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2024. 10. 9. 15:27

 

오랫동안 이 문제를 연구과제로 다뤄야 한다고 생각만 하고 있으면서 실천에 옮기지 못하였는데, 아무래도 내가 학계에서 은퇴하기 전에 반드시 써야 할것 같다는 절박함을 요즘 느끼고 있다.  <은퇴 전>으로 못박고, 슬슬 조금씩 데이타를 모아나가면 되겠지.

 

이미 학계에서 활발하게 다뤄지는 '언어와 정체성 Language and Identity'의 소주제라 할만한데, 대체로 영어권에서 살고 있는 이민자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나같은 사람들)은 영어권 국가에서는 여러가지 제약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일단 '특유의 액센트 (영어를 배운 사람의 영어에는 모국어 액센트가 함께 작동한다)'로 인해서 의도치 않은 소통상의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예를 들어보자. 내가 겪은 것이므로 생생하다. 20여년전, 내가 플로리다 주립대 대학원에 입학 할때, 내가 가진 비자를 학생비자로 바꿔야 하는 문제 때문에 대학의 국제학생센터 (외국인 학생들에게 여러가지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구)에 들러서 상담을 하였다. 상담해준 사람은 지금 돌아보면 중동계나 터키인이었던 것 같은데 영어 액센트가 아주 강했고 (뻑뻑했다고나 할까) - 결과적으로 내게 아주 불친절하게 여겨졌다. 그래서 그 사람과 대화하는 내내 아주 기분이 나빠지고 말았다.  그런데, 막상 대학원에 입학해서 생활하면서 돌아보니, 그것이 순전히 나의 오해였다. 내 주위에 중동계를 비롯한 여러나라 출신의 대학원생들이 많았고, 그들과 어울려 지내면서 그 '불친절'하게 느껴졌던 언어가 사실은 그들 언어 특유의 액센트가 들어가 있어서 그랬던 것이다.  사실 나의 영어도 나는 요즘도 평소에 매우 조심하는데 내 영어가 평범한 미국인들의 일상적인 영어에 비해서 '절대 나긋나긋하지 않고,' '좀더 직설적이며,' 심지어 '공격적으로' 여겨질수도 있기 때문이다.  내가 '조심 조심'하면서도 '나긋나긋하지 않게' 하는 이유는 아시아 여자에 대한 편견에 저항하는 의도도 있다.  저들에게 비굴하게 비쳐지거나 만만하게 보이기 싫은것이다.  어쨌거나, 그래도 나는 제법 '젠틀'해보이는 영어를 구사하고 있는 편이다. (연극을 하는거지. 생활을 '연기' 해야 한다는 것은 피곤한 일이다. 하지만 대체로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이 영어권에서 살때는 대체로 이렇게 '연기'하면서 산다고 할 수 있다.)

 

내 의도와는 아무 상관없이, 영어학습자가 영어를 할 때는 특유의 액센트 때문에 '오해'를 받을 소지가 크다는 것을 장황하게 설명하였다.

 

최근에 나는 교수와 학생 사이에서 일어난 분쟁을 조정하는 회의에 참석을 하였다. 그 분쟁은 학생이 제기한 것으로, 모 교수가 특히 자신을 미워하여, 학점에 불이익을 주는 식으로 자신을 '응징'했고, 이것은 교수로서 올바른 처사가 아니라는 내용이었다. 분쟁 조정 위원회가 열렸고, 해당 교수와 해당 학생도 모두 참석하였다. (재판정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우리는 제출된 여러가지 자료와 정황에 대한 설명등을 자세히 살피고 듣고, 질문을 하기도 하였다. 

 

이 '분쟁'의 내용은 사실 별것이 아니었다. 제출된  작은 과제에 대하여 교수가 'cheating'이라고 판단했고, 몇가지 근거를 제출했으며, 학생은 그것이 절대 'cheating'이 아님을 역설하며 학생편에서 제공할만한 근거 자료를 역시 제공했다.  양쪽의 얘기를 종합해보면 - 교수가 과제에 대하여 설명한 부분에 '빈 틈'이 있었고, 그 '빈 틈' 때문에 학생이 뭔가 착오를 한 부분도 있었다.  이런 오해와 분쟁은 얼마든지 일어날수 있는 것이고, 대체로 이런 오해가 발생했을때 학생들은 해당교수에게 수업전후에 찾아 온다던가 개별적으로 문의를 하여 오해를 풀어내는 편이다. 나 역시 과제 평가를 하다가 실수를 할 수 있는데, 학생이 찾아와서 내가 준 평가점수에 대하여 문의를 하면 둘이 함께 들여다보고 내가 왜 이점수를 줬는지 납득할수 있도록 설명을 해주거나, 내 쪽의 명백한 실수가 발견되면 그자리에서 내 실수를 인정하고 점수를 정정하기도 한다 (내가 분명히 피드백에 칭찬의 말까지 써놓고, 부가점수까지 주겠다고 코멘트를 해 놓고 엉뚱한 점수를 표시할때도 있다. 예컨대 50점 준다고 해 놓고 5점으로 기록을 하기도 하는것이다. 학생이 깜짝 놀라서 찾아오면 나는 그자리에서 곧바로 내 실수를 시인하고 내 실수를 고친다. 인간이 신이 아니므로 실수의 가능성은 항상 열려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문제의 본질을 들여다보면 대수롭지 않은 - 이런 분쟁조정위원회가 열릴 필요도 없는 사소한 일이었는데, 이 문제가 왜 이렇게 시끄러워진 것일까?  양측의 발언을 들여다보면서 나는 한가지를 발견했다. 위원회 소속 교수들이 나 이외에는 모두 미국인들 (영어 한가지 밖에는 모르는) 사람들이었고, 문제의 해당교수는 아랍계 남자였다. 학생은 심지어 이 조정위원회에 출석해서도 격앙되어 '저 교수가 나를 개인적으로 미워하고 그래서 나를 응징하는거라고 본다'고 발언했다. 

 

양측의 설명을 들을만큼 듣고, 회의를 마무리하기 전에 내가 발언권을 구했다, -- 이건 이 사안과 딱히 연관이 없겠지만 - 그렇지만 한가지 나를 슬프게 하는 면이 있어서 질문을 하고 싶다. (학생에게) 교수가 너를 인간적으로 미워한다고 느끼나? 아니면 당시 상황속에서 커뮤니케이션에 어떤 오해의 가능성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내 질문에 대하여 학생은 교수가 자신에게 한 행동과 말이 자신을 미워하는 것을 그대로 노출시켰다는 것이다. 

 

 

해당교수와 학생이 자리를 뜨고, 위원회교수들만 남겨졌을때 나는 내가 생각하는 '문제'를 토로했다. 지금 저 교수는 너희들도 직접 대화하니까 알겠지만 영어가 원어민에 비교하여 서툰편이고, 특유의 액센트도 강해. 평범한 미국인 교수들처럼 젠틀하게 들리지 않고, 평이하게 얘기를 해도 마치 싸우자고 달려드는것처럼 들릴수도 있어. 화가 났거나 불친절하게 느껴질수도 있어. 그가 의도해서 그런것이 아니라, 단지 그렇게 들릴 뿐이야.  나역시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기때문에 내 영어가 거칠고 도전적으로 너희들에게 들릴수도 있어. 나는 이런 문제를 알고 있기 때문에 조심하는 편이고, 내 영어가 저 교수보다는 능통하니까 큰 문제가 되지는 않지만 말이지. 

 

 

나는 여기서 두가지 문제를 지적하고 싶어.

 

  1.  저 교수가 언어 때문에 '오해'를 받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평이하게 말해도 화를 내는것처럼 들릴수 있다. 
  2. 어쩌면, 학생이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저 교수'에 대하여 어떤 편견을 갖거나, 무의식중에 얕잡아 볼 수도 있다. 그래서 작은 문제를 여기까지 끌고 왔을지도 모른다. 물론 의도했다기보다는 '무의식중에' 그런 자세가 되었을수도 있다는 뜻이다. 

 

 

나의 결론: 이건  언어와 소통과 관련된 슬픈 케이스야. 이것은 나도 역시 끌려나와 당할 수 있는 문제이기도 해. 그러므로 우리가 여기서 어떤 판단을 내리건 이 점을 고려해주길 바래.

 

영어가 모국어인 미국인교수들은 내 이야기를 경청했다. 이 사건에서 그런 면도 있을수 있다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고 했다 (당연하지 너희들은 이런 문제를 겪지 않고 잘 살고 있으니까).

 

그날 분쟁조정위원회는 학생도, 교수도 다치지 않을만한 조정안을 채택했다. 

 

분명히 '언어유창성'이나 '언어 액센트'관련해서 영어 원어민이 아닌 영어권의 교수들이 고통을 겪고 있고, 여러가지 문제를 안고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다. 현상은 이미 여기저기서 보이는데 - 나는 게으름을 피우느라 이것을 제대로 된 보고서로 써내지 못하고 있다. 내가 은퇴하기 전에 꼭 해 내야 할 일이다.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