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2023. 2. 21. 12:42

옛날에, 나 때문에 아버지가 집을 나가신 적이 있다.  집안의 황제, 그의 말 한마디면 그것이 '헌법'보다 상위 개념의 법이었던 시절이었는데 - 그런 아버지가 나 때문에 가출을 감행하셨다.

 

사연은 이렇다. 사람들 말로는 '사주'가 안맞으면 그럴수 있다고 하는데 - 나는 아버지의 사랑을 못 받고 컸다. 4남매중에서 나는 어딘가 늘 개밥의 도토리였다. 어머니는 원만한 분으로 어머니의 사랑이 부족하다고 느낀 적은 없었는데 - 이상하게 나는 아버지가 무서웠고 가능한 그의 눈에 띄지 않으려고 애썼으며, 동시에 그의 아주 착한 딸이 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나는 분명 아버지의 자식이었는데 - 그렇지만 나는 어딘가 남의자식처럼 여겨졌다.  나의 거의 모든 행동은 아버지의 '지적질'의 대상이 되었으므로 나는 아버지의 눈앞에 안나타나는게 상책이었고, 그래도 아버지 사랑을 받고 싶어서 새벽에 골목에 뛰어가서 '아버지 전용 우유' 한병 사오기, 아버지 구두를 반짝반짝 닦아 놓기 등을 스스로 찾아서 했지만 - 아버지의 따뜻한 눈길이나 칭찬 한마디도 들은 기억이 없다.  그냥 나는 아버지의 지적질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관심밖의 인생이었다.  주위 친척들은 이런 현상에 대하여 '사주가 안맞어서 그래' 정도로 해석하려 했다.

 

어쨌거나 나는 스스로 '아버지에게 더부살이 하는 인생. 어서 이곳을 벗어나서 내 인생 내가 개척해야 하는 인생' 정도로 나를 규정하고 가능한 그의 눈에 안띄며 나의 독립을 나날만을 기다리며 살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늘 공부하는 시간 외에는 돈 벌 궁리를 하며 살았다. (대학때 과외 아르바이트로 월급쟁이들보다 돈을 더 잘 벌었다). 

 

늘 이런식이었는데, 대학교 3학년때  - 아무것도 아닌 일로 아버지가 갑자기 내게 폭발하셨다.  아무것도 아닌 일이 아니었겠지.  내가 아버지 눈길을 슬슬 피하며 살아온것처럼 아버지도 나에 대하여 스스로 어떤 문제의식을 갖고 계셨겠지.  서로 설명을 안하고 못한 것들이 켜켜이 쌓여갔겠지. 어쨌거나 기억도 안나는 별것도 아닌 일로 폭발을 하신 아버지는 -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나를 빗자루로 패셨다.  (아버지가 뭐 폭력적인 분은 아니셨다. 자식들 중 아무도 때리신 적이 없다. ) 그런데 그날은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기가 힘드셨던 듯, 방을 쓰는 빗자루를 가져다가 '눈부신 여대생이었을 나'를 개패듯 패셨다. 나를 개패듯 패다니.  어디에 나가서도 남한테 험담 한번 들을일 없이 차돌같이 살아온 나를 개패듯 패다니.  나는 너무나 놀라서 정말 오줌까지 줄줄 쌌다. 정말 나도 놀랐다. 그 참담함 이라니...

 

그리고는 아버지가 그 길로 집을 나가셨다. (하하하). 

 

엄마가 뭐라고 하셨더라 - 그 착한 아버지가 그렇게 패면 '아버지 잘못했어요' 해야 하는데 내가 입다물고 맞고만 있었으니 내가 '나쁜 년'이었다는거다.  그렇게 패는 사람이 '착한' 사람인지 아닌지 지금이라면 내가 논리적으로 따져보겠지만 - 어쨌거나 그 상황속에서 나는 '그 착한 아버지를 그렇게까지 만든 아주 나쁜년'의 낙인이 찍히고 만 것이다.  어떤 착하다고 알려진 이웃 남자가 나를 죽이면 나는 '그 착한 이웃남자로 하여금 살인을 하게 만든 나쁜년'이 되는걸까? 하하하.  쳐 맞은 나는 집을 안 나가고 때린 그는 집을 나가서 - 결국 나만 더 나쁜년이 되고만 이상한 상황이었는데...

 

아버지는 그 길로 남해인가 거제도인가 어디 멀리 '내고향 남쪽바다' 같이 먼 파란 바다가 보이는 곳으로 - 친구가 교장선생님을 한다는 어느 바닷가 학교의 교장사택으로 가셔서 며칠을 마음을 정리하고 돌아오셨다고 한다. (그리고 나는 파란 바다가 내다 보이는 창가, 연구실의 내 책상에 앉아서 심심파적으로 옛날 일을 생각하며 킥킥대고 있다. 인생은 희극적이기도 하고 비극적이기도 한데, 나는 가능한 코메디같은 삶을 살려고 노력한다. 웃자는거다. 뭐든 웃고 넘어가는거다.)  

 

나는 나를 때리고 집을 나간 아버지가 돌아올때까지 '아버지를 궁지에 몰은 나쁜년'의 죄목을 이마에 붙이고 죄인처럼 고개숙이고 숨도 못쉬고 지냈다.  아버지의 귀가는 내게 가장 큰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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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나는 이제 '낡은 시대의 사람'인 것 같다. 나는 요즘 20대 30대 사람들의 행태를 잘 이해를 못하겠다.  내가 그래도 20대 학생들을 가르치는 사람인데 - 내가 너무 낡아서, 내가 과연 그들을 가르칠 자격이 되는건지 가끔 걱정이 들기도 한다. 

 

나는 요즘 일어나는 현상에 대하여 참 이상하다는 생각을 한다. 

 

어머니가 나 때문에 교도소에 있다. 아버지도 어쩌면 나때문에 교도소로 갈지도 모른다. 나 때문에 집안이 엉망이 되었다. 그러면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나는 이마에 나의 슬픔을 써 붙이고 엎드려 있을것 같다. 뭔가 근신을 할 것 같다. 물론 나는 그것이 나의 잘못이 아니고 세상이 이상해서 그런 것이라고 항변할 수도 있다. 혹은 누군가가 우리 집안을 망신주기 위하여 일을 벌인것이라고 항변할 수도 있다. 나는 아무 잘못이 없다고 항변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정말 나는 아무 잘못도 없는걸까?  누군가가 혹은 어떤 거대조직이 의도를 가지고 우리가족을 함정에 빠뜨렸다고 가정해보자. 그럴수도 있을 것이다. 이때 나는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합리적일까? 나는 이 문제에 대하여 여러각도로, 여러 전문가들과 대화를 나눈적이 있다. 

 

언젠가 각분야의 교수들과 식사자리에서 내가 이런 질문을 던진적이 있었다 : "그 왜, 정말로 변명의 여지가 없는 실수를 저지르는 경우가 있쟎아요. 예컨대 미국의 저명한 목사가 성매매를 상습적으로 하다가 걸렸다거나, 혹은 모범 예술가나 시인으로 존경받던 인사가 증거가 확실한 '미투'의 본보기가 되어서 사회적 지탄을 받는다거나 - 이렇게 상상만해도 살 방도를 찾기가 어려운 상황에 빠진 사람들이나 그런 경우가 있단 말이에요.  그런데 사람이니까 계속 살아야 하잖아요. 그러면 이런 분들은 어떻게 문제 상황을 견디고, 통과하고, 재기 할수 있는걸까요? 저는 그게 정말 궁금해요." 

 

그런데 나의 이 심각한 질문에 대하여 나와는 다른 분야에서 교수를 하는 분들의 대답이 - 나로서는 뜻 밖이었다.  그분들에게는 내 질문이 그다지 어렵거나 심각하지 않은것 같았다. "아이고, 그런 사람들 많아요..."로 시작해서 - 대체로 나오는 답은 '아무개는 지금 어디서 뭐하고, 아무개는 뭐하고..' 뭐 한때 망신살을 겪고 지금은 더욱 잘 나간다는 얘기였다.  그래서 나도 깨닫게 되었다 - 설령 어떤 부끄럽거나 억울하거나, 혹은 억울하고도 부끄러운 복잡한 상황이 닥쳐도, 그 시간을 슬기롭게 견디면 살아갈 방도는 다 있는거구나! 

 

그분들은 너무나 슬기롭고 지혜롭고 전문가적인 분들이라서 내게는 '너라면 어떻게 그 난관을 헤쳐갈래?'하고 묻지 않았다. 역시 나는 좀 아둔해서 슬기로운 분들께 별로 도움이 안된다. (나는 그 상황이 너무 무서워서 숨거나 사라지거나 할 것 같다). 

 

그래도 내가 생각하는 '신분세탁' (부끄러운 일로 폭망한 후에 다시 재기하는) 방법이라면 -- 만약에 사회적으로 부활하고 영예로운 길로 다시 들어서기를 갈망한다면 -- 최소한의 선행은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내 아둔한 머리로 생각하는 방법이라면 - 의사라면 의사가 귀한 곳에 자원해 가서 2-3년 의료 봉사에만 몰두한다. 본심이 아니라해도 그런 행동을 보여준다.  행동하다보면 본심이 되기도 할것이다. 행동이 생각을 만들고 생각이 마음을 마음이 행동을 낳으므로.  의사도 아무것도 아니어도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곳은 아주 많을 것이다. 그런데 가서 2-3년 그냥 고개 숙이고 봉사활동만 하는거다. 그러다보면 세상의 눈길이 순해지고 - 너도 살아야지 어쩌겠어 하며 그를 다시 품으로 받게 될 것이다.  뭐 이런 '몸'으로 자신의 과오를 어떻게든 씻으려는 움직임이라도 보이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 아닐까?  그런데, 이것은 아주 아둔한 방법일것이다. 요즘은 이보다 훨씬 화려하고 즐거운 방식으로 어려움에 대처할 것이다. 나는 아주 낡아빠진 사람인것이다.

 

내가 '예수쟁이'가 된 것에 대하여 '안도'할때가 종종 있다.  내가 크리스챤이 된것에 대하여 안도하는 순간은 - 예수님 덕분에 근원적으로 구원받았다는 그런 면 보다는, 최소한 나는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시시각각 자각하며 살고 있다는 것이다.  당신이 예수쟁이라면 - 우덜 (우리들)은 기본적으로 우덜이 '죄많은 인생'이란 것에 동의한 것이다. 어떤 순간에도 나는 떳떳할 수 없다. 어떤 순간에도 나는 다른 사람을 멋대로 판단할 수 없다. 왜냐하면 - 내가 죄인인 마당에, 뭘 어쩐다는 말인가.  불의에 대항하여 목소리를 내고 행동 할 때에도 우덜은 기억해야 한다 '나도 죄인'이라는 사실을.  그러므로 악과 싸우는 순간에도 내가 죄인임을 잊지 않고, 몸을 낮추어 더욱 열심히 악과 싸워야 하는 것인데.  어쨌거나 나는 한평생 아둔하게 살았으며 이제 완전 한물 간 아둔패기이다. 도대체 세상 돌아가는 것이 기묘해 보인다.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