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2026. 5. 17. 14:18

 

우리는 주일 아침 아홉시 예배를 마치면 집 근처 텍사스 로드하우스 스테이크 집에 늦은 아침 혹은 이른 점심을 먹으러 가곤 했다. 고기를 잘 못 먹는 내가 몇가지 먹을수 있는 것중에 하나가 기름기 없는 서양식 스테이크이다. 등심 스테이크나 안심스테이크가 내게는 지상 최고의 '고기'이다. 정체가 불분명하거나, 소세지 종류나 뭔가 국이나 스프같이 물기가 있거나, 기름이 붙어있는 고기는 내가 잘 못 먹는다. 등심/안심스테이크는 내가 안심하고 먹을수 있는 고기이다. 이 외에 입에 대는 것이 '한국식 숯불갈비나 불고기' 까지이다. 그 외에는 안먹는다.

 

왜 다른 고기는 입에 안대는것이냐 식성이 왜 그렇게 까탈스럽냐 - 이런 반응은 심지어 이 세상에서 자기 딸처럼 나를 사랑해주는 우리 언니도 마찬가지인데 - 그래서 나의 식성을 이해못하는 언니에게 나는 이렇게 설명해줬다. 언니, 게이 (동성애자)는 자기가 선택해서 게이가 된게 아니야. 그냥 이성과 연애를 할 수가 없는거야. 노력한다고 되는게 아니야. 그냥 그게 안되는거야. 나도 마찬가지야. 나는 그냥 다른 고기를 입에 넣을수가 없는거야. 그러니까 내 식성 신경 쓰지말고 나를 그냥 있는 그대로 내버려둬. 나는 그저 남들이 먹는것을 안먹을 뿐이야. 나는 항거하지 않아. 나를 삼겹살집에 끌고 간대도 괜챦아. 따라갈수 있어. 그렇지만 삼겹살을 내 입에 넣으려고 하지만 말아줘. 나는 삼겹살집에서 삼겹살 빼고 - 밥과 채소 반찬 갖고 평화롭게 함께 식사할수 있어. 나는 추어탕집에서도 돼지갈비 집에서도 일행에게 불평하지 않아. 그냥 찌그러져서 남몰래 나의 밥과 먹을수 있는 반찬을 먹으면 돼. 그게 나의 평화야. 어쨌거나 이것은 나의 식성의 문제이고. 

 

오늘 예배 마치고, 나혼자 스테이크집에 가서 안심스테이크를 먹었다. 이건 좀 비싸다 일인분에 오만원이 넘는다. 내가 '이인분' 먹는다고 생각하고 비싼 스테이크를 먹었다.  '그래 좋았어. 앞으로 내가 2인분 몫으로 먹고 살겠어!'  당신과 다니던 식당을 이제부터 나는 혼자 다녀야 한다.  다니지 뭐. 다니겠다.  당신이 마주 앉아있는것처럼 나는 맛있게 스테이크를 먹었다. 목요일에 종합건강검진이 예약되어 있어서 내일부터는 내시경검사를 위한 식이요법 (사흘건 흰죽이나 먹어야 하는 신세다)에 들어가므로 미리 영양보충을 하려는 의도였다. 

 

스테이크를 먹고, 당신과 늘 그랬듯, 이어지는 통로를 걸으며 쇼핑몰 구경을 했다. 베테통 앞을 지날때 지난해 12월을 회상했다.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과 집채만한 빨간 곰과, 거기서 우리들이 사진을 찍고 놀았지. 저녁을 달게 먹고. 당신은 베네통 매장을 지나다가 마네킨이 입고 있는 녹색잠바를 발견하고 - 그것이 나를 위한 옷이라며 내게 그 잠바를 사주었다.  평생에 나는 녹색 모직 코트나 잠바가 늘 있었다. 녹색은 나의 상징색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나는 당신이 사준 그 녹색 잠바를 겨우내내 자랑스럽게 입고 다녔다. 당신이 천국으로 간 그날도, 당신을 세브란스 장례식장으로 옮길때에도 나는 그 잠바를 입고 있었다.  나는 늘 그 잠바를 입고 있었지. 당신이 사준것이라고 자랑을 하면서. 

 

다시 시간을 접어본다. 이 가게 앞에서 잠시 시간을 종이접기하듯 접으면 - 나의 시간은 작년 12월로 돌아간다. 당신과 내가 함께 마네킨 앞에 서 있다. 겨울이지만 춥지 않은 저녁이었다. 우리는 웃는다. 우리는 깔깔댄다. 나는 종알거리고 내 농담에 당신은 웃는다. 

 

시간을 다시 제자리로 펼쳐 놓는다. 당신은 힘든 시간을 지나 천국의 하느님과 함께 있고, 나는 아직도 여기 그냥 있다. 

 

오늘 목사님이 설교중 - '홍민기 목사'님의 일화를 잠깐 이야기 했다. 그분이 잘 나가다가 구차한 상황에 떨어졌을때, 기도중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편 23편) 이 말씀을 제대로 만났다고 했다. 제대로 만났다는 것은 나의 표현인데 - 늘 외우고 다니다가도 그냥 건성으로 알고 있다가 어느날 그 말씀 글자 하나하나가 살아있는 신처럼 다가올때가 있다. 바로 그런 각성 상태를 말한다.  그런데 나는 이 구절을 떠올리자 -- 당신이 마지막으로 나의 품에 있을때, 내가 당신이 몇초후에 숨이 꺼질것도 모르고 이 시편을 종알종알 외워주던 장면이 생각이 났고 --- 나도 문득 깨달았다. 사람이 죽는 순간에 '부족함'이란게 뭐가 있겠는가?  사람이 명이 다하여 이 세상을 떠나는 마당에 도대체 '부족한것이' 뭐가 있을수 있단 말인가? 다 끝났는데, 다 이뤘는데 부족하고 말고가 어디 있다는 말인가?  이런 생각이 파도처럼 밀려오면서 눈물이 시냇물처럼 흘러나왔다. 다행히 손수건을 갖고 있었다. 

있쟎아, 친구... 내가 경험해보니...사람이 죽을때는 부족할게 하나도 없는거다 원래...그 사람은 이 지상에 필요한게 아무것도 없으니깐 말이다.  단 - 하느님을 믿는 사람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하고 편안히 떠나는 것이고, 아무것도 안믿는 사람은 좀 막막할 것이다. 깜깜할지도 모른다. 겁이 날지도 모르지.  나는 - 당신처럼 가겠지 훌쩍.  이 지상에 아무것도 필요한게 없다고 느끼며. 


이제는 나 혼자다. 나 혼자 결정하고, 실행하고, 마무리하고, 내가 나를 돌봐야 한다. (물론 하느님께서 나를 돌보시겠지.)  그래서, 내가 결심했다. 2인분으로 살아주겠다. 전보다 더 좋은 음식을 먹고, 더 좋은 옷을 입고, 더 좋은 책을 읽고, 더 좋은 시간을 보내고 딱 두배로. 둘이 다니듯 당당하게. 위풍당당하게.  -- 이런 각오를 했다.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