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월 30일. 목요일. 남대문 앞, 신한은행 태평로 지점을 거쳐, 돌아오는 길에 신촌 세브란스 암센타에 들러 당신의 지난 4년간의 입원, 진료비 영수증을 발급받아 오는 것으로 지난 한달간의 '상속에 필요한 각종 서류' 작업을 일단락 지었다. 물론 세무사가 뭔가 서류가 더 필요하다고 연락을 하면 나는 그에 따라 움직이면 되지만, 그가 숙제로 준 목록의 서류는 다 한 셈이다.
4년을 '내 집'처럼 드나들어서 눈을 감고도 무엇이 어디에 있는지 찾아갈 정도로 익숙한 - 그 지긋지긋한 암센터의 3층 원무과에서 필요한 서류를 받았다. (*참고로, 한 사람이 사망했을때 - 남겨진 사람들이 그가 남긴것을 물려 받는것을 '상속'이라고 하고, 나라에 '상속세'를 내야 하는데, 그의 병원비를 그의 카드로 지불했을때와, 그의 가족 카드로 지불했을때 --- 환자 자신의 카드로 지불했을 때 상속세에 유리하다고 한다. 그러니까 환자 자신이 자기 병원비 자기가 낼때 상속세에 유리하다는 것이다.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나는 당신의 정신건강을 위해서, 그러니까 '나는 충분히 보호받고 있고,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하려고 그간 당신의 모든 병원경비를 내카드로 지불해왔다. 당신이 당신 카드를 꺼내 주면서 '내 카드로 써~'라고 말 할 때에도 그것을 거절하고 내 카드로 진행해왔다. '내 모든 것을 다 바쳐서 당신을 살려내겠다'는 무언의 몸짓이었고, 당신은 그런 나를 고마워했다. 하지만, 상속세 측면에서 볼때 그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한다. (그것이 세무사의 설명이었다.) 참 야박한 세상이다. 아니 그런가?
서류를 받아가지고 나오려다가, 당신과 내가 새벽에 와서 당신 채혈을 마치고, 위로를 받을겸 들러서 쳐다보곤 하던 김종학 화백의 설악산 꽃 그림을 보러갔다. 우리는 그림을 보면서 - 저 그림속에 꽃이 아닌 곤충이나 다른 살아있는 존재가 몇가지가 있는지 찾아서 세어보곤 했다. 그림 앞에 서 있는것 자체가 위로가 되곤 했었다. (이제 다시 여기 오고 싶지 않아. 그러므로 너를 보는 것도 마지막이길 바래. 안녕.)

3층에서 계단을 한걸음 한걸음 걸어내려왔다. 연세 암센터는 입구에서 3층까지 계단과 에스컬레이터로 연결되어 있다. 당신이 채혈을 마치고, 체크인을 하고 혈압을 쟀을때 혈압이 너무 낮게 나오면 - 우리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일층으로 내려온 다음에 이 계단을 올랐다. 한번 - 두번 올랐다. 그래도 혈압이 올라주지 않으면 더 와서 올랐다. 어느때 당신은 가뿐하게 계단을 올랐고, 어느날 당신은 아주 힘겹게 힘겹게 어지러워서 이따금 쉬어가면서 이 계단을 올랐다. 이 계단을 내려가면서 올려다보았다. 당신이 마지막 입원하던 날, 나는 당신을 내려 주고 학교에 가야했지. 오후에 다시 내가 올때까지 당신은 저 의자에 앉아서 나를 기다렸지. 당신이 마지막 입원하고 있을때에도, 우리는 저 의자에 앉아서 시간을 보내곤 했지. 병원의 모든 복도와 골목 골목을 우리가 어떻게 누비고 다녔는지 - 지난 4년간. 저 지옥같은 곳을. 저 지옥같은 곳을. 저 지옥같은 곳을. 당신은 비명을 지르는 대신에 신음했고, 당신은 비명을 지르는 대신에 울었다.
이곳이 얼마나 지옥같은 곳인지...이곳에 드나드는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지. 다만 말을 하지 않을 뿐이지. 이 세상에 태어난 자체가 우리는 지옥에 떨어진 것이지. 다만 말을 하지 않을 뿐이지. 살아가는 것 자체가 비명을 지르는 것임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다만 말을 하지 않을 뿐이지.
이곳에 오시는 모든 분들 -- 위로 받으시길. 치유 받으시길. 비명대신 기쁨과 감사가 넘치시길. 완쾌되었다는 소식을 들으시길. 행복하시길.
...
연세 암센터. 당신들은 참 잔인했다. '더이상 해드릴 것이 없으므로' 죽어가는 사람을 퇴원시킨 당신들은 참 비정했다. 나는 당신들의 비정을 보면서 - 병원과 사망 복지에 대해서 골똘하게 사색하기 시작했다. 당신들의 노력, 당신들의 고민에 대해서 내가 모른다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이상하지 않은가? 더이상 아무것도 해줄수 없어서 명백하게 앓고 있는 사람을 무책임하게 방출시킨 당신들은 -- 그럼에도 '장례식장'은 운영을 한다는 것이다. 오직 '생명'과 '살려내기'에만 촛점을 맞추는 기관이라면 장례식장은 왜 유지를 하는가? 당신들은 어딘가 스스로 자기 모순에 빠진것이 아닌가? 살려낼수 없어서 사람을 방출시켰다면 말이다. 왜 죽은자를 위한 장례서비스는 하는가? 당신들의 그 모순뒤에 있는 것은 그냥 '돈'의 문제로 보인다. 장례서비스는 돈이 되겠지. 아마도. 죽어가는 사람은 돌보기에 돈이 너무 많이 들거나 의미가 없어보이지만, 죽은 사람은 돈이 별로 안들고 돈이 되겠지.
이런 나의 생각은 '병원'이라는 공룡집단이 가진 어떤 모순점에 관한 고민의 문제이다.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헌신'에 대한 비평은 아니다. 그들은 모두 '헌신'하고 있음을 내가 보아왔기 때문에.
이 계단을 다 내려와서 빙글빙글 돌아가는 회전문으로 사람들이 몰려 들어오고, 몰려나가는 시장판 같은 곳에서, 나는 울었다. 눈물이 쏟아져서 그냥 눈물을 흘리고 서 있었다. 아팠던 당신이 서러워서. 병원에서 더이상 해줄것이 없다고 나가라고 했을때 - 당신의 낙담과 서러움이 생생하게 기억나서 - 당신 대신 내가 거기 서서 한참을 울었다. 버스를 타고 집에 오는 내내 울었다. 날이 기가막히게 화창했다, 사월의 마지막 날에. 그리고 집에 와서 누웠다. 어제. 오늘, 몸에 열이나서 집에 굴러다니는 - 전에 처방받고 남은 몸살약을 먹으며 하루종일 누워있었다. 청소도 하고, 목욕도하고, 가방도 싸고, 당신 추모관에 가야 하는데, 아무것도 못하고 종일 누워서 자거나 깨거나했다. 오후에야 일어나서 가방을 꾸렸다.

당신에게 가 보지도 못하고, 가방을 챙겼다. 당신이 항암받으러 가는날이면 내가 챙겼던 분홍색 가방. 이 가방은 2024년 봄에 내가 장만했다. 왜 이런 꽃분홍 가방을 장만했는가하면 -- 암센터에 가면 거의 모든 환자들이 검정색에 가까운 우중충한 옷과, 우중충한 가방을 메고 온다. 이분들은 대체로 지방에서도 많이 오시는데, 멀리서 오기 위해서는 그 전날부터, 혹은 새벽부터 움직여야하고, 그리고 몸이 아프니까, 자연스럽게 우중충한 옷과 우중충한 가방을 메고 오신다. 나는 암환자들의 복장 자체가 우울했다. 당신의 복장도 그러했다. 그래서 '우리 그냥 좀 밝게 살아보자' 하고 내가 2주마다 항암을 받으러갈때 이 가방에 행장을 차렸다. 보온 물병, 항암주사 맞는 동안 덮을 담요, 그런것들을 챙겼다. 이게 말하자면 '항암가방'이었다. 우울한 색으로 가득한 암병동에 '생경하게' 환하게 돌아다니던 형광빛 꽃분홍 가방. 가방이 밝다고 마음이 밝아지는 것은 아니지만 - 나는 우울과 맞서 싸우고 싶었을것이다. 이 색은 나의 '저항'의 상징으로 보인다.
이제 이 가방을 메고 암병원이 아닌, 세상 구석구석을 돌아다녀도 좋으리라... 당신이 없는 텅빈 세상. 당신은 천국에서 편안한가?
시모노세키의 동생네집에 간다. 온몸이 몸살로 얼얼하고 아프다.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내가 잘 갈수 있어야 하는데. 동생네 가서 민폐를 끼치게 될까봐, 내가 아파서 누워지낼까봐 걱정이 된다. 당신은 천국에서 평안하신가? 제발 그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