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2023. 1. 11. 19:08

미국의 그로서리점 약품 선반에 널려있는 수면보조제들

 

나이 먹으면 거의 모든 영역에서 '몸이 예전 같지가 않다'는 것을 자각하게 되는데, 나의 경우 '수면'도 노화 현상중 한가지이다. 갈수록 수면 시간이 짧아져서 새벽 세시에 깨면 잠들기 힘든 문제도 있고, 한국과 미국을 오갈때 작년까지도 하루이틀 사이에 시차적응이 쉽게 되었는데 올해는 일주일이 지나도록 시차적응이 안되고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는 현상이 계속되었다.  그래서 수면보조제의 도움을 받기로 결심하고 약품코너를 기웃대다가 나는 '미궁'에 빠진 느낌이 들었다. 선반에 수면 관련 약이 너무나 많아서 - 도대체 무엇을 골라야 하는것인지 가늠이 안되었던 것이다. (노벨상 수상자 다니엘 카네먼이 일찌기 그의 저서 Thinking Fast and Slow 의 도입부에서 바로 이런 문제를 지적한 바가 있다.  상점에서 청바지를 사려고 갔는데 종류가 너무 많아서 헛갈려서 사기가 힘들었다거나, 식품 코너에 전시된 잼이 종류가 너무 많아서 무엇을 골라야 할지 망설이다가 사는것을 포기한다거나 하는.  정보나 선택지가 필요이상으로 많을 때 오히려 사람의 판단력에 도움이 안된다는.  그야말로 내가 바로 그 꼴이었다. 수면보조제를 뭘 사야 할까 망설이고 고민하느라 그로서리를 세번째 들른날 마침내 '아무거나' 두가지를 골라서 살 수 있었다. 

 

 

 

그래서 내가 마침내 고민과 방황끝에 그냥 '아무거나' 고른 두가지가 (1) 타이레놀 피앰 (2) ZzzQuil, back to sleep 이란 것이었다. 잠을 푹 자기위해서 조지타운까지 강변길 따라 걸어갔다 오는 10마일의 워킹을 하고 몸이 녹초가 된 상태에서도 잠이 오지 않아 일단 널리 일반인에 알려진 '타이레놀 피앰'(Simply Sleep)을 먹었다. 약을 먹자 몸이 따뜻해지는 느낌이 들었지만 잠으로 연결되지는 않았다. 기다리고 기다리다 도저히 세시간이 지나도록 잠을 이룰수가 없어서 결국 ZzzQuil 을 먹었는데 이 약을 먹자 그야말로 30분이 안되어 잠에 빠져들었고 약 5시간을 푹 잤다. 

 

 

좋았어, 잠을 잤단 말이지.  그래서 그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 도합 네 밤을 그 ZzzQuil을 먹고 잠을 청했고, 4-5시간을 그 약에 의지해서 잠들수 있었는데 그래서 이 약을 좀더 사다가 한국집에 돌아간 후에도 필요할때 써야겠다는 생각까지 했는데 - 나는 이 약의 '부작용'에 눈뜨게 되었다. 잠을 자기는 잤는데 눈 떠있는 동안 머리가 맑지 않고 멍한 상태가 지속되었다. 그냥 멍한거다 온종일. 입맛도 없고, 미릿속은 휴지로 가득 찬것 같고, 속도 울렁거리고, 정상이 아닌거다. 

 

그래서 수면보조제를 끊고, 우짜든동 (어찌 되었건 간에) 수면보조제 없이 자연스러운 수면을 취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어찌어찌 수면제 없이 잠을 잘 수 있게 되었다.  교수 미국인 동료중에 수면장애 얘기를 하면서 '멜라토닌 없이는 잠 들수가 없어'하고 한숨지은 친구가 있는데, 그 멜라토닌이 정말 안전할까 의구심이 든다. 잠이 안올땐, 정말 몸이 녹초가 되도록 움직여도 잠이 잘 안온다. 오늘밤 나는 그래서 날밤을 새고 앉아있지만, 뭐 낮에 좀 눈을 붙이면 되겠지 하고 생각하고 있다.  수면보조제는 먹지 않을것이다. 그거 먹으면 잠을 자긴 하는데, 잔것 같지도 않고 머릿속에 휴지뭉치가 들어있는 느낌이 든다. 

 

아무튼 미국은 수면보조제의 왕국 같다. 수면을 돕는다는 약이 참 많이 널려있다. 

 

 

Posted by Lee Eunmee