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2023. 3. 6. 19:33

중요한 회의가 있었다.  '중요한' 회의이므로 회의 자료를 이미 일주일전에 만들어 놓았고, 팀원들에게 리뷰 할것을 청했고, 피드백을 받았고, '주일' 예배 마치고 오피스에 와서 이미 일주일전에 만들어 놓은 자료를 싹 다 갈아 엎고 (피드백 받은것을 모두 반영하고) 회의 자료 준비를 마치고 아예 프린트까지 다 해놓고 집으로 돌아갔다. 

 

오늘은 결전의 날. 그 '중요한 회의'는 회의자료를 본  누군가는 '아예 유언장을 쓰셨군,' '이건 뭐 사직서네. 최후 통첩이군'  이런 평가도  했다. 

 

그렇지, 저들은 평범한 회의라고 오겠지만, 뚜껑이 열리는 순간 - 정말 뚜껑이 열리는 것이지. 나는 칼을 갈고 있었던 것이지. 슥삭슥삭슥삭, 생각을 정리하고 또다시 생각을 정리하고, 글을 쓰고, 다시 글을 쓰고, 그러면서 생각이 더 차가워지고, 글이 점점 더 날카로워지고 - 건조해지고 - 아무런 감정도 실리지 않은채로 - 사실만 남은 - 그러나 '비수'처럼 번득이는 회의 자료를 만들었던 것이지. 

 

 

만족한다.  비수를 심장에 제대로 꽂았다.  게다가 오늘 회의 안건을 다시한번 분명히 하기 위하여 회의 마치지마자 파일로 다시 참석자들에게 보냈다. 회의에 참석하여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나중에 딴소리 못하게).

 

 

회의중에 내가 예견했던 언짢은 (기분 나쁜, 화가 치미는) 소리도 들었다. 전체적으로 승리한 전쟁이지만, 그 기분 나쁜 소리가 계속해서 귓가를 맴돌고 '이걸 어떻게 갚아주나' 하는 생각이 부글부글 끓어 올랐다.  그때 내 책상위의 '오늘 내가 할일' 리스트 정리한 것이 눈에 들어왔다. '30분간 기도'  -- 그렇다, 오늘 내가 할 일 리스트에 '30분간 기도'가 들어있었다. 아직 못했다.  그래서 조용히 앉아 - 파도소리 배경음악을 틀어놓고 30분간 눈을 감은채 기도를 했다. (30분 타이머를 켜놓고).  30분이 지났다. 그 30분간 잔잔히 파도가 치듯 온갖 생각들이 생겨났다가 사라지고 생겨났다가 사라졌다.  30분이 다 되었다는 알람이 울렸다. 기도 시간이 끝났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머리가 가벼워졌다.  기분 나쁜 생각도 사라졌다.  우리는 모두 '사람'이다. 우리는 끝없이 말 실수를 한다. 나도 그렇고 남도 그렇다. 그러므로 자질구레한 말의 찌꺼기를 내 가슴에 담아 둘 필요가 없다. 그냥 그것은 찌꺼기 일 뿐이다. 파도가 그것을 씻어 갔다. 홀가분해졌다. 

 

 

30분 기도로 나는 아주 홀가분해졌다.  (그러니, 마음속에서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증오하거나 불평이 생기거나 할때 - 나는 기도로 들어가기로 하자. 찌꺼기들은 파도가 씻어가 줄 것이다. )

 

 

기도를 마쳤을때 팀원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회의에서 자신의 문제를 논의하고 개선 방향을 역설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바로 그 일을 제대로 해 내기 위하여 내가 고민하고, 칼을 슥삭갈고, 주일 예배 마치고 오피스에 와서 곧바로 '성령 가득한 시간에' 원고를 수정하고 했던 것이니, 목표하던 것을 성취할수 있었겠지. 기도하면 - 길이 열리고 - 기도하면 - 만사형통.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