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2024. 1. 16. 07:14

 

Martin Luther King Jr. (MLK Day holiday) 기념일이다.  아침에 깨어보니 밤사이에 눈이 내려 쌓여 창밖이 환 했다. 어제, 일요일 오후에 눈발이 날리다 그치는가 했는데, 밤사이에 조용히 우리 곁에 와 있었다.

 

아들이 산책을 나가자고 해서 아파트 인근으로 온가족이 산책을 나갔다.  아들은 먼길을 돌아 마치 회귀하듯 - 그가 졸업한 고등학교 근처의 아파트에 자리를 잡았다. 우리의 산책 목표지점은 2010년부터 2013년까지 살았던 매클레인의 아파트 근처 세이프웨이 상점.  그곳은 내가 왕눈이를 데리고 나가서 상점 입구에 묶어 놓고 장을 보기도 하던 곳이다. 왕눈이가 잘 있는지 내다보면 왕눈이는 끈에 묶인채 내가 나오길 기다렸고 - 입구를 오가는 동네 사람들이 사랑스러운 강아지를 발견한듯 기쁜 눈빛으로 왕눈이를 쳐다보거나 미소를 짓곤 했다. 고등학생이던 찰리는 "나가서 스타벅스에가서 아이스커피 벤티 한잔 사오너라"하고 내가 심부름을 시키면 왕눈이를 데리고 이곳까지 와서 커피를 사다주곤 했다. 한쪽 모퉁이 주유소도 여전하다.  달라진 점이라면, 내가 살던 아파트 구역이 재개발되어 콘도미니넘으로 새로 지어져서 약 백만달러 가까운 금액으로 매매가 되고 있다는 것 정도.  

 

이곳에서 찰리가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에 입학해서 기숙사로 나갔고, 존이 한국군에 입대를 하러 나갔다. 좋은 일들이 많이 있었고, 벚꽃이 쏟아져 쌓인 나무 아래를 왕눈이가 무심히 코를 킁킁대며 산책하던 눈부신 봄날이 떠오른다.  엄마가 한달 가까이 지내다 가시기도 했다. 

 

존은 어딘가 전통적인 한국인 가족의 맏아들 같은 성품을 지니고 있다.  그는 살고 있는 아파트의 '안방 - 매스터 베드룸'을 온전히 한국에서 엄마 아버지가 오셨을때 사용할 방으로 꾸며 놓았다. 그리고 자신들은 그 옆의 작은 침실을 사용한다.  내가 '그래도 이게 너희 집인데 나는 어쩌다 일년에 한두번 손님처럼 다녀가는데, 큰 방을 너희가 써야지 이게 무슨 짓이야'했더니 그는 처음부터 약혼자와 살림을 합칠때부터 '한국사람들은 아버지 어머니를 모시고 살아야 하는 문화'라고 서로 합의를 보고 그래서 엄마가 오건 안오건 안방은 부모님 방으로 지정이 되었다고 했다.  찰리는 엄마가 쓰라고 방을 두개 꾸며 놓았지만, 매스터베드룸은 그들 부부가 사용한다.  큰아들과 작은아들이 부모를 신경써주는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작은아들이 좀더 자신들의 삶을 중심에 놓는다면, 큰아들은 '한국의 맏아들' 흉내를 내러든다. 

 

나는 뭐 - 자식들이 부모가 쓸 방까지 신경을 써주니 그저 하나님께 감사하며 '손님'으로 지내다 갈 뿐이다. 자식들에게 고맙게 생각한다.

 

 

흩날리는 눈발속에 눈을 밟으며 동네 한바퀴 5킬로미터 (약 3.5마일). 즐거운 산책이었다.  아파트 입구에  주민들 전용 작은 매점이 있는데 눈속에 있는 모습이 요정의 가게 같아보여서 사진을 한장 남겼다.  아이들이 커피 한잔 사러 들어간 사이. 저 가게안에 큰아들과 며느리가 들어있다. 내가 마실 뜨거운 커피 한잔을 사고 있다.

 

 

 

 

창밖으로 떡가루 같은 고운 눈이 솔솔솔 뿌려지고 있다. 온종일 솔솔솔.  근처 타이슨스 쇼핑몰에 책방 반즈앤노블이 있는데, 거기까지 산책을 다녀올까 말까 망서리고 있다. 눈길을 산책하여 책방에 들러 책 구경을 하고 돌아오는 상상을 해본다. 상상만으로도 참 아름답다.  아들은 눈길에 미끄러져 넘어질까봐 말린다. 그 마음씨도 아름답다.  

 

 

 

아들이 마련해준 내방 창가 책상에 앉아있으니 십여년전 바로 이 근처 아파트에서 지낼때 내가 매일 내다보던 창문과 별반 다르지 않아, 내 마음은 그 시절의 나에게로 돌아간다.  여전히 창가를 지키는 아름드리 나무와 나뭇가지들, 바쁘게 오르내리는 다람쥐들. 눈 속에 여전히 바쁜 다람쥐들.  십여젼의 세월이 흐르고, 이제 아들들은 장성하여 각자 자신들의 가정의 주인의 되어 살아가고 있다. 감사한 일이다. 

 

눈이 며칠 더 왔으면 좋겠다. 나는 이 창가에 앉아 눈을 내다볼것이다.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