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2023. 8. 30. 14:13

평소대로 잠이 깨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일어날 기운도 없다. 멀거니 누워있다가 - 차려주는 아침을 먹고, 평소같으면 부지런히 단장을 하고 일찌감치 학교로 향하겠으나, 너무 피곤하므로 조금 쉬었다 가자고 생각하고 티브이를 켜고 소파에 누워서 선풍기 바람을 쐬다가 티브이를 켜 놓은채로 다시 잠이 든다.  점심을 먹으라는 소리에 깨어서 맛도 없는 점심을 먹는둥마는둥한다. (아침 먹고 누워잤으니 점심을 먹을 필요도 식욕도 없음이 당연하다).  그나마 포도나 사과와 같은 제철과일은 나를 기쁘게한다. 그것들을 갖다 주는대로 먹는다.  티브이를 켜니 섬에가서 뭔가 만들어 먹는 오락프로그램이 나오는데 그들의 삶이 평화로워보여서 그것을 물끄러미 보다가, 그들이 주고 받는 실없는 농담과 맛있어보이는 음식들 그런것들 덕분에 기분이 조금 좋아진다. 그래서 기분이 좋아진 김에 일어나서 씻고, 대충 입고, 집을 나서서,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가운데 가까운 카페에 가서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잔을 사 들고 연구실에 와서 앉는다. 오후 한시.   

 

지금부터 해야 할 일을 하도록 하자.  그래도 연구실에 나오면 나는 사람처럼 작동을 한다. 마치 어느 구역에서만 작동하는 기계처럼 말이다. 그러니까, 집에서 연구실까지의 그 짧은 거리가 천리같이 먼것이 문제다. 여기만 오면 나는 그래도 작동을 시작한다. 

 

 

내가 해야 할일

 

 * 내 직무상 해야 할 일들은 다행히 밀리지 않고 해 내고 있다. 

 * 내가 개인적으로 해야 할 일들 - 예컨대 미장원에 가서 머리를 좀 잘라야 한다던가, 얼굴에 난 사마귀 같은 것을 제거하기 위해서 피부과 예약을 하고 가봐야 한다던가 그런 사소한 것들을 마냥 미루고 있다. 그런것들을 미뤄도 사회적으로 문제가 발생하지는 않으니까. 

 

사회생활

 

 * 여전히 여기저기서 초대가 오고 주변은 뭔가 활발하게 돌아가고 있다. 나는 내가 반드시 꼭 해야만 할 최소한의 응대만 하면서 버티고 있다. 아직 주변에서는 눈치를 채지 못했을 것이다. 그냥 단지, '요즘 그이가 잘 안보이네' 정도로 알듯 모를듯 느끼고 지나칠것이다. 하지만 나는 나의 사회생활 영역의 여기저기에서 조금씩 지우개로 지우듯 지워지고 있다. 초대를 받고 거절하는것이 참 힘들다. 그래서 거절을 잘 못한다. 하지만, 거절하는 표현을 연습해서 - 거절을 할것이다. 

 

이런것을 '가면을 쓴 우울증'이라고 하는건가? 사람들은 모른다, 내가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내가 여전히 활기차고 언제나 웃고, 그리고 언제든 자신들이 힘들때 찾아와 위로 받을수 있는, 에너자이저라고 상상하고 있을것이다.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