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2023. 9. 11. 11:22

나의 무기력 모우드가 개선이 잘 안되고 있다. 

 

증상은, 일단 학교에 출근하면 에어컨 세게 돌아가는 실내에서 음악 틀어 놓고 앉아서 그나마 활기차게 밀린 일들을 소화해내고 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언제나처럼 에너자이저처럼 학교를 누비고 돌아다니며 일을 해치우는 전사'처럼 비쳐질것이다.   사실 그전과 다르지 않게 행동하고 있다.  그러나, 학교까지 가는 길이 천리길이다. 그리고 일단 집으로 돌아가는 순간 소파에 쓰러져서 일어나지 않는다. 에어컨과 선풍기를 24시간 틀어놓고, 막 짜증을 내고 투덜댄다. 나의 배우자는 내게 무엇을 어떻게 해 줘도 무조건 화풀이를 당해야 한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내가 함께 사는 사람을 잡아 먹으려는 듯 짜증을 내고 투덜댄다. 내가 그 사실을 객관적으로 인지하면서도 순간순간 짜증 나는 것을 참을수가 없다. 내가 짜증내는 양상은, '도대체 덥고 찌고 살수가 없어 내가 살수가 없어...' (실내는 동거인이 느끼기에 썰렁하다 못해 춥게 느껴지는 수준이다. 내가 미친거다). 

 

거의 3개월만에 (미국에 두달 다녀오고, 이래저래 아프고 바빠서) 엄마에게 다녀왔다.  내가 주말에 다녀올때면 나는 대개 엄마를 휠체어에 모시고 최소한 동네 호수공원이라도 한바퀴 돌거나, 동네 마실 겸 뭔가 과일이라도 사러 가는 식으로 엄마가 바람을 쐬게 해드리거나 혹은 좀더 기운이 난다면 어디론가 한시간 거리의 드라이브를 해드리는 편이었다. 그래서 우리들 남매들중에서 내가 엄마에게 오는 날에는 엄마는 거동이 불편하신 가운데에도 외출 준비를 하시고 나를 기다리곤 하셨다. 콧바람을 쐬러 나갈거니까.  하지만, 이번에는 엄마에게 삼시 세끼 밥상을 차려 드리는 것 외에, 나는 엄마에게 말을 걸지도 않았고, 움직이지도 않았다. 그냥 소파에 모로 누워 테레비나 봤다. 모로 누워 자다가 테레비보다가 끼니 때가 되면 마지 못해 일어나 엄마의 밥상을 차렸다. 나는 말도 하기가 싫었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엄마는 엄마의 집 안에서도 나로부터 방치된 것 처럼 보였다.  엄마는 불평하지 않으셨다. 그냥 작아지고 약해지고 있을 뿐이다.  동료교수가 내 센터에 전시 해 놓은 엄마의 작품을 하도 좋아해서, 그것을 선물로 줬다는 얘기가 엄마를 기쁘시게 했다. 아마 그것이 가장 기쁜 선물이 되었을 것이다. 

 

예배에 가기 위하여 일요일 아침에 돌아왔지만, 나는 예배에도 가지 않았다. 하루종일 소파에 모로 누워서 티브이를 보다가 자다가 했다. 선풍기는 온종일, 밤새도록 내 발치를 지켰다. 남편이 내가 좋아할 만한 먹을거리로 세끼를 챙겨주었다.  집안은 TV소리외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말이 없었고,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은 짜증섞인 '더워서 못살겠다. 살수가 없어.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아. 나를 그냥 가만히 내버려둬' 뭐 이런 것들이 변주될 뿐이었다.  남편은 혼자서 산책을 나간다. 전에 내가 신나게 다니던 산책로를 이제 남편이 혼자 돌아다니고, 나는 꼼짝도 하지 않는다. 내 몸이 내 몸 같지 않다. 뭔가 내가 남 같다. 이건 내가 아니야, 이런 느낌. 

 

오늘 학교에 와서 한 첫번째 일은, 기도 명상 음악을 틀어놓고 앉아서 '하나님, 제게 제발 힘을 주세요.제가 고장난 인형처럼 꼼짝도 안해요.제발 저를 일으켜주세요.' 이런 기도였다.

 

그리고 벌떡일어나 인근 지역의 '피부과'를  검색했다. 얼굴에 사마귀 같은게 자라나는게 계속 신경이 쓰이는데 이마에 한개, 뺨에 두개가 작은 여드름처럼 뾰로지처럼 솟아 올라와서 처음에는 여드림인줄 알고 짜내려고 했는데 짜지지 않았다. 사마귀 같은건가보다. 이 얼굴의 사마귀 같이 생긴 것은 일년 넘게 나의 신경을 긁고 있었다.  마침에 용단을 내렸다. 내가 자주 가는 건물에 피부과가 있다길래, 검색해서 나온 그 피부과에 전화를 걸었다. 드디어 이번 주 중에 그 사마귀들을 제거할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이 아무것도 아닌 일을 나는 일년넘게 질질 끌고 용단을 못내리고 있었다.) 상담원이 레이저로 사마귀같은거 제거하는데 한개당 11,000원이라고 별일 아니라는 식으로 내게 이야기를 해 줬다. 어쨌건 전문의가 검진하고 상담하고, 간단한 것이면 그자리에서 제거가 가능하다고.  기분이 제법 좋아진다. (나는 학교에 일단 오면 사람처럼 움직인다.).

 

나에게 한가지 '소망'이 생겼다. 조만간 이사를 하는 것이다. 내가 일년 넘게 미루고 있던 일이 있다. 집을 팔고 집을 사는 일이다. 나는 오랫동안 갖고 있던 집을 팔고, 그리고 인근에 집을 사려고 생각한다. 바다가 보이는 집을 살 것이다.  베란다에 화단을 만들어서 남편에게 선물할 것이다. 갖고 있는 집을 팔고 인근에 집을 사는 일은 실행에 옮기기에 어려워 보이지 않는다. 단지 내가 게을러서 안하고 있었을 뿐이다.  남편이 좋아하는 산책로 인근의 집을 살 것이다. 바다를 내다보고, 숲을 내려다보고, 사람들이 행복하게 산책하는 광경이 보이는 곳에.  그리고 아주 예쁘고 편안한 소파를 하나 사서 내 전용 소파로 사용할것이다. 남편에게도 전용 소파를 사 줄것이다.  큰 침실에서 남편이 편안히 휴식을 취하게 하겠다. 그리고 각자 방 하나씩을 갖고 내 방은 내 취향대로, 남편은 남편 취향대로 그 방을 사용하도록 할 것이다. 

 

 

부엌을 최신 설비로 채울것이다. 가능하면 부엌 중앙에 아일랜드와 개수대 등을 설치하여 부엌일이 즐거운 일이 되도록 할 것이다.  여름에 아들네 집에 살때, 그집 부엌이 참 좋았다. 넓은 부엌의 중앙 아일랜드에서 온가족이 모여서서 요리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웃고 그랬다. 그게 가능한 집이었다. 거기서는 부엌일이 전혀 힘들지 않았다. 즐거운 행사였다.  나도 우리 아들네 부엌같이 행복한 부엌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아지고 몸이 따뜻해진다. 덥지 않고 따뜻하다.  

 

사랑하는 하나님,  주님께서 주신 안락한 집에서 거의 8년 가까이 편안하게 지내오고 있습니다. 하나님, 이제 저희가 이 '기숙사'를 벗어나 '집'으로 가려는 소망을 품었습니다.  나그네처럼 떠도는 지상에서의 삶이오나, 너무 오랫동안 나그네처럼 살아온 삶에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쳤습니다.  20년 넘게 떠돌았으니, 이제 단 몇년이라도 내 집으로 머물러서 살 곳을 찾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하나님, 저에게 새로운 터를 주시고 그곳을 축복으로 채워주십시오.  매일 숲과 바다를 내다보며 기도하게 해 주십시오.  이것이 저의 소망이오나, 그보다 더 나은것을 계획하심이면 주님 뜻대로 하옵시고, 언제나 감사기도를 드리게 인도하소서. 

 

 

집에서 올때 커다란 타이레놀 한병을 갖고 왔다. 두통이 심할때 먹으려고. 오늘 아침에 한알 먹으려고 했지만, 지금은 타이레놀을 먹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즐거운 상상 때문일까?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