등장하는데요. 악마의 저주를 받을망정 절대 굴복하지 않는 그 자세에 우리는 매료되지요. (음, 하지만 현실세계에서 우리는 굴종하고, 타협하고... 아마 그런 인간의 유약함때문에 이런 전설적인 인물에 더욱 매력을 느끼는 것이겠지요.)
Marooned (유배된 해적) 1909
OIl on Canvas
제목 그래도 유배된 해적입니다. 위에 적은바와같이 해적 사회가 조직과 질서가 잡혀 있었고, 나름대로 투명하고 민주적으로 유지가 되었는데, 해적들 내부의 규칙을 어길경우, 이렇게 외딴곳에 버리거나 유배시키는 식으로 처벌을 했다고 합니다. 이 해적은 뭔가 잘못을 저지르고 외딴섬에 버려졌는데요, 그림을 확대시켜서 자세히 보시면 물통 하나가 보입니다. 물 한통. 옷가지. 그리고 사방에서 넘실대는 파도와 물새들. 최소한 저 물새라도 잡아먹으면 며칠 연명할수 있겠네요.
이러고 있다가 해적선이 다시 돌아와 배에 실어주기도 하고, 혹은 운 좋으면 다른 지나가는 배를 얻어타고 뭍으로 갈수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런식의 처벌은 '잘못했으나 죽여버리겠다'는 식의 무법천지식 해법이 아니라 고립시켜서 고립감을 맛보게 하거나, 버리되 연명할 최소한의 물은 주고 가는 식으로 인정을 보였다는 것이지요. 해적의 세계가 도적놈들이 사회였을망정 무법천지는 아니었다고 합니다.
"아아, 버려진 해적처럼 쓸쓸하구나~" 외로울땐 이렇게 혼자 중얼거리며 그림속의 파도소리를 떠올려도 좋겠네요.
세일럼의 늑대
A Wolf Had Not Been Seen in Salem for Thirty Years (세일럼에서는 30년간 늑대가 나타난적이 없었다) 1909
1909년 12월 하워드 파일 자신이 Harpers Monthly Magazine 에 실은 이야기,
The Salem Wolf (세일럼의 늑대)와 그 삽화
Oil on Canvas
이 늑대의 이야기를 들려드릴까요?
세일럼은 뉴잉글랜드 지방 매사추세츠주에 있는, 보스톤 인근의 항구도시 입니다. 이곳에서 실제로 마녀사냥의 아픈 역사가 있었고, Arthur Miller 의 The Crucible 이라는 희곡도 그 마녀사냥의 일화를 그린 것인데요. 저는 2009년 8월에 그 세일럼이라는 도시에 가본적이 있습니다. 한여름이었는데도, 세일럼에 도착하자 도시 전체에 안개가 낮게 깔리고 으스스한 분위기였습니다. 그래서 생각했지요 -- 아 하, 이런 자연환경이기때문에 세일럼에 마녀이야기가 많고, 사람들이 어떤 안개 자욱한 상상을 했겠구나.
이것은 그때 세일럼 시내에서 찍은 공동묘지 사진입니다. 마녀 박물관이라던가 해적 박물관도 있고요, 시내 전체가 마녀의 도시처럼 보이지요. 일부러 그런 분위기를 관광상품으로 개발해서 관광도시로 먹고 사는것 같았습니다. 물론 항구도시이기도 하지만요.
자 이런 안개낀 으스스한 항구도시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교회 집사의 딸이었던 미리암은 마을 청년과 혼인을 하기로 한 사이였습니다.
그런데 마녀 할멈의 마법에 걸려서 그만 늑대로 변하고 맙니다.
늑대로 변한 미리암은 자신의 가족들을 공격하게 됩니다.
미리암의 약혼자였던 청년이 그 늑대에게 상처를 입혀 몰아냅니다.
그런데 아침이 되어 인간으로 되돌아온 미리암에게 상처가 있는것이 발견됩니다.
청년은 자신이 늑대에게 입힌 상처와 미리암의 몸의 상처가 똑같다는 것을 알게됩니다.
결국 미리암은 그 상처로 인해서 죽음을 맞이하고, 미리암의 가족들은 저주에서 풀려납니다.
슬픈 이야기이지요... 그런데 이 이야기, 어디서 들어본것 같지 않은가요?
제가 어릴때요, 아주 아주 어릴때요, 영화관에서 '나자리노'라는 영화를 했거든요. 그 나자리노라는 영화의 주제곡이 참 슬프고 아름다웠습니다. 그리고 꽤 인기가 있었어요. 그래서 우리나라 가수가 그 곡을 번안해서 불렀습니다. 제가 그 노래 가사를 기억해요
어디선가 나를 부르는 그대 음성 들릴듯한데
왠일인지 보이지 않은 그대모습 사랑합니다
나나나나 나나나나나 ~~
그 나자리노 영화를 제가 안봐서 모르지만, 대략 이야기는, 뭐 마을의 어떤 아이가 태어났는데, 늑대가 될 운명이었다고 하지요. 그래서 청년으로 성장한 후에 늑대가 되었다가 사람이 되었다가 뭐 변신을 했던것 같습니다. 그러니 비극적이었겠지요. 이 늑대 이야기를 만나니 그 나자리노라는 영화 이야기가 생각이 나는군요.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여우'가 변신을 하는데 북미나 남미에서는 '늑대'가 인간으로 변신을 하거나 인간이 늑대로 변신을 하거나 그런것 같지요? 약혼한 청년한테 맞아 죽을 운명의 아가씨와,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을 죽게 만든 청년이나, 참 딱하군요.
달의 요정
달의 요정 삽화 1895
Oil on Board
그의 삽화가 담긴 책
하워드 파일의 주요 일러스트레이션 작품들을 몇 가지 들여다 보는 것으로 미국의 일러스트레이션의 역사에 남은 큰 별의 자취를 살펴봤습니다. 미국에서 일러스트레이션 대가들의 작품을 볼 기회가 많은데요, 그때마다 어릴적 생각이 나곤 합니다. 제가 성장할 당시에는 '전국민'이 모두 가난했으므로, 제가 가난하게 성장했다고해도 그게 특별히 고생스럽지는 않았는데요, 어린시절 딱 한자기 아쉬운것은 읽을 책이 별로 없었다는 것이었지요. 어쩌다 손에 들어오는 칼라 명작 동화집의 삽화들은 얼마나 근사하던지! 아, 온종일 그런 책들속으로 파고 들어가고 싶었지요. 글씨와 그림과 이야기가 어우러진 그 환상의 세계에 아주 빠져서 현실로 돌아오기가 싫었지요. 그러나 읽을 책은 한정되어 있었고, 집에 있는 책이나 달달 외우는 수밖에... 아, 그 어린시절, 내가 이런 삽화의 원화들을 볼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 그 어린시절 내게 이런 삽화가 가득한 세계명작동화책이 많았다면 나는 얼마나 좋았을까, 뭐 그런 아쉬움이 든다는 것이지요. 책을 많이 안사주신 부모님에 대한 원망보다는, 어릴때 책이 보고 싶은데, 차마 부모님한테 책 사달라는 소리도 할수 없었던, 아무도 감히 부모님께 무엇을 사달라고 졸라본적이 없었던 그 어린시절의 풍경이, 정성들여 그려진 삽화위에 겹쳐지더란 것이지요. 가능하면, 시간을 조작할수 있다면, 이 아름다운 이야기들과 이런 대가가 정성껏 그린 삽화들을 -- 어린시절의 나에게 가져다 주고 싶어요. 그러면 어린 나는 얼마나 행복해할것인지...
아, 어린 내가 아닌, 오늘날의 어린이들에게 아름다운 이야기와 책을 선사해야 하는 것이겠지요. 저는 동화의 삽화가들이 어마어마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지요. 아이들에게, 어른들에게, 우리들에게 꿈을 주쟎아요. 고맙습니다 삽화가님.
2010년 1월 10일 redfox
'American Art History Sketch' 카테고리의 다른 글
John James Audubon: 미국의 새들 (0) | 2010.02.07 |
---|---|
초상화가 길버트 스튜어트 Gilbert Stuart (0) | 2010.02.06 |
미국의 초기 일반인 초상화 (0) | 2010.01.10 |
Thomas Cole: Hudson River School 토마스 콜과 허드슨강 미술가들 (0) | 2010.01.04 |
Thomas Cole: The Voyage of Life 인생길 (0) | 2010.01.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