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2023. 9. 11. 11:32

엄마 집에서 TV를 보는데 옛날 드라마 '맏이'라는 것을 재방송을 해주고 있었다.  거기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 사람이 다 죽어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모두 다 죽었어요. 그러니까 오빠도 내곁에 오지 마세요'하며 슬피 울던 소녀가 나왔다. 자기가 재수 없는 존재라서 자기가 사랑하면 그 사람은 죽으니 -- 그러니 오빠도 곁에 오지 말라는 말은 그 자체로 사랑의 고백이 아닌가? 참 슬프고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그런데 그 오빠가 동생을 시켜서 책갈피에 편지를 써서, 그 슬픈 소녀에게 전한다. 편지에는 대략 이런 내용이 적혀 있었다 (기억을 더듬어서 대충...) "서로 그리워 하는 사람들은 마음속에 작은 방 하나를 만들어 놓고, 거기서 함께 산다.  네가 그리워 하는 사람은 그 방안에서 너와 함께 사는거다. 그러니까 슬퍼하지 마라."  뭐 이런 내용이었을거다. 

 

그 장면을 보면서 - 내 마음에 정말로 그런 작은 방 하나를 만들면, 그 방안에 누가 살까? 그런 생각을 잠시 해봤다.  그런데 그 작은 방 안에 이미 참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일단 우리 왕눈이가 거기 산다. 왕눈이는 늘 항상 나하고 함께 산다. 나의 사랑하는 개 말이다. 플로리다에서 2004년 봄에 입양해서 2011년 가을 낙엽질때 품에 안고 임종을 지킨 나의 개.  할아버지, 할머니도 그 방에 산다.  참 미안하게도 나의 아버지는 그 방에 자주 안온다. 나하고 별로 친하지 않았다. 내가 참 좋아했던 나의 첫사랑은, 안타깝게도 이제 더이상 내게 아무것도 아닌것 같다. 별로 생각나지 않는다. 그 사람 기억속에서 내가 완전히 사라졌어도 나는 전혀 안타깝지 않다. 그러고 보면 사랑 그거 별거 아니다. 지금도 내 작은 방에 사는 그리운 사람은 있다. 가끔 그 사람을 생각한다.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겠지.  거리에서 우연히라도 스칠거라는 기대도 하지 않는다, 그런 우연이 가능할까? 그리고 내가 이렇게 늙었는데 스친들...내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도 않다.   그래도 그 '작은방'이 내게 위로가 된다.  내 마음속에 작은 방이 하나 있고, 그 방안에 그리운 사람들이 나하고 함께 살아간다는 발상 만으로도 제법 마음이 따뜻해진다.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