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시 이후로 금식하라길래 4:30에 이른 저녁을 먹고, 6시까지 신나게 단감과 귤과 요거트를 먹었다. 그리고 일체 물 한방울도 마시지 않았다. 새벽에 잠이 깨어, 건강검사소에서 챙겨 오라는 것들을 챙기고 - 성경쓰기를 먼저 할까, 밥을 먼저 안칠까 잠시 고민하다가 - 밥을 안치고 나서 성경쓰기를 하면 되겠지 생각하고 밥을 안쳤는데, 밥에 이어서 자동적으로 아침 밥상에 올릴 이것저것을 씻고 다듬고 데치고. 무슨 정성이 뻗쳤다고 시금치까지 꺼내어 다듬어 씻어서 데치고 헹궈가지고 그걸 무쳤던거다.
그게 사단이었다.
시금치.
그러니까, 남편이 '오징어숙회'가 먹고 싶다고 지난 저녁에 장봐다 놓은 것을 향긋하게 데쳐서 썰어서 접시에 담을때까지만 해도 나는 정신이 온전했다. 이것을 맛보려고 입에 넣으면 안되지. 나는 금식해야 하니까. 나는 얼마나 기특한가, 아침부터 남편을 위하여 진수성찬을 차리고 있지 않은가! 제법 스스로 기특하여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시금치 나물로 옮겨간 것인데, 시금치 나물의 간을 간장으로 할 것인가 소금으로 할 것인가 약간 고민하던 사이에, 그만, 내가 위내시경 검사를 받으러 가야 한다는 사실을 살짝 망각하고, 소금으로 방향을 잡고 소금과 깨소금과 참기름을 넣어 주물주물 하다가 그만 '간'을 보기 위해서 그걸 한잎 입에 넣고 우물우물 맛을 봤던 것이다. 향긋하다, 고소하다, 싱싱하다. 좋았어 좋았어. 간도 딱 맞네! 하고 스스로 감탄하다 말고, 그제서야 내가 '금식'을 철저하게 지켜야 한다는 사실이 퍼뜩 떠올랐다. 목에 손가락을 넣어서 그 시금치를 토해내려고 별짓을 다 했지만 - 아무래도 식도를 내려가던 시금치가 긴급소환장을 받고 너무나 놀란 나머지 식도벽에 딱 달라붙은것일까? 아무것도 나오는 것이 없었다. 하는수 없이 나머지 작업을 마저하고 시금치 나물이 포함된 칠첩반상을 남편에게 바쳤다.
"시금치 딱 한잎을 삼켰을 뿐인데요..."
내시경 담당자는 무서운 표정으로 말했다. "오늘 검사는 불가능합니다. 다른 날짜를 새로 잡으셔요."
그래서, 사정사정 통사정을 하여 내시경 검사를 내일 아침으로 다시 잡고, 나머지 다른 건강검진항목들을 채우고 털레털레 집으로 돌아왔다. 아까 무서운 표정으로 나를 구박하던 담당자가, 내가 다른 검사를 모두 마치고 떠나는 것을 보면서 "또 금식을 하셔서 어떡해요, 힘드셔서" 하고 제법 따뜻한 위로의 말을 해 줬다. 아마도 아까 나를 구박했던 것이 마음에 걸렸나보다. 그래서 나도 웃으면서 말해줬다.
"괜찮어유~ 뭐, 금식기도 기간으로 생각하면 돼유~ 금식기도 하고 오겄슈~"
시금치는 - - -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