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내내 근처 가정의학과에서 처방해준 약을 먹었지만 감기는 점점 더 심해지는 듯 했다. 마침내 세번째 방문했을때, 의사는 폐렴으로 번진게 아닌지 의심스럽다며 엑스레이를 찍어보자고 했다. 엑스레이 소견은 애매했다. 폐렴은 아니지만, 뭔가 폐렴으로 발전될것 같은 뿌연것이 많이 보인다고 했다. 항생제를 처방했다고 했다. 영양수액도 맞았다. 그리고나니 한두시간은 반짝 - 마약이라도 한듯 기분이 좋아졌다.
저녁이 되자 오한이 나기 시작했고, 머릿속이 멍해졌다. 온몸이 망가지는듯한 기묘한 느낌이 들었다. 통증은 아니지만 통증보다 더 기분나쁜. 그렇게 세시간쯤 뒤척이다가 가까이 사는 동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마침 퇴근한 시동생과 동서가 함께 왔다. 시동생은 근처 약국에가서 체온계를 사왔다. 체온을 재보니 39.5도. 내가 늘 갖고 다니던 타이레놀을 송도집에 놓아두고 온듯. 급한대로 아스피린을 두알 먹었다. 시동생부부가 근처 병원 응급실로 데려다 주었다. 병원에 가서 다시 체온을 재니 38.5도로 내려와있었다. 열때문인지 혈압도 미친듯이 올라가 있었다 (내 혈압이 그렇게 높게 올라간 것은 본적이 없다).
그래도 응급실에 가서 등록을 하고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동안 내 상태는 많이 좋아졌다. 혼미하던 정신이 온전히 돌아오고, 부들부들 온몸을 떨던 오한도 가라앉았다. 의사는 내가 근처 가정의학과에서 처방받았던 지난 일주일간의 약제들을 검토하고 있었다 (아마도 의료보험 관련해서 전산시스템에 내가 처방받은 것들이 공유되는 모양이었다.)
의사는 내게 세가지 선택지를 제시했다.
1) 간단히 해열제및 관련 처방약을 받아가지고 귀가한다 (견딜만 하면 그렇게 해도 된다).
2) 응급실에서 수액및 해열 진통제 처방을 받으며 한두시간 경과를 본후에 퇴원한다. (불안하면 이것도 괜챦다)
3) 문제의 원인이 복합적일수 있으므로 엑스레이, 초음파등 필요한 검사들을 싹 다 진행한다 (돈이 꽤 들었이지만 불안하면 이 방법도 추천한다)
그리고나서 의사는 덧붙였다. "응급실에서 진행하는 검사나 약제 이런것들이 응급상황이라서 의료보험이 안되는 것이 많고 비용이 많이 들어요."
나는 내가 오늘밤에 죽을것 같지는 않았으므로, 그리고 직장 다니는 시동생과 동서가 한밤에 나때문에 응급실에서 보초를 서야하는 상황도 딱하고해서 긴급 약 처방만 받아가지고 나가기로 했다. 엉덩이에 주사 맞고, 해열 소염제 사흘치 처방받고. 그러고 계산하니 67,000원이 나온다. 음..응급실은 뭔가 비싸구나... 그래도 온나라가 의료비상체계에 들어가있고, 응급실에 의사가 없다는 판국인데, 나는 응급처치를 탈없이 받을수 있었으니 참 다행이다.
내 평생 처음으로 내 몸이 아파서 응급실 도움을 받은 날이다. 그래서 기록에 남긴다. 내가 이 세상 살면서 이제야 처음으로 응급실 신세를 졌다는 것은, 한편으로 생각하면 그동안 별 탈없이 살아왔다는 뜻이기도 해서, 그것또한 감사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달이 밝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