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스피스'라는 개념의 선구자로 알려진 스위스 출신 의사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자서전'이다. 그의 생애와 죽음에 대한 시각이 잘 그려져있다. 상담소 원장이기도 한 올케 언니가 선물로 보내주셔서 일게 되었다. '죽음'의 곁을 지킨 내게 위로가 될만한 책이라서 보내신 것 같았다.
책을 읽다보면 - 죽음에 대해서 '무지'했던 내가 남편의 죽음의 전 과정에 동행하면서 - 남편의 마음을 다치지 않게 하려고 했던 나의 행동들이 아주 적절했고 현명했었다는 것을 일깨워주기도 해서 정말로 내게 많은 위로가 되었다.
남편과 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한번도 '죽음'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얘기를 나눈 적이 없다. 그러니까 '사망 death'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지 않은 채 우리는 대화를 했고, 준비를 했다. 그리고 그것은 아주 적절하고 현명한 대화의 방법이었다고 이 책은 내게 말해준다.
남편의 죽음의 과정을 통해서, 그리고 이 책의 저자가 전하는 생각을 읽으면서 - 죽음에 대한 나의 생각의 틀이 조금더 정교해진다. 오늘 마침내 남편이 천국으로 간 이래로 처음으로 혼자서 교회에 예배드리러 갔다. 남편의 장례를 치를 주에는 오빠가족들과 두 아들이 함께 교회 예배에 참석했고, 그 다음주(부활절)에는 두 아들이 함께 했고 그리고 미국으로 돌아갔고, 지난 주에는 왠지 움직이기가 싫어서 집에서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렸다. [권사님 한 분이 저녁에 문자를 보내셨다. 내가 예배에 보이지 않아서 잘 있느냐는 안부 문자였다. 내가 혼자서 예배에 가는 것이 가슴이 무너지는 일이 될수도 있음을 아시고 걱정이 되셨으리라. 오늘은 일찌감치 도착하여 목사님들을 안심시켜드렸다. 다음주 일요일에는 충남 홍성의 미자립교회로 선교활동을 하러 갈거다. 8월에 필리핀 마닐라 가난한 구역에 가서 급식 봉사와 선교를 한다고 해서 그 행사에도 이름을 올렸다. 선교활동은 내 인생 후기의 버킷 리스트에 적힌 것이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대로 나는 갈 것이다. ]
내게 '죽음'은 더이상 무섭고, 낯설고, 고통스러운 '무엇'은 아니다. 나는 통증에 시달리던 남편이 '간절하게' 천국으로 가게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을 목도했다. 한밤에 '주여! 주여!' 부르며 어서 자신을 데려가 달라고 기도하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것을 함께 기도했다. 죽음은 그에게는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이었다. 또다른 의미의 '엑소더스'였다. 그에게 죽음이 해방이었으므로 나에게도 죽음이 더이상 무섭거나 고통스러운 것은 아니다. 정말 고통은 '살아내는것' 그 자체이다.
오늘 예배드리면서 문득 그런 생각을 해보았다. 신약에 의거하면 - 예수님은 세명의 죽은자를 살리셨다. (1) 야이로의 딸 (2) 과부의 아들 (3) 나사로. 예수님은 능력이 되시는 분이 왜 모든 죽은자를 되살리는 대신에 세명만 본보기로 되살리신걸까? 그것은, 예수님은 그저 본보기를 보여주시려고 했을 뿐, 죽은자를 되살리는 일에 크게 의미 부여를 안하신듯 하다. 왜 죽은자를 되살리는 일에 크게 의미부여를 하지 않으셨냐하면 죽은자가 이 세상에 되돌아 올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왜? 이 세상보다 죽음 너머의 세계가 훨씬 좋은 곳이니까. 천국이 훨씬 좋은 곳이므로 딱히 이 세상에 사람을 다시 끌어올 필요를 느끼지 못하셨던거다. 그러면 왜 세사람을 되살렸는가? 그냥 부활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시려고 (그 외의 다른 이유도 있으셨겠지만, 그것은 내가 나중에 알아볼 것이고...)
죽음이 그다지 낯설거나, 재수가 없거나, 무섭거나, 이상하다거나 그런 느낌이 아닌 상태에서 -- 죽음이 내가 거쳐야 할 또다른 장이라는 것을 받아들인 상태에서 - 지금 나는 이 생을 어떻게 잘 살아낼까 그 생각을 하고 있다. 어떻게 잘 살아내면 좋을까.
이 책이 현재 처지의 내게는 어떤 호소력을 갖고 있었는데, 그냥 평범하고 건강하고 별 걱정 없는 독자들에게는 별로 재미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요즘은 '죽음'에 대한 글이나 내용들이 내게 흥미진진한 편이다. 내가 바로 근처에서 그것이 나타나는 것을 봤으므로... 그런데, 내가 약 3주간 남편의 마지막 병원에서 생활했던 것을 돌아보면 - 이 책의 저자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하는지 생생하게 이해가 된다. 내가 병원에서 느낀 온갖 부조리함을 이 책의 저자가 호령하듯 지적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나도 차근차근 내 생각을 정리할 것이다. 마지막에 환자들을 내동댕이치는 대형병원들의 폭력과 부조리함에 대하여, 나도 언젠가 목소리를 내게 될 것이다. (당신들도 이제 준엄한 비판에 직면해야 할거다.)
나, 어쩌면, 사람을 평화롭게 떠나게 도와주는 자원봉사를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 일을 아주 잘 할것 같은 느낌. 한 사람이 마지막을 맞을때 그 사람이 서럽거나 쓸쓸하거나 무섭지 않게, 도와 줄 수 있는 방법이 많이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