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2024. 1. 6. 13:37

2023년 12/31 - 2024년 1/4 성경통독

 

지난 2023년 12월 31일은 일요일이었다. 전에 다니던 매클레인의 교회에 가서 아이들과 예배를 드리고 집에 와서 성경통독을 시작했다. 닷새동안 구약부터 신약까지 급행열차를 탄것 같은 속도로 성경 통독을 마쳤다.  내가 일년 중 보낸 시간중 가장 귀한 시간으로 기록 될 것이다.

 

위의 사진은 12월 31일.  (사진속) 맞은편 집 사람들은 자기네 차고 앞 에서 모닥불을 피우고 불멍을 때리며 새해맞이 카운트다운을 하였고, 아이들은 친구들과 아랫층 거실에서 파티를 하며 새해맞이를 했고, 나는 성경책을 읽으며 한해를 보내고 맞이하였다.

 

 

한해를 보내는 마지막 주일 예배. 목사님 설교가 아주 좋았다. 아이들도 모두 인상적이었다고 좋아했다.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 '아름다운 삶'의 시작이라는 메시지였다. 여기서 '한계'란 - 피아노의 키보드의 음계를 정확히 짚는것. 자유롭게 멋대로 열손가락을 모두 눌러서는 아름다운 음악이 안된다는 것 - 목사님은 직접 키보드의 키를 열손가락으로 꽝 하고 누름으로써 (어린 아이가 피아노를 칠줄도 모르면서 무장정 여기저기 눌러대는 그 불협화음을 연출해보여주며)  조화롭게 살아가는 것의 아름다움을 역설했다. 여기서 조화로움이란 - 하나님의 뜻에 부합함, 순종, 인간의 한계를 깨달음. 등 여러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빨간다리'가 타운과 상점가를 이어준다.  겨울 햇살 속에, 이 빨간 다리를 통과하여 근처 맥도널드나 식품점을 오간다. 찰리가 살고 있는 마을이다. 

 

 

 

버지니아주의 상징적인 새 Virginia for Lovers 라는 슬로건에는 꼭 이 카니널 새가 등장하는데, 버지니아에는 정말 카디널이 우리나라의 까치처럼 흔하다. 그리고 빨간 색 덕분에 쉽게 눈에 띈다.  빨간것은 숫놈. 암놈은 갈색빛이 많이 난다. 

 

 

크리스마스 밤에 도착했다. (그날 한국 출발 비행기표 값이 가장 쌌다. 그래서 그냥 그날표를 샀다).  시차 적응하느라 며칠 졸았는데, 잠이 오락가락 할때 책 읽기에는 머릿속이 뿌옇고, 심심해서 - 쿠션 커버를 짰다. 주황색 다알리아 네송이가 들어간 것을 먼저 짰고, 네가지 다른 색이 들어간 것을 나중에 짰다. 먼저 짠것은 둘째가 냉큼 가져갔고, 나중에 짠것은 큰애가 가져갈 것이다.

스텔라 (강아지)가 새식구로 들어와 - 손님으로 온 나를 반겼다. 요즘 이 강아지와 침대를 함께 쓴다. 강아지하고 자면 그 따스한 체온이 그대로 내게 스며들어서 꿀잠을 잘 수 있다. 

 

 

내일(주말)부터 한파가 닥친다고, 아들이 장을 보러가자고 해서 장보러 갔다가 - '바나나꽃'이 보이길래 '이건 어떻게 먹는거지?' 궁금해서 하나 사왔다.  아무래도 찜틀에 쪄서 (양배추 찌듯이) 뭐 쌈장에 찍어먹으면 될 것 같다. 내일 연구좀 해봐야지.

 

 

 

성경책을 5일에 통독하려면 하루에 350 페이지를 읽어야 한다. 그야말로 '읽기 전쟁'이다. 되게 힘들다. 다 읽고나면 - 영적으로 배가 부르다는 것 말고 그냥 신앙심을 빼고 난 관점에서 -- 무지막지하게 책 읽기를 한 결과 --> 다른 시시한 책 읽기가 정말 수월해진다.  그러니까 굉장히 높은 산을 힘들게 올라갔다가 내려온 후에는 - 웬만한 산에 오르는것이 매우 가볍게 느껴지지 않는가?  마찬가지로 무시무시한 읽기를 마치고나니 - 내가 읽어보려고 몇권 가져온 한글 책들이 너무 빨리, 쉽게 읽혀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한국에서 가져온 책들을 후딱 읽어치우고 - 아마존에서 새로나온 좋은 책들 몇권을 더 사서 읽어야지 하고 생각하고 있다. 

 

성경통독은 정말 힘든 일이다. 어떤 신앙심 강한 분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는데 정말 신앙심 만큼은 나에 비해서 태산같이 깊은 분인데 그분은 '성경통독'을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얘기를 했다.  그래서 나는 '사람마다 자신의 종교생활을 이어가는 방법이나 방향이 다 다르구나' 생각했다. 나는 뭘 하면 일단 관련 '문서'를 조사를 하는 편인데, 어떤 분은 '문서' 상관없이 그냥 '믿음'으로 가는 분도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나로서는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하는 것이 내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편이다.  그런데 성경통독은 마음을 아주 독하게 먹고 - 어떤 프로젝트로 진행을 해야 한다. 나는 대개 방학때 정해놓고 '며칠안에 끝낸다'고 작정하고 시작하는 편이다.  요 몇해동안은 해마다 한번은 했는데 2022년 2023년에 하지 못했다. 2022년에는 통독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대신 그때는 시편 필사나 기도를 많이 했었다. 신촌 세브란스병원 기도실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었다.  내가 성경통독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은 - 내 삶이 '정상'으로 돌아왔다는 - 아니 '평온'으로 돌아왔다는 뜻일 것이다. 그러니 그것만으로도 하나님께 감사한다.

 

 

2021년 겨울 크리스마스 즈음에 나는 성경 통독을 한 바 있다. 그 때, 나를 깜짝 놀라게 한 성경구절이 하박국 3장 17-19절 이었다. 그당시 나는 이 구절을 읽으며 '이건 뭐지?' 했다. '이건 뭔데, 내가 이 구절을 들여다보고 있는거지?' 곰곰 생각하다가 목사님께 메일을 보낸적이 있다.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으나 - 목사님, 이번 통독에서 이 말씀이 가장 강렬하게 제게 다가옵니다' 뭐 이런 메시지였다.  그러니까 그것이 2년전이었고, 2년후 나는 성경통독을 다시 하게 되었는데 - 그것에 대하여 까맣게 잊고 있다가 다시 하박국에 이르러 이 말씀을 발견했다. 

 

그리고 이제 나는 말씀을 뜻을 파악한 것 같다.  그 모든 고통의 시간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가득찼던 시간이었을것이다. 무화과 나무에 열매가 열리지 않았을때, 포도나무에 열매가 열리지 않았을때, 감람나무에 아무것도 열리지 않았을때, 밭에 먹을것이 없었을때, 양이 없고, 소가 없었을때 -- 그 빈곳을 가득 채우고 있었던 것. 그 텅빈 (고통, 고독, 아픔, 통증, 고난) 듯 해보인 곳을 가득 채운것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였을 것이다.  그러니까 세상 것을 다 잃어도, 심지어 목숨마저 잃어도 나는 두려워하거나 근심하거나 원망할 필요가 없다. 이미 하나님으로 가득차있으니까. 그가 내 아버지이니까.  내가 없어져도 나는 하나님속에서  없어지지 않으니까.  (아...그래서 안중근 의사가 광복을 위해서 목숨을 내 놓을수 있었던거구나. 그는 자신의 목숨이 없어져도 자신이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던거다.)

 

나는 매일 죽어야한다. 매일 망해야 한다. 그래서 매일 새로 태어나고 매일 새로 자라야 한다 - 하나님 속에서. 그의 사랑 속에서.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