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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2.23 [칼럼] 죽어가는 가축, 슬픈 산하
WednesdayColumn2011. 2. 23. 20:42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159465


“우리가 생존을 위하여 육류를 먹는 일은 도의적으로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는 바르게 행동해야 한다. 우리는 가축들에게 마땅한 삶을 제공해야 하며, 고통 없이 목숨을 끊어야 한다. 우리는 가축들에게 경의를 표해야 한다. (원문: "I think using animals for food is an ethical thing to do, but we've got to do it right. We've got to give those animals a decent life and we've got to give them a painless death. We owe the animal respect."” )

가축 행동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콜로라도 주립대 교수로 재직 중인 템플 그랜딘 (Temple Grandin)박사는 2010년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명의 인물에 선정되기도 하였는데, 그는 두 가지 이유로 유명하다. 첫째는 그가 ‘자폐증’을 딛고 최고의 학문 경지에까지 이르렀다는 것이다, 둘째는, 남성 중심의 미국의 축산계에 여성의 몸으로 뛰어든 그가, 고기로 넘겨지는 동물들을 위해 고통 없는 죽음, 평화로운 죽음을 돕는 시스템을 개발해 냈다는 것이다. 템플 그랜딘 박사는 심신 장애인에게 역할 모델이 될만한 횃불 같은 존재로 존경을 받고 있다. 말 못하고 인간의 식탁에 오르기 위해 죽어가는 동물들에게도 그이는 영웅일 것이다. 그는 짐승의 고기를 먹는 일은 어쩔 수 없지만, 그들을 무참하게, 고통스럽게 도살해서는 안 된다고 역설한다.

지난 해 가을부터 한국에 구제역이 번지면서 해를 넘긴 2월 말 현재도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고, 이제는 매몰된 가축의 처리마저 큰 근심이 되고 있다. 봄기운이 도는 우리나라의 여기저기서 산채로 매장된 돼지의 시체가 땅 위로 솟아오르거나 그 잔해가 지하수를 오염시키는 또 다른 재앙이 발생하고 있다는 국내 기사가 암울하다.

구제역 발생 초기에 축산 농가에서 정성 들여 키운 소와 송아지들을 죽여야 했던 축산 농가 사람들과 도살을 담당한 공무원들의 가슴 아픈 사연이 알려질 때, 나 역시 이 상황이 너무나 슬퍼서 기사를 제대로 읽을 엄두를 못 냈었다. 그런데 구제역이 확산되면서 돼지 떼를 일일이 해결하지 못하고 한군데에 몰아넣고 생매장을 시켰다는 대목에서는, 멀리서 편안하게 살아가는 나의 존재 자체가 죄스럽고 참혹했다. 이 문명시대에 아무 죄도 없는 돼지들을 속수무책으로 생매장해야 했던 사람들은 얼마나 비참했을 것이며, 영문도 모르고 발버둥치며 죽어간 돼지들은 또 어떠했을 것인가?

나는 시골 농가에서 태어나 성장했다. 할머니는 정성 들여 키우던 우리 개 ‘누렁이’도 한여름 때가 되면 동네에 돌아다니는 ‘개장수’에게 팔아 넘겼는데, 떠나가는 개를 자식처럼 쓰다듬으며 “좋은 세상으로 가라”고 몇 번이고 축수해 줬다. 닭장의 닭들도 집에 귀한 손님이 오시면 살집 좋은 놈으로 잡아다 그 자리에서 백숙을 만들었지만, 닭들을 돌보는 할머니의 손길은 손자인 우리들을 돌보는 것과 다를 것이 없었다. 정성 들여 키운 소 역시, 집안에 큰 돈이 필요할 때 수원장에 끌고 나갔다. 소를 우시장에 끌고 나가는 것은 할아버지의 몫이었는데, 막걸리 냄새를 풍기며 저녁나절에 돌아온 할아버지는 텅 빈 외양간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았다.

어릴 때, 학교 앞에서 파는 병아리를 사다가 키웠는데, 그 중에 네 마리가 무럭무럭 자라 어른이 되었다. 나는 날이 궂고 추워지면 그 닭들을 커다란 새장에 모두 담아가지고 내 방에 들여놓기도 했다. 내 닭들은 나의 ‘친구’였으며, 그 닭들은 나를 어미처럼 따라다녔다. 사람들은 닭이 머리가 나쁘다고 하지만, 내가 키운 닭들은 사람만큼이나 영리해 보였다. 한여름이 되자 이들은 단체로 삼계탕으로 변신하여 밥상에 올랐다. 나는 내 친구들이 떼죽음을 당한 것을 슬퍼하며 며칠을 울었는데, 삼계탕으로 영양을 보충한 식구들의 표정은 기름지고 즐거워 보였다. 그것이 인생이었고, 나도 하는 수 없었다. 어찌되었건 가축과 우리는 가족으로 공존을 했다.

그래서 ‘먹을 때 먹더라도 잔인하게 죽이지는 말자’는 그랜딘 박사의 주장에 나는 깊이 공감한다. 죄 없는 가축들이 생매장 당하는 상황도 딱하고, 이를 눈뜨고 바라 봐야 하는 축산농의 상황도 너무나 가슴이 아프다. 이로 인해 오염되는 우리의 산하도 슬프다. 한국 정부에서 이 가축 생지옥 같은 구제역 사태를 현명하게 수습하여 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은미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