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2024. 11. 9. 10:11

 

어제 오후에 산책을 나갔다가, 그 산길을 대비로 쓸고 있는 분을 발견했다.  그냥 길에서 흔히 보이는 눈에 안띄는 검정색 운동복을 입은 60대 아저씨가 맨발인채로 산길의 낙엽들을 쓸고 있었다. 천천히, 마치 집앞 마당을 거쳐 오솔길을 쓸듯 그렇게 천천히.  그래서 나도 멀리서부터 그를 발견하고 인사를 했다, "아하! 어쩐지 산길을 누군가가 빗자루로 쓸어 놓은듯이 깨끗하고 비질 자국이 보이길래 이 산길을 누가 쓰는걸까? 능 궁금했는데 선생님께서 쓸어 놓으신거군요! 아이고, 고맙습니다!" 

 

 

사나이는 나의 활달한 감사인사가 싫지 않았는듯, "뭘요. 나만 쓰는게 아니에요. 좋아해주시니 저도 좋죠"하고 답을 했다. 

 

 

그를 지나쳐 산길을 더 오르다보니 길가 운동틀 옆에 빗자루가 세워져 있는것이 보였다. 이거구나. 이걸로 쓰는거구나. 그래서 나도 거기서부터 시작해서 낙엽이 쌓인 오솔길을 아까 그 아저씨가 있는 방향으로 쓸어내려갔다. 그가 쓸어 올라오고, 내가 쓸어 내려가면 중간지점에서 만나게 되리라.  아저씨가 저만치 보이는데서 빗자루를 제자리에 갖다 놓고 마저 산길을 올라갔다. 

 

 

잠깐이지만 -- 산길에 쌓인 낙엽을 쓸어낼때 기분은 - 고요한 오대산 월정사 앞길을 나 혼자 쓸고 있는 느낌. 혹은 눈쌓인 고향집 바깥마당에서 이웃집으로 이어지는 오솔길을 쓸고 있는 느낌. 그런것. 세상에서 가장 고요하고, 평화롭고 따스한 '순간'과 '장소'에 몰입되어 있는것 같은 느낌이었다. 세상에 이런 평화 다시 없어라 (비발디의 세상에 참평화 없어라) - 바로 그 '참평화' 의 순간이었다.

 

하나님께서, 무엇이 나를 가장 기쁘게 하는지, 무엇이 내게 가장 위로가 되는지 아시고, 깊은 가을날 집 근처 숲에서 세상의  모든 고요를 주시다.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