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들은 그가 아무리 유복하고 행복해보여도, 남이 보기에 완벽해 보여도, 각자 어딘가 결리고 쓰리고 아프고 가려운 구석이 있기 마련이다. 완벽하게 행복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니 불행한 그대, 너무 불행해하지 말라, 사랍들은 다들 조금씩 불행하다.)
나는 비교적 운이 좋았고, (남들이 보기에) 단란하고 문제없는 평범한 가정에서 모범적인 부모님 슬하에서 무사히 대학교육까지 잘 받고 컸으므로 - 절대 내 출생과 성장에 대해서 불평할 처지에 있지 않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성장한 집구석에 대하여 투덜대기로 일관해 왔는데 - 그것은 내부자들사이에서 비교를 했을때 내가 공평한 대우를 받지 않았다는 여러가지 객관적 사실과 정서적 믿음에 근거한다.
나는 열손가락 깨물어 안아픈 손가락 없다는 그 따위 속담은 진작에 폐기처분 했어야 한다고 여전히 생각한다. 자식들 중에는 더 귀한 자식이 있고, 덜 귀한 자식이 있게 마련이다. 손가락이야 아프겠지만 말이다. 나는 덜 귀한 자식으로 컸다. 이것은 우리 사남매중에서 나를 포함하여 다른 세명도 대체로 수긍하는 편이다. 이번에 일본에가서도 매일밤 새벽 네시까지 사케와 위스키와 소주를 섞어서 돌려마시며 주로 나눴던 대화가 각자가 기억하는 어린시절의 풍경과 각자가 기억하는 아버지, 어머니의 모습이었는데 -- 대체로 우리들은 동일한 부모 밑에서 성장했으면서도 마치 남의집 아이들처럼 서로 잘 모르고 있던 부분도 많이 있었다. 나의 아버지가 너의 아버지는 아니었다. 이건 무슨 말이냐하면 너의 아버지는 봄바람같이 따스하고 부드러웠는데, 나의 아버지는 칼같은 겨울바람이었다는 것이다. 뭐 이것은 내 형제들뿐아니라, 친인척들도 대체로 감지하거나 인지하던 내용이었다. 그래서 심지어 우리 고모나 당고모는 이런 현상에 대하여 "너와 너의 아버지는 띠가 서로 상극이라서 그래. 둘이 한자리에 있으면 안되는 사주라서 그래. 그러니 이해해" 뭐 이런 해석까지 내 놓기도 했다. 내가 용띠인데 그게 여자로서는 아주 높은 띠이고 뭐 문제가 많다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용띠 여자들은 그러니 각오하고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하하하.
어쨌거나, 뭐 그것도 아버지가 고인이 되신지 35년이 되어가는 판국에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런데도 우리 형제들은 모여 앉아서 술을 마시다보면 과거로 돌아가서 그런 얘기들을 안주삼고, 이번 일본여행에서는 4박 하는 내내 그것이 안주였다. 그 참에 형부까지 등판하여 내 가슴에 불을 질렀는데 (하하하!!!) - 내가 아버지한테 구박받은 에피소드들을 하루종일 듣던 형부가 -- 뭔가 그제서야 여러가지 의문이 풀렸다는 듯이 (자신이 알고 있던 장인어른은 전혀 다른 사람이었을수 있다는 자각과 함께) '이실직고'를 했던 것인데 -- 어느날 장인어른이 불러서 돈암동 '미우라사'에 가서 모직코트를 맞춰 입으라고 했다는 것이다. '미우라사'는 우리 형부의 장인의 단골 양복점이었고 자신의 양복과 아들의 양복과 딸년들이 결혼할때 사위녀석 예복을 맞출때도 그곳을 이용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형부는 너무나 상냥하고 자상하고 친절하고 따뜻한 남자로서 장인어른을 기억하고 있었는데 그의 기억과 내가 받은 구박이 어떤 논리적 모순과 충돌을 보여주면서 그가 충격을 받았다는 실토를 했던 것인데. 나는 그 얘기를 듣고 더더욱 화가 치밀어 올랐다. -- "이 인간이 나를 차별하는 것으로도 부족해서, 내 남편 (그의 작은 사위)까지도 차별을 했다는 말이지!!!" 쳇! 나는 여러가지 기억들을 떠올렸다. 주로 부정적인 측면으로. 그런들 어쩐단 말인가 이미 그는 35년전에 딴세상으로 가버렸는데.
그런데 오늘 색깔놀이를 하다 문득 한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쿠팡에서 DIY 명화그리기를 검색하면 위의 사진과 같은 것이 나온다. 그러니까 그림에 번호를 인쇄해놓고, 물감도 제공하고, 번호에 맞춰서 물감칠을 하다보면 그림이 완성되는 - 심심풀이로 딱 좋은 색칠놀이판이다. 사실 나는 그림을 그리려고 생각했었는데 - 뭐랄까 뭘 머리써서 그리는것도 피곤하게 여겨져서, 남이 만들어 놓은것에 그냥 색깔만 칠하는 것을 선택했다. 나는 이런것도 아주 좋아한다. 색칠을 해서 면을 채워가는것 자체가 내게는 유희가 된다. 몇주전에 사 놓고 가끔 꺼내서 색칠을 하고 있는데, 언제 끝낼지는 알 수 없고, 서두르지도 않는다. 그냥 유희가 필요할때 할 뿐이다.
그런데 오늘 우리 예수님 얼굴 부분을 색칠하다가 문득 한가지 '깨달음'을 얻었다.
그것은 이러한 것이다.
원래 내 아버지는 내 아버지가 아니었다. 그는 의붓아버지였다. 그가 나를 푸대접한 이유는 내가 '남의 자식'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나의 친아버지는 누군가하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이다. 주기도문에 나오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 그분이 원래 내 아버지이고, 우리 아버지는 그냥 하늘에 계신 우리아버지의 의탁을 받고 나를 받아다 키운 '아저씨'에 불과하다. 나는 그의 친생자가 아니었다. 그러므로 그가 내게 살가운 애정을 표시하지 않았다해도 내가 불평할 건덕지는 없는 것이다. 유전자까지 물려받았다해도 그것도 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가 작업하신거다. 그러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는 왜 나를 그에게 의탁한걸까? 아마도 나를 강하게 키우시려고 계획하셨던 것 같다. 나를 험지에 보내서 막 굴려서 나를 튼튼하게 키우려고 그러신게 아닐까? 이렇게 생각하자 그간의 모든 울분과 슬픔과 섭섭함과 서러움과 기분나쁨이 깨끗이 해소가 된다. 아!하! 나는 그 사람의 딸이 아니었구나! 그런데도 나를 자식처럼 키워주신거구나! 참 고맙네. 자기 자식도 아닌데 때려가며 키웠으니 참 고마운거네!!! 이렇게 생각하자 묵은 쳇증이 해소가 되면서 아주 통쾌한 기분이 들었다.
남의 자식을 이만큼 키워주셨으면 그분도 할도리를 하고도 남은 것이고, 나는 불평을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부터 진심으로 감사하기로 했다. 남의 자식인 나를 대학교육까지 시켜준 것에 대하여.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는 나의 이러한 설움을 보시고 -- 당신을 내게 보내셨던거다. 당신은 내가 이 세상에서 당당하게 기를 펴고 살수 있는 원동력이었고, 후견인이었으며, everything 이었다. 하느님은 다 계획이 있으셨던 거다.
원래 나의 아버지는 이 지상에 없었다. 나의 아버지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