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2024. 11. 8. 10:49

버지니아에서 내가 간신간신히 별로 희망도 없는 직장에서 단지 '영주권'한가지를 기다리며 '영주권 노예살이' 시기를 보낼때였다.  박사학위고 뭐고 '미용기술'이나 '손톱 다듬는 기술'보다도 돈이 안되는 학위가지고 막연한 시간을 보내던 시절 나는 생계 꾸리기도 힘든 작은 대학 교수질이고 뭐고 다 때려치고 '기술'이라도 배우자는 심정으로 지역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간병사' 교육을 받았다.  Personal Care Aide. 그래서 내가 버지니아주 간병사 자격증을 갖게 되었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제도가 운영되고 있는 것을 본다).  뭐 그냥 정해진 수업시수를 잘 채우고 성실하게 가서 듣고 간단한 실습을 하면 되는 극히 초보적인 교육 과정이다. 

 

그런데, 간병사 과정을 배울때, 간호와 관련된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초청되어 강의를 해주셨으므로 - 내가 기대했던 것 보다 훨씬 다채로운 내용을 배우게 되었다. 호스피스 전문가도 오시고, 간호대 박사과정 선생님도 오시고 - 현장에서 평생 근무하신 간호사 선생님도 오시고. 참 많은 내용들을 귀동냥하게 되면서 CNA 코스 (Certified Nursing Assistant, 간호조무사)에 대해서 알게 되고 역시 사회단체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CNA 과정에도 들어가게 되었다. CNA는 우리나라의 간호조무사 제도처럼 교육과정도 6개월 정도 되고, 수업이나 실습의 양이 많고 엄중하게 진행되었다. CNA 부터 뭔가 professional 의 단계로 여겨졌다. 정말 공무 열심히 해야 하는 자격증인 것이다. 

 

나는 PCA을 착실히 했고, CNA 과정은 다니다가 그만두었는데 - 그 이유는 본래 그 자격증을 따려던 목적이 - 내가 그걸로 어딘가에 취직을 하려던 것이 아니고 -- 그 당시에 진로 고민하다가 다니던 대학을 그만두고 '무슨 새로운 전공을 공부해야 할까?' 고민하던 우리 귀냄이 녀석에게 "귀냄아, 간호대를 가보는 것은 어떨까? 잘만하면 그쪽도 의사 못지 않은 전도유망한 분야란 말이지..." 살살 꼬셔서 녀석과 함께 PCA도 끝내고 CNA도 함께 등록하여 공부하고 있었던 것인데, 우리 귀냄이가 주위 친구들의 강력 추천으로 Information Techonology 쪽으로 방향을 틀면서 CNA 과정을 그만두었기 때문에, 나 역시 더이상 그것을  마칠 동기가 사라졌던 것이다.  그렇다, 내가 아들의 장럐를 위해서 자격증 공부까지 함께 해 줄 정도의 엄마이기도 했다. (내가 좋은 엄마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자식의 앞날을 위해서 '함께' 그 길을 가주는 친구이기는 했다.)

 

뭐 그래서 귀냄이는 간호대학으로 편입하려는 계획을 접고 공대로 간것이고, 나역시 '내가 뭐 현장에서 정말 환자들을 돌볼 사람도 아니므로' 대충 기본적인 상식 공부를 한 셈 치고 그 과정을 그만 둔것인데.

 

그런데 내가 그냥 심심파적으로, 뭔가 상식의 경계를 넓히고자 잠시 공부했던 PCA, CNA 과정이 내 삶에 전환점을 가져왔다. 그 얘기를 하려던 것인데 서론이 너무 길었다.

 

내가 뭔가 번듯한 직장에서 '다시 시작'해보고 싶어서 다니던 대학을  그만두고, 백의종군 하는 심정으로 집구석에 처박혀서 미국 전역의 2년제 4년제 사립 공립 대학교에 이력서를 보내며 소일하고 있던 어느날 메릴랜드의 몽고메리 커뮤니티 컬리지에서 전화가 왔다. ESL 수업을 맡아 달라고. 그래서 당장 가서 공식 채용 절차를 마쳤는데 - 다시 담당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우리가 이민자를 위한 의학영어 과정을 열어야 하는데 - 네가 적임자인것 같아. 네 이력서를 보니 너는 PCA 자격증도 있고 CNA 과정도 일부 이수했다고 나오네. 너 외국에서 온 의사, 간호사들에게 의료 관련 영어를 가르치는 커리큘럼을 짜서 가르칠수 있을까? 그 과정은 특수 과정이라서 강의료도 높고, 네가 잘하면 고정적인 과정으로 자리잡을수도 있어. 우리에게 ESL 강사는 많은데 메디컬 영어를 가르칠 사람이 없어, 너밖에."   이런것을 우리 업계 용어로는 ESP (English for Special Purposes)라고 한다. 일반 영어교육이 아니라, 특수 목적의 영어 교실을 말한다, 말하자면 의사들을 위한 영어, 파일럿을 위한 영어 이런식으로 특수 직군에게 필요한 영어 과정들이다.


후보가 나밖에 없다니 (나도 한번도 안가르쳐봤지만....), 게다가 일반 강의보다 강의료가 세배나 높은데 -- 이게 웬 떡인가.  그래서 나는 그날 당장 관련 서적들을 사들여서 착실히 공부를 하고 수업과정을 설계했다. 심지어는, 내가 PCA, CNA과정에서 전문가들로부터 이수했던 '실습'과정까지 내가 다 가르치게 되었는데 대학에서는 내가 영어와 실기까지 다 가르칠수 있다니까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반겼다. 그렇게 - 몽고메리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나는 '이민자/난민' 의료인들을 위한 의료 영어 교육 전문가가 되었다.  거기서 끝난 것이 아니고, 나는 아프리카등지에서 온 난민 학생들 (미국에서 간호사가 되고 싶어하는, 고국에서 간호사나 의사로 일했던)을 위해서 여러 사회단체에 죽어라고 이메일을 보내어서 - 희망하는 사람들이 CNA 과정을 무료로 공부할수 있도록 장학금을 끌어다 주기도 했다. (이메일 질에는 자신이 있었으니까).  내가 활발하게 일을 하자 몽고메리 칼리지에서는 내게 풀타임을 제안했다.  그 때 내가 마음이 잠깐 흔들렸다.  

 

그런데, 그 당시 나는 조지메이슨에서도 시간강사를 하고 있었다.  몽고메리 칼리지와 조지메이슨 두 대학에서 시간강사를 하면서 내 희망은 조지메이슨에 풀타임 교수로 가는 거였다. 그런데 몽고메리에서 내게 풀타임을 제안한 것이다. 잠시 흔들렸지만 나는 곧바로 '감사'와 함께 그냥 개인 사정으로 시간강사는 할 수 있지만 풀타임은 할 의사가 없다는 답을 했다. 내가 몽고메리에 풀타임으로 자리를 잡으면 조지메이슨에서 풀타임 자리가 났을때 움직이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  그럴경우 나를 믿고 뽑아준 몽고메리에도 미안한 노릇이고. 나는 함부로 신의를 저버리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아깝지만 그자리를 포기해야 했다. 

 

그리고 그 다음학기에 나는 내 소망대로 조지메이슨에 풀타임 교수로 들어갔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최근에 내가 프로포절을 작성한 십만달러짜리 미국 정부 교육프로그램은 '난민을 대상으로 한 영어, 문화 교육 프로그램'이다. 지금 내가 속한 대학에는 '난민' 전문가 교수들도 있고, '영어교육' 전문가 교수들도 있다.  그런데, '난민 대상 영어교육' 프로그램을 디자인하거나 제공했던 사람은 '나' 한 사람 밖에 없다. 그래서 - 내가 이 프로젝트를 디자인하게 되었다. 

 

지금 그 난민 대상 영어교육 프로그램과  -- 간병사나 간호조무사 공부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나의 별것도 아닌 간병사, 간호조무사 공부 이력이 나를 '이민자들을 위한 의료 영어교육' 전문가로 키웠고,  의료영어 교육 전문가로 크는 동안  -- 내게 수업을 들은 학생들 - 정치적 난민들, 취약계층을 위하여 내가 발벗고 나서서 장학금을 끌어오거나 그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노력을 했던 이력이  나를 특수 영어 교육 전문가로 캐웠으며  ----> 그 이력이 나를 '난민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 설계자로 만들어나가고 있다는 얘기를 하려는거다. 

 

나는 이런 얘기를 최근에 내게 상담을 하러 온 학생에게 들려주었다.  우리학교에 회계학 전공으로 들어온 그 학생은 - 원래 간호대에 가고 싶었는데 간호대 입시에 실패해서 - 그냥 부자 할아버지가 가라고 하셔서 자기는 별로 관심도 없는 우리대학 회계학과에 들어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 학생에게, 이번학기 성적관리나 잘하고 학교를 그만두라고 얘기해주었다. "간호사가 되고 싶으면 간호사가 되는 길을 가, 여기서 시간과 돈을 낭비하지 말고" -- 이것이 내가 그에게 해 준 말이다. 나는 그 학생에게 한국에서, 그리고 미국에서 간호대에 들어갈수 있는 여러가지 경로를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내 간병사-간호조무사 공부 얘기도 해주었다. "당장 겨울방학에 동네 구청에서 공짜로 제공하는 간병사 자격증 공부라도 심심파적으로 해봐라. 거기서 시작해서 네가 소망하던 간호사의 길을 가면 된다. 가만보니 너희 집안이 먹고 살만하고 교육수준도 되게 높아서 - 아마도 네가 어느 구석의 허름하고 이름없는 간호학과 같은데 가는것을 용납하지 않는 분위기로 보이는데 -- 그분들 말 들을거 없다. 네가 하고 싶은 공부를 차근차근 해라. 네가 가고 싶은 길을 가라. 네가 그 길을 성실하게 가다보면 - 나중에 그분들이 너를 우러러볼수 있는 그런 자리에 네가 가 있을것이 자명하다."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