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2023. 8. 31. 09:48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해를 두려워 하지 않음은 주님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함이나이다...'

 

내 영혼의 불이 다 꺼지고 내가 깊은 우물속으로 깊이 깊이 빠져들어갈때 - 나는 깨우는 장치들이 있다는 것을 나는 최근 발견하게 되었다.  그것은 예고없이 갑자기 울리는 다급한 전화벨소리, 혹은 예고없이 들이닥치는 업무회의.

 

며칠전에도 나는 죽어가고 있었다. 내 영혼이 깊이 깊이 나락으로 빠져들어 나는 숨을 쉴 수도 없었다. 물론 숨을 쉬고 있었지만 내 영혼이 숨을 쉬지 못하고 있는것 같았다. 나는 꼼짝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집요하게 전화가 울려댔다.  나는 대체로 전화를 받지 않고, 내게 전화를 거는 이들은 그것이 로봇이 거는 피싱전화이거나 광고전화이거나 혹은 가까운 사람들의 전화이거나 간에 내가 대여섯차례 벨이 울려도 받지 않으면 더이상 나를 괴롭히지 않는 편인데, 그날은 집요하게 계속해서 전화가 울려댔다. 끊었다 다시 걸고 끊었다 다시 걸고를 반복했다.  그렇게 한참동안 내 전화를 울려대던 그이는 마침내 내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님, 저 *** 인데요. 전화 통화 가능하실까요?"   그는 아마도 내가 '모르는 전화'라서 수신을 안한다고 상상했던 듯 하다.  물론 내 전화에 그의 번호가 등록되어 있어서 나는 그가 전화를 걸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단지 대답하기 싫어서 응대하지 않았던 것인데 - 그는 지속적인 전화와 문자메시지로 나를 불러대고 있었다. 엔간히 급한 일인가보다.  나는 마지못해 진땀을 닦으며 그에게 전화를 걸어준다.  내용은, 예상했던 것보다 별것이 아니었다. 어쩌면 내게는 별것도 아닌 것이지만 그에게는 매우 중대한 일일 수도 있으리라. 아마도 그러했을 것이다. 

 

그의 소원수리를 해주기 위해서 나는 컴퓨터를 켜고 들어가서 간단한 작업을 해야 했는데 - 그러다가 문득 내 영혼에 불이 켜졌다. 어둠속에서 성냥불 하나가 켜지면 그게 꽤 밝아진다. 어둠속에서 순간 성냥불하나가 켜진것처럼, 문득 내 영혼에 불이 들어왔다. '모두들 지금 생존하기 위해서 열심히 움직이고 있다구!  너는 지금 누워서 뭘 하고 있는거야 사지가 멀쩡해가지고는. 어서 일어나지 그래!'  -- 누군가 내 엉덩이를 걷어차며 나를 흔들어 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그날 나는 벌떡 일어나서 진땀을 내며 책상앞에 앉아 밀린 일들을 해 치웠다. 오랫만에 수직으로 일어나서 (주로 수평으로 누워있었으니까) 작업을 하니 그동안 누워있던 것이 효과가 있었던 듯 짧은 시간안에 매우 효과적으로 일들을 해치웠다.  물론 그러고나서 다시 시체처럼 누워 지내야 했지만 말이다.

 

어제도 오후 한시에 책상앞에 앉아서 노닥거리고 있을때, 내 프로젝트를 관리해주는 스태프님이 예고도 없이 내 연구실에 들이닥쳤다. 대개는 방문 직전에 "지금 시간 되세요? 미팅 하시죠"라는 문자라도 주곤 했는데 어제 그는 이런 짧은 메시지도 없이 그냥 들이닥쳤다. 예전에 그런 적이 한번도 없었는데 말이다. "뭔가 일이 생기신것 같아서 그냥 와 봤어요"가 그의 설명이었다.  그냥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것 같았다고.  그와 앉아서 미루고 있었던 일들에 대한 논의를 했다. 내가 해야 하지만 하기 싫어서 결정을 미루고 미적거리고 있었던 일들. 그 안건들을 가지고 그가 들이닥쳤다. "힘드시면 취소하셔도 될것 같은데요..."그의 배려심 가득한 한마디가 내게 용기를 줬다. "그래도 하겠다고 약속한 일이니까, 해야지요. 지금 스케줄 잡읍시다."  우리는 아주 짧은 시간에 큼직큼직한 것들을 결정하고 스케줄을 세웠다. 그와 사업 얘기를 하다보니 - 내가 정신이 제자리로 돌아온다. 누군가 깊은 우물속에 '오필리어처럼 누워있던' 내 영혼을 끄집어 내는것 같았다. 

 

그와의 미팅을 마치니, 지금 내가 서둘러서 일을 해야 한다는 각성이 일면서 뿌옇던 머릿속 안개가 조금씩 걷히는 듯 했다.

 

어제 오후에 아주 짧은 시간에 나는 또 많은 중대한 일들을 해치우고, 밀렸던 메시지들을 소화해 냈다.  그리고 모처럼, 저녁을 근처 한정식집에가서 외식으로 했다. 오랫만에 이런저런 반찬과 뜨거운 돌솥밥을 맛있게 해치웠다. 숭늉까지도 아주 달게 먹었다. 식사를 마친 후에는 홈플러스에 들러서 계란과 식료품들을 사고, 나오는 길에 - 바카스를 한 상자 샀다. 나는 평소에 박카스나 그런 드링크를 안먹는다. 바카스는 어쩐지 공무원들이나 시골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건설 노동자들이 먹는 것이라는 해괴한 상상을 품고 살아왔기 때문에 그것은 어딘가 내게는 금단의 영역이었었다. (내가 위의 직업군에 어떤 편견이 있는 것은 아니다. 옛날에 우리 엄마가 동사무소에 뭔가 서류 떼러 갈때면, '와이로'로 바카스 그런거 한상자 사들고 갔던 것이 머리에 박혀 있어서 그럴뿐이다. 하하하)  그런데 진열대에서 바카스를 발견한 나는 손을 뻗어 그것 한상자를 카트에 담았다. "여기 구론산도 있고, 여기 이것은 1+1 행사인데, 이건 어때?" 남편이 옆에서 나를 약간 비웃으며 거들었다. 남편도 바카스나 그런 미신적인 음료수는 입에도 대지 않는 사람이다. 우리는 그런 것들이 모두 카페인 덩어리라는 미신적 편견을 갖고 있다. 

 

나는 나를 비웃듯, 조롱하듯, 구론산이니 뭐니를 가리키는 남편에게 정색을 하고 - 노려보며 - 신경질적으로 - 진지하게 말했다. "내가 지금 농담할 기분인 줄 알어? 난 지금 이거라도 먹고 이 무거운 우울증에서 벗어나고 싶은거라구! 내가 술을 해? 담배를 해? 커피도 안마시쟎아. 이 우울증에서 벗어날 뭔가 조력장치가 필요하단 말야. 난 이 바카스의 도움이라도 받고 싶다구!" 

 

사람들이 아마도 그래서 술이나, 프로포폴이나 환각제 뭐 그런 것에 빠져드는 거겠지? 하지만, 나는 거기까지는 가지 않을거야. 왜냐하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가 그것을 내게 허락하지 않으실거니까. 그 전에 나를 치유해주실거니까. 내게는 아버지가 계시다구... 나보다 더 많이 한숨지으실 내 아버지가. 

 

오늘 아침은 어제보다 낫다. 기적적으로 아침 여덟시부터 학교에 나와 앉아있다. 집에서 나올때 바카스 몇병을 챙겨 나왔다. 학교에 오자마자 청소를 하고 바카스 한병을 마셨다.  뭔가 기분이 좋아지는것도 같고. 하하하. 

 

어둠속에 벨이 울릴때 - 누군가가 우울의 늪에서 나를 건져내기 위해 전화를 하거나 예고 없이 들이닥칠때, 나는 우리 하나님께서 나를 살리시려고 고민고민하시다가 저 사람을 내게 보내셨구나 하고 알아차린다. 나는 우리 하나님이 나를 항상 돌보시고 계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누군가 지금도 나를 위해서 기도를 하고 있을 것이다.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